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청춘 - 수학능력? 그보다는 생각하기!

#1

정말이지 대학가기의 어려움이란...

끝까지 힘겹게, 그렇게 간신히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내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내게는 수학능력이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고자했던 대학에서 공부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랐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그런데 도대체가 그 시험으로 개개인의 수학능력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나의 모교가 된 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간신히 추가합격을 했다. 고맙긴 하다. 이제와서 말하자면 당시 나는 입학논술시험의 분량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나왔다. 강의실에서 논술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모든 게 귀찮아졌다. 대한민국의 고교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문들로 가득 찬 이 시험지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대학에 가고자 했던 간절함 보다는 그 모든 것에 지쳤던 내 청춘에 대한 허탈함이 더 컸다. 억지로 지어낸 말들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곳을 나왔다. 운이 좋게도 대학에 합격했다. 아마도 배치표가 요구하는 기준보다는 넉넉했던 내 수능시험점수 덕분이었으리 생각한다. 그토록 지겹게, 또 무의미하게 나의 청춘을 가렸던 그 수학능력시험 점수 덕분에 난 대학에 입학했다. 그 숫자들은 입시담당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수학능력시험. 어떤 이는 이 시험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또 다른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가 정한 일정한 경로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문과는 이과로 부터, 이과는 문과로 부터 멀어졌고, 선생은 학생들에게 분류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될 녀석'과 '안 될 녀석'으로. 내가 그나마 '될 녀석'으로 여겨졌던 것을 감사해야하는 걸까? '다원주의'라는 허울 좋은 개념을 사회과목 주관식 시험 답안지에 적어넣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었는지. 청춘이 막 시작하려 할 때에,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관심사와 미래를 작도하고 있었다. 이 단순한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2

정말이지 살아가기의 어려움이란...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는 지금도 달려야한다. 이렇게 달려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달려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이 달리기의 끝에 받아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지고, 버릇이 되고, 삶이 된다.

대학 시절, 종종 형과 나눈 대화들이 생각난다. 그는 보통의 인문학 전공자들보다도 문학책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서 마주친 어느 날 오르한 파묵의 책을 들고 있는 나에게 "그책 좋아."라고 말하는 형이라서 좋았다. 수요-공급 곡선이 엇갈리는 공부를 하던 그는 가끔 철학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언젠가 '대화'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에는 조금 놀라웠다. 마침 나도 로티(Richard Rorty)의 철학에 흥미를 느꼈던 때였다. 궁금하다. 공부를 떠난 형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동생은 지금 먼 곳에서 다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멋진일이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 다니던 때에도 고민과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동생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재목이다. 그녀가 천재라서 '얼씨구나~탁!' 하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이러면 좋겠지!!) 내 동생은 자신이 익힌 사회학적 개념들을 공감의 형태로 바깥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과 생각에는 그녀 자신의 체온이 온전히 묻어나오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는 훈련에 시간을 쏟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불안하게 만드는지.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믿고싶다. 오히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주변의 작은 소리와 희미하지만 고유한 빛깔들을 온전히 듣고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싶다.

그래서 지금부터 실현하고 싶은 계획: 굶지않고 생각하기; Thinking w/o Starving. 

우선 이 계획을 실현해가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가족에게 완벽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달님에 관한 그의 말

그는 양팔을 하늘 높이 뻗어올렸다.

J: "걱정마. 내가 할 수 있어."

M: "지금 뭐하는거야? 왜 그러고 있어?"

J: "으...으...기다려봐. 내가 달님을 잡아올게."

2018년 4월 21일 토요일

저녁 밥상, 그 후에

-저녁 밥상, 그 후에-

이 동네에서 더 이상 너를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게 서러워졌다

피곤하다며 놀이터에 가지 않았던 날이라던지, 아이들 신발은 금방 못 신게 된다며 넉넉한 신발만 찾던 어느 저녁의 시간이라던지, 이 동네 만한 곳이 없다면서 어디로도 놀러가지 못한 지난 여름이라던지이 동네에서 더 이상 너를 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 게 슬퍼 보였다

식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접이식 책상 한켠, 아내와 아이의 밥상이 휑하던 그날 저녁, 창밖으로 간신히 보이는 달빛의 언저리는 파르스름하니 시려웠다.

시큰한 콧마루를 연신 꿈트럭거리며 엉켜붙은 밥알들을 치우고, 네가 흘린 국물을 닦아냈다.

수년 전, 함께 고생스런 여행을 하자며 결혼이라는 걸 이야기 했던 내가 미웠고, 그 말을 듣고서는 행복할 수 있을거 같다고 말하던 아내의 미소가 서글퍼졌다

고작 열 걸음으로 집 한쪽 끝에서 끝으로 갈 수 있는 그 거리마저도 다 채우지 못할 울음을 터뜨렸다

자고 있는 너를 깨울까 싶어 그 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난 후, 그 날 저녁엔 모든 게 서럽고 슬프고 사랑스러웠다.

그날 따라 저녁 밥상이 새하얗고 단정했다.

2018년 4월 4일 수요일

중도하차_즐겁게 쓸모없기

마지막 지원이 끝났다. 두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고, 기다림 순서에 있었던 학교에서는 미안하다는 편지가 왔다. 간단한 선택이 남았다. 가느냐, 마느냐. 안 가기로 했다.

즐겁게 쓸모없기는 당분간 중단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이한 이름의 학교에 오게 되었다.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2011년 가을에 왔다. 2013년 봄학기에 석사과정 30학점을 모두 들었다. 2013년 가을 학기에는 Oral Exam을 통과했고, 2014 봄 학기에는 두개의 소논문 시험을 끝냈다. 2014 가을 학기에는 개인적 사정으로 휴학을 했고, 2015 봄 학기에는 박사과정 내부지원을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겨둔 철학서 번역 시험을 끝냈다. 정확히 3년 6개월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지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수업과 <철학과 희극> 수업은 실망스러웠다. 교수의 강의는 명확하지 못했고, 간혹 억지스러웠다. 그 외의 모든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Richard Bernstein교수의 <실용주의; Pragmatism>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 시간들이었다.

"대화란 무엇일까?"
"과연 비판적 대화는 가능한가?"
"의견들의 충돌은 새로운 관점의 정립으로 이어지는가?"

쓸모없는 질문들로 채워지던 시간은 여전히 즐거웠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논쟁도. 그들의 대화 속에서 헤매던 나를 도와주던 그들의 배려도. 더듬더듬 부족한 영어로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가던 순간들도.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그래도 이제는 중도하차를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난 아직 청춘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