고래 by 천명관 |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p.114)
고래 by 천명관 |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p.114)
1. 조용한 삶을 원했다. 어지럽지 않은 세상이기를 바랐다. 어렸다. 어려운 일을 바랐으니 그리 말할 수 있으리라. 어렸다고. 이제는 '모두가 세상을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라는 짧은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며 세상에 내놓은 건 거의 없지만, 이제야 고작 한 움큼의 지각을 얻은 기분이 든다. 따뜻한 냉소라 할 수 있을까? 타고난 천성을 반할 수는 없는 일이고, 조금도 세상을 냉소하지 않는 인간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리라. 그런 인간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을 응시하는 완전한 비관론자가 아니라면 필시 유치한 인간일 테니 말이다.
2. 모든 변화는 익숙한 것들의 뒤틀림과 그에 대한 의심, 안일한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을 동반한다.
3. 메마른 새벽 공기에 목이 말랐다. 모른 척 다시 잠에 들고 싶었지만 오늘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벽 잠에서 깬 후 바라본 이불은 평평하고 하찮은 무게로 나를 덮고 있었다. 내 삶이 저러하다. 하찮은 삶도 무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은 따뜻했다.
4. 너를 꼭 안은 채 세상에 뛰어들었다 믿었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네가 나를 안고 있었구나.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1-12. 2021
<Pachinko> by Min Jin Lee |
The big secret that he kept from his mother, aunt, and even his beloved uncle was that Noa did not believe in God anymore. (...) Above all the other secrets that Noa could not speak of, the boy wanted to be Japanese; it was his dream to leave Ikaino and never to return. (p.176)
Noa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when he was with her; in fact, he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or Japanese with anyone. He wanted to be, to be just himself, whatever that meant; he wanted to forget himself sometimes. But that wasn't possible. It would never be possible with her. (p.308)
That evening, when Noa did not call her, she realized that she had not given him her home number in Yokohama. In the morning, Hansu phoned her. Noa had shot himself a few minutes after she'd left his office. (p.385)
<A Spying Camera> for Sun and Midnight Team |
M: "그런데 왜 너희 군대는 이름이 Sun & Midnight이야?"
J: "......"
M: "이상하잖아. 태양하고 자정이라니. 한밤에 뜨는 햇님이야?"
J: "Never Mind!"
J는 자신의 동료 Elon을 위해 스파이 카메라를 만들고 있었다. 종이와 가위, 테이프만 있으면 그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우리는 논리가 힘을 갖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고, 힘든 시련을 뚫고 서로를 찾아내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다.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그녀는 몸의 힘을 빼고, 믿어야 하는 것을 믿기 위해 덴고의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댄다. 그곳에 귀를 대고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팔 안에 몸을 맡긴다. 콩깍지 안에 든 콩처럼. (p.1546)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Double Fact: 2+2=4, 3+3=6, 4+4=8......
Near Double: 2+3=5, 3+4=7, 4+5=9......
Here is my question: What's the use of this 'Near Double' concept when doing addition?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0. 2021
<포노 사피엔스> by 최재붕 |
일단, 매일같이 반복되던 대중 의식의 형성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은 모두 개인화 되었습니다. (...) 정보 선택권을 가진 인류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면서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 탓입니다. (p.26)
(가능한 반론)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 by 헤밍웨이(E. Hemingway) 저 / 김욱동 역 |
나는 생각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도록 태어났다. 정말 그렇다. 먹고 마시고 캐서린과 잠을 자도록 만들어졌다.(ch.32 p.279)후퇴 대열로부터 뒤처진 장교들을 향해 구차한 형식(탈영)을 빌미로 자신들의 정의를 행하는 헌병들의 손(전쟁)에서 벗어난 프레더릭 헨린는 자신의 사랑과 미래를 위해 삶과도 조약을 맺기를 바랐을 것이다. 강물에 흠뻑 젖은 그는 마침내 전쟁을 벗어났다고 믿었고, 캐서린과 다시 만났다. 이 헛된 희망을 향해 그녀와 함께 밤새 노를 저어 아는 이 없는 곳에 다다른 그와 그녀는 여전히 삶의 한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하던 일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하지 않을 거죠? 우리가 하던 말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나누지 않을 거죠?""물론 안 하고 말고.""하지만 당신에게 여자가 생겼으면 해요.""난 그런거 필요 없어." (ch.41 p.391)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a statue)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ch.41 p.393)
J: "Wah~Wah~Wah~" (crying...crying...keeps crying.)
그의 이는 이미 빠져있었지만, 그는 울었다.
(Y와 J가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New Kid> and <Class Act> by Jerry Craft
<New Kid> & <Class Act> by Jerry Craft |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
짧게 요약하자면 경계와 규범에 관한 글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젬과 스카웃 남매(+친구 딜)가 바라보는 세상(메이콤)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가치와 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글이다.
아빠(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비하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조용하고 성숙하다. 그가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양심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아빠가 그 사람을 변호하시지 않으면, 오빠랑 저랑 이제 더 아빠 말씀을 안 들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ch.9 p.123)"......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도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 (ch.9 p.12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ch.11 p.170)
"커닝햄 아저씨는 바탕이 좋으신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뿐이지."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거야. 그걸로 충분하다." (ch.16 p.25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이겨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과제다. 특히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유얼 집안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폭력을 행사할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백인들은 그녀가 돼지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그렇다고 흑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강기슭에 땅을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얼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메이콤 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품 바구니를 건네 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까지 보냈습니다. (ch.19 p.307)
결국 팀 로빈슨의 친절은 메이엘라 유얼이 백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의 통제되지 못한 연민의 감정(이 또한 흑인으로서의 규범을 어기게 된다.) 은 메이엘라에게는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왜곡된 형태로 보상해줄 대상 또는 수단으로, 기존 관습과 규범에 익숙한 백인(어른)들에게는 넘어선 안 될 경계를 넘어온 자, 즉 치욕과 모욕으로 다가선다. 그렇기에 (모욕 받았다고 믿는) 그들에게 있어서 팀 로빈슨의 재판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죄(Crime)를 다루는 것이 아닌, 금기(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어긴 신성 모독(Sin)에 관한 일이 된다.
"네, 검사님. 아가씨가 상당히 불쌍해 보였습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고요, 불쌍하게 보였다고요?" 길머 검사님은 마치 천장으로라도 튀어 오를 기세였습니다. (ch.19 p.316)
이 순간 법정에서는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린 딜의 울음소리만이 소외된 이웃(메이엘라 유얼)에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가선 팀 로빈슨의 통제되지 못한 감정(연민과 친절)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ch.19 p.319)
그러나 밥 유얼은 어리석게도 흑인 청년을 무고함으로써 메이콤(=백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으려 했다.: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규범을 지키고 있어!"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것은 모욕과 멸시였다.: 경계를 지켜내지 못한 쓰레기. 잉여 인간. 쓸모 없는 녀석. 팀에게 내려진 배심원들의 유죄 선고는 사실 그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배제와 추방. 그것은 울타리였다. <넌 이 곳을 넘어선 안 돼!>라고 답변하는, 유죄를 선고하면서 팀 로빈슨을 쳐다볼 수 없었던 이들이 새롭게 놓은 울타리.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바로 이런 식이었거든." (ch.27 p.400)
기존 규범에서 이탈한, 그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의 공허함은 또 다른 경멸과 적대를 불러 일으켰다. 마을 축제가 모두 끝난 어둠 속에서 밥 유얼은 몸부림 쳤고, 자신이 놓쳐버린 (어쩌면 허락되지 않은) 아이들의 울음에 상처를 내려했다. 그러나 또 다른 앵무새 한 마리, 아서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고, 팀 로빈슨이 그들에게 안겨준 작은 파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선(규범)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가로등이 읍내까지 길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태껏 이 방향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ch.31 pp.446-447)
어린 소녀 스카웃을 이 작품의 화자로 삼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아빠(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자칫 작품을 유치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작품 속 성숙한 그의 태도와 말은 아이들의 시선에 비춰질 때 비로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낸다.
아빠는 오랫동안 마룻바닥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드셨습니다. "스카웃 유얼 씨는 자기 칼 위로 넘어졌어. 이해할 수 있겠니?"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
"이해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글쎄, 말하자면 앵무새를 쏴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ch.30 p.443)
그렇게 아서 부 래들리를 이 세상(메이콤)의 앵무새로서 지켜내려는 아빠의 한마디에 스카웃은 래들리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오빠 젬을 소개한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의 모습을 아이들의 눈에 비춰본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 (ch.7 p.97)"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멋진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걱정이 많다.
끝으로 몇 가지 생각을 던져본다.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by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저/김진준 역 |
"이 사람은 두꺼운 소설책처럼 쉼표를 잔뜩 찍어 가며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11장)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어요, 로링 부인. 워낙 알쏭달쏭한 인간이라서." (31장)
"그는 마치 차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차를 마셨다." (32장)
"달빛에 물든 벽돌담처럼 침착한 사람이었다." (47장)
"1백 명 중 두 명한테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겠죠. 나머지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렇게 20년쯤 지났을 때 남자한테 남는 거라고는 차고 안에 들여놓은 작업대 하나가 고작이거든." (50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매우 뛰어난 문학적 수사는 없다. 그렇지만 <기나긴 이별>은 여전히 좋은 책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소설에서는 작가가 새겨 놓은 깊은 사유의 흔적과 작품의 주제가 흥미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창조한 매력적인 인물 한 명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보다 그가 창조한 인물 필립 말로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아서 코난 도일보다 셜록 홈즈가 더 유명하듯.)
몇 년 전 프랑스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라비크(소설 <개선문>의 주인공)가 즐겨 마셨던 칼바도스는 너무 독했는데(사과주라더니...), 말로가 테리와 나눠마신 김렛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걸 마시려면 아무래도 술집에 가야겠다. 굳이 우리 집에 로즈 사의 라임 주스를 사 놓을 필요는 없으니.
Y: "You are an weirdo~"
J: "No! I am not."
Y: "Yes! You are."
J: "No. You are an weirdo. Double Triple Double Triple times Ten times Ten times Infinity weirdo."
Y:"......"
J:"......."
<소년이 온다> by 한강 |
작가 한강의 글은 특이하다. 중간 중간 그녀는 시를 쓴다. 등장 인물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 순간 강렬하게 그 안을 파헤친다. 긴장된 순간과 겹쳐진 그 글들이 어느새 부드럽게 흘러간다.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역시 그녀의 글은 매력적이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109)
영웅이라 칭송받기를 원한 적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위로와 고마움을 원한 적 없는 사람들은 유족이 되어 남은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이들을 모독했다면, 우리 모두는 분노해야 마땅하다. 이는 지극히 당연해야 한다.
광주는 그 품 안으로 폭력을 끌어안았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는 듯이.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가 광주를 품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듯이.
언젠가 이 소설의 영문 번역서 <Human Acts>를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
어이! 흰 고래 보았소? (p.524)
이건 뭐지?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p.645)
그리고 에이해브와 선원들은 그토록 두려워하며 갈망했던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을 마주하고 자신들의 운명에 작살을 던진다.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p.681)
음산한 흰 파도가 그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바다라는 거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결치고 있었다. (p.683)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피빛 무덤 위에 세워진 나라 미국의 원죄, 그 비극을 목도하고 기억하며 이어진 삶, 그 삶을 비극으로 인도하는 운명.
삶을 운명으로 채우려는 인간의 광기, 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연, 그 자연이 내리는 벌.
또는 그저 삶과 죽음.
이 이야기 속에 넘쳐흐르는 상징과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의 생명력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삶에 대한 경외와 찬사는 작가에게 바친다. 당연히 이를 번역한 역자에게도. (번역이라는 작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400M 수영 계주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J: "Wow. United States~"
Y: "It's not even New York!"
그는 미국을 응원했고, 그녀는 오직 뉴욕을 사랑한다.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7-8. 2021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The Middle Passage> by 제임스 홀리스 (James Hollis) 저 / 김현철 역 |
우리는 원래의 자기감을 어떻게 습득했을까?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들은 무엇일까? 자기감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까?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과 우리의 타인을 향한 헌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성화를 이루고 중간항로를 지나 어두운 숲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면 어떤 태도와 행동변화가 필요할까? (p.14)
"자아(ego) - 자기(자기원형; archetype of self) -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드 - 자아 - 초자아"라는 도식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 하며, 주체로서의 개인에게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저자는 솔직한 태도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의 주제들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뉴욕 양키스 중견수의 꿈은 그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지속적으로 두 권의 책과 한편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1.<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by 사르트르
광대 놀이에 지쳐버린 사르트르의 유년기는 얼마나 처절하고 모욕적이었나? 그렇기에 그는 실존주의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불쾌한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보다 친절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미덕을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순화된 버젼의 실존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르트르는 무의식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보다 더 자식/부모 사이의 콤플렉스를 잘 (매우 잔인하고 선정적으로) 극화한 영상물은 본 적이 없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주술적 사고 & 영웅적 사고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를 극복한 (-하려 노력한) 이들은 간신히 살아남거나, 멋지게(?) 죽는 장면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허무하거나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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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과 그 개념들은 내게 매우 생소하기에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해본다.:
저자가 바라보는 개인의 여정이 지나치게 목적론적이고, 이를 설명하는 개념 틀이 너무 크고 포괄적이어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에게는 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치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주체를 중세 시대에 되돌려 놓는 것 같다. 저자는 중간항로라는 개념이 "연대기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경험"(p.40) 이라 설명하지만, 그 심리적 여정이 지나치게 환원적이라는 것이다. 주체 - 세계의 지나친 분화가 오히려 주체를 구속한다. 물론 이에 대해 저자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스스로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이는 개성화가 지닌 역설이다 (...) 따라서 개성화에 대한 관심은 자기도취가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타인의 개성화를 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p. 227-228)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자유라고 말할 것이다. 주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저자는 우리 시대의 신화로서의 개성화를 (p. 223)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가 사용하는 개념 틀의 환원론적 성격이다. 지나친 설명력은 구조적 폐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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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주제였고, 처음 접해보는 장르였다. (독서 모임의 장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황동규 시인이 만들어낸 "홀로움"이라는 단어.
중간 항로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울리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홀로움이 아닐까 싶다.
-북향 도로-
곁을 내주지 않은 첫 사랑 그 속살과도 같았던
청춘은 언제나 파랗고 어두운 바다 속 이었다
허우적거리면 기어코 손에 닿을 것이라 믿었던
뜨겁고 끈적한 모든 것들이 무서워질 때 즈음
나는 북쪽 길을 찾아 떠난다
쓰다 만 청춘에 용서를 빌고
떨군 사랑은 집어 들고 싶지만
굽어진 산 허리가 이미 초록을 거두었다
북쪽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까닭이다
인연의 숨결이 북쪽으로 흘러간 때를 추억한다
던져진 시절에 몸부림 치던 나는
연붉은 길 위, 눈 감은 채,
옅어진 울음을 놓아준다
마주할 수 없는 것들은 남겨두자
내 것이 아닌 사랑도 사랑이었으니
남들은 창을 내지 않는
서늘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나는 지금 북쪽 길을 밟는다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6. 2021
<회색 인간> 김동식 저. |
장르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이기에 불만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
Y's Acrostic Poem for Father's Day.
Full of loveA great chef
The best dad
Happy most of the time
Excellent
Radiant
Happy Father's day,
You are great,
Love,
Yuna
Y's Acrostic Poem for Mother's Day.
My mom is good
Only good
The best
Helpful
Easy to get along
Really great
말 그대로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 바퀴 전체와 안장 부분 전체를 누군가 떼어갔다. Guys....This is NYC!!!
<This is NYC!! The Remaining, Roebling, Brooklyn Bicycle Co.> |
Fuck I should've read this again before getting a fucking bike. Fucking NYC!!!
두 번째 COVID-19 화이자(Pfizer) 백신을 맞았다. 첫 번째 장소와 같은 장소였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끌고 출발하였다. (이전 글)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두 번째 접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절차가 있지는 않았다. 첫 번째 접종 때와 같이 미 해군이 모든 절차를 관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해군 장병이 접종을 도와주었지만, 한쪽에는 요크 대학교(York College, CUNY)의 학생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녀들의 이름표에 'Student Nurse'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민간인(?) 학생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았다. 접종을 마치고 백신 기록 카드에 두 번째 접종 표시를 해주었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네주었다.COVID-19 화이자(Pfizer) 백신 주사를 맞았다. 평소 주사를 무서워하는 J는 전날부터 계속 물었다. "울거야? 아빠 울거야?" 집을 나서기 전, 나는 그에게 참아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침 식사 후에 자전거를 끌고 30분 거리에 있는 백신 접종 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
<CUNY York College Health and Physical Education Bldg./Basketball Court> |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대기 시간은 없었다. 예약 정보와 신분증을 검사 한 후에 바로 접종이 가능했다. 첫 입장은 일반적인 공무원이 도와주었고, 예약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부터 일반적인 의사와 간호사는 안 보이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주사를 놔준 사람의 군복 왼쪽 가슴 주머니 쪽을 자세히 보니 해군(US NAVY)이었다. 특이하게도 녹색 계열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파란색 아닌가?) 나에게 주사를 놔준 이는 <CHAN>이라는 성을 가진 아시아계 여성 해군이었다. 간단한 질문들에 답했고, 접종 이후의 절차와 두 번째 접종에 대한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첫 번째 화이자 백신 접종을 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 April. 9 2021> |
이후 장소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페달을 돌리는 양쪽 다리가 힘들어서 그런지 더 이상의 다른 느낌은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에 이 글을 쓰며 느끼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백신 접종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와 정보들이 있다.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는 음모론(다른 의견?)도 있고, 어떤 이들은 백신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내비치기도 한다. 나는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신뢰하는 것은 해당 분야 다수의 전문가들이 교차 검증했다는 사실과 지금 까지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다. 다른 문제들도 넘쳐 나는데 백신을 앞에 두고 데카르트 "놀이" (음모론)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The Next Episode on April. 30.)
소수자(minority)가 되어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인간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며,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덕분에 지금껏 그토록 매달리던 단단한 틀을 깰 수도 있다.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편견 없이 타인을 이해한다. 다름을 위해 노력하고, 열린 자세로 비판한다. 사회 속에서 소수자가 되는 일은 한 개인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익숙했던 언어를 낯설게 내뱉으면 시인이 되듯, 머물던 세상이 문득 낯설게 보일 때면 성숙한 사람이 된다.
동시에 소수자는 차별을 받는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의 감정은 누구나 갖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히 평범한 이 감정이 소수의 "저들"을 만들기 시작하면 위험해진다. 그들은 다수의 "우리"와 소수의 "저들" 사이에서 작은 차이를 끄집어낸다. 그걸로 충분하다. 차별은 굳이 악마적일 필요가 없다. 이후에 뒤따르는 폭력은 매우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단순한 현상일 뿐이다.
차별의 가장 큰 악영향은 불신을 조장한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만들고, 개별성은 무시 당한다. 소수자는 결코 개별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뭉뚱그려진 저들"이다. 배제된 개인, 차별을 경험한 소수자는 불안하다. 편협한 생각이 들어서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한다. 사회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소외",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물화", 나 나름대로 말하자면 "무관심할 자유".
아마도 나는 절실한 당사자가 아닐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눈감고 포기하고 싶다. 무관심할 자유를 택하고 싶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포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극단적 확신과 광기"이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문구로 전락한 <All Lives Matter>. <Stop Asian Hate> 외침에 뒤따르는 특정 인종들 사이의 불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 그리고 함께 이를 경험하고 목격하는 일이다.
<Roebling>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샀다.
Brooklyn Bicycle Co. (해외 배송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뉴욕시의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자전거 회사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자전거들의 이름은 모두 브루클린의 골목/거리 명을 따르고 있다.: Bedford, Roebling, Driggs, Lorimer....
도시 생활형 자전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로드/MTB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몸에 딱 달라붙는 싸이클링 복장을 착용할 만큼 담대(?)하지는 못하지만 (내 취향도 아니고), 처음에는 드롭바 형태의 멋진 자전거를 원했다.
(내 도시 자전거의 이상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24년 전,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목포 슈퍼> 앞에 잠깐 세워둔 나의 삼천리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Whenever, whatever he was asked......
J: "It's hard to explain."
채식주의자 by 한강 |
자신의 몸과 기억에 새겨진 폭력, 이에 답하기 위한 선언/폭력: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영혜의 선언/폭력은 본래 그녀 자신 만을 향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영혜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것은 철저히 '비폭력적인 폭력'이다. 그러나 그녀를 이해하고자 -적어도 시도/노력- 하는 사람은 그녀의 폭력을 마주하고, 이에 반응한다. 예술적 영감과 자유를 향해 치닫기도, 또는 자기 삶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녀의 비폭력적 폭력은 이를 마주하고 이해하려 하는 타인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폭력의 본질은 객체를 물화(reification)의 과정 속에 강제한다는 것이다. 즉 주체는 대상을 철저히 장악한다. 영혜의 양 팔을 잡으라 명령하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자 한다. 반면 영혜의 폭력은 이러한 억압을 거부한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갈망하라." "자유로워라."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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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니다. 읽다가 덮어둔 <모비딕>을 다시 꺼내 들어야겠다.
Yo La Tengo & Teenage Fanclub
서울 집 내 작은 방 침대 위에 놓여있는 수 많은 앨범들 중에서도 이 두 밴드의 앨범을 찾아서 차례로 듣고 싶다.
<Season of the shark>를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Sometimes I don't need to believe in anything>을 또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두어 모금을 홀짝 거리다가 '이런...역시...'라는 표정으로 남은 맥주를 싱크대에 쏟아 버리면서,
멍 때리면서,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