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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화요일

여가와 관조 #4: 계엄령이라...

윤석렬. 그냥 바보인줄 알았는데, 이상한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었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서 그릇된 믿음을 지속적으로 그의 텅빈 머리에 주입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리라. 그러나 어리석음과 맹목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고, 이것이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시스템을 언제든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한밤 중의 끔찍한 TV 쇼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창문을 부수고 국회로 들어가던 특수부대 요원을 보라! 인간은 이렇게도 멍청하고, 다루기 쉽다.), 그 여파가 너무 크다. 

이 무슨 난장판이란 말인가. 

2024년 4월 6일 토요일

여가와 관조 #3: 선거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닌 <이것과 저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양비론 또는 회색지대라고 비판할 사람들을 비웃으며 글을 시작한다. 

너와 나의 생각은 서로 다르고, 그렇기에 너와 내가 봐라보는 사실도 서로 다르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철학을 공부하며 관심을 가졌던 '정치 철학'도 결국 '철학'에 방점이 찍혀있다. 따라서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지극히 평범하다. 여전히 '비판적 지지'의 기능을 신뢰하며, 정치 과정의 역동성을 지지하면서도 충돌과 조화를 동반하는 끊임없는 대화를 기대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나의 태도가 꽤 보수적인 입장일 것이다.

아무튼...

'윤석열' 대통령. 그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당선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나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그의 반지성적 태도와 언행을 보고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2024년 3월 27일.

바다 건너 먼 곳에 살고 있지만 (예전 만큼의 강도는 아니지만...이곳도 복잡한 일들이 넘쳐나기에...) 여전히 한국 사회에 관심이 있는 한명의 시민으로서 투표를 마쳤다. 엄청나게 긴 비례정당 투표지와 매우 짧은 지역 국회의원 투표지를 마주하고 고민없이 도장을 찍었다. 윤석렬 대통령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고, 남은 임기 동안에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기에 이번 선거는 나의 실망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일까? 홀로 몇몇 물음을 던져본다.

'투표는 개인들의 사적이익을 표출하는 수단일까?'
'지지하는 정당의 승패에 따른 자존심의 문제일까?'
'공공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표를 던지는 시민들도 있을까?'
'대의 민주주의, 그 이후의 새로운 방향은 가능할까?'

언론은 스스로 자신의 책무를 내려놓았고, 그들에게 대중은 통제하고 유인하는 대상이었다. 권력은 언론을 길들이고,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았다. 무너져버린 것은 그들의 권위가 아니라, 시민들의 연대였다. 애초에 그들은 권위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시민 사회의 연대는 희미해지고, 적대와 갈등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은 더 이상 지적할 필요도 없다. 한 공동체의 지도자는 최소한의 지적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적능력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새로운 시각과 개방성을 동반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윤석열 본인은 물론이고, 현 정부 관계자들은 지적으로 뒤떨어진다. 그렇기에 기대가 되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본 한국의 정치 대부분은 어이가 없었고, 가끔 분노를 느꼈다.  

윤석열은 박근혜와는 다르다. 사실 그는 정치적 자산이 없다. (본인 아버지에 대한 열성적 지지를 정치적 자산이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번 선거가 '윤석열 정부 심판'이라는 틀에서 치뤄진다면 현 여당의 의석은 100석도 넘기기 쉽지 않으리라 짐작해본다. 

감정이 요동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냉소만이 남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표를 던졌다.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여가와 관조 #2: 윤석열 대통령.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닌 <이것과 저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양비론 또는 회색지대라고 비판할 사람들을 비웃으며 글을 시작한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서강대 동문회는 공개 지지를 했고(당시 이종욱 총장이 소수의 학생들 앞에서 자화자찬과 함께 박근혜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지만...), 소수의 졸업생 동문들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지를 했던 사람들에게도, 반대를 했던 사람들에게도 각기 저 마다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녀를 반대했다. 나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의 근거는 그녀의 태도였다.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 부끄러움 없는 태도. 그 유치함. 그 편협함. 그 오만함. 

 대선 토론에서 "제가 대통령이었으면 진작 했어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녜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그녀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통령이 되었고, 난 기대가 되지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로 눈을 돌린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 

 '지지 여부를 떠나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른 말 따위는 남들이 해줄테니, 난 그냥 솔직한 심경을 밝힌다. 

 그동안 그의 언행과 토론에 임하는 태도를 지켜본 봐, 추측하건대 윤석열은 사법고시 합격 후에 제대로 책 한 권을 안 읽어봤을 것이다. 그는 그의 자랑스러운(?) 모교 서울대가 추천하는 필독서 100권 중 10권도 안 읽었을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것은 아마도 검사로서의 조직 생활, 검찰 수사, 법률 적용과 관련된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지금껏 터득한 그 지식들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리영희 선생이 마주 앉았다던 D 검사가 떠오른다. 

 윤석열은 반지성적이다. 그는 그 어떤 사물, 사건, 사태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자기 확신에 매몰된 채,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자들의 태도는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 부끄러움 없는 태도. 그 유치함. 그 편협함. 그 오만함.  

  '나의 예상이 틀렸기를 바란다.' 따위의 어설픈 보험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대한민국은 망했어.'와 같은 자포자기도 옳지 못하리라. 단지 개인 윤석열의 대통령직 직무 수행 능력을 기대하지 않을 뿐이다. 현재 Powerball 총 상금이 $288M 이다. 차라리 이를 기대해 본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오늘도 난 나의 삶을 살아낸다.

2020년 12월 25일 금요일

여가와 관조 #1: 조국 전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그리고 슬픔.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닌 <이것과 저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양비론 또는 회색지대라고 비판할 사람들을 비웃으며 글을 시작한다. 

정경심 교수와 그의 딸 조모씨 (결국은 조국 전 장관) 에게는 죄를 물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돌아왔다. 한쪽에서는 성토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소식을 반겼다. 이 밖의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아웅다웅, 얽히고설켜 말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바다 건너 먼 곳에 살며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 있다지만, 그래도 이런 소식을 접하니 생각이 많아진다. 사법부마저 스스로 신뢰를 잃어버린 암담한 상황,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은 검찰 개혁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신중했다. - 물론 나와 같은 일반 시민들은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충돌, 타협, 투쟁을 마주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다. - 적어도 나의 눈에는 차근 차근 미리 준비한 계획에 맞춰 진행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무엇도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듯, 이런 저런 참가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충돌은 점차 격화 되었고, 지금은 그 시작점도, 가치판단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지금껏 합의하여 마련해 온 규범과 규칙을 적용하고, 이를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였다. 결국 현재의 모든 상황은 권력투쟁의 결과물이고, 권력투쟁은 계속된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는 수세에 몰렸고, 검찰과 사법부의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졌으며, 나는 이 사실이 슬프다. '슬프다'는 나의 감정은 가치판단이 배제되어있다. 

내가 옳고-그름의 기준으로 이 사항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의 담담한 사과의 말 - 자신의 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자신의 도덕적 기준과 가치,  지나치게 관대했던 자신의 태도 (혹은 무관심),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실망하였음을 알고 있다는 - 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정치세력 간의 순수한 권력투쟁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서로 물고 뜯어가며 외쳐대는 말들은 언제나 <옳고-그름>의 틀을 붙잡고 늘어진다.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넌 뭐 깨끗하냐?" 그렇다. 원래 날 것의 욕망에서 비롯된 싸움일수록 유치한 법이다. 그리고 이 투쟁의 참가자들 중 품위를 잃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 또한 조국이었다. (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품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권력투쟁'의 모습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부터, 논리는 단순해지기 시작했고, 편가르기는 더욱 쉬워졌다. 정치행위의 실상은 권력투쟁이고 적/동지의 구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의 지향점이 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의 역동성은 지속적인 충돌과 합의의 교차점으로부터 발생하며 이는 (언.제.나. 잠정적으로) 합의된 규칙과 틀 속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정치 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동반할 때 비로소 유의미해진다. 충돌하는 세력 (또는 가치) 사이의 권력투쟁이 민주주의 질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개방성이 요구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리고 이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다시 한번 러시아 칸트학회가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왕 시작된 권력투쟁이라면 기득권이 전복되기를 바랐다. 적어도 검찰총장이라는 직위에 오르는 인물이 '조직에 충성하는' 일은 사라지기를 기대했다. 나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슬플 수 밖에.

문재인 정부의 패착, 개인으로서의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 윤석열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넘쳐나는 확신들까지. 지금 느끼고 있는 나의 슬픔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런식으로 말해보고 싶다.

"아~아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