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글을 쓰지 않다.

지난 3년 간 난 어떤 형태의 글도 제대로 써 본적이 없다.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자해.

 광기와 폭력의 전체성 속에 매몰된 인간은 개별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하나의 진리로 환원되지 못한, 전체의 테두리 안으로 수용되지 못한 대상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진다. 이러한 폭력 속에서 개별자들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의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는 극단적인 전체성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 폭력은 전후 산업사회의 ‘물화’라는 또 다른 전체성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인간적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대체되는 현상, "소외"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모든 대상들은 주체에 의해 객체화 되고, 모든 객체를 하나의 틀 안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모두를 수치․수량화 시킨다. 이로 인해 진정한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개별자들의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주체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식’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의식이란 것은항상 ‘나는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욕구는 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 있는 존재자들을 객관적 세계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도록 강요하며, 결국 주체의 의식마저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폭력의 가해자 또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한 개별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군대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었다던 레마르크의 고백을 답습한다. 산업 사회의 포식자인 자본가 또한 자본 그 자체에 의해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이 자본가를 집어 삼키듯, 주체가 주체를 집어 삼킨다. 
 폭력이라는 행위는 대상을 상처 입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하려하며, 무엇을 해왔던가?

보통의 사람들.

"우선 우리들은 군대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부끄럽게도 간신히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

살육을 불러온 증오, 전체주의와 같은 광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누군가는 부동산 값이 오를 거라는 믿음으로 트럼프에게 투표를 하고, 누군가는 아무래도 좋으니 모두 엎어졌으면 좋겠다고 트럼프를 지지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들의 주변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원래 정신병자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악(惡)은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어서 아무렇지 않게 퍼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함께 파멸해 간다. 간신히 "하나의 인간"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