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2018

안녕. 2018.

여러분들 모두 안녕.

그리고 안녕?

2018년 11월 8일 목요일

New York City 6: Coffee Street

한국에서는 마시지도 않던 커피가 이제는 나의 일상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다. 새롭고 다양한 커피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뉴욕의 커피는 젊고 경쾌하다. 평생을 한 가게에서 일해 온 바리스타 할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는 없지만, 밝은 인사를 건내는 바리스타 청년이 있다. - 그리고 그는 자꾸만 우유 종료를 고르라고 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 모두가 분주한 아침시간, 스타벅스 옆의 작은 커피가게 앞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도 경쾌하다. 그러나 나는 한층 더 여유롭다. 그 이유인 즉슨.

Nespresso!!!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알록달록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커피 캡슐들이 가득했던 플라스틱 통이 마냥 좋았지만, 이제는 겨우 세 가지 색의 캡슐들로 가득차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캡슐 3 종류: 검정, 보라, 회색. 분리수거 걱정까지 덜어주고 있으니 아침의 커피 한잔이 이보다 더 여유로울 수 없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약간의 우유를 넣은 "마이끌식 코르타도" 한잔이 아침을 풍요롭게 한다. 

내 바로 앞자리에는 여전히 손으로 먹는게 더 편하다고 찡찡거리는 꼬마 녀석이 앉아 있다.  이 녀석 바로 옆에는 등교 준비로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 숙녀가 있다. 가끔은 꼬마 녀석을 다그치기도 하고, 그게 서러운 녀석은 삐쳐서 입을 삐죽거린다. 바쁘게 아침식사를 마친 숙녀는 녀석에게 말한다.

"빨리 먹고 양치질 해야해. 안 그러면 벌레 생긴다."

오늘 아침 숙녀와 꼬마가 입을 옷을 신경써서 집어든다. 거실 한켠에 각자의 옷을 놓는다. 이를 닦고 시원해진 입으로 바람을 불며 달려온 두 녀석은 이제 혼자서도 옷을 잘 입는다. 숙녀는 가방을, 꼬마는 장난감을 챙긴다. 나는 녀석들에게 외투를 꺼내주기 전에 오늘의 날씨를 살펴본다. 화창한 가을아침이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들에 꼬마 녀석은 한껏 신날테다. 

"Our" Playground, Forest Hills, New York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집에 와서 "마이끌식 코르타도" 한잔 더 마셔야 겠다.'

캡슐 커피가 있어서 다행인 가을아침이다.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2-1

1991년.

강남 국민학교.

2학년 1반.

김우경 선생님.

행복한 학교생활이었다.

2018년 9월 18일 화요일

스티커 자본가의 달콤한 속삭임

오후 2시 30분. 집에 도착했다.

Y: "Start cleaning up. You'll get two stickers."

J: "OK."

2018년 8월 19일 일요일

유령에 관한 그녀 & 그의 말.

어두운 밤. 잠을 잘 시간이 되었고, 그녀가 시작한다.

Y: "유령이 나올거 같아!! Spooky~Spooky~~"

J: "하지마!"

Y: "Spooky~Spooky~There is a ghost~"

J: "하지마! 나는 슈퍼 영웅이야."

2018년 8월 11일 토요일

냉면

냉면이 먹고싶다.

장충동 평양면옥...은 역시 만두지.

냉면이 먹고싶다.

뉴욕에는 맛있는 냉면이 없다.

2018년 8월 2일 목요일

해적에 관한 그녀 & 그의 말

그녀는 한쪽 눈을 감고 외쳤다.

Y: "Oh! Shiver my timbers"

그도 따라서 외쳤다.

J: "Oh! Shiver my timbers"

2018년 7월 20일 금요일

형이상학적 확신


-형이상학적 확신-

앞마당에 가지가 열렸다
짙고 매끈한 보라색 민낯이
가느다란 대 아래로
출렁이며 매달려 있다

여름 날
너의 삶이
그리도 짙게 익었다

넘겨받은 생을
살아내는 일이
아마도
이런 것이다

이제껏 
덜어 낸다 했지만
도리없이 익어가는 일

매끈한 네 몸둥이가
너의 삶이 아니 듯
자라난 마당을
구차스레
고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여린 목구멍에
햇살 한 움큼을 욱여넣 듯
속절없이 그 속은
뜨겁고 끈적해져 간다

2018년 7월 10일 화요일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는 어땠을까?

서로를 만나 조금씩 알아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오랜 시간을 부부로 함께 살아온 그와 그녀의 마지막 봄학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계속 공부를 하였고, 그녀는 지금껏 그가 쓴 모든 글을 읽어주었다. 심지어 그의 박사학위 논문 타이핑을 도와주기도 했으니, 그가 지나온 학문의 여정에는 그녀도 항상 함께 있었다.

그와 그녀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지막 봄학기의 풍경은 분명 아름다웠으리라.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쉬야에 관한 그의 말

욕실에 들어온 그가 말했다.

J: "Here I Come~"

그는 시원하게 분출했다.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이니.미니.마이니.모.

Eeny, meeny, miny, moe 

Catch a tiger by the toe

If he hollers let him go 

Eeny, meeny, miny, moe 

2018년 6월 16일 토요일

New York City 5: A Guide

<뉴욕에 관한 여행책자들은 많다. 그리고 뉴욕여행에 관한 블로그 자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의 여러 모습들과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뉴욕에 산다. 가로와 세로 방향의 단순한 길들이 차례차례 엇갈리며 만들어진 이곳의 빛깔은 다채롭다. 사람들의 복잡한 속사정들이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한편의 훌륭한 이야기처럼, 여러 갈래의 길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이 도시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매끈한 삶이 있고, 고단하고 처량한 삶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우연히 삶의 작은 조각을 나와 함께 공유했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에서 대학원 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도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뉴욕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나의 삶을 채색한다. 고맙게도 그들의 상상 속에서 그려진 뉴.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삶.은 풍요로운 빛깔들로 반짝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환상으로 채워진 삶이기 때문에, 그 한명의 철학도는 그들에게 뉴욕을 소개해주며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다. :)

1. 70대 아버님.

한국의 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아버님께 뉴욕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고. 아버님은 음식을 조심하셔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아버님의 첫 인상이 좋았다. 가벼운 인사 속에서 느껴지는 배려가 좋았다.

 "마이클씨는 가이드가 아니야, 큰아버지하고 즐겁게 뉴욕 여행 한다고 생각해."

어른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느껴진다. 아랫사람에게 말을 놓고 정겹게 대하면서도 배려가 있고 정중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한국어의 질감!)

아버님은 뉴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옛날에 보셨던 영화를 떠올리셨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지날 때에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식사를 하며 산타나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센트럴 파크에 있는 존 레논의 추모비를 보고 산책을 하며 아버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옆동네에 살던 소녀였다. 그렇게 곱고 예쁜 사람을 사랑해서 좋았다고 하셨다. 한참 후에 만났을 때도, 소녀가 아가씨가 되어 만났을 때도 그녀는 예뻤다고 하셨다.

 "내 마누라는 안 예뻐. 평생 함께 살 사람이 예쁘면 좋거든. 그런데 나는 내 마누라가 좋아. 정이 든다는 게 그런거야. 안 예뻐도 좋은거. 고마운거. 마누라가 몸이 안 좋아서 같이 못 왔어. 혼자와서 그게 미안해." 

사모님은 그 첫사랑 처럼 예쁘지는 않다고 하셨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 예쁘면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사모님과 함께한 세월이 좋았다고, 고마운게 많다고. 그리고 지금은 미안하다고.

함께 했던 2박 3일의 여행이 끝나고, 마지막 날 저녁에 헤어질 때는 함께 여행을 해줘서 고맙다며 큰 돈을 손에 쥐어 주셨다. 과일값이라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 맛있는 과일을 사다주라며 건네주신 아버님의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버님과의 여행 덕분에 뉴욕에 온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랐다.

"유학생활하면서 이런 곳은 잘 못오게 되잖아. 마이클도 같이 올라가자!"

2. 엄마와 아이들.

엄마는 아이들에게 직접 주문하라고 다그쳤다. 카페에서 쭈볏쭈볏 영어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답답했다. 오빠와 동생은 영어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영어 유치원도 다녔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영어를 안 하려고 하니 엄마는 답답하다.

 "어머님. 원래 직접 이렇게 해보려고 하면 잘 안 들리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어머님께서도 영어로 직접 커피 주문해 보시겠어요?"

웃으며 말씀 드리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저는 가이드님이 해주셔야죠."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제서야 안심한 꼬마 아이가 속삭였다.

 "그런데요. 아저씨. 나 영어 한개도 못해요."

나도 속삭였다.

 "괜찮아. 아저씨도 영어 못해. 아저씨는 심지어 미국사람이야"

3. 아버지와 아들.

가족여행을 오셨다. 할머님, 어머님, 그리고 어린 딸은 그날 하루 쇼핑을 한다고 하셨다.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아버님. 그리고 나. 서로가 어색한 세명의 남자들은 뉴욕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뉴욕에 오는 많은 여행객들이 타임 스퀘어 근처의 숙소에 짐을 푼다. 그래서 여행 가이드의 시작점은 대부분 타임 스퀘어가 된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는 당연히 바로 옆의 브라이언트 공원이다. 이곳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여행 전날까지 진료를 하고 오느라 피곤했던 아버님은 (아버님은 안과 의사!) 특히나 이 공원을 좋아하셨다.

"커피나 한잔 하면서 하루종일 이곳에서 쉬고 싶네요. 마이클씨랑 이야기나 나누면서. 너는 어때?"

역시나 아들은 별 대답이 없었다. 그날의 여행 중 사춘기 소년이 정말로 좋아했던 두 번의 순간이 있었다: 1) 뉴욕 양키즈 구장에 방문했을 때 & 2) 배어버거(Bareburger)의 바닐라 밀크쉐이크를 한모금 마셨을 때. (뉴욕에 오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피곤하지만 아들과 여행하는 시간이 좋다는 아버님. 의사하면 힘들다고, 가족들만 좋은거 같다면서 자기는 아빠처럼 의사가 되기는 싫다는 사춘기 소년. 아빠와 아버지, 그 중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이들 부자와의 여행이 끝날 무렵, 첫 만남이 어색했던 세 남자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즐거웠다.

나는 지금도 뉴욕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지금 다른 곳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들의 짧았던 이곳에서의, 나와의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머쓸(muscle)에 관한 그의 말.

Y: "엄마~빨리 와. 나 자고 싶어. 내 옆으로 와."

J: "누나야. 왜? 무서워?"

Y: "응"

J: "그러면 내가 지켜줄게. 걱정마."

Y: "넌 너무 작아. 넌 힘도 약하잖아."

J: "내 머쓸(muscle) 만져봐."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청춘 - 첫사랑

내 첫사랑은 남들보다 훨씬 더디게 다가왔다.

늦게 찾아 온 나의 첫사랑은 두명이었다. 그녀들은 서로 너무나 달랐지만, 난 둘 모두를 사랑했다.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은 뜨겁다기 보다는 따뜻했다. 충분히 따뜻했기에,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에게 첫 사랑이다.

A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가늘게 움츠러드는 눈매의 끝이 그녀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오며 마주쳤던 그녀와의 첫 인사는 조심스럽고 수줍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귀여웠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움츠러들었고,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들이 애틋했다.

반면, B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곧은 눈썹은 정직한 인상을 주었다. 맑은 얼굴 빛과 둥그스름한 콧등이 그녀의 얼굴에 섬세함을 더했다. 그녀의 첫 인상은 단정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미소는 천진난만 했지만, 그녀의 정직한 입매는 어른스러웠다. 

A와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때로는 손을 마주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걷는 모양새가 좋았다. 조근조근한 말투가 사랑스러웠고, 내 손 안의 작고 따뜻한 그녀의 손이 덜컹거리는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언제나 망설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이대로의 시간만으로도, 이 정도의 간격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기에, 나는 그녀와의 작고 조심스런 순간들이 불안하면서도 소중했다. 어린 아이가 남들의 눈에는 별거 아닌 작은 물건에 온 마음을 다하듯, 그녀와 함께 옮긴 걸음걸이마다 간절했던 내 뒷모습을 조용히 남겼다.

B는 자신의 생각을 쉬이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와 태도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곧은 사람인지. B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했다. 그녀와 공연을 가고, 연극을 보았다. 그녀의 생일에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소중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연인 보다는 가족이었으면 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뒤돌아보면, 맑은 날의 햇볕 냄새가 배어든 이불을 덮는 기분이 든다.

그녀들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숨겨진 부분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내 첫사랑의 모습이 그녀들에게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녀들을 사랑했노라 말해도 될런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들은 또 어떻게 오늘 하루를 보냈을까?'

또 묻고 싶다.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내가 사랑할 당신은 오늘도 안녕한지요?'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타임아웃에 관한 그녀의 말

Y: "자. 아빠가 아이스크림도 준다고 했지. 빨리 치워야해."

J: "......"

Y: "난 여기 앉아서 있을거야. 이제 너도 혼자 잘 치운다는 걸 나한테 보여줘."

J: "......"

Y "너 타임아웃이 뭔지 알아?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 안 듣는 아이들한테 앉아 있으라고 하는거야. 너도 안 치우면 동영상 못 보고 앉아 있을거야."

J: "......"

Y: "자. 이제 나한테 보여줘. 너도 잘 치운다는 걸."

2018년 5월 8일 화요일

화산에 관한 그녀의 말

M: "아이구~그걸 그렇게 하면..."

J: "......."

M: "이 짜식아. 아이고 이 화상아."

J: "......"

Y: "아빠. 쟤는 Volcano야. Lava야."

J: "......"

2018년 5월 3일 목요일

청춘 - 새내기

봄이 되지 못한, 그래도 봄이라 부르는 겨울.

늦게나마 입학한 대학교의 첫 인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몇몇 선배들의 이야기 - 대부분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한탄, 설교 -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술이나 마시자'라는 끝맺음이 봄학기의 첫 일주일을 채웠다. 수십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들은 재차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모두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 학번과 이름을 교환하고나면 그들은 정리되지 않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다. 어떤 이는 술을 마시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어떤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읽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그 많았던 술자리에서 그들이 무엇으로 그 시간을 메꾸려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의 시간이 버거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은 이유없이 불안했다. 아니다.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기에 불안했다. 이유없이 주어진 시간은 그 나이 또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문대 학생들의 과방 앞에는 아침마다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배달되었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선배들은 다음 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은 그대로 버려졌고, 자기 몸뚱아리조차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그들이 그날 저녁 다시 과방에 모여 전태일 평전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또래의 청춘들은 자신들의 젊음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복잡해진 세상은 그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해진 그들은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껏 다른 누군가가 해왔다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튕기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시위에 나갔다. 누군가는 도서관을 헤매고, 누군가는 술자리에 나가고, 누군가는 또 다시 학원에 갔다. 바깥 세상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있었고, 성급하게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로 보상받았다. 그 모두를 의심하던 이들은 한발짝 뒤에 서서, 조용히 청춘을 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그들 탓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그들은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은 그들을 청춘이라 불렀다.

이듬해 새로운 새내기들이 입학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피했지만, 꼭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도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를 하였다.

"oo 학번의 ooo 입니다. 저는 oo에 관심이 있고, oo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한 어느 신입생의 자기소개가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서 거북스러웠다. 겨우 두번 째 봄학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도 무엇인가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 무엇에도 확신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옆 자리의 친한 동생 녀석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했다.

"우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세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거 같아요."

그 무엇이라도 용서받을 줄 알았던 청춘이라는 시간은 아름다웠고, 또 혼란스러웠다.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기에 버거웠고, 지금껏 기다렸기에 공허했다.

손 끝에서 잠시 느낀 봄, 겨울과 여름이 지워버린 그 잠깐의 시간이 청춘이었다.

                                                                   -나무가 되어 떠나간 녀석을 추억하며-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청춘 - 수학능력? 그보다는 생각하기!

#1

정말이지 대학가기의 어려움이란...

끝까지 힘겹게, 그렇게 간신히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내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내게는 수학능력이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고자했던 대학에서 공부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랐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그런데 도대체가 그 시험으로 개개인의 수학능력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나의 모교가 된 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간신히 추가합격을 했다. 고맙긴 하다. 이제와서 말하자면 당시 나는 입학논술시험의 분량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나왔다. 강의실에서 논술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모든 게 귀찮아졌다. 대한민국의 고교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문들로 가득 찬 이 시험지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대학에 가고자 했던 간절함 보다는 그 모든 것에 지쳤던 내 청춘에 대한 허탈함이 더 컸다. 억지로 지어낸 말들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곳을 나왔다. 운이 좋게도 대학에 합격했다. 아마도 배치표가 요구하는 기준보다는 넉넉했던 내 수능시험점수 덕분이었으리 생각한다. 그토록 지겹게, 또 무의미하게 나의 청춘을 가렸던 그 수학능력시험 점수 덕분에 난 대학에 입학했다. 그 숫자들은 입시담당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수학능력시험. 어떤 이는 이 시험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또 다른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가 정한 일정한 경로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문과는 이과로 부터, 이과는 문과로 부터 멀어졌고, 선생은 학생들에게 분류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될 녀석'과 '안 될 녀석'으로. 내가 그나마 '될 녀석'으로 여겨졌던 것을 감사해야하는 걸까? '다원주의'라는 허울 좋은 개념을 사회과목 주관식 시험 답안지에 적어넣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었는지. 청춘이 막 시작하려 할 때에,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관심사와 미래를 작도하고 있었다. 이 단순한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2

정말이지 살아가기의 어려움이란...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는 지금도 달려야한다. 이렇게 달려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달려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이 달리기의 끝에 받아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지고, 버릇이 되고, 삶이 된다.

대학 시절, 종종 형과 나눈 대화들이 생각난다. 그는 보통의 인문학 전공자들보다도 문학책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서 마주친 어느 날 오르한 파묵의 책을 들고 있는 나에게 "그책 좋아."라고 말하는 형이라서 좋았다. 수요-공급 곡선이 엇갈리는 공부를 하던 그는 가끔 철학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언젠가 '대화'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에는 조금 놀라웠다. 마침 나도 로티(Richard Rorty)의 철학에 흥미를 느꼈던 때였다. 궁금하다. 공부를 떠난 형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동생은 지금 먼 곳에서 다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멋진일이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 다니던 때에도 고민과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동생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재목이다. 그녀가 천재라서 '얼씨구나~탁!' 하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이러면 좋겠지!!) 내 동생은 자신이 익힌 사회학적 개념들을 공감의 형태로 바깥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과 생각에는 그녀 자신의 체온이 온전히 묻어나오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멋진' 사회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생각하는 훈련에 시간을 쏟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불안하게 만드는지.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믿고싶다. 오히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주변의 작은 소리와 희미하지만 고유한 빛깔들을 온전히 듣고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싶다.

그래서 지금부터 실현하고 싶은 계획: 굶지않고 생각하기; Thinking w/o Starving. 

우선 이 계획을 실현해가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가족에게 완벽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달님에 관한 그의 말

그는 양팔을 하늘 높이 뻗어올렸다.

J: "걱정마. 내가 할 수 있어."

M: "지금 뭐하는거야? 왜 그러고 있어?"

J: "으...으...기다려봐. 내가 달님을 잡아올게."

2018년 4월 21일 토요일

저녁 밥상, 그 후에

-저녁 밥상, 그 후에-

이 동네에서 더 이상 너를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게 서러워졌다

피곤하다며 놀이터에 가지 않았던 날이라던지, 아이들 신발은 금방 못 신게 된다며 넉넉한 신발만 찾던 어느 저녁의 시간이라던지, 이 동네 만한 곳이 없다면서 어디로도 놀러가지 못한 지난 여름이라던지이 동네에서 더 이상 너를 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 게 슬퍼 보였다

식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접이식 책상 한켠, 아내와 아이의 밥상이 휑하던 그날 저녁, 창밖으로 간신히 보이는 달빛의 언저리는 파르스름하니 시려웠다.

시큰한 콧마루를 연신 꿈트럭거리며 엉켜붙은 밥알들을 치우고, 네가 흘린 국물을 닦아냈다.

수년 전, 함께 고생스런 여행을 하자며 결혼이라는 걸 이야기 했던 내가 미웠고, 그 말을 듣고서는 행복할 수 있을거 같다고 말하던 아내의 미소가 서글퍼졌다

고작 열 걸음으로 집 한쪽 끝에서 끝으로 갈 수 있는 그 거리마저도 다 채우지 못할 울음을 터뜨렸다

자고 있는 너를 깨울까 싶어 그 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난 후, 그 날 저녁엔 모든 게 서럽고 슬프고 사랑스러웠다.

그날 따라 저녁 밥상이 새하얗고 단정했다.

2018년 4월 4일 수요일

중도하차_즐겁게 쓸모없기

마지막 지원이 끝났다. 두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고, 기다림 순서에 있었던 학교에서는 미안하다는 편지가 왔다. 간단한 선택이 남았다. 가느냐, 마느냐. 안 가기로 했다.

즐겁게 쓸모없기는 당분간 중단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이한 이름의 학교에 오게 되었다.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2011년 가을에 왔다. 2013년 봄학기에 석사과정 30학점을 모두 들었다. 2013년 가을 학기에는 Oral Exam을 통과했고, 2014 봄 학기에는 두개의 소논문 시험을 끝냈다. 2014 가을 학기에는 개인적 사정으로 휴학을 했고, 2015 봄 학기에는 박사과정 내부지원을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겨둔 철학서 번역 시험을 끝냈다. 정확히 3년 6개월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지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수업과 <철학과 희극> 수업은 실망스러웠다. 교수의 강의는 명확하지 못했고, 간혹 억지스러웠다. 그 외의 모든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Richard Bernstein교수의 <실용주의; Pragmatism>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 시간들이었다.

"대화란 무엇일까?"
"과연 비판적 대화는 가능한가?"
"의견들의 충돌은 새로운 관점의 정립으로 이어지는가?"

쓸모없는 질문들로 채워지던 시간은 여전히 즐거웠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논쟁도. 그들의 대화 속에서 헤매던 나를 도와주던 그들의 배려도. 더듬더듬 부족한 영어로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가던 순간들도.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그래도 이제는 중도하차를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난 아직 청춘이니깐.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그의 장래희망

그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의 목록: 상어. 고래. 개구리. 빨간색. 초록색.

2018년 3월 5일 월요일

사랑에 관한 그의 말

J: "이제부터 엄마는 아빠 사랑하지마!!"

S: "..."

M: "그러면 누가 아빠를 사랑해줄거야?"

J: "내가."

2018년 3월 3일 토요일

Weezer - Island In The Sun

대학 시절 벤치에 앉아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며 들었던 노래가 갑자기 생각났다.

자 우리 모두 따라해 봐요.

Hip Hip

2018년 2월 16일 금요일

돌아감에 관한 그의 말

그는 잠이 들기 전,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

J: "원래대로 돌아갈까?"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녀의 첫 번째 꿈

그녀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Y: "나는 우주비행사가 될거야."

M: "왜 우주비행사가 되고싶어?"

Y: "그래서 지구를 보고 싶어. 지구한테 약도 주고 치료해줄거야."

2018년 1월 29일 월요일

Hell or High Water (2016)

Hell or High Water, 2016

A MUST-SEE Movie!!

담백한 먼지가 힘겹게 휘날리는 영화.

다들 보시라!!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한국인 마이끌은 일본어를 한다.

이곳에서 나는 '마이끌'이다. 마이끌이라는 이름은 "여러분. 수업시간에 사용할 영어 이름을 함께 만들어 볼까요?" 라는 식으로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다. 나는 엄연히 법적으로, 그리고 문서상으로 마이끌이다. (트럼프 형님이 좋아하겠지?) 그러나 나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영어 보다는 일본어가 편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한국인 마이끌은 일본어를 한다.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은 별로 많지 않다. 자막 없이 일본 드라마나 예능을 즐길 수 있다거나, 만화책을 볼 수 있다는 정도 뿐이다. 가끔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일본을 떠나온지 벌써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화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소설가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雪国)의 첫 문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첫 문장,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내가 지금껏 읽었던, 그리고 앞으로 읽게 될 그 어떤 소설의 첫 문장도 이 보다 완벽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문장은 그대로 한편의 시와 같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읽기를 반복한 적이 있다. 이 첫 문장 안에서 작가의 시선, 기차에 타고 있던 시마무라의 시선, 그리고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나의 시선이 동시에 겹쳐진다. 우리는 모두 기차 밖의 설국을 바라본다. 이와 같은 미적 체험은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 


...雪国であった。(설국이었다.)

그렇게 설국은 '지금' 그리고 '여기'가 된다. 작가는 설국을 말하고, 시마무라는 설국에 도착하였고, 나는 곧 시마무라가 된다. 내가 이 문장을 통해 느끼는 것은 현실과의 단순한 차단이 아닌, 현실로 부터 다른 세상으로의 이행이다. 현실로 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과 닿아있는 여정이다. 나의 현실은 여전히 저 터널 뒤에 있지만,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더 큰 초월감을 느낀다. 작가는 설국을 말하며 아래와 같이 끝을 맺는다.

-であった。(-이었다.)

 이 문장의 끝이 초월감을 자극한다. -だった(-였다.) 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왜 굳이 -であった。(-이었다.) 라고 썼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정확히 분석할 만한 재주도 없다. 그러나 이 끝맺음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첫 문장에 대한 괄호 안의 한국어 번역보다, 원어의 문장에서 느끼는 나의 미적 체험은 문장의 끝맺음이 "-であった。(-이었다.)" 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그저 짐작해 본다. 작가의 거리를 두는 듯한 객관적 시선 속에서, 나는 시마무라의 주관적 시선을 통해 기차 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은 설국이다. 설국은 그 곳에 있다. (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 있었다.)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는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는 드라마를 본다.

따뜻하고 안쓰러운, 그냥 보통의 사람들로 가득한 드라마.

원진아 배우가 연기하는 배역을 보고있자면 순간순간 누군가를 떠올린다. 말투와 표정이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문수는 어느 순간 '굉장히' 씩씩하다.

이준호...는 얼마 전에 결혼한 내 친구다. (먼 곳에서 축하한다!)

이기우 배우는 키가 크다.

정유진 역의 강한나 배우는 학부 시절 철학과의 최복희 교수님과 닮았다. 강한나, 그녀는 유가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상만이라는 배역을 연기하는 김강현 배우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과 도플갱어다. 그저 놀랍다.

나문희 할머니는 언제나 감탄스럽다. 그녀는 이 드라마 안에서 유일하게 연기자가 아니다. 언제나 그저 보통의 사람들 중 한명이다.

많은 배우분들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따뜻하고 안쓰러운 역할들을 맡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태인호 배우가 연기하는 정이사 아저씨.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냥 장사 안되는 카페의 바리스타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철새나 보러 다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는 끝까지 봐야겠다.

2018년 1월 8일 월요일

삼남매


아버지는 내 동생을 부를 때 '선희(막내 고모님)야'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나도 내 딸을 부를 때 종종 '주현아'라고 한다. 막내 여동생은 딸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딸이 막내 여동생 같은 것인지? 아무튼 내 동생은 삼남매 중 막내다. 나는 많은 가족들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는 중간이고, 형은 모든 부모들의 실험대상인 첫째로 태어났다. 우리는 삼남매다.

형은 서울에 있고, 동생은 파리에 있고, 나는 뉴욕에 있다. 흔치않게도 우리 삼남매는 같은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서로 다른 전공을 택하였고 (희한하게도 동생의 제 2 전공은 나의 전공과, 나의 제 2 전공은 형의 전공과 겹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삶을 살고 있으며,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을테지만, 우리는 삼남매다.

형과 나는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종종 듣는 형의 생각들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동생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늘 고맙다.

형은 나에게 오락실을 소개해 주었고, 동생은 나에게 사회학을 소개해 주었고, 나는 동생을 철학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형은 나에게 그리니에의 소설을 이야기 하고, 동생은 내게 아비투스 개념을 설명해주고, 나는 이 둘에게 조카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렇다. 결국 내가 가장 많은 것을 이루었다.

4살과 2살. 이 둘은 서로 간식을 나눠먹는다. 이 둘은 남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