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
첫 문장(=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 Call me Ishmael.)이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간신히(?) 읽었다. 전체 718 페이지의 분량이니 분명 긴 소설이기는 하나, 책 읽는 속도가 한참 더뎠다. 한동안 덮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기를 몇 번 반복했고, 제 21장 <승선>을 기점으로 -허름한 여관의 침대 위에서 퀴퀘그를 만나고, 포경선 피쿼드 호에 올라 바다로 나아가기 까지 150페이지를 견뎌내야 했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모두 읽고자 다짐했다. 마지막 100페이지는 내일 출발하는 캠핑에 이 두꺼운 책을 도저히 가져 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읽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서사의 전개와 그 안에 묘사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철학적 물음과 사색 + 고래, 포경 & 배에 대한 설명 +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의 순서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총 135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때문에 서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당대의 선상 생활과 고래 잡이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가령, 제 74장 <향유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와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를 읽으면 그 누구라도 이 작가의 집요함에 항복할 것이다. (사실 저 유명한 첫 문장이 시작 되기 전 <어원>과 <발췌록>을 읽으면서 내가 그에게 지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작가에게 순종적인 독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선장 에이해브가 그 자신의 운명을 앞당기려는 듯 던지는 대사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
어이! 흰 고래 보았소? (p.524)
결국 그는 이 물음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의 삶이 향하는 곳으로, 감히 선장에게 맞서려고 했던 스타벅 까지도, 피쿼드 호에 승선한 모든 이들은 에이해브를 따라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올린다.
이건 뭐지?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p.645)
그리고 에이해브와 선원들은 그토록 두려워하며 갈망했던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을 마주하고 자신들의 운명에 작살을 던진다.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p.681)
음산한 흰 파도가 그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바다라는 거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결치고 있었다. (p.683)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피빛 무덤 위에 세워진 나라 미국의 원죄, 그 비극을 목도하고 기억하며 이어진 삶, 그 삶을 비극으로 인도하는 운명.
삶을 운명으로 채우려는 인간의 광기, 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연, 그 자연이 내리는 벌.
또는 그저 삶과 죽음.
이 이야기 속에 넘쳐흐르는 상징과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의 생명력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삶에 대한 경외와 찬사는 작가에게 바친다. 당연히 이를 번역한 역자에게도. (번역이라는 작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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