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일 수요일

올빼미는 내일도 날아올라야 한다

(1) <개별적 특수성이 보편적 인륜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곧 역사의 진보/발전이다. 개별자들이 인륜성 안에서 자신의 본 모습('이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역사 발전의 필연성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것은 곧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곧 이성적인 것이다.>

내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이 현실화를 향한 여정에 들어서면 (1)의 철학적 구조는 '가족-시민사회-국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의 의식은 결코 어떠한 대상도 즉자적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는 그 자신의 의식 조차도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삼는, 끊임없는 '인식-부정-극복'의 관계적 구조 안에서 발견해내려 하는 '이성'의 본래적 모습이며, 이러한 이성이 현실화 되어가는 여정의 목적은 차이를 폐기하지 않는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완전한 '자유'이다.

따라서 (2) <헤겔의 철학은 결코 전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사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륜성을 기반으로 하는 헤겔의 국가는 그 안에 개별적 특수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개별자들의 상호 침투적 행위는 칸트가 남겨놓은 예지계를 우리 앞의 지금/여기에서 현실화 시킨다. 그리고 이 현실화는 국가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있어서 국가는 최종적이다. 다시 말해 (1)은 (2) 안에서 현실화 된다. 이 둘은 형이상학적 위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절대적 정신은 국가 안에서 현실화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화된 절대 정신이 곧 국가다.

(1)과 (2)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C-1) (1)의 구조가 지닌 폐쇄성
(C-2) (2)의 주장이 보이는 헤겔 철학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

헤겔 철학이 지닌 지나치게 방대한 철학적 구조가 비판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그 구조 안에서 용해시켜 버린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다시 말해 이 철학이 지닌 구조적 폐쇄성이 그 자신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동반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현실화 과정은 곧 이성이 완벽한 자유를 찾아가는 이상화 과정이다. 그렇기에 헤겔이 상정한 국가는 지나치게 완벽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완벽한 것들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곧 헤겔 철학에 대한 성급한 폐기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헤겔 철학 = 전체주의>라는 단순한 도식은 오히려 이 철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헤겔은 국가가 일정한 도덕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드러낸다고 믿었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철학적 구조가 딛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두 개념, 즉 '이성'과 '자유'는 눈 앞의 장애물들을 부정하고 극복해가는 운동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운동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난 국가는 그 자신이 체현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눈먼 보편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자유를 향한 인간 이성의 여행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는 언제나 대상과의 비판, 충돌, 극복을 동반한 역사적 운동이다.

헤겔 철학이 지닌 역사성으로부터 필연성을 분리하고, 절대적 이성을 비판적 탐구에 대한 개방성으로, 국가 안의 내재적 인륜성을 개별 구성원들의 발산적 연대성으로 대체해본다면 어떨까?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은 이 철학의 폐기 또는 완성이 아닌, '지속적인 이어짐'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헤겔은 자신이 몸 담고 있었던 시대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 오를 마지막 황혼 녘이라 믿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의 결론은 이와 같다: '날아오른 올빼미는 아직 죽지 않았고, 이 세상에 올빼미는 한 마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