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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우리(인간)는 AI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1


 AI(인공지능)의 주요한 기능은 효율적 의사 결정, 정확하고 빠른 계산, 반복되는 패턴의 분석과 정형화,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하는 것 이다. 즉,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Generative AI (GAI; 생성형 인공지능 = Chat GPT, Dall-E, Gemini 등. )은 AI의 전체 영역에서 특정 범주에 속한다. 

인간의 자연어 사용의 패턴을 분석하고 정형화하고, 이를 확률 계산에 의해 나열하는 방식(연결주의; Connectionism)은 오늘날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의 기반이 되었다. - 이와는 다르게, 명시적 규칙(If ~ then ~.)과 논리 체계를 기반으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발전 방향(기호주의; Symbolism)도 분명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 연결주의는 손실 함수를 통해 확률을 계산한다. 그동안 학습한 데이터에서 도출한 확률을 통해 '적절한' 답변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문장 "This is an apple."이라는 답변으로 내놓을 때는, 이 문장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나열한다.

[(This or I or He or It or She or They or...?) + (is or was or are or were?) + (a or an or the or blank?) + (apple or grape or ...?)]

나열된 조각들 중에서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한 답변을 완성된 문장으로 내놓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학습한 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확률 모형을 연산하고 반복한다. 물론 학습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인간의 노력(또는 간섭)이 LLMs이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데 하나의 요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도출할 수 있다:

"인간에 내재한 인지 능력(the given innate ideas)과 같은 매개 개념들이 언어 학습에 필요하지 않다." 

물론 위의 주장으로 부터 인간에게 내재한 인지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마주하는 AI의 "인간다움"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해간다. 인간보다 더 논리적으로 유려하게 답을 하는 AI는 반복되는 학습, 데이터들 간의 유사성(높은 확률과 근접성),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통해 드디어 우리와 "대화"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 학습"과 "대화"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인간은 대화를 통해 언어를 익힌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부터 주변의 사람들과 상호 소통을 한다. 그것은 비언어적 상호 작용 - 몸짓, 얼굴 표정, 소리 등 -과 언어적 상호작용 -주변인들의 대화, 말 걸기 등 - 을 동반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빌려 말하자면, 삶의 형식을 공유하는 언어 공동체의 참여자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언어 습득 과정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 일종의 본유 관념이 있는 것인지, 또는 반복된 학습에 의한 것인지.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언어 습득과 사용, 발전은 사회/언어적 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언어를 단순히 단어의 확률적 나열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이 복잡 다단한 과정과 그 안에 엉켜있는 개념의 층위들을 완전히 해독하기란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The "Chinese Room" Toon (generated by Gemini)

존 설(John Searle)의 - 그의 비윤리적인 추태와 범죄는 기억해야 한다! - 중국어 방 논변(The Chinese Room Argument)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단어와 대상의 단칭적 연결은 의미를 생성하지 못한다. 그것은 언어의 본질적 특징, 즉 쓰임/작용/맥락/의도와는 동떨어져 있다. 

현대 LLMs연구와 연결하여, AI의 인간과 유사한 자연어 이해(Human-analogus 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 NLU)에 대한 회의적 논증은 벤더(Emily Bender)와 콜러(Alexander Koller)의 문어 사고 실험(The Octopus Though Experiment)에서도 다루고 있다.


The "Octopus Thought Experiment" Toon (generated by Gemini)


요약하자면, 인간의 언어 패턴을 완벽히 습득한 문어는 그럴듯한 단어들을 인간의 언어 사용에 맞추어 배열할 수는 있지만, 그 의미까지는 학습/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논증의 핵심이다. 결국 지금의 LLMs을 지탱하고 있는 학습 과정은 언어의 이해를 위한 기호 접지 문제(Symbol Grounding Problem)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논증을 인간의 언어 학습/사용에 대응해 보자면,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외부 세계와 단절된 방 안에 두고, 그에게 세상의 모든 영 단어들과 그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들어있는 영-영 사전을 한권 준다고 하여도, 그 사람은 결코 영어라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가령, 이 영어 학습자가  'Dog'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펼쳐 D-O-G의 조합을 찾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설명을 마주하게 된다.

dog: a domesticated carnivorous mammal that typically has a long snout, an acute sense of smell, non-retractable claws, and a barking, howling, or whining voice.

영어 학습자는 위와 같은 dog의 사전적 설명으로 부터 dog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열된 단어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 뿐이다. 'a'를 찾아보고, 'domesticated'라는 단어를 이해하려고 해도, 그의 앞에는 의미가 결여된 단어들이 쌓여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 주어진 사전 그 자체는 외부 세계를 반영하지 않는다. 단지 기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있다. 다시한번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자면, 인간 삶의 형식과 접점이 없는 단어들의 관계망은 그 어떤 의미도 담아내지 못한다. 

다시 한번 현대 LLMs의 학습 방식/연결주의를 떠올리며, AI의 인간과 유사한 자연어 생성(Natural Language Generation; NLG)의 놀라운 발전을 되돌아 본다. 이 과정 속에서 또 다른 행위성을 담당하고 있는 학습 데이터, 즉 데이터화된 '인간의 언어 사용'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인간)은 AI/LLMs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또 다른 가능성을 더할 수 있을 듯하다.

2025년 7월 3일 목요일

2025년 봄학기,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마지막 학기. 강의를 듣지는 않았다. 홀로 논문을 쓰고, 가끔 교수님과 만나서 의견을 주고 받는다. 프로그램 특성상, 교수님이 모든 학생의 주제에 맞춰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는 없다. 워낙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있고, 교수님들의 배경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CUNY Graduate Center의 DH 대학원에 철학 전공의 교수는 한명도 없다.)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Re-envisioning Digital Agency: from Representationalism to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논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This thesis examines the epistemological and ethical foundations of digital technologies, particularly code and algorithmic systems, by considering their entanglement with representationalism. Arguing that code now functions as a dominant social agent and epistemic subject, through the concept of the Code’s-eye view, I explore how automated datafication reduces human experience to quantifiable inputs, reinforcing epistemic closure and social fragmentation. Drawing on pragmatist philosophy, including Peirce’s semiotics, Dewey’s democratic ethics, and Rorty’s conversational inquiry, I propose an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grounded in communal inquiry and interpretive openness. This alternative framework resists the binary logic of algorithmic rationality by emphasizing conflict and the shared process of meaning-making. By comparing two digital mapping projects, I aim to illustrate how code can either intensify or resist these epistemic tendencies, and to demonstrate the possibility of communal agency as a comprehensive process. In this respect, I argue for reclaiming digital agency as a participatory, ethical, and socio-political process – one that reopens the public/political spheres and recovers the communal ‘We’ in an age of automated anxiety.>  

본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 이 논문의 중심 주제이며, 탐구해보고자 하는 명제이다.

"Today,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그리고 이 명제는 상충하는 두 명제로 구성된다.

1. It is socially constructed.

2. It has gaind subjectivity.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 주체성을 지닌다는 말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무엇인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만든 사람이 있고, 그로부터 기능/본질을 이미 선행적으로 부여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 상충하는 두 명제(1&2)가 오히려 첫 문장 -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 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

논문의 주제와 내용은 지난 강의들을 통해서 발전시키고 다듬었던 것들이다. 철학적 개념들을 무리없이 적용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쉽지않은 작업이었다. 또한, 논문을 쓰면서 다루고자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지 않았나 걱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다 썼다! 지도 교수에게 최종본을 보냈으니, 답변을 들은 후에 마무리 하면 될 듯 하다. 

DH 과정은 끝나가고, 완성된 논문을 도서관에 제출하면 9월에 졸업이다. 사실 졸업/학위증은 의미가 없다. 다음 여정으로의 징검다리로써 이 대학원 프로그램을 선택했으니, 이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다. (실상 논문을 쓰는 시간보다, 이에 대한 고민과 주저함이 이번 봄학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석사 논문 주제와 연관된 직업 또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미래 계획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고민 중이다.

Plan-1: Data ethics/AI ethics-related jobs

Plan-2: PhD in STS, Anthropology, Philosophy...

두 계획 모두 쉽지 않겠지만, 중첩되는 지점은 명확하다: 문외한의 기술 (데이터/코딩/인공지능) 탐방기.

이를 위한, 올 여름의 단기적인 계획은 역시나 계속 코딩을 공부해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코딩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아늑했던 DH 연구실을 떠나는 일도 슬프다. 

아무튼 이제 다시, "Hello, World!"

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2024년 가을학기,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2024년 가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두 학기 동안 20학점을 들었기 때문에, 논문/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애매한 7학점 수업을 들어야했다. 그렇다면 7학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뉴욕시 거주 학생에게는 매우 저렴한(?) 대학원 학비이지만, 초과 학점으로 인해 추가 학비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만일 학위를 위해 논문을 쓰게 된다면, 디지털 구조와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해보고 싶다: 

<수집된 데이터의 편향성, 이를 처리하는 코드와 알고리즘이 지닌 이분법적 시각, 디지털 공간의 이면에 내재한 폐쇄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 

이를 염두에 두고, 수강 신청 중에 관심을 갖게된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1.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3)
  2. Social Construction (4)
  3. Digital Sociology (3)

강의-1은 DH 프로그램과 연계된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수업이어서, 손쉽게 학위 내 선택 학점으로 인정되었다. 남은 4학점을 자유 학점으로 채우기 위해서 철학과 강의-2를 선택하게 되었다. 비록 강의-3, Digital Sociology는 수강하지 못하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기존 산업 혁명과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이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문화적 변화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쉽지만 강의-3을 뒤로하고, 철학과 강의인 Social Construction을 선택하게 되었다. (4학점 수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불어,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가을학기 수강 신청은 손쉽게 진행되었다.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데이터와 코드가 사회의 행위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Data, Codes, Algorithms = Social agents & Subject>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조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1.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학생들이었고, 대부분 이미 데이터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같은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나와는 조금씩 다른 관점 - 웹 디자인이 지닌 한계, 시각화의 예술성과 정보 전달의 관계, 디지털 산업 구조와 조직체계의 폐쇄성 등 -을 제시해주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업 동안 접하게 된 책은 다음과 같다.

  • Race after Technology
  • Data Conscience
  • Hidden in White Sight
  • Weapons of Math Destruction

RD는 연구자의 입장 - 사회학 & 컴퓨터 공학 - 에서 바라본 빅 데이터의 세계를, 책 HW는 작가들의 현업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자동화와 인공 지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무엇도 완전히 독립된 주제가 될 수 없듯이, 모든 과학 기술 또한 사회-문화적 맥락/편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다.  

Kodak Shirley Cards

예를 들자면, 초창기 카메라 필름 기술이 전제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였을까? 필름은 빛을 흡수하고, 대상의 모습을 저장하고, 현상하는 과정을 돕는, 순진무구한 도구일 뿐일까?   

“Hey! We almost forget the most important thing!”

광고를 보시라. 이 얼마나 전형적인 미국-백인-중산층-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란 말인가!

<Race after Technology>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market and profitability imperative of tailoring technologies to different populations is an ongoing driver of innovation.” (p.106)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기술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 졌을까?"라는 물음은 "누가 이 물건을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다. (How Kodak's Shirley Cards Set Photography's Skin-Tone Standard) 

이렇듯, 차이는 배제로 이어지고, 배제는 차별로 이어진다. 카메라의 조리개가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기술-도구의 등장이 언제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예들이 등장하는데,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책-R과 W를 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네 권의 책 모두가 대동소이한 시각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복되고 중첩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다른, 상반된 목소리와 논증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 & 자료들-

2. Social Construction

 지난 학기 AI 강의에 이어서, 우연히도 같은 교수(Prof.Jesse Prinz)의 수업이었다. 역시나 짜임새있는 강의 주제들과, 자세한 설명,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한 학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강의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회 구성' 또는 '사회 구성주의(constructionism)' 정도가 될 듯하다. 형이상학/인식론의 측면에서 언어/과학/실재론-반실재론을 다루었고, 세부적인 주제로는 의학/인종/성/젠더/정치-음모론을 접할 수 있었다. 

2.1.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구분하여, 사회 구성주의를 과학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철학적 논증은 "사회 구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 상대주의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만큼 중요한 철학적 제안이 될 수 있다.  

2.2. 미국 사회 내의 아시안 공동체에 대한 두 가지 편견: (1) 탁월함/능력  & (2) 외부인. 이 둘의 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 Toxic combination - 에 대한 논의 또한 흥미로웠다. 

2.3. 마지막으로,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비상계엄/내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읽었던, Jaron Harambam의 논문 “Against Modernist Illusions: Why We Need More Democratic and Constructivist Alternatives to Debunking Conspiracy Theories”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원래 계획했었던 소논문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퍼스 기호학의 세 부분(Triadic relation: Sign-Objects-Interpretant)을 통해 데이터/코드/알고리즘 이면에 내재된 이분법적 표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막판에 방향을 틀어서, 반실재론과 객관성에 대한 후기 퍼트넘과 로티의 철학을 비교하는 것으로 과제를 대신하였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받은 위로의 이메일 일부분을 남기며 2024년 가을학기에 대한 되돌아봄을 마친다.

"I can’t imagine how it must have felt to endure those hours of uncertainty.  A sober reminder of how much damage one leader can do.  But the big lesson here is that the South Korean people are strong, and the democracy is strong."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2024년 봄학기,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2024년 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이걸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여전히 Digital Humanities (DH;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봄 학기를 시작했다. 이번 학기 총 10학점을 이수하였고, 강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Politics and Digital Humanities (3)
  2. AI: Prospects and Perils (4)
  3. DH: Methods & Practices (3)
(1)과 (3)은 DH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강의였고, (2)는 철학과의 강의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 - 코딩, 프로그래밍, 그리고 데이터 관련 산업의 최근 동향과 실제 사용하는 스킬셋 - 은 부족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문학적/이론적 시각을 좀 더 알고 싶었기에 철학과 수업을 신청하였고, (3)을 통해 작은 프로젝트의 방향과 목표를 처음부터 구상하고,  실제로 개발/실행하는 경험을 얻고 싶었다. (1)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DH 프로젝트가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기에 과감히(?) 선택하였다.


1. Politics and Digital Humanities

과감한, 그리고 야심찬 선택이었다. 매주 읽어야하는 논문의 양, 마찬가지로 매주 제출해야하는 글 과제가 있었다. 이에 더해, DH 프로젝트 리뷰 발표와 한 시간 가량의 수업 과제(class facilitator)는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이 과제들을 통해 강의 내용 이외에도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 수강을 결정했다. 뒤로 미룰 수록 부담이 될 듯 하여, 수업 과제 - What is/are politics? & What is/are DHs? -  를 두번 째 주에 제일 먼저 끝냈다. 나에게는 어차피 발표를 위한 대본이 필요하였고, 해당 주제에 관한 상반된 철학적/이론적 시선(Hannah Arendt vs. Carl Schmitt)을 제공하면 충분할 듯 하여 용기를 냈다. (끝난 후의 그 안도감이란....)

이 강의를 통해 다양한 정치관련 DH 프로젝트 - 또는 그냥 Digital projects - 를 접할 수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24년은 미국에게도 정치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기존 정치문제들 - racism, gender, indigineous people, immigrants, data sovereignty, privacy....-과 더불어 현실 정치 현안들 또한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정치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미국 사회/공동체의 "인종"이라는 주제가 결코 사라질 수도, 해결될 수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한 학생의 꽤 강력한 주장: "Racism is functioning as a social platform for all kinds of discrimination in the US."

미국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심지어 양육에 있어서 까지 인종 문제는 굉장히 깊숙히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암울하구만...)

학기 중 총 10개의 글을 올렸고, 두 번의 발표, 그리고 마지막 과제까지. 학기가 끝나고 2주 후에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였다. (나는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강의 중 접하게 된 흥미로운 프로젝트)

2. AI: Prospects & Perils

비전공자에게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철학 강의가 있다는 사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특히) 영미 철학계에서는 인식론/언어/의미론/심신이론/인지과학 등에서 AI와 관련된 연구가 꽤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윤리/가치/정치/문화와 같은 분야들과 AI의 상관관계에 대한 철학적 작업이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할 실정이다. 

강의는 짜임새 있었고, 학생들 간의 활발한 (가끔은 지나친...) 토론, 담당 교수의 물음과 답변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관련 주제들을 충실히 다룰 수 있었다. 초반에는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구조와 자연어의 관계, 가능성, 한계 등을 다루었다. 또한, 경험론과 합리론 사이의 인식론적 차이와 AI의 상관성, 의식과 감성의 문제 등을 강의 주제로 삼았다. 이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분야와 그 양상들 - 예술, 보안, 정보, 자동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 에 관한 다양한 윤리적/실용적 접근을 시도했다. 

Generated by AI (Copilot)

지난 학기 AI 관련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았고,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면, 현재 대중매체가 전파하고, 일반 대중이 이해하고 있는 AI의 모습과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AI 사이에는 간극 있다. 이제 곧 (또는 '이미') 모든 분야를 AI의 자동화 시스템이 차지 할거라 (또는 '했다')는 대중의 생각과는 다르게 프로그래밍/코딩 - 데이터 수집/정리/처리 등은 여전히 노동 집약적이다. 흔희 이야기하는 데이터화(Dataficaton)의 뒷 편에는 보이지 않는 (그래서 소외된) 노동이 있고, 이들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반시설은 실상 '매우' 발전한 산업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단순히 말하자면, 오늘 날의 디지털 '혁명'은 기존의 구조/체계를 완전히 뒤엎는 사건이 아니다. (혁명은 아직 요원할 뿐...) 오히려 기존 산업 혁명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The clould is a factory."라는 문장이 이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단이 현재 AI 산업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노동/자본 집약적인 분야지만, 그 노동과 자본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고, 기술의 발전 속도는 공동체의 숙고와 고민을 따돌리고 있다. 문제는 이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현재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사회/정치/문화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Nick Bostrom (https://nickbostrom.com/)이 제시하는 철학적 개념들 - singletone, ancestor simulation, existential risks -이 당장은 일견 공상과학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곧 우리가 직면하고 고민해야할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과 관련하여, 정치적/공적 영역의 필요성(the political/public sphere), 지적/실천적 개방성 (epistemic/pratical openness)과 관련한 과제를 제출하였지만, 현실에서 조차 사라져가고 있는, 허울 좋은 당위일 뿐인 개념들과 오늘 날의 암담한 모습이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AI는 작금의 세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Society in, Society out...


3. DH: Methods & Practices

디지털 인문학 프로그램의 필수 수강 강의다. 지난 가을 학기에 수강했던 <Intro. to Digital Humanities>에 이어, 이번 봄 학기에는 DH 관련 주제와 이론을 직접 실천/실행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다시 던지는 물음: What is/are Digital Humanities? 

담당 교수의 지적대로, <"디지털" + "인문학">이라는 조합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후자다. 시간이 흘러 디지털을 대신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전자의 자리를 대체하겠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문학"적 디지털 프로젝트가 이번 강의의 주요 학습목표가 된다. 

Then, what is a DH project?

인문학은 꽤 폭넓은 개념이다. 프로이트 덕분(?)에 인간의 의식적 행위에 더해 무의식적 행위까지도 연구의 대상이 된다. 사실 모든 물음은 인문학을 벗어나지 못한다. '묻는다'는 행위까지도. 이렇듯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그 방법론에 있어서, 인문학을 다루는 DH 프로젝트는 반드시 학술적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니다! 

DH의 주요 분야 중 하나는 Open Pedagogy다. (개방 교육, 열린 교육?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통해 DH는 기존 학문 공동체의 울타리를 더욱 확장 시키고, 학제 간의 연결성을 강화한다. 참여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다양한 주제/이론/실천의 결합과 상호 작용을 장려한다. 그렇기에 DH는 단순히 디지털 도구/기술의 활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장벽들- 기술, 언어, 지역, 인종, 문화 - 을 허물어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을 강화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요구한다. 따라서 DH는 기존 인문학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자체로 인문학이 된다. 

DH 프로젝트는 현실적인 부분 - 프로젝트의 기간, 예산, 수명, 관객 등- 과 이론적 틀 - 목적, 방법론, 코딩 등 - 을 함께 고민한다. 그렇게 우리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The Investigating Wittgenstein: 

이번 프로젝트 한줄 요약: 

"Presenting Ludwig Wittgenstein's life in a concise, visual format to introduce potential students to his philosophy through his life."

저자의 허락을 구한 이후에, 몽크 교수(Prof. Raymond Monk)의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를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철학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준 동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데이터를 추출하는 과정, 이후에 데이터를 구분하고 정리하는 부분,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코딩까지. 프로그래밍이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배경 지식을 갖은 둘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개발/발전 시키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여전히 미완성인 프로젝트이지만, 향후에 관심 주제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강의 중 접하게 된 흥미로운 프로젝트)

(총평)

지난 가을 학기에 접했던 생소한 내용/주제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다. 가령, <Knowledge Infrastructure> 수업에서 다루었던, 당시 무관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오늘 날의 '알고리즘' 사회에서 어떤 기능/역할을 수행하고 왜곡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정치적 구조가 다시금 AI, 머신 러닝, 데이터 자동화 등의 새로운 기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지만, 몰려드는 자본과 커져가는 산업, 진화하는 기술과 인간의 욕망이 그 날개짓을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2023년 가을학기,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고민 끝에 지원한 대학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뚜렷한 목표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전공과 비교하면 신생아나 다름 없는 분야이고, 언뜻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 - Digital + Humanities - 에 대한 작은 호기심 (또는 약간의 반발심)이 작용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지니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단어의 생경한 조합이 시선을 끌었다. 단순하고 성의없는 이유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가장 설득력있는 논리였다. 일종의 타협이자 절충이었다. 가을 학기 시작 전, 글자에서 멀어진 몸에 긴장을 주기 위해서 집어든 책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였는데, 아마도 내심 철학(또는 공부하기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했던 듯하다. 

    한국의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종종 한국 디지털 인문학 협의회(KADH)에 소개되는 글을 읽어본다. (사실 이곳도 수업 중 알게된 Alliance of Digital Humanities Organizations; ADHO를 통해 방문하였다.) 이곳에서도 신생학문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제서야 조금씩 논의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꽤 활기찬 학문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대부분은 정식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기존의 학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학문의 특성상 많은 금전적/구조적 지원(DH 분야의 중요한 학문적 논의대상이다.)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규모 대학에서는 디지털 인문학 프로그램을 신설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DH 분야의 주요 주제이다! Minimal Computing!)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고,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이 디지털 인문학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뉴욕시 거주자는 비교적 저렴한(?) 학비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도 순전히 운이다. 아마도 내가 뉴욕시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이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학교 건물 5층 DH 라운지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과 운의 조합일 뿐이다. 

참고로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에서 제공하는 DH 프로그램은 Data Analysis & Visualization 프로그램과 공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각각 MA/MS 학위를 제공한다.

    2023년 가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수강한 강의는 아래와 같다:

  • Knowledge Infrastructures (3)
  • Working with Data: Fundamentals (3)
  • Introduction to Digital Humanities (3)
  • Computational Fundamentals: JavaScript (1)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교를 떠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COVID-19을 거치면서 학교들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번 학기 강의들은 대면 수업, 비대면 온라인 수업, 절충(Hybid)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이전 철학 전공 때와는 달리 이번 학기의 목표는 단순했다. 

  1.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알아보기
  2. 디지털 도구들(JavaScript, Python, Mapping, Text-analysis 등)을 경험하기
  3. 영어로 수업을 이해해보기
 역시나 세 번째 목표가 가장 어려웠고, 다음으로 두 번째 목표는 프로그래머들에 대한 존경심을 낳았다. 첫 번째 목표는 디지털 인문학 공동체 내에서도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나와 같은 문외한의 단순한 목표들이 이 분야의 주요 학문적 관심이라는 사실이다.

(1.1.) 
    언젠가는 정립될 수도 있겠지만, 철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영원히 정립되지 않을지도 모를 주제이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주장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Digital Humanities is not some airy Lyceum. It is a series of concrete instantiations involving money, students, funding agencies, big schools, little schools, programs, curricula, old guards, new guards, gatekeepers, and prestige…. Do you have to know how to code [to be a digital humanist]? I’m a tenured professor of digital humanities and I say ‘yes.’ …Personally, I think Digital Humanities is about building things…. If you are not making anything, you are not …a digital humanist.” (emphasis mine)

(Ramsay, “Who’s In and Who’s Out”)

    이번 학기 첫 과제도 디지털 인문학의 정의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주제이고, 그에 대한 의견 또한 무수히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고, 학문적 지향과 성과도 이 둘이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가령, 철학이라는 학문의 양상은 다양할수 있어도,  그 어원(Philia + Sophie)에 대한 설명으로 철학을 정의할 수 있다. 반면 "디지털+인문학"은 각 단어의 어원이나 정의의 합이 해당 학문의 정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론적 틀이 실천적 행위로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한 수 많은 정의들 중 하나의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인문학 공통의 배경과 중첩되는 이론적 틀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학문에 대한 정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DH 프로젝트 중,  <Colored Conventions Project>은 앞선 주장의 조건- "만들기 = Building Things, Code, Making" -을 충족한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대상, 그리고 나아가는 방향이다. - Historically underrepresented voices / Collaboration / Community and Localness / Archive / Pedagogy / Open Access. 물론 이는 "만들기"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만들기"는 디지털 인문학의 한 요소일 뿐이지 절대적 출발점이 되지는 못한다. "만들기"를 "코딩"으로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디지털 인문학의 범위를 좁힐 뿐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디지털 인문학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DH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 안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가 곧 이론이 되고, 프로젝트 계획서가 논문이 되고, 실패한 코딩 또한 참고문헌이 될 수 있다. 이론과 실천, 도구와 계획, 실행과 실패가 뒤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인문학은 이 모두를 수용하고 뒷받침 할 수 있는 학문 공동체에 기반한다. 

(2.1.)
    가장 부담이 없어야 할 1학점 짜리 수업, <JavaScript>가 가장 어려웠다. 지금껏 파워 포인트도 잘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Interactive Map Webpage를 만드는 수업이라니. 더불어 <Intro.to DH> 수업의 Praxis Assignments - Mapping, Visualization, Text-analysis, Wekipidia, DH Projects Analysis는 큰 부담이었다. (이 중 두 가지를 선택하여 과제를 수행해보고 짧은 글 남기기.)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는 익숙한 도구들이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처음 접하는 신세계였다.
    디지털 인문학은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여 인문학적 시선을 바깥 세상에 적용해보는 실천을 장려한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시선을 도구들에게도 적용해 본다. 즉, 디지털 도구들의 유용성과 한계, 가능성과 장벽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동반한다. 완벽한 코딩과 완벽한 도구, 더불어 특정 연구대상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디지털 인문학은 이러한 절대적 완벽함을 추구하지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류, 어긋남, 왜곡을 눈여겨 본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난 곳곳의 틈에 개방성과 협력을 채워넣는다. 1.1의 끝맺음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과정은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에도 격려하는 개방적 학문 공동체를 요구한다.  
    디지털 인문학과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강의 제목, <Knowledge Infrastructures>가 이 분야의 주요 주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 만큼 그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디지털 인문학의 학문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3.1.)
    위의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 장벽과 연결해본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인문학은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작업이다.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연결 지점을 찾고, 대화와 상호작용을 장려한다. "인문학 연구에 왜 굳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이다. 물론 학문적 성과와 연구의 효율성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그 보다는 인문학적 시선의 확장이 디지털 인문학의 중심이 된다. 그렇기에 영어 일변도의 학문적 지형, 경제-사회적 격차에 따른 디지털 도구들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 자본에 의한 학문 공동체의 축소 등이 디지털 인문학 분야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된다. 이는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 여성주의(feminism), 실용주의(pragmtism), 생명정치(biopolitics), 반인종주의(anti-racism)과 같은 다양한 이론적 배경을 수반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디지털 인문학 인식론 논문들에 등장하는 각종 이론과 철학 개념들이 때로는 불필요하고 난삽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이는 철학을 공부한 경험 때문에 생긴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선을 약간만 돌린다면 그만큼 디지털 인문학 안에 다채로운 시선과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언어 장벽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이는 다른 이들의 디지털 도구에 대한 접근성 문제와도 같다. 더 현실적으로는 인터넷 서비스의 유무와도 연결된다. 시야를 더 확장해서 보자면 글자 사용 방식의 차이, 즉  LTR(Left-To-Right) 또는 RTL(Right-To-Left)의 차이가 - 수업 중, Top-Down도 있을 수 있음이 지적되기도 했다! - 디지털 인문학이 지닌 하나의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장벽을 당장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 인문학의 출발점은 이러한 장벽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상호 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다시 학문 공동체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이제 겨우 한 학기를 마친 상태다. 여전히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기도 하다. (물론 철학에 대한 의구심도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해져 가긴 한다. 이게 아마도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가 아닐런지? 불안해지기!)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인문학의 특징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 학문 공동체 (Scholarly Community)
  • 협력 (Collaboration)
  • 개방성 (Openness)
    미국 내에서도 디지털 인문학은 소위 말해 "뜨는 학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금전적 지원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분야다. 물론 이 또한 소수의 엘리트 학교와 기관들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디지털 인문학의 지향이 개방성, 다양성, 연결성이라는 점이다. 누군(푸코)가 지식은 권력이라 말하지만, 인문학은 지식만을 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