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캠핑. 할아버지가 놓고 가신 침낭을 꺼내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 J. 옆에 꽉 조여져 있는 끈을 풀지도 않은 채.
M: "여기 옆에 있는 끈을 먼저 느슨하게 만들어야지. 그냥 잡아당기면 어떡하냐?"
J: "Hey~I am a simple person."
가족 캠핑. 할아버지가 놓고 가신 침낭을 꺼내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 J. 옆에 꽉 조여져 있는 끈을 풀지도 않은 채.
M: "여기 옆에 있는 끈을 먼저 느슨하게 만들어야지. 그냥 잡아당기면 어떡하냐?"
J: "Hey~I am a simple person."
지난 가을 논문을 제출하고, 디지털 인문학(DH) 석사 과정을 마쳤다. 나에게는 새로운 분야였고, 다양한 주제와 서로 다른 시각, 처음 접하는 프로젝트들과 알지 못했던 세상이 엇갈리는 시간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프로젝트들이 있고, 이토록 기발한 생각들이 있구나!'
흥미로움과 감탄이 교차했고,
'도대체 이게 왜 안 되는 걸까?'
좌절과 분노가 겹쳐졌다.
(여전히 못하는) 코딩을 접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고, 이미 세상은 AI를 이용한 바이브 코딩이 대세가 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언어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고, 단순히 코딩 그 자체보다도 어떤 데이터를, 무슨 목적으로, 누가, 왜,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다음은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DH 라운지에서 잡담을 나누던 동료 학우의 작은 응원에 힘을 얻어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No...There's no such thing as being old for a PhD."라고 말했던, 그도 나이가 적지 않았기에...) 새로운 분야에서 직접 일을 해 보는 선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고, 실제로 이런저런 직종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지만, 결국은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총 여섯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그중 절반은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나머지 절반은 철학 프로그램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과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과 석사 논문의 주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의 절충안이었다.
역시나 적합도가 모든 것을 좌우하였고, 연구 관심사/주제와 방법론이 가장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고, 아마도 유일할 듯하다.
Philosophy, University of Oregon으로부터 정식 제안을 받기 전, 학과 소속인 두 명의 교수로부터 연락이 먼저 왔고, 그중 Colin Coopman 교수와는 열 번 정도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로 원하면 돈을 좀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돈 이야기는 없었고, 혹시나 다른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면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는 부탁,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설명, 자신이 맡고 있는 New Media and Culture 프로그램과 나의 관심사가 일치한다는 등의 연구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여전히 제안을 기다리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뉴욕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는 나의 답장에는 학교의 가족 지원 프로그램들과 Eugene이 가족들과 살기 너무 좋다는 말, 자신이 두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자세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로 원하면 돈을 좀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돈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 나무가 가득한 곳; Eugene, Oregon으로 가기로. (여전히 연락을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도 하였고 - 비슷한 주제의식은 있으나 접근 방식이 조금 상이하고 무엇보다 프로그램 내 관심 교수가 한 명뿐이라서...- 연구 주제의 적합도가 높고, 무엇보다 내 연구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아내에게 먼저 허락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Y는 슬퍼했고, J는 단호했다.
"It sounds stupid. It just does."
자주 오겠다는 각오와 거짓말로 방어막을 만들고, 여름방학에 더 즐겁게, 더 많이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했다.
현재.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으며, 나 홀로 이사에 대해 연구하고, 떠나기 전 뉴욕 집에 필요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들을 찾고 있고, <장길산> 마지막 장을 읽고 있으며, 바이브 코딩이라는 걸 한 번 시험해 볼까싶다.
이렇게 청춘은 계속된다. ......될까? ......될 것이다!
- J의 농구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용기 있게 중도 하차할 것임을 다짐하며.
2026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이론적 설명이 가능할까? 미국의 감춰진 두 얼굴이 드디어 드러난 것인가?
작금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뉴욕에 도착한 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을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 리차드 번스타인(Prof. Richard Bernstein) 교수의 <미국 실용주의; American Pragmatism> 수업을 듣고 집에 온 후였다.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퍼스(Charlse S. Peirce)의 반-데카르트 주의와 탐구 공동체 등에 관한 첫 수업이 있었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 쪽에서는 야만이 지배하던 시절, 다른 쪽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1800년대 미국. 일련의 학자들은 열린 탐구, 공동체에 귀속된 인식론적 개방성, 근대 주체성에 대한 비판을 논의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생존을 위한 폭력과 아귀다툼, 착취와 혐오가 넘쳐흐르고 있다.
교양과 야만이 뒤범벅 된 이곳. 도대체 "미국"은 무엇인가?
"This is so un-American."
"그들"이 추방하고 가둔 수 많은 삶. 피부 색이 다른 이들의 삶. 미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비(非)백인' 퇴역 군인의 삶. 그리고 얼마 전, 자신의 차에 앉아 '난 화난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던 르네 니콜 굿(Renée Nicole Good)은 "그들"이 꿈꾸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길에서 마주한 보잘것 없는 삶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토록 짓밟고, 삭제하고, 제거하고 싶은 삶들도 "그들"에게 외친다.
"This is so un-American."
미국 사회는 혼란스럽고, 충동적이고, 분열되었다. 고삐 풀린 폭력은 외부와 내부를 가리지 않는다. 개인의 혐오와 충동은 사회 체계와 법, 더 나아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소수의 사익 추구와 이를 정당화하는 서사가 무지성과 무비판을 등에 엎고 "그들"을 소환할 때, 전체주의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雨中有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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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영웅 전설> by 박민규 |
마지막 학기. 강의를 듣지는 않았다. 홀로 논문을 쓰고, 가끔 교수님과 만나서 의견을 주고 받는다. 프로그램 특성상, 교수님이 모든 학생의 주제에 맞춰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는 없다. 워낙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있고, 교수님들의 배경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CUNY Graduate Center의 DH 대학원에 철학 전공의 교수는 한명도 없다.)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Re-envisioning Digital Agency: from Representationalism to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논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This thesis examines the epistemological and ethical foundations of digital technologies, particularly code and algorithmic systems, by considering their entanglement with representationalism. Arguing that code now functions as a dominant social agent and epistemic subject, through the concept of the Code’s-eye view, I explore how automated datafication reduces human experience to quantifiable inputs, reinforcing epistemic closure and social fragmentation. Drawing on pragmatist philosophy, including Peirce’s semiotics, Dewey’s democratic ethics, and Rorty’s conversational inquiry, I propose an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grounded in communal inquiry and interpretive openness. This alternative framework resists the binary logic of algorithmic rationality by emphasizing conflict and the shared process of meaning-making. By comparing two digital mapping projects, I aim to illustrate how code can either intensify or resist these epistemic tendencies, and to demonstrate the possibility of communal agency as a comprehensive process. In this respect, I argue for reclaiming digital agency as a participatory, ethical, and socio-political process – one that reopens the public/political spheres and recovers the communal ‘We’ in an age of automated anxiety.>
본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 이 논문의 중심 주제이며, 탐구해보고자 하는 명제이다.
"Today,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그리고 이 명제는 상충하는 두 명제로 구성된다.
1. It is socially constructed.
2. It has gaind subjectivity.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 주체성을 지닌다는 말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무엇인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만든 사람이 있고, 그로부터 기능/본질을 이미 선행적으로 부여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 상충하는 두 명제(1&2)가 오히려 첫 문장 -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 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
논문의 주제와 내용은 지난 강의들을 통해서 발전시키고 다듬었던 것들이다. 철학적 개념들을 무리없이 적용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쉽지않은 작업이었다. 또한, 논문을 쓰면서 다루고자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지 않았나 걱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다 썼다! 지도 교수에게 최종본을 보냈으니, 답변을 들은 후에 마무리 하면 될 듯 하다.
DH 과정은 끝나가고, 완성된 논문을 도서관에 제출하면 9월에 졸업이다. 사실 졸업/학위증은 의미가 없다. 다음 여정으로의 징검다리로써 이 대학원 프로그램을 선택했으니, 이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다. (실상 논문을 쓰는 시간보다, 이에 대한 고민과 주저함이 이번 봄학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석사 논문 주제와 연관된 직업 또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미래 계획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고민 중이다.
Plan-1: Data ethics/AI ethics-related jobs
Plan-2: PhD in STS, Anthropology, Philosophy...
두 계획 모두 쉽지 않겠지만, 중첩되는 지점은 명확하다: 문외한의 기술 (데이터/코딩/인공지능) 탐방기.
이를 위한, 올 여름의 단기적인 계획은 역시나 계속 코딩을 공부해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코딩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아늑했던 DH 연구실을 떠나는 일도 슬프다.
아무튼 이제 다시, "Hello, World!"
<뉴욕에 관한 여행책자들은 많다. 그리고 뉴욕여행에 관한 블로그 자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의 여러 모습들과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뉴욕시는 어마어마한 곳이다. 우선, 경제적 영향력. 간단히 뉴욕시의 GDP를 검색해보면,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지역(GMP)을 포함하여 $2.299 trillion, 뉴욕시 자체 GDP만으로도 $1.286 trillion (2023년 기준) 이다. 학문/문화의 측면에서도 뉴욕은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다.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육 기관들이 있고, 다양한 언어/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한 뉴욕 시민들과 방문자들이 어우러진다. 뉴욕이라는 공간이 온갖 소설,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라는 사실은 말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떨까?
뉴욕시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경우 서울 시장을 2-3번 정도 역임한 인사는 자연스레 소속 정당에서의 입지가 올라가면서 유력한 대권주자가 된다. (심지어 국무회의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뉴욕 시장은 연방 정부에서의 공식적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물론, 연방 정부의 정책 수립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뉴욕 시장은 - 그 유명세에 비해 - 미국의 중앙 정치 무대와는 거리가 있는 자리다. (그렇다. 역대 뉴욕 시장 중에서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사람들은 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 정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한데, 뉴욕 시장이 갖는 주목도와 상징성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민주당내 후보 선출 선거가 끝났고, 뉴욕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을 찾았다: Zohran Kwame Mamdani
| 서울 은평구 연서로4길 12 2층, 읽는공간 사색서재 |
작은 공간. 마음에 드는 책. 따뜻한 차. 조용한 조명. 언젠가 태평양을 건너 가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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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두 학기 동안 20학점을 들었기 때문에, 논문/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애매한 7학점 수업을 들어야했다. 그렇다면 7학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뉴욕시 거주 학생에게는 매우 저렴한(?) 대학원 학비이지만, 초과 학점으로 인해 추가 학비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만일 학위를 위해 논문을 쓰게 된다면, 디지털 구조와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해보고 싶다:
<수집된 데이터의 편향성, 이를 처리하는 코드와 알고리즘이 지닌 이분법적 시각, 디지털 공간의 이면에 내재한 폐쇄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
이를 염두에 두고, 수강 신청 중에 관심을 갖게된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강의-1은 DH 프로그램과 연계된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수업이어서, 손쉽게 학위 내 선택 학점으로 인정되었다. 남은 4학점을 자유 학점으로 채우기 위해서 철학과 강의-2를 선택하게 되었다. 비록 강의-3, Digital Sociology는 수강하지 못하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기존 산업 혁명과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이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문화적 변화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쉽지만 강의-3을 뒤로하고, 철학과 강의인 Social Construction을 선택하게 되었다. (4학점 수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불어,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가을학기 수강 신청은 손쉽게 진행되었다.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데이터와 코드가 사회의 행위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Data, Codes, Algorithms = Social agents & Subject>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조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1.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학생들이었고, 대부분 이미 데이터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같은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나와는 조금씩 다른 관점 - 웹 디자인이 지닌 한계, 시각화의 예술성과 정보 전달의 관계, 디지털 산업 구조와 조직체계의 폐쇄성 등 -을 제시해주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업 동안 접하게 된 책은 다음과 같다.
책 R과 D는 연구자의 입장 - 사회학 & 컴퓨터 공학 - 에서 바라본 빅 데이터의 세계를, 책 H와 W는 작가들의 현업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자동화와 인공 지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무엇도 완전히 독립된 주제가 될 수 없듯이, 모든 과학 기술 또한 사회-문화적 맥락/편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다.
| Kodak Shirley Cards |
예를 들자면, 초창기 카메라 필름 기술이 전제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였을까? 필름은 빛을 흡수하고, 대상의 모습을 저장하고, 현상하는 과정을 돕는, 순진무구한 도구일 뿐일까?
| “Hey! We almost forget the most important thing!” |
광고를 보시라. 이 얼마나 전형적인 미국-백인-중산층-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란 말인가!
<Race after Technology>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market and profitability imperative of tailoring technologies to different populations is an ongoing driver of innovation.” (p.106)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기술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 졌을까?"라는 물음은 "누가 이 물건을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다. (How Kodak's Shirley Cards Set Photography's Skin-Tone Standard)
이렇듯, 차이는 배제로 이어지고, 배제는 차별로 이어진다. 카메라의 조리개가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기술-도구의 등장이 언제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예들이 등장하는데,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책-R과 W를 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네 권의 책 모두가 대동소이한 시각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복되고 중첩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다른, 상반된 목소리와 논증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 & 자료들-
2. Social Construction
지난 학기 AI 강의에 이어서, 우연히도 같은 교수(Prof.Jesse Prinz)의 수업이었다. 역시나 짜임새있는 강의 주제들과, 자세한 설명,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한 학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강의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회 구성' 또는 '사회 구성주의(constructionism)' 정도가 될 듯하다. 형이상학/인식론의 측면에서 언어/과학/실재론-반실재론을 다루었고, 세부적인 주제로는 의학/인종/성/젠더/정치-음모론을 접할 수 있었다.
2.1.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구분하여, 사회 구성주의를 과학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철학적 논증은 "사회 구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 상대주의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만큼 중요한 철학적 제안이 될 수 있다.
2.2. 미국 사회 내의 아시안 공동체에 대한 두 가지 편견: (1) 탁월함/능력 & (2) 외부인. 이 둘의 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 Toxic combination - 에 대한 논의 또한 흥미로웠다.
2.3. 마지막으로,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비상계엄/내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읽었던, Jaron Harambam의 논문 “Against Modernist Illusions: Why We Need More Democratic and Constructivist Alternatives to Debunking Conspiracy Theories”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원래 계획했었던 소논문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퍼스 기호학의 세 부분(Triadic relation: Sign-Objects-Interpretant)을 통해 데이터/코드/알고리즘 이면에 내재된 이분법적 표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막판에 방향을 틀어서, 반실재론과 객관성에 대한 후기 퍼트넘과 로티의 철학을 비교하는 것으로 과제를 대신하였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받은 위로의 이메일 일부분을 남기며 2024년 가을학기에 대한 되돌아봄을 마친다.
"I can’t imagine how it must have felt to endure those hours of uncertainty. A sober reminder of how much damage one leader can do. But the big lesson here is that the South Korean people are strong, and the democracy is strong."
윤석렬. 그냥 바보인줄 알았는데, 이상한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었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서 그릇된 믿음을 지속적으로 그의 텅빈 머리에 주입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리라. 그러나 어리석음과 맹목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고, 이것이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시스템을 언제든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한밤 중의 끔찍한 TV 쇼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창문을 부수고 국회로 들어가던 특수부대 요원을 보라! 인간은 이렇게도 멍청하고, 다루기 쉽다.), 그 여파가 너무 크다.
이 무슨 난장판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