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화요일

인사, 2019 그리고 2020

2019년. 안녕. 영원히.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르는 -알아도 오지 않는- 이 공간을 종종 둘러보는 이들이 있다.

특히 그대. 러시아에 사는 그대는 누구인가?

반갑습니다. 이 글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당신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당신을 모릅니다. 그 사실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2020년. 안녕하기를.

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Spotify의 정리정돈

Spotify Logo from Google Image

"난 정리정돈을 잘해."
"각각의 정리함에 예쁜 표식을 해두었지."
"너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제부턴 내가 알려줄게!"


난 CD에 집착하던 사나이였다. 일본에서 잠깐 살았던 중학시절, 그들의 음악 시장에는 MD라는 것이 있었고, 그 깔끔하고 정교한 모습에 감탄을 했었다.

"CD의 음질을 구현해 낸 이 앙증맞은 자태를 보라!"

라며 감탄을 했지만, 역시 내가 일본에서 공수해 온 것은 CD였다. (MD가 너무 비싸기도 했고)  고교 시절, MP3 플레이어가 처음 나오고, 냅스터(Napster)를 통해서 듣고 싶은 음악을 (여러 의미로) 간편히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결국 내 가방 안에는 항상 CD 플레이어가 들어있었다. 나의 마지막 하늘색 CD 플레이어, 이 녀석의 렌즈 수명이  끝나갈 무렵 내 눈에 띈 것은 Apple iPod이었다. MP3 플레이어의 진화! 그러나 이후에도 수 많은 CD를 구매했고, - CD는 소중하니깐! - 직접 iTunes에 일일이  음악들을 옮겨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난 바다 건너, 먼 곳에 오게 되었다. 그 동안 모아둔 앨범들과 작별을 고하였다. 먼 곳에 온 이후로 컴퓨터 안에 있는 음악 파일들을 통해 예전 노래들을 듣고, YouTube를 통해 요즘의 노래들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약 8년이 흘러 (8년만에 장만한 새 컴퓨터 덕분에) 느즈막히 접한 Spotify.

'아...이래서 요즘 컴퓨터는 저장장치 용량에 집착하지 않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들이 정리해 놓은 음악 목록들을 살펴본다. 깔끔한 목록표, 오늘의 음악들: 메이드 뽀 마이끌, 한국 음악 목록의 태극기 문양까지. 뽀송뽀송한 기분이다.

좋아요를 눌러서 나의 취향을 알려주면, 그들은 응답한다: '넌 이 노래를 좋아할거 같아!' 그렇다! 자료 과학의 힘이란 위대하다!

Sun Rai의 <San Francisco Street>를 들었더니, Dua Empat의 <Piccadilly>를 추천해 준다. 언제나 내 곁에 있는 Stan Gets의 음악을 틀어보니, Lisa Ono의 앨범이 기억난다. 서울 내 방 어딘가에 꽃혀 있을 그녀의 앨범을 떠올리며 음악을 튼다.

처음 들어보는 가수의 처음 들어보는 음악. 항상 듣는 앨범과 잊고 있었던 가수의 목소리.

역시! 평소 정리정돈을 잘 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2020년이 새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 평소 정리정돈을 잘 하니깐! :)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왜 하필 인.문.학. 일까?

왜 하필 인.문.학. 강의일까? 왜 하필 인.문.학. 강사일까?

'인문학 강사라고 불리우는' 누군가가 강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무런 주제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말해도 (꽤나 그럴듯한 논리와 숙련된 화술, 무엇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가 중요하다. 그러니깐 '아무렇게나'는 아닌건가?),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문.학. 입니다."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여 주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 강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공간과 빛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꺼내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혹은 떨군다.) 그러나 다시 '인문학 강사라고 불리우는' 누군가가 "여러분. 스티브 잡스는 할 수만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과 소크라테스와의 한끼 식사를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음미하며 인문학의 위대함에 감동한다.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강사의 몸짓을 호기심 가득한 두 눈으로 바라본다.
철학과  어느 노교수: "내가 여지껏  학생들한테 거짓말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어." 
from Google Image

어느 날, 할 일을 미뤄둔 채 컴퓨터 화면 속 세상을 배회하던 중 "학생들에게는 수능을, 성인에게는 인문학을 강의하는 ooo 입니다."라는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어떤 강사의 인문학 강의 동영상을 우연히 본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강연자의 한마디 한마디 모든 것이 소중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IT와 인문학의 그 긴밀한 관계를 짧은 시간 안에 엮어내야 하는 그의 막중한 책무가 그를 몰아 붙인다. 그러나 그는 이 정도의 압박은 익숙하다는 듯 강연 중간중간에 청중들을 위해 준비해 온 농담을 자연스레 배치한다. 그는 완급조절에도 능한 것이다! 열변을 토하며 기업들의 입사 시험 문제와 면접 질문들을 나열한 후에 나지막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크라테스로 시작해서 보드리야르까지 다다른 그의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자니, 강연 중간중간에 그가 아무런 의심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쏟아낸  몇몇의 문장들이 그의 전체 강연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강연의 끝을 알리는 그의 요점 정리를 듣는다. 보드리야르의 <이미지-소비 사회> 개념과 <스토리-인문학>을 엮는 강연자의 말솜씨에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청중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듣는다.

'청년들이 인문학을 공부해서 스토리를 생산하고, IT 기업에 취직해서 지금의 이미지 소비사회를 촉진시키자는 건가?'

도대체 그는 왜 갑자기 보드리야르의 소비 사회를 인용한 것일까? 단순히 [이미지-스토리-인문학]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스크린 위에 띄어 놓은 유명 학자의 사진과 저작이 그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해준다고 믿었던 것일까? 인문학에 대한 그의 이해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조금 더 찾아본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인문학을 강조하는가?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찾다보니 그의 철학 강의가 눈에 띈다. 서양과 동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강의들이 이미지 세상 속에 나열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면을 아래로 약간 내려본다. 경제, 역사, 미술, 식문화, 재태크, 주식.....('그래 왜 없겠어.')...... 정치까지!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그 개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곧 오늘 날의 한국사회인 것을. 모두가 모든 것을 알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회. 그 단단한(?) 토대 위에서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조급한 사회. 그렇다. 더 이상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전문가의 권위는 위키피디아에 넘어간지 오래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강연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의심하는 점 한가지가 있다. '적어도 강연자 스스로가 자신이 사용한 내용과 개념들에 대해 위키피디아라도 열심히 찾아봤을까?' 라는 것.)  전문가도 더 이상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전문가 처럼 보여야' 한다. 확신에 차야한다. 일말의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쉴 틈 없이 쏟아내야 한다. 사실 그것이 굳이 자신의 의견일 필요도 없다. 쏟아지는 정보들 아래 깔려 죽을 판인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스타 강사인 그가 [IT-인문학]을 연결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차라리 [개똥-철학] 두 단어의 의미와 관계에 대해 고민해 봤더라면 더 설득력 있고 유의미한 인문학 강연이 되지 않았을까? (고백하자면 '개똥철학'이라는 단어는 전공자들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묘한 자부심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 마나 한 물음: "인문학의 위기인가?"

먹고 살길만 열어줘도 돈 안 되는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자 하는 이들이 내 주위에는 꽤 많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돈 안 되는 일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요즘은 인.문.학.이 돈이 된다고. 사람들의 조급함이 낳은 상.품.으.로.서.의. 인.문.학. 그런데 어쩌랴. 조급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인것을. 조급함이 돈을 가져다 준다. 물론 제대로 갖춰진 전문가 이미지가 있어야 겠지만 말이다. 이 강연자는 그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한 듯 보였고, 내가 아는 전문가들 - 좁게는 철학 전공자들 - 은 그 이미지를 만들기에는 너무 확신이 없다.

철학과 어느 노교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여지껏 학생들한테 거짓말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어." 

2019년 11월 2일 토요일

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Air Hockey에 관한 그의 말

Catskill, NY에 위치해 있는 <The Kartrite Waterpark>라는 곳에 놀러갔다. 그리고 Y와 J의 Air Hockey 승부가 시작되었다.

J: "곰돌이랑 같이 하니깐 잘 되는군."

Y: "......"

J: "역시 곰돌이가 최고라니깐!"

그러나 결국 J는 패하였고, 집으로 돌아와 사자를 안고 잠들었다.

2019년 9월 24일 화요일

네 살 아이가 바라 본 자신의 두 살 모습

나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의 두 살 적 모습을 네 살이 되기 두 달 전에 볼 수 있다니.

2019년 9월 6일 금요일

Red Hot Chili Peppers - Californication LIVE Slane Castle

 언젠가 결국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드럼이고 기타고 베이스고 몽땅 집어던져버리고 욕을 한바가지 한 다음에 손에 들고 있는 마이크로 눈에 거슬리던 관객 한명의 머리통을 깨부순 다음에 "Fuck the world."라고 외치며 철창신세를 질거라고 예상했던 초록 날 [Green Day] 형님들의 음악이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앨범 <American Idiot>을 듣다가 '이 형님들이 드디어 정말 미쳐서 득도를 하였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초록 날 형님들 보다 조금 더 일찍 득도를 한 나체장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고춧가루 [Red Hot Chili Peppers] 형님들이었으니. 들어보자. 그들의 충고를.

 그나저나 여기나 저기나 멍청한 것들 투성이니깐 확 고춧가루나 한바가지 퍼부어 버리고 싶다. 




2019년 9월 3일 화요일

카나이 하루키 in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카나이 하루키.

선배에게 구타를 당한 사나이.

SM 잡지의 주인.

"お前......お前, こんな所にいるんだよ."

이 사나이는 술자리에서 선배가 자신에게 화낸 이유를 결국 알게 되었을까?

2019년 9월 1일 일요일

여행, Montreal & Quebec City, Canada (몬트리올 & 퀘벡시, 캐나다) 2019 - 넷

8월 2일 금요일, 여행 마지막 날.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 날씨다. 

Ben & Jerry's Ice Cream. 엄청나게 즐겨먹는 아이스크림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회/정치 참여, 지향점, 그리고 가벼운 농담이 마음에 든다. 

Ben & Jerrys, VT, USA

Ben & Jerrys, VT, USA

Ben & Jerrys, VT, USA

Flavor Graveyard at Ben & Jerrys, VT, USA

Flavor Graveyard at Ben & Jerrys, VT, USA

Fresh Georgia Peach at Ben & Jerry's , VT, USA
 짧은 공장 투어를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시식했다.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구경한다. 공장 옆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고, 사라진 맛들을 위한 공동묘지도 있다. 각각의 묘비에는 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는지, 당시의 상황과 이유가 적혀있다. 

 "안녕. 잘가. 복숭아야. 여긴 너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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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각오를 다진다. 집에 가야한다.

From Waterbury to Home via Lake George
 집으로 돌아가는 길. 뉴욕시로 들어가는 길에 퇴근시간과 맞물리면 차가 많을 듯 하여, 조지 호수(Lake George)에 들러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뉴욕주에서는 꽤 유명한 휴양지라고 한다. 편안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느긋한 발검음으로 산책을 하고, 이른 저녁 호수의 물결을 즐기고 있었다.

Lake George, NY, USA

 다시 정신 차리자! 달리고 달렸다. 중간에 고속도로를 벗어나 주 공원도로(State Parkway)로 들어섰다. 고속도로에 비해 운전길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산을 양 옆에두고 운전을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덕분에 절벽 위에서 풀을 뜯고 있던 사슴 가족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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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밤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 동안 줄곧 우리 가족을 위해 달려주었던 애마를 집 근처에 주차 시켰다. 짐들을 정리하고, 아이들 뒷자리를 청소했다. 기특한 녀석. 짧은 기간 동안 대략 총 1,569 km를 달렸다. 

 역시나 여행은 즐겁고, 피곤하고, 신기하고, 짜증나고, 행복하고, 힘들다. 그리고 언제나 끝이 난다. 잠시 여행 중도하차!

 정말로 끝.

여행, Montreal & Quebec City, Canada (몬트리올 & 퀘벡시, 캐나다) 2019 - 셋

다음 날, 7월 31일 수요일. 우리는 고래를 만나러 간다!!

From Quebec City to Tadoussac (Baie-Sainte-Catherine)

 아침부터 서둘렀다. 중간 즈음에 있는 작은 마을(Baie-Saint-Paul)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함께 먹을 핫도그를 준비했다. 지난 저녁 식료품점에서 사온 소세지와 빵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간식을 챙겼다. 10시에 배를 타야하는 일정이라서 넉넉히 6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타두삭으로 향하였다. 지도에서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아침에는 아래의 길로, 돌아 올때는 위의 길을 이용하였다. 아랫 길이 조금 구불구불하고 작은 산과 마을들을 지나기 때문에 운전에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스치는 풍경이 훨씬 예쁘고, 이 운전길에서는 세인트 로렌스 강의 아침 물안개를 만나볼 수 있다.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당일 여행일정을 예매한 사이트와 현장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무사히 승선했다.

Whale Watching, Tadoussac, Canada

Whale Watching, Tadoussac, Canada

Whale Watching, Tadoussac, Canada

 원래 계획은 고래와 마주하고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계획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먼 발치에서 벨루가(Beluga Whale)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등과 꼬리를 바라보았다. (간신히 카메라에 담은 벨루가의 하얀 등을 보라!!!)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바다 쪽으로 꽤 멀리 나갔다. 안개가 그어놓은 희미한 경계를 지나자 차가운 공기가 배를 짓누르듯 감싸 안았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비행기가 가끔 휘청거릴 때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래와 더 가까이 조우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탄성들을 남겨두고 배에서 내렸다. 대신 타두삭 마을을 돌아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며 바라본 절벽과 나무들로 이날 여행의 빈 곳을 가득 채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퀘벡으로 돌아오는 길을 서둘렀다. 아침과는 다른 길로 차를 몰았다. 비가 쏟아지고, 길은 아래위로 출렁거렸다. 아이들은 잠들고, 아내는 운전하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퀘벡시에 도착해 베트남 음식점에 가려고 했으나 주차할 곳이 없어서 포기했다. 아이들은 아내와 함께 숙소의 발코니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고, 나는 휴식을 취했다. 

-참고-
 퀘벡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몽모렌시 폭포(Montmorency Falls)를 구경하고 싶은 분들은 폭포 위쪽의 동네로 가보세요. 맥도날드가 있고, 옆에 편의점과 주유소가 있는 곳으로 가면 무료로 주차를 하고, 주민들이 다니는 폭포 뒤쪽의 길로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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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일 목요일, 퀘벡시 여행의 마지막 날. 뉴욕으로 돌아가는 일정의 시작. 

 퀘벡시 성곽(La Citadelle de Quebec)으로 가는 길, 근처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곳에서 일상의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크로아상을 하나씩 집어들고 길을 나선다. (이 곳도 정말 괜찮았지만, 역시나 몬트리올의 크로아상이 최고다.)

Cafe Les Cousins, Quebec City, Canada
Latte at Cafe Les Cousins, 
 카페에서 나오는 길, 밖에 앉아있던 한국인 아저씨 부부의 래브라두들(= 래브라도+푸들, 처음 들어봤다.)이 아이들의 발을 붙잡았다. 여행 내내 작은 꼬마녀석이 들고 다니던 막대기를 개가 부러뜨렸지만, 그는 래브라두들과 교감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듣는 미국억양의 영어가 반가웠다. 

 퀘벡시 성곽에서 짧은 투어를 마치고, 꽤 흥미로운 경비병 교대식을 보았다. 염소와 함께하는 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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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정말로 캐나다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몬트리올 공항에서 인출한 캐나다 달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에, 아침의 카페에서 추천해준 와인가게이 들러 아이스와인을 두 병 손에 넣었다. 

From Quebec City to Waterbury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버몬트주의 워터버리(Waterbury, VT)라는 동네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이번 여행의 두번 째 이유, 벤과 제리의 아이스크림 공장(Ben & Jerry Ice Cream Factory)이 있기 때문!!! 이날 아침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충돌사고 때문에, 퀘벡시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길로 빠져나오기 까지 시간이 지체되었다.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서기 전, 프랑스어로 가득찬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참고, 퀘벡주의 맥도날드에서는 푸틴을 맛볼 수 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한가한 마을의 맥도날드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우리 가족은 신기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주문을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자동주문기계를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계신 할머니 직원이 신기했다. 

 맥도날드 매장 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실내 놀이터가 있었다. 동네 꼬마들이 한국말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신기했는지, 계속해서 함께 놀자는 신호를 보냈다. 물론 그 신호에 응답했다. 큰 아이는 영어로 말을 했지만, 그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지만, 작은 아이는 그냥 한국말을 하며 함께 놀았다. 이것이야말로 화합!! 어쩌면 이 맥도날드의 실내놀이터가 이번 여행 중 아이들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호젓한 산길과 한가로운 시골길을 지나 천천히 길을 내려오니 아마도 불친절할 국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역시나 불친절한 국경 직원을 만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로 향했다.

Waterbury, VT, USA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호텔이었지만, 산속에 묻혀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곳의 수영장이 가장 반가운 모양이다. 피곤함에 몸을 눕히지마자 잠이 들었다. 내일은 정말로 길고 긴 여정이 될 예정이다.

오늘은 끝.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여행, Montreal & Quebec City, Canada (몬트리올 & 퀘벡시, 캐나다) 2019 - 둘

셋째 날. 7월 30일 화요일.

 퀘벡시로 떠나 기 전,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평일 아침에 방문을 하니,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성당 안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정착한 낯선 땅 위에 그들은 수 많은 것들을 새로이 짓고, 새로운 것들을 옮겨왔다. 화려한 성당이 대표하는 그들의 종교는 그들 자신에게 모종의 우월감과 위안을 동시에 전해주는 듯 하다.

La Basilique Notre-Dame, Montreal, Canada
 햇살이 성당 안의 유리 창을 통해 화려한 빛깔을 선사한다. 푸른색의 차가운 빛깔이 이 텅빈 공간에 권위를 부여한다. 씁쓸함과 숙연함을 느끼며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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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아침에도 구(舊)항구를 찾았다. 성당 근처의 유명하다는 케이크 집에 들러서 맛난 케이크 두 조각을 얻었다. 꼬마 친구들은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흥분 상태다. 난 역시나 미국에서 온 관광객답게(?) 차가운 라떼를 마셨다.

Cakes, Maison Christian Faure, Montreal, Canada

Iced Latte, Maison Christian Faure, Montreal, Canada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을 준 우리의 애마를 수령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에 운전을 하게 되어서 첫 삼십분 정도는 매우 어색했다. 그러나 퀘벡 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이 녀석과 친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동차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다. 다양한 기술들이 운전에 도움을 준다. 
  • 옆 거울의 후측방 경고등은 정말 좋은 기술이다!! 
  • 운행모드에 따른 자동차의 반응이 느껴진다.
  • 차선유지 기능도 운전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가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날 때는 가끔 지나치게 운전에 개입한다.) 
  • 그리고 선루프는 정말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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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아버지의 애마 엘란트라(1680)가 생각난다. 당시에 녀석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동차였는데......어릴 적 녀석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추억을 지금 나의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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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퀘벡으로 출발. 꽤 멀다. 


From Montreal to Quebec City
 3시간 정도 걸려서 퀘벡시의 숙소에 도착했다. 우선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깔끔한 2층 집이었다. 

 계획을 세울 때, 이날 퀘벡시에 도착한 이후 남은 오후 시간에 퀘벡시를 구경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오랜만에 긴 거리를 운전해서 피곤할 수도 있었고, 아이들도 지쳐있으면 걸어서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퀘벡시까지의 거리는 그저 길게 뻗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흔하디 흔한 북미 고속도로 였다. 심지어 조금의 교통체증도 없었기 때문에, 3시간의 운전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 힘이 넘쳐났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퀘벡시의 관광지는 좁은 구역에 모두 모여 있는 편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시내에도 괜찮은(가격, 위치 등) 주차공간이 꽤 있다. 편하게 애마를 이끌고 유명 관광지들 바로 앞의 주차장에 안착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 많은 한국 관광객들과 유대감을 형성하지는 못 하였지만, 여러 역사적인 사실들과 뒷 이야기들,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러운 건물, 거리, 골목들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Le Château Frontenac, Quebec City, Canada

Breakneck Steps, Quebec City, Canada

Rue du Petit Champlain 1

Rue du Petit Champlain 2
Rue du Petit Champlain 3


Rue du Petit Champlain 4
 아내와 아이들은 샐러드, 생선, 파스타를, 나의 저녁은 크랜베리쥬스. 주문을 하며 영화 <The Departed>에서 크랜베리쥬스를 주문하던 디카프리오가 떠올렸다.

Cochon Dingue, Quebec City, Canada

Cochon Dingue, Quebec City, Canada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후에 차를 타고 강가 쪽으로 내려왔다. 한가한 강변을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중, 식료품 점에서 내일의 식량들을 챙겼다.

다음 날은 드디어 이 여행의 목적! 고래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끝.


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여행, Montreal & Quebec City, Canada (몬트리올 & 퀘벡시, 캐나다) 2019 - 하나

여행을 떠나는 날, 7월 28일 일요일.



 뉴욕에서 몬트리올까지의 여정은 비행기!!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서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짧은 비행시간 덕분에 도착한 날에도 온 종일 몬트리올 구경이 가능했다.

 몬트리올의 거리를 걸으면 뜻을 알 수 없는 프랑스어의 부드러운 운율이 내 귀를 넘실거리며 스쳐간다. 길거리 표지판의 알파벳 위에 점들이 찍혀있다. 가깝지만 외국이다.

 깔끔한 거리와 땅속 깊이 자리한 지하철 역에 워싱턴 DC를 떠올린다.

A Bench, Montreal, Canada.
Buildings, Montreal, Canada
Streets, Montreal, Canada
Old Port, Montreal, Canada
 간단히 점심을 먹고 몬트리올의 세인트 로렌스 강 주변을 구경했다. 메이플 시럽을 주제로 한 가게에서는 반가운 만남도 있었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아가씨가 인사를 건넸다. 나와 아이들이 주고받는 한국어를 알아들었다고 한다. 혼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한국에서 일하며 1년 정도 지내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서투른 한국어와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가 매력적이다.


유모차 없는 여행. 녀석들이 힘들었을텐데도 하루종일 잘 다녔다.

무더운 몬트리올의 여름을 경험했다. 비행기로 한시간을 날아서 북쪽 위로 올라왔지만 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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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9일 월요일.

 혹시나 몬트리올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한 곳을 추천해주고 싶다.: Mount Royal Park!!!



 버스를 타고 맥길 대학교 근처에서 내린 후에 천천히 산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꼬마 친구들에게는 조금 버거웠던 꽤 가파른 계단길도 있었지만, 약 30분 정도의 가벼운 산책에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Mount Royal, Montreal, Canada.
Mount Royal, Montreal, Canada.
Mount Royal, Montreal, Canada.
 전망대에서 산의 뒤쪽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캐나다의 대표 음식인 푸틴(Poutine)을 먹으러 갔다. 푸틴은 봉지라면과 같은 종류의 음식이다. 맛있지만 맛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T1: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라면 스프를 넣는다. 그 위에 계란, 파, 김치 등을 함께 넣어 먹는다.>

T2: <감자튀김 위에 다른 종류의 튀김 - 양파링, 치킨 등 -이나 고기, 또는 소세지를 올린 후에 그레이비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T1=T2
La Banquise, Montreal, Canada.
 몬트리올의 푸틴 가게 중 하나인 <La Banquise>. 할아버지 한분이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가신다. [지역 주민들은 포장, 가게의 자리는 관광객에게]라는 규칙을 시행하고 있는가 보다. 가게 안에는 온통 관광객들이다.

이후 숙소로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잠시 휴식. 저녁 식사는 프랑스 식당. 그리고 다시 한번 늙은 항구를 찾아 다 함께 여유로운 산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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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숙소 가까운 곳에 이 세상 (so far) 최고의 크로아상 가게가 있다.

L'Amour du Pain (323 Rue de la Montagne Montreal, QC H3C 2B2 Canada)


L'Amour du Pain, Montreal, Canada.
L'Amour du Pain, Montreal, Canada.
L'Amour du Pain, Montreal, Canada.
이번 여행 중 먹었던 모든 음식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일단 여기서 끝.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여행, Montreal & Quebec City, Canada (몬트리올 & 퀘벡시, 캐나다) 2019 - 계획/총평

15년 전 캐나다 서부의 국립 공원을 가족들과 함께 다녀 온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두 번째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Plan



Plan 1
Plan 2
Day 1 
July 28, Sun
NYC -> Montreal (Air Canada)

Day 2 
July 29, M 
Montreal Tour

Day 3 
July 30, Tu
Montreal -> QB & QB Tour
: rent a car at 11:00 AM / 3 hours
Day 4 
July 31, We
QB -> Baie-Sainte-Catherine Billetterie ( 3hrs tour at 9:45 am) → QB
: will take 2:30 hours from QB
Day 5
Aug. 1, Thu
QB -> Burlington, VT
  : will take 4 hours.
Day 6
Aug. 2, Fri
drop by Ben & Jerry, VT
Breakfast and go back to nyc home
: will take 6 hours
Day 7
Aug. 3
Sat.
Rental Car Return!!
LGA Airport at 11:00 AM


 여행 계획은 오래전 부터 세웠다. 여름이면 워낙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고,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Tadoussac, Quebec (타두삭, 퀘벡) (Quebec City에서 자동차로 2시간 40분 정도 위로 올라가면 있다.) 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고래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기에, 예약을 서둘러서 진행하였다. 또한, 몬트리올 까지는 비행기로 가지만, 이후의 여행은 차량을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좋은 가격을 얻기 위해서는 빠른 예약이 필수였다. 덕분에 괜찮은 가격으로 숙소와 차량, 그리고 고래 만나기 여행을 예약할 수 있었다.

 특히 차량의 경우 CAD $425.64 (USD $316.58)의 가격(세금 포함)으로 총 4일을 빌렸다. 결제 카드가 제공하는 보험을 이용하였고, 아이들 차량의자는 Amazon Canada를 통해 구입하여 몬트리올의 숙소에서 받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필요한 EZ Pass는 이번 여행을 위해 처음으로 신청했다. 꽤 긴거리를 우리 가족과 함께한 차량은 <RAV 4, Toyota. 2019> 였고, 총 이동한 거리는:

몬트리올 - 퀘벡시 : 268 km
퀘벡시 - 타두삭 : 430 km (왕복)
퀘벡시 - 워터버리, 버몬트: 360 km
워터버리 - 레이크 조지, 뉴욕: 165 km
레이크 조지 - 집, 뉴욕시: 346 km

합: 1,569 km

이번 여행 이전에 운전을 했던 총 거리가 200 km도 안 될 듯 한데...

그나저나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인상들.
  • 캐나다 입국심사는 친절하다. (미국 공항에서는 대부분 형편없는 서비스와 태도를 경험한다. 심지어 미국여권을 보여줘도.)
  • 캐나다의 동북부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다. (일단, 도로표지판이 모두 프랑스어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에 능통하지만, 간혹 나이드신 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모두 친절하였다.
  • 예상과는 다르게 퀘벡시보다 몬트리올이 더 좋았다.
  • 퀘벡시의 관광지역은 모여있다. 계획을 잘 세우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곳을 구경할 수 있다.
  • 캐나다 음식 푸틴(Poutine)은 맛있다. 그런데 맛이 없을 수도 있을까?
  • 자연 속 고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다.
마지막으로,
  • 그 동안 가족들을 위해서 여행계획을 세우고,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2019년 7월 2일 화요일

Toy Story 4

2019년 7월 2일. 여름

AMC Empire 25 at Time Sq. NYC.

<Toy Story 4> 

Y, J 그리고 M. 삼총사가 처음으로 다 함께 영화관에서 본 영화.

덧붙여......

J는 무서운 장면에서 약간 울었다.

2019년 6월 27일 목요일

가족 사랑에 관한 그녀의 글

"I love my mom because she always go to her ofis and get muneey."
"I love my dad because he always give us food."
"I love my little brouther."
"I love my family."

2019년 6월 17일 월요일

글쓴이와 글에 대한 단상

1.
 이청준 작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공교롭게도 그의 책을 읽고 있었다. 2008년의 어느 여름날, 대학로의 한 찻집에서 였다. 그 자신이 옮겨놓은 문장들 처럼 이청준 선생은 점잖게 떠나버렸다. 무더웠던 그날, 선생의 소설 <눈길>을 떠올렸다.

2. 
 지금껏 좋아하던 시인의 경로는 대충 다음과 같다.:

김수영 - 황지우 - 이성복 - 기형도 - 오규원 - 김경주 - 심보선 - 오탁번 - 이정록 -....- 오탁번 - 이정록 -....- 기형도.

 이곳의 책장에는 여태껏 오탁번 시인과  이정록 시인의 시집들만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선물 받은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2-1.
 밑줄과 낙서로 더럽혀진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한 친구에게 선물했다. 2008년 여름, 어색하게 드러난 성북천의 끝머리가 보이는 곳에서 그 책을 선물하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라는 부분을 좋아해 주었으면."

 이후로 내게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욕에 놀러온 또 다른 친구 (동생의 전 직장 동기. 이 얼마나 참신한 인연인가?) 로부터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요즘은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쳐보고 있다.

2-2.
 김경주 시인의 두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와 <기담>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의 문장들은 그저 검은색 활자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그것들을 스쳐가는 내 눈 앞에서 꿈틀거리다 이내 폭발했다. 그의 언어는 감각적이었고, 그의 시는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포르노 영상물 같았다. 그의 언어는 대체로 끈적거리고, 어둡고, 어지럽고, 자극적이었지만, 어느샌가 산뜻하게 증발해버렸다.
 그런데 지금껏 읽었던 시들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도 김경주 시인의 시다. 날 것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그의 시어들이 어느 순간 지나치게 꾸며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또 보다가 질려버린 포르노 영상 속 여배우의 몸짓에 흥분하지 못한 채,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난 후의 당혹감이랄까. 순간 그의 문장들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실망이 더욱 깊어진 계기는 그의 꾸며진듯한 무심함이었다. 너무 난해하고 실험적인 문장들 때문에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어느 독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사람들 읽으라고 시를 쓰는 게 아니에요. 안 읽어도 상관없어요."

 그날부터 그의 시집을 읽지 않았다. 


2-3.
 아내와의 결혼식 청첩장에 감사 인사말을 대신하여 이정록 시인의 시 <더딘 사랑>을 옮겨 놓았다. (인용/출처표시를 정확히 했다.)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이정록 시인의 시집은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그의 시는 평생을 곁에 두고 싶다. 읽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다.

2-4.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시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다.

3.
 나는 요즘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그래서 책이 그립다. 서울 방구석 어딘가에 꽃혀 있을 이성복 시인의 시집들을 가져오고 싶다.

4.
 언젠가 글을 쓴다면 이청준 선생의 문장을 닮고 싶다.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관찰의 즐거움 / 하얀색에 관한 그의 말

큰 아이의 학교로 이어진 길, 그 한쪽 구석에서 꽃망울들이 힘을내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큰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그 꽃망울들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깜박 잊고 지나치려 할 때면 작은 아이는 큰 소리로 나를 멈춰 세웠다.

J: "이거 봐봐. 하얀색이 더 커졌어."

좁은 봉오리 안에서 꿈트럭대는 연약한 꽃잎이 있다. 그리고 내 옆의 작은 아이는 그저 그 찰나의 시간이 즐겁다. '언제나 되어야 시원한 모습을 보여줄까?' 생각하는 내 옆에서, 작은 아이는 그 순간들을 살아간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얼마간의 세계를 내 아이가 기다린다.

Flowers on the Street, Rego Park, NY

그리고 오늘 그 얼마간의 세계가 지금껏 이어져온 찰나의 순간들을 꽃피웠다.

2019년 5월 21일 화요일

However......

지난 밤, 생각을 버릇처럼 공책에 기록했다:

Kant's Deontological Ethics - Universality: has to be always unconditionally good

When putting "In circumstance X," Do / Do not Y - Validity: always involves certain condition in moral judgement & action.

Zero sum relation b/w Universality & Validity? How to avoid it?

그리고 오늘 이메일을 보냈다.

Dear, Prof.....
.....
.....
However I regret to inform you that I will not be accepting the offer of admission due to my personal situation.
.....
.....

고민이 길었다. 

이제 새로운 생각을 해야할 시간이다.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New York City 7: Life_빨래

뉴욕에서 빨래하기.

뉴욕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빨래'라는 가사노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빨래라는 단순한 행위에서 당사자들의 소득 수준, 거주지역의 환경, 노동의 형태 등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빨래하기의 양태 = 행위자의 경제적 지위>라는 어설픈 등식을 고민해본다.

최상위층은 빨래라는 가사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 누군가(1)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2)에게 빨래를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전화로. 그러면 다음 날 전화가 온다. 물론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1)가 그 전화를 받고, 또 다른 누군가(2)에게 지시한다. "가져다 놓으세요." 이들 최상위층에게 빨래는 하루 정도의 기다림이다.

최상위층 바로 밑에 위치한 고소득층에게 빨래라는 가사노동은 집안에 머무르는 일과 같다. 그리고 이점이 그들 밑에 위치한 중산층과 그들을 구별짓는다. 그들은 빨래를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최신식으로 꾸며진 콘도 안에는 역시나 최신식 세탁기와 건조기가 마련되어 있다. 현관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빨래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들은 빨래를 현관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 중산층에 위치한 이들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건물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승강기 또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건물의 모든 거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고, 간편하게 카드를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각 건물들의 관리상태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의 발전도에 따라 중산층 내부에서도 다양한 경제적 층위를 엿볼 수 있다. 스마트폰의 앱과 연결되는 시설, 넓직하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 세탁실, 카드대신 여전히 25센트 동전을 요구하는 시설...등. 어쨌든 이 계층의 모든 이들은 현관문 밖으로 나선다. 세탁실에 도착한 이들은: (a)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b)적당량의 세제를 넣고, (c)원하는 세탁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d)시작 버튼을 누른다. 집으로 돌아와 45분 타이머를 맞춘다. 이 애매한 45분이 지나면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이 45분을 반복하기 싫다면 집안에 건조대를 마련해야 한다. 건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제일 애매한 45분을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빨래하기'라는 기준에 의해 하층에 속하게 된 이들은 억울하다. 중산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머지 거주조건들 - 지역, 교통, 월세 등 - 을 누리고, 또 감당하고 있지만, 빨래라는 가사노동을 맞닥뜨리는 순간 그들은 하층민이 된다. 이들은 세탁실이 있는 건물에 거주할 수 없다. 그것은 중산층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빨래라는 가사노동이 두 계층 사이의 경제적 간극을 실제보다 더욱 극대화한다. 그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이들은 최하층민과 같다. 그러나 오히려 '뉴욕에서 빨래하기'라는 범주는 이 계층에게 가장 가혹하다. 이들의 동네에서는 대형 빨래방(세탁기/건조기 각 30대 이상의 Mega Laundromat)을 찾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동네는 중산층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쉽게말해 그들은 중산층 지역에 사는 애매한 하층민이다. 그렇기에 '관리가 잘 되어있는 소규모의 빨래방을 찾으면 될 일이 아닌가?'라는 반문은 이들에게 무의미하다. 그것은 순전히 운이기 때문이다. (빨래방 사업은 기본적으로 박리다매를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빨래방>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고, 매력적이지 않은 사업이다.) 아무튼 이들은 빨래가 싫다. 특히 겨울에는 매우 싫다.

'뉴욕에서 빨래하기'의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대형 빨래방을 이용한다. 그리고 대형 빨래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24시간 운영. 25센트 동전 사용. 음료 자판기. 고장난 세탁 시설. 건조기 화재. 어지럽혀진 바닥. 스페인어 드라마가 나오는 대형 TV.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언짢은 손님들. 그들은 이곳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카드를 사용하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관리가 잘 되어있는 대형 빨래방은 뉴욕에서 찾기 힘들다. 이러한 꾸밈말들이 '대형 빨래방' 앞에 붙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 건물주가 직접 빨래방을 운영한다.
2) 빨래방 주인과 배우자, 가능하면 다른 가족도 함께 매우 부지런히 빨래방을 운영한다.

다시 말하자면......카드를 사용하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관리가 잘 되어있는 대형 빨래방은 뉴욕에서 찾기 매우 힘들고, 대형 빨래방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끝 간 데를 모르고 오르는 렌트비를 감당하지 못해 떠밀려가는 이들도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하기에,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대형 빨래방과 동행한다. 

2019년 4월 6일 토요일

밤에 관한 그의 말

J: "아빠가 밤에 나랑 안 자고 밖에 나가버렸잖아. 그래서 아빠가 밤이 되어버렸어."

M: "아빠가 밤이 된거라고?"

J: "아빠가 밤이 돼버렸어."

2019년 4월 2일 화요일

예쁜 말

꽃샘추위.

꽃을 시샘하는 봄날의 추위.

그녀의 부러움, 그의 답변.

Y: "넌 이제 좋겠다. Pre-K에 가면 하루 종일 놀기만 해."

J: "......"

M: "그러면 요즘 킨더에서는 뭐해?

Y: "아침부터 계속 공부만 하지."

J: "난 학교에 선생님이랑 친구들 없었으면 좋겠어."

M&Y: "......"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Easy Peasy Lemon Squeezy

M: "이거 풀 수 있겠어? 오늘은 숙제 혼자 해봐."

Y: "Easy Peasy Lemon Squeezy"

M: "이거 틀렸는데..."

Y: "......"

2019년 2월 1일 금요일

이른 퇴근

-이른 퇴근- 

젊은 죽음 앞
서럽고 억울한 소리들도 잠시 침묵했다
밤 하늘만이 망설임 없이 그날의
노동을 끝마쳤고,
너무 일찍 돌아온 자식 앞에서 
아비는 말이 없고, 어미는 망설였다

내 자식일리 없다.

부모의 당부가 아니어도, 
넘치는 것 하나 없이 사는 일
그 일이 언제나 조심스럽다 
일 마친 새벽 달이 남몰래 그 속살을 채우 듯
그렇게 끌어온 생이다
여태껏 팔딱여보지 못한, 기어코 찾아온 청춘을 
끝내 숨기지 못하고
토해내 듯 피어나려던 그의 몸뚱아리가
요동치며
시퍼렇게 우는소리를
꼬꾸라지는 소리를 
누구 하나 듣지 못했다

살게 해주십시오. 사람답게.’

살아남은 그의 옷가지가 
너풀거리며 그의 몸을 떠난다
아비는 주저했고, 어미는 단호했다

살거라. 내 자식아. 이제라도 살거라.’

그의 새벽 퇴근길도 
가끔은 푸르게 
시렵지만 떨렸고 
단단한 쇳덩이처럼 마냥 버텨야했던 그 생도 
아주 가끔씩 말랑거리며 수줍었다

'고작 이게 내 생일리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