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1-12. 2021
<Pachinko> by Min Jin Lee |
첫 문장이 눈에 띈다. 어쩌면 조금 과하기도 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p.3)
방점은 뒤의 "...but no matter."에 찍혀있다. 삶을 이어온 가족의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다. 실상 이는 우리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살아남는 것이 생(生)의 주요한 목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그 자체가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자신의 삶에 색을 더하고, 의미를 찾는다. '생존'이라는 삶의 맹목적 의지마저도 의미를 갖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가 지속되어 왔다. 이민진 작가의 책 <파친코>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역사 한 부분을 조명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람들의 인식을 보편적이고 쉽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는 분명 작가의 자료 수집과 고증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기독교를 믿는 이삭의 가족들이 평양 출신이라는 설정, 전후 민단과 조청련 사이의 갈등, 일정 나이가 되면 외국인 등록을 하고 지문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 의식과 역사적 배경의 무게가 등장 인물들을 짓누른다. 양진, 순자, 경희는 책의 마지막까지 "A woman's lot is to suffer."(p.414)이라는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시대에 짓눌린 채 입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백요셉, 백이삭, 심지어 꽤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고한수조차 그 시대의 그저 그런 누군가로 머물러 있다. 이는 아마도 소설의 전체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길게 설정된 시간과,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그중 백노아는 가장 아쉬웠던 인물이다.
The big secret that he kept from his mother, aunt, and even his beloved uncle was that Noa did not believe in God anymore. (...) Above all the other secrets that Noa could not speak of, the boy wanted to be Japanese; it was his dream to leave Ikaino and never to return. (p.176)
Noa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when he was with her; in fact, he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or Japanese with anyone. He wanted to be, to be just himself, whatever that meant; he wanted to forget himself sometimes. But that wasn't possible. It would never be possible with her. (p.308)
That evening, when Noa did not call her, she realized that she had not given him her home number in Yokohama. In the morning, Hansu phoned her. Noa had shot himself a few minutes after she'd left his office. (p.385)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 인물의 심리 변화와 행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단서가 부족하다. 좀 더 집요하고 치열하게 노아의 심리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면 좋았을 듯 하다.
- 고한수가 자신의 친부임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 어머니 순자에게 화내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조선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 수치심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나?
- 결국 백노아는 일본인이 되고자 자살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문장의 리듬감이나, 표현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자세히 평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 또한 단조롭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과 흐름은 대체로 평이하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 받기로 하는 장면, 남편 백이삭의 무덤을 찾았던 순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럽게 책을 마무리한다.
냉정한 평은....영어로 쓰여진 한국 근현대사 배경의 (외국인 독자들에게)흥미로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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