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노동에 관한 그녀의 말

M: "우리 저 녀석 나중에 계속 부려먹자."

Y: "그래 아빠. 저 녀석 불에 구워 먹자."

2017년 12월 24일 일요일

청춘은 원래 비겁하고 용감하다.

스무살이 지나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꽤 많은 문자들을 훑어보았다. 문학 또는 전공 서적들이었다. 그렇게 머리 속을 멤돌다가 소화가 되지 못한 많은 문자들을 빈 종이 위에 토해내곤 했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형태가 없는 글이었지만, 간혹 마음에 들었던 글도 있었다. 토해냈던 문자들은 몇 권의 공책들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공책들을 모아 버리던 날,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우선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은 재미있었다. "<나는 창밖의 나무를 보고있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한 학기 동안 고민한 문제였다. 그 쓸모없음이 좋았다. 무의미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내 생활에도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그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쓸모없고 불안한 질문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그 시간의 나를 스쳐지나간 질문들이었다.

"가능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윤리적인 삶은 강박이 있는 삶인가?"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은 환상일까? 환상은 나쁜가?"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사랑하지 못하는 삶보다 불행할까?"

"소통되지 않는 진리가 있을까? 있어도 무의미 할까?"

제 2 도서관 5층. 소설책이 놓여있는 서가를 지나면 덩그러니 쓸쓸해 보이는 2인용 자리가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도 그곳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를 채우기도 했다. 전해지지 않을 말을 준비하며 먼 곳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평생을 함께 할지도 모를 사람과 스치며 인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깥 세상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그저 내 안의 문짝을 간신히 더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늦었다. 걸음걸이는 느렸다. 대학생활의 시작도 늦었다. 늦어지는 시간 속에서 불안한 질문을 즐기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의 문짝들이 덜커덩 거렸다.

'이 곳을 떠나보내자. 4년의 시간을 마저 채우고 싶지 않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계획했던 시간보다 먼저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위로가 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중간에 슬며시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이 청춘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청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나는 지금 서른 네살이다.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2017년, 나에게 청춘을 선물해 준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스스로 어린이

그는 말을 빨리 배우기 시작했다.

M: "아빠한테 와. 너 혼자 못해. 아빠가 도와줄게."

J: "만지지 마. 다 내가 알아서 할거야."

28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반항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