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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4일 화요일

나무가 가득한 곳(Eugene, OR)으로.

지난 가을 논문을 제출하고, 디지털 인문학(DH) 석사 과정을 마쳤다. 나에게는 새로운 분야였고, 다양한 주제와 서로 다른 시각, 처음 접하는 프로젝트들과 알지 못했던 세상이 엇갈리는 시간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프로젝트들이 있고, 이토록 기발한 생각들이 있구나!'

흥미로움과 감탄이 교차했고,

'도대체 이게 왜 안 되는 걸까?'

좌절과 분노가 겹쳐졌다. 

(여전히 못하는) 코딩을 접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고, 이미 세상은 AI를 이용한 바이브 코딩이 대세가 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언어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고, 단순히 코딩 그 자체보다도 어떤 데이터를, 무슨 목적으로, 누가, 왜,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다음은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DH 라운지에서 잡담을 나누던 동료 학우의 작은 응원에 힘을 얻어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No...There's no such thing as being old for a PhD."라고 말했던, 그도 나이가 적지 않았기에...) 새로운 분야에서 직접 일을 해 보는 선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고, 실제로 이런저런 직종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지만, 결국은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총 여섯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그중 절반은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나머지 절반은 철학 프로그램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과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과 석사 논문의 주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의 절충안이었다.   

역시나 적합도가 모든 것을 좌우하였고, 연구 관심사/주제와 방법론이 가장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고, 아마도 유일할 듯하다. 

Philosophy, University of Oregon으로부터 정식 제안을 받기 전, 학과 소속인 두 명의 교수로부터 연락이 먼저 왔고, 그중 Colin Coopman 교수와는 열 번 정도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로 원하면 돈을 좀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돈 이야기는 없었고, 혹시나 다른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면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는 부탁,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설명, 자신이 맡고 있는 New Media and Culture 프로그램과 나의 관심사가 일치한다는 등의 연구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여전히 제안을 기다리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뉴욕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는 나의 답장에는 학교의 가족 지원 프로그램들과 Eugene이 가족들과 살기 너무 좋다는 말, 자신이 두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자세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로 원하면 돈을 좀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돈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 나무가 가득한 곳; Eugene, Oregon으로 가기로. (여전히 연락을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도 하였고 - 비슷한 주제의식은 있으나 접근 방식이 조금 상이하고 무엇보다 프로그램 내 관심 교수가 한 명뿐이라서...- 연구 주제의 적합도가 높고, 무엇보다 내 연구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아내에게 먼저 허락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Y는 슬퍼했고, J는 단호했다.

"It sounds stupid. It just does."

자주 오겠다는 각오와 거짓말로 방어막을 만들고, 여름방학에 더 즐겁게, 더 많이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했다.

현재.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으며,  나 홀로 이사에 대해 연구하고, 떠나기 전 뉴욕 집에 필요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들을 찾고 있고, <장길산> 마지막 장을 읽고 있으며, 바이브 코딩이라는 걸 한 번 시험해 볼까싶다. 

이렇게 청춘은 계속된다. ......될까? ......될 것이다!

- J의 농구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용기 있게 중도 하차할 것임을 다짐하며.

2024년 9월 7일 토요일

김지윤

지윤씨에게,

우리가 막역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분명 반가운 인연이었습니다. 첫 가을학기에 알게된 첫 친구였고,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너무 늦은 나이에 학위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걱정하던 지윤씨를 응원했습니다.

"걱정마요. 더 늦은 나이에 전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저 자신에게 하는 응원이었을 겁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표정, 책가방과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지윤씨의 씩씩한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지윤씨 덕분에 저도 힘을 냈습니다. 

몇번의 짧은 만남과 대화, 서로의 관심 분야를 알게 되었고, 낯선 도시에서의 대학원 생활에 대한 푸념과 흥미로운 주제들, 요즘 근황을 나누곤 했지요.  

첫 학기가 지나고, 짧은 겨울 방학 동안 혹시 한국에 잠시 갈 계획이냐고 물었던 저에게, 가족분들이 뉴욕을 방문할거라 답했습니다. 봄 학기가 시작되었고, 언제나 처럼 지윤씨의 안부 문자를 받고, 짧은 만남을 가졌죠. 부모님께서는 뉴욕 여행 좋아하셨냐는 물음에, 사실은 남자 친구가 놀러왔었다고, 혼자 공부하러 온 뉴욕에 남자친구가 놀러온다고 하기가 부끄러워 거짓말을 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심지어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라는 것도 말했으면서...) 한참을 웃었고, 나이가 많아 걱정이라는 사람이 그게 무슨 부끄러울 일이냐며 핀잔아닌 핀잔을 했었지요.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간단히 집밥 한끼 함께 하자며, 아내와 아이들을 소개해 주겠다는 제 초대에 흔쾌히 좋다고 했던 지윤씨가, 그 전날 조심스레 연락을 했었지요.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습니다. 저는 그저 별 일 아닐거라 짐작했고, 걱정말고 다녀오라는 답을 했지요.

지윤씨는 매번 먼저 안부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황망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소식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지윤씨의 추모식을 다녀왔고, 집에 돌아와 제가 좋아하는 향초 하나를 태웠습니다. 

지금은 교수님들과 동료 학생분들이 모아둔 지윤씨의 글을 읽습니다. 

반가운 인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이끌 드림.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여름, 청평.

 바닥에 누워 경사진 천장을 바라본다. 평평한 시간이 흐른다. 어쩐지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느릿하고 축축한, 여름 낮 더위 만큼이나 늘어진 내 몸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싱그러운 물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을 지나서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유속을 짐작해본다. 

 그렇게 한가한 공간을 독차지한 채로 남은 시간을 새어본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간, 언제까지라도 넉넉할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반가운 얼굴, 고마운 발걸음, 유쾌한 목소리와 다정한 손길이 아쉬운 마음을 위로한다. 


 올해 나의 여름은 이러했습니다. 덕분에 잘 지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름, 청평, 2023.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Saul Kripke (1940-2022)

Saul Kripke (1940-2022)

Saul Kripk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nalytic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has died.

Saul Kripke (1940-2022)

Professor Kripke was well-known for his work in philosophy of language and logic, with his Naming and Necessity, the book version of lectures he delivered at Princeton University in 1970, widely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works of 20th Century analytic philosophy. An overview of his influential work can be found here and a list of his publications can be viewed here.

At the time of his death, Kripke was Distinguished Professor of Philosophy and Computer Science at CUNY Graduate Center. From 1977 to 1998 he was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Princeton University. Prior to that, he held positions at Rockefeller University, Harvard University, and Princeton, and even before he earned his BA from Harvard in 1962, he taught courses at Yale and MIT. He held many visiting positions around the world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including at Cornell University, UCLA, Oxford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Utrecht, and Hebrew University, to name just some of them.

A 1977 New York Times article about Kripke’s life and career up to that point, and his reputation as a genius, conveys his standing at the time, at least among some philosophers:

Kripke’s potential, his controversial views and his position as [a] budding genius in world analytic philosophy have combined to make him a man who inspires awe and excitement among philosophers. In fact, he has already become something of a cult figure in philosophical circles—gossiped about, studied, analyzed and claimed as a kindred mind. Some philosophers lose their reserve when speaking of him. The cult phenomenon is itself remarkable, for philosophers as a group have such large egos that they correct Aristotle as they would a schoolchild, and they have such a healthy sense of skepticism that they doubt whether such things as proper names exist. Even in groups of two or three, they lace their conversation with exit clauses and qualifiers to guard against having a trapdoor sprung under some private reality. They do not, in short, subordinate or let go of themselves easily, and yet Kripke has been known to bring to their brain‐twisting conclaves the atmosphere of an early Beatles concert.

A 1996 Lingua Franca article by Jim Holt looks at some of the controversial aspects and upshots of Kripke’s reputation.

Among his many honors were the 2001 Schock Prize in Logic and Philosophy from the Swedish Academy of Sciences.

He died on September 15th.

Reference: 

https://dailynous.com/2022/09/16/saul-kripke-1940-2022/

 전공자(분석철학 전공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철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가 아니어도, 철학을 공부한 사람(학부 전공자를 의미합니다!)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학자가 세상을 떠났다. 나 또한 전공자가 아니지만, 그의 철학에 대한 짧은 논문 정도는 읽어봤을 정도다. 물론 나는 그에 관한 흥미로운- 천재로서, 괴짜로서 -일화에 더 관심이 있긴 했지만. 

 2022년. 뉴욕시는 당대의 철학자들과 작별 중이다.

Richard J. Bernstein (1932 - 2022)

 Richard J. Bernstein (1932-2022)

Richard J. Bernstein (1932-2022)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났다. 여름이 시작할 때였다. 이제 가을이 되었다. 

 수년 전, 수업이 끝난 밤 9시 가을 밤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기억난다. 집에 가는 지하철 역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그와 나누는 짧은 대화가 좋았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는 Richard Rorty의 철학에 관한 짧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프래그머티즘과 한나 아렌트 철학과의 유사성에 대한 대화였다.   

이런 저런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슬픔과 존경을 담아 작별 인사를 남긴다. 그의 책 <The Pragmatic Turn> 한쪽 구석에 받은, 젊은 철학도에게 남긴 그의 짧은 응원을 여전히 기억한다. 

To Michael "A fellow admirer of pragmatism." Richard J. Bernstein


(Reference)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안녕 2022년.

 2021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나는 2022년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곳의 시간은 매우 순차적이고, 불가역적이며, 선형적으로 흐른다. '시간은 필연적/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아무튼, 다들, 별 다른, 눈에 띄게 새로운 희망 없이도 새해를 반겼고, 숫자를 매겨보니 이제 2022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팠다. 2021년의 끝을 아픔으로 마무리하고 그 아픔을 강제 인수 당한 채로 2022년을 시작했다. 운 좋게 피할 듯 했던 COVID-19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철저한 마스크 사용과 규칙적인 손 세정, 최첨단 백신이라는 두터운 벽을 뚫어낸 녀석의 침투에 감탄할 수 밖에. 

 저렇게 끝내버린 2021년 안녕. 이렇게 시작한 2022년에게도 안녕.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첫 사랑. 그와 그녀의 손. 1Q84. 고양이 마을. 마더와 도터. 공기 번데기. 다른 세상. 그게 어디든 너와 나. 왼쪽은 왼쪽이고, 오른쪽은 오른쪽이니,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너와 내가 있는 세상에 도착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그대로.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속았다! 그리고 역시 내가 맞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랑학 개론 10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논리가 힘을 갖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고, 힘든 시련을 뚫고 서로를 찾아내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다.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녀는 몸의 힘을 빼고, 믿어야 하는 것을 믿기 위해 덴고의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댄다. 그곳에 귀를 대고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팔 안에 몸을 맡긴다. 콩깍지 안에 든 콩처럼. (p.1546)
 <1Q84> 속의 상징과 비유는 소설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다. 그건 흥미롭지만,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사실들의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두 개의 달을 올려다 봤어.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수 많은 위협을 받았어. 그리고 지금 여기 너의 손을 다시 잡고 있어. 그러면 이걸로 족해. 

Book 3:
  • Book 2로 끝냈어도...역시 괜찮지 않았을까?
  • 무라카미 아저씨. 여전히 재주 좋네요.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환상 버전.
  • 무라카미는 무라카미. 그대로도 괜찮아요. 
  • 온 세상 모두가 겪은, 지독하고 위태로운 첫사랑에 대한 우아한 찬가.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독서)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와 덴고.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마더와 도터. 선구. NHK. 증인회. 1984 또는 1Q84. 두 개의 달.

2권을 다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가끔 과하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하루키의 문장이군!" 

상징과 비유가 넘치는 책의 문장을 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대체 리틀 피플이 뭐야?' '나 참, 공기 번데기라니......' '마더가 되고, 도터가 된다고?'

글 속의 상징과 비유들을 굳이 익숙한 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전체와 개인.이념과 의지. 욕망과 속박. 순수함과 폭력. 상처와 치유. 그리고 사랑과 구원.

Book 2:
  • 이대로 끝내도 될 거 같은데, 3권을 도대체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지?
  • 비유와 상징도 좋지만, 때로는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채 상충하는 가치/이념 간의 논쟁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다루는 것이 더 선명한 그림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라!)  
  • 3권으로 가면 좀 더 분명한 도식을 제시할까?
  •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이렇게 끝맺으리라: '결국 사랑. 구원은 가까운 곳에 있어. 너의 손에 달렸어! '
  • 그렇다면 2권의 결말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제 Book 3으로 넘어간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2002년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강남 종로학원을 다니던 재수생 시절이었다. 그해에만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2005년에 그의 다른 책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그 후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떠한 책도 읽지 않았다. 관심이 식었고, 그의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꼈다. 지나칠 정도의 섬세한 표현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하게 느껴졌다. (분명 유치한 면이 있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그의 책 <1Q84>을 읽고 있다. 일종의 도전이자, 추억의 소환이라는 명목으로. 그래서 간단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Book 1:
  • 대단한데!
  • 그가 이 정도의 이야기 꾼이었나?
  • 나이가 들었나? 섬세하지만 과하지 않네. 
  • 그래. 이건 넘어가자. 이 정도면 많이 참았네.
 지금은 Book 2를 읽고 있다.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New York City 13: Life_자전거_Brooklyn Bicycle Co.

<Roebling>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샀다.


Brooklyn Bicycle Co. (해외 배송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뉴욕시의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자전거 회사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자전거들의 이름은 모두 브루클린의 골목/거리 명을 따르고 있다.: Bedford, Roebling, Driggs, Lorimer.... 

도시 생활형 자전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로드/MTB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몸에 딱 달라붙는 싸이클링 복장을 착용할 만큼 담대(?)하지는 못하지만 (내 취향도 아니고), 처음에는 드롭바 형태의 멋진 자전거를 원했다. 

(내 도시 자전거의 이상은 아래와 같다.) 


과하지 않고,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무엇보다 멋지다. (헬멧은 꼭 써야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들의 가격도 만만치 않고, 현재 심각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의 몸 상태가 이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우선 건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24년 전,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목포 슈퍼> 앞에 잠깐 세워둔 나의 삼천리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2021년 2월 9일 화요일

듣고 싶다.

 Yo La Tengo & Teenage Fanclub

서울 집 내 작은 방 침대 위에 놓여있는 수 많은 앨범들 중에서도 이 두 밴드의 앨범을 찾아서 차례로 듣고 싶다. 

<Season of the shark>를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Sometimes I don't need to believe in anything>을 또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두어 모금을 홀짝 거리다가 '이런...역시...'라는 표정으로 남은 맥주를 싱크대에 쏟아 버리면서,  

멍 때리면서, 듣고 싶다. 

2020년 1월 1일 수요일

<소개> 안녕 노트

<소개> 안녕 노트. >>>>>>> https://tumblbug.com/annyung_note

직장생활의 안녕을 바라는 당신에게, [안녕노트]

프로젝트 커버 이미지
<안녕노트>


홍보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의 여전한 청춘을 응원합니다.

2019년 5월 21일 화요일

However......

지난 밤, 생각을 버릇처럼 공책에 기록했다:

Kant's Deontological Ethics - Universality: has to be always unconditionally good

When putting "In circumstance X," Do / Do not Y - Validity: always involves certain condition in moral judgement & action.

Zero sum relation b/w Universality & Validity? How to avoid it?

그리고 오늘 이메일을 보냈다.

Dear, Prof.....
.....
.....
However I regret to inform you that I will not be accepting the offer of admission due to my personal situation.
.....
.....

고민이 길었다. 

이제 새로운 생각을 해야할 시간이다.

2019년 4월 2일 화요일

예쁜 말

꽃샘추위.

꽃을 시샘하는 봄날의 추위.

2018년 7월 10일 화요일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는 어땠을까?

서로를 만나 조금씩 알아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오랜 시간을 부부로 함께 살아온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계속 공부를 하였고, 그녀는 지금껏 그가 쓴 모든 글을 읽어주었다. 심지어 그의 박사학위 논문 타이핑을 도와주기도 했으니, 그가 지나온 학문의 여정에는 그녀도 항상 함께 있었다.

그와 그녀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지막 봄학기의 풍경은 분명 아름다웠으리라.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청춘 - 첫사랑

내 첫사랑은 남들보다 훨씬 더디게 다가왔다.

늦게 찾아 온 나의 첫사랑은 두명이었다. 그녀들은 서로 너무나 달랐지만, 난 둘 모두를 사랑했다.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은 뜨겁다기 보다는 따뜻했다. 충분히 따뜻했기에,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에게 첫 사랑이다.

A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가늘게 움츠러드는 눈매의 끝이 그녀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오며 마주쳤던 그녀와의 첫 인사는 조심스럽고 수줍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귀여웠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움츠러들었고,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들이 애틋했다.

반면, B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곧은 눈썹은 정직한 인상을 주었다. 맑은 얼굴 빛과 둥그스름한 콧등이 그녀의 얼굴에 섬세함을 더했다. 그녀의 첫 인상은 단정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미소는 천진난만 했지만, 그녀의 정직한 입매는 어른스러웠다. 

A와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때로는 손을 마주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걷는 모양새가 좋았다. 조근조근한 말투가 사랑스러웠고, 내 손 안의 작고 따뜻한 그녀의 손이 덜컹거리는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언제나 망설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이대로의 시간만으로도, 이 정도의 간격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기에, 나는 그녀와의 작고 조심스런 순간들이 불안하면서도 소중했다. 어린 아이가 남들의 눈에는 별거 아닌 작은 물건에 온 마음을 다하듯, 그녀와 함께 옮긴 걸음걸이마다 간절했던 내 뒷모습을 조용히 남겼다.

B는 자신의 생각을 쉬이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와 태도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곧은 사람인지. B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했다. 그녀와 공연을 가고, 연극을 보았다. 그녀의 생일에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소중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연인 보다는 가족이었으면 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뒤돌아보면, 맑은 날의 햇볕 냄새가 배어든 이불을 덮는 기분이 든다.

그녀들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숨겨진 부분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내 첫사랑의 모습이 그녀들에게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녀들을 사랑했노라 말해도 될런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들은 또 어떻게 오늘 하루를 보냈을까?'

또 묻고 싶다.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내가 사랑할 당신은 오늘도 안녕한지요?' 

2018년 5월 3일 목요일

청춘 - 새내기

봄이 되지 못한, 그래도 봄이라 부르는 겨울.

늦게나마 입학한 대학교의 첫 인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몇몇 선배들의 이야기 - 대부분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한탄, 설교 -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술이나 마시자'라는 끝맺음이 봄학기의 첫 일주일을 채웠다. 수십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들은 재차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모두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 학번과 이름을 교환하고나면 그들은 정리되지 않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다. 어떤 이는 술을 마시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어떤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읽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그 많았던 술자리에서 그들이 무엇으로 그 시간을 메꾸려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의 시간이 버거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은 이유없이 불안했다. 아니다.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기에 불안했다. 이유없이 주어진 시간은 그 나이 또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문대 학생들의 과방 앞에는 아침마다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배달되었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선배들은 다음 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은 그대로 버려졌고, 자기 몸뚱아리조차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그들이 그날 저녁 다시 과방에 모여 전태일 평전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또래의 청춘들은 자신들의 젊음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복잡해진 세상은 그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해진 그들은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껏 다른 누군가가 해왔다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튕기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시위에 나갔다. 누군가는 도서관을 헤매고, 누군가는 술자리에 나가고, 누군가는 또 다시 학원에 갔다. 바깥 세상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있었고, 성급하게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로 보상받았다. 그 모두를 의심하던 이들은 한발짝 뒤에 서서, 조용히 청춘을 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그들 탓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그들은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은 그들을 청춘이라 불렀다.

이듬해 새로운 새내기들이 입학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피했지만, 꼭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도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를 하였다.

"oo 학번의 ooo 입니다. 저는 oo에 관심이 있고, oo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한 어느 신입생의 자기소개가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서 거북스러웠다. 겨우 두번 째 봄학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도 무엇인가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 무엇에도 확신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옆 자리의 친한 동생 녀석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했다.

"우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세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거 같아요."

그 무엇이라도 용서받을 줄 알았던 청춘이라는 시간은 아름다웠고, 또 혼란스러웠다.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기에 버거웠고, 지금껏 기다렸기에 공허했다.

손 끝에서 잠시 느낀 봄, 겨울과 여름이 지워버린 그 잠깐의 시간이 청춘이었다.

                                                                   -나무가 되어 떠나간 녀석을 추억하며-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청춘 - 수학능력? 그보다는 생각하기!

#1

정말이지 대학가기의 어려움이란...

끝까지 힘겹게, 그렇게 간신히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내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내게는 수학능력이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고자했던 대학에서 공부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랐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그런데 도대체가 그 시험으로 개개인의 수학능력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나의 모교가 된 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간신히 추가합격을 했다. 고맙긴 하다. 이제와서 말하자면 당시 나는 입학논술시험의 분량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나왔다. 강의실에서 논술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모든 게 귀찮아졌다. 대한민국의 고교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문들로 가득 찬 이 시험지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대학에 가고자 했던 간절함 보다는 그 모든 것에 지쳤던 내 청춘에 대한 허탈함이 더 컸다. 억지로 지어낸 말들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곳을 나왔다. 운이 좋게도 대학에 합격했다. 아마도 배치표가 요구하는 기준보다는 넉넉했던 내 수능시험점수 덕분이었으리 생각한다. 그토록 지겹게, 또 무의미하게 나의 청춘을 가렸던 그 수학능력시험 점수 덕분에 난 대학에 입학했다. 그 숫자들은 입시담당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수학능력시험. 어떤 이는 이 시험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또 다른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가 정한 일정한 경로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문과는 이과로 부터, 이과는 문과로 부터 멀어졌고, 선생은 학생들에게 분류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될 녀석'과 '안 될 녀석'으로. 내가 그나마 '될 녀석'으로 여겨졌던 것을 감사해야하는 걸까? '다원주의'라는 허울 좋은 개념을 사회과목 주관식 시험 답안지에 적어넣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었는지. 청춘이 막 시작하려 할 때에,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관심사와 미래를 작도하고 있었다. 이 단순한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2

정말이지 살아가기의 어려움이란...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는 지금도 달려야한다. 이렇게 달려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달려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이 달리기의 끝에 받아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지고, 버릇이 되고, 삶이 된다.

대학 시절, 종종 형과 나눈 대화들이 생각난다. 그는 보통의 인문학 전공자들보다도 문학책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서 마주친 어느 날 오르한 파묵의 책을 들고 있는 나에게 "그책 좋아."라고 말하는 형이라서 좋았다. 수요-공급 곡선이 엇갈리는 공부를 하던 그는 가끔 철학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언젠가 '대화'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에는 조금 놀라웠다. 마침 나도 로티(Richard Rorty)의 철학에 흥미를 느꼈던 때였다. 궁금하다. 공부를 떠난 형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동생은 지금 먼 곳에서 다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멋진일이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 다니던 때에도 고민과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동생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재목이다. 그녀가 천재라서 '얼씨구나~탁!' 하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이러면 좋겠지!!) 내 동생은 자신이 익힌 사회학적 개념들을 공감의 형태로 바깥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과 생각에는 그녀 자신의 체온이 온전히 묻어나오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는 훈련에 시간을 쏟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불안하게 만드는지.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믿고싶다. 오히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주변의 작은 소리와 희미하지만 고유한 빛깔들을 온전히 듣고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싶다.

그래서 지금부터 실현하고 싶은 계획: 굶지않고 생각하기; Thinking w/o Starving. 

우선 이 계획을 실현해가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가족에게 완벽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2018년 4월 4일 수요일

중도하차_즐겁게 쓸모없기

마지막 지원이 끝났다. 두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고, 기다림 순서에 있었던 학교에서는 미안하다는 편지가 왔다. 간단한 선택이 남았다. 가느냐, 마느냐. 안 가기로 했다.

즐겁게 쓸모없기는 당분간 중단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이한 이름의 학교에 오게 되었다.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2011년 가을에 왔다. 2013년 봄학기에 석사과정 30학점을 모두 들었다. 2013년 가을 학기에는 Oral Exam을 통과했고, 2014 봄 학기에는 두개의 소논문 시험을 끝냈다. 2014 가을 학기에는 개인적 사정으로 휴학을 했고, 2015 봄 학기에는 박사과정 내부지원을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겨둔 철학서 번역 시험을 끝냈다. 정확히 3년 6개월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지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수업과 <철학과 희극> 수업은 실망스러웠다. 교수의 강의는 명확하지 못했고, 간혹 억지스러웠다. 그 외의 모든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Richard Bernstein교수의 <실용주의; Pragmatism>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 시간들이었다.

"대화란 무엇일까?"
"과연 비판적 대화는 가능한가?"
"의견들의 충돌은 새로운 관점의 정립으로 이어지는가?"

쓸모없는 질문들로 채워지던 시간은 여전히 즐거웠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논쟁도. 그들의 대화 속에서 헤매던 나를 도와주던 그들의 배려도. 더듬더듬 부족한 영어로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가던 순간들도.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그래도 이제는 중도하차를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난 아직 청춘이니깐.

2017년 12월 24일 일요일

청춘은 원래 비겁하고 용감하다.

스무살이 지나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꽤 많은 문자들을 훑어보았다. 문학 또는 전공 서적들이었다. 그렇게 머리 속을 멤돌다가 소화가 되지 못한 많은 문자들을 빈 종이 위에 토해내곤 했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형태가 없는 글이었지만, 간혹 마음에 들었던 글도 있었다. 토해냈던 문자들은 몇 권의 공책들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공책들을 모아 버리던 날,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우선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은 재미있었다. "<나는 창밖의 나무를 보고있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한 학기 동안 고민한 문제였다. 그 쓸모없음이 좋았다. 무의미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내 생활에도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그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쓸모없고 불안한 질문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그 시간의 나를 스쳐지나간 질문들이었다.

"가능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윤리적인 삶은 강박이 있는 삶인가?"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은 환상일까? 환상은 나쁜가?"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사랑하지 못하는 삶보다 불행할까?"

"소통되지 않는 진리가 있을까? 있어도 무의미 할까?"

제 2 도서관 5층. 소설책이 놓여있는 서가를 지나면 덩그러니 쓸쓸해 보이는 2인용 자리가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도 그곳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를 채우기도 했다. 전해지지 않을 말을 준비하며 먼 곳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평생을 함께 할지도 모를 사람과 스치며 인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깥 세상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그저 내 안의 문짝을 간신히 더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늦었다. 걸음걸이는 느렸다. 대학생활의 시작도 늦었다. 늦어지는 시간 속에서 불안한 질문을 즐기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의 문짝들이 덜커덩 거렸다.

'이 곳을 떠나보내자. 4년의 시간을 마저 채우고 싶지 않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계획했던 시간보다 먼저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위로가 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중간에 슬며시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이 청춘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청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나는 지금 서른 네살이다.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2017년, 나에게 청춘을 선물해 준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