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9일 목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짧게 요약하자면 경계와 규범에 관한 글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젬과 스카웃 남매(+친구 딜)가 바라보는 세상(메이콤)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가치와 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글이다.

  • 아서 (부) 래들리 아저씨  
  • 듀보스 할머니  
  • 커닝햄 아저씨  
  • 밥 & 메이엘라 유얼 
  •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 (봉지 콜라)
그리고
  • 팀 로빈슨 & 아이들(젬, 스카웃 그리고 딜.)

 아빠(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비하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조용하고 성숙하다. 그가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양심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아빠가 그 사람을 변호하시지 않으면, 오빠랑 저랑 이제 더 아빠 말씀을 안 들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ch.9 p.123)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도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 (ch.9 p.12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ch.11 p.170)

"커닝햄 아저씨는 바탕이 좋으신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뿐이지."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거야. 그걸로 충분하다." (ch.16 p.25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이겨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과제다. 특히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유얼 집안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폭력을 행사할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백인들은 그녀가 돼지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그렇다고 흑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강기슭에 땅을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얼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메이콤 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품 바구니를 건네 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까지 보냈습니다. (ch.19 p.307)

  결국 팀 로빈슨의 친절은 메이엘라 유얼이 백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의 통제되지 못한 연민의 감정(이 또한 흑인으로서의 규범을 어기게 된다.) 은 메이엘라에게는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왜곡된 형태로 보상해줄 대상 또는 수단으로, 기존 관습과 규범에 익숙한 백인(어른)들에게는 넘어선 안 될 경계를 넘어온 자, 즉 치욕과 모욕으로 다가선다. 그렇기에 (모욕 받았다고 믿는) 그들에게 있어서 팀 로빈슨의 재판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죄(Crime)를 다루는 것이 아닌, 금기(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어긴 신성 모독(Sin)에 관한 일이 된다.  

"네, 검사님. 아가씨가 상당히 불쌍해 보였습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고요, 불쌍하게 보였다고요?" 길머 검사님은 마치 천장으로라도 튀어 오를 기세였습니다. (ch.19 p.316)

  이 순간 법정에서는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린 딜의 울음소리만이 소외된 이웃(메이엘라 유얼)에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가선 팀 로빈슨의 통제되지 못한 감정(연민과 친절)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ch.19 p.319)

 그러나 밥 유얼은 어리석게도 흑인 청년을 무고함으로써 메이콤(=백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으려 했다.: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규범을 지키고 있어!"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것은 모욕과 멸시였다.: 경계를 지켜내지 못한 쓰레기. 잉여 인간. 쓸모 없는 녀석. 팀에게 내려진 배심원들의 유죄 선고는 사실 그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배제와 추방. 그것은 울타리였다. <넌 이 곳을 넘어선 안 돼!>라고 답변하는, 유죄를 선고하면서 팀 로빈슨을 쳐다볼 수 없었던 이들이 새롭게 놓은 울타리.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바로 이런 식이었거든." (ch.27 p.400)

 기존 규범에서 이탈한, 그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의 공허함은 또 다른 경멸과 적대를 불러 일으켰다. 마을 축제가 모두 끝난 어둠 속에서 밥 유얼은 몸부림 쳤고, 자신이 놓쳐버린 (어쩌면 허락되지 않은) 아이들의 울음에 상처를 내려했다. 그러나 또 다른 앵무새 한 마리, 아서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고, 팀 로빈슨이 그들에게 안겨준 작은 파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선(규범)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가로등이 읍내까지 길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태껏 이 방향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ch.31 pp.446-447)

  어린 소녀 스카웃을 이 작품의 화자로 삼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아빠(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자칫 작품을 유치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작품 속 성숙한 그의 태도와 말은 아이들의 시선에 비춰질 때 비로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낸다. 

아빠는 오랫동안 마룻바닥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드셨습니다. "스카웃 유얼 씨는 자기 칼 위로 넘어졌어. 이해할 수 있겠니?"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
"이해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글쎄, 말하자면 앵무새를 쏴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ch.30 p.443)

 그렇게 아서 부 래들리를 이 세상(메이콤)의 앵무새로서 지켜내려는 아빠의 한마디에 스카웃은 래들리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오빠 젬을 소개한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의 모습을 아이들의 눈에 비춰본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 (ch.7 p.97)"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멋진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걱정이 많다.

 끝으로 몇 가지 생각을 던져본다.

  1. 정치는 비극(tragedy)이 아닌 희극(comedy)이 될 수 있을까?
  2. 진정한 대화는 가능한가?
  3.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을 넘어선 규범, 즉 이성적 규범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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