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노동에 관한 그녀의 말

M: "우리 저 녀석 나중에 계속 부려먹자."

Y: "그래 아빠. 저 녀석 불에 구워 먹자."

2017년 12월 24일 일요일

청춘은 원래 비겁하고 용감하다.

스무살이 지나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꽤 많은 문자들을 훑어보았다. 문학 또는 전공 서적들이었다. 그렇게 머리 속을 멤돌다가 소화가 되지 못한 많은 문자들을 빈 종이 위에 토해내곤 했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형태가 없는 글이었지만, 간혹 마음에 들었던 글도 있었다. 토해냈던 문자들은 몇 권의 공책들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공책들을 모아 버리던 날,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우선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은 재미있었다. "<나는 창밖의 나무를 보고있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한 학기 동안 고민한 문제였다. 그 쓸모없음이 좋았다. 무의미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내 생활에도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그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쓸모없고 불안한 질문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그 시간의 나를 스쳐지나간 질문들이었다.

"가능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윤리적인 삶은 강박이 있는 삶인가?"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은 환상일까? 환상은 나쁜가?"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사랑하지 못하는 삶보다 불행할까?"

"소통되지 않는 진리가 있을까? 있어도 무의미 할까?"

제 2 도서관 5층. 소설책이 놓여있는 서가를 지나면 덩그러니 쓸쓸해 보이는 2인용 자리가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도 그곳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를 채우기도 했다. 전해지지 않을 말을 준비하며 먼 곳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평생을 함께 할지도 모를 사람과 스치며 인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깥 세상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그저 내 안의 문짝을 간신히 더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늦었다. 걸음걸이는 느렸다. 대학생활의 시작도 늦었다. 늦어지는 시간 속에서 불안한 질문을 즐기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의 문짝들이 덜커덩 거렸다.

'이 곳을 떠나보내자. 4년의 시간을 마저 채우고 싶지 않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계획했던 시간보다 먼저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위로가 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중간에 슬며시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이 청춘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청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나는 지금 서른 네살이다.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2017년, 나에게 청춘을 선물해 준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스스로 어린이

그는 말을 빨리 배우기 시작했다.

M: "아빠한테 와. 너 혼자 못해. 아빠가 도와줄게."

J: "만지지 마. 다 내가 알아서 할거야."

28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반항이 시작되었다.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요시모토 바나나를 기억하시나요?

문득 생각났다. 잊고 지냈던 이름이다. 20대 시절 그녀의 소설책 두 권 정도를 읽었다.

아무튼 여러분 요시모토 바나나를 기억하시나요? 

2017년 11월 7일 화요일

감옥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는 얼마 전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라는 영화를 보았고, 영화 속 악당 벌쳐(Vulture)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Y: "아빠, 그 날개달린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멀리 살아?"

M: "응. 그 아저씨는 스파이더맨 한테 혼나고 지금은 감옥에 있어."

Y: "감옥에서 뭐해?"

M: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감옥에서 사는거야."

Y: "아! 그러면 그 아저씨는 감옥에서 자고, 밥 먹고, 치카치카하고, 샤워하는거야?"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똑똑함에 관한 그녀의 말

Y: "아빠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뭐든지 잘 하니깐 괜찮아. 아빠 너무 너무 좋아."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허망한 것들의 연대

Fall Leaves, New York


화려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희망이 없는, 목소리가 작은, 그런 허망한 것들의 연대는 분명 슬프겠지?

슬프겠지만 예뻤으면 좋겠다. 화가나지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아, 온기여!

-아, 온기여!-

새벽 냉장고의 문을 열자 시계의 눈금이 움직인다. 그녀의 눈금이 주변을 살피자 나의 눈금은 움츠러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즈음, 지금의 기억이 내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여지를 남겨놓는 그녀를 보았다. 생각나는 것들: 구겨진 종이의 주름살. 반달 모양으로 잘려나간 그녀의 손톱. 정신 쇠약에 걸린 책 속의 밑줄. 평생을 읽지 않으리라 다짐한 한 무더기의 책. 뒤엉켜 있는 옷가지. 이 모든 것들을 생각 없이 바라보며 서로를 살핀다. 지금 이 시간에 모두가 무사하다. 그저 한 모금의 물에 젖어버린 목구멍이 삐걱거린다. 내일 아침이 왔을 때 세상을 알아듣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그래서 한 푼이라도 속을까 무섭다. 지금껏 그저 그런 보통의 순간들조차 예상을 벗어났다.

예전에는 나와 그녀도 연애를 했다. 언어를 가져보진 못한 민족이 장벽 너머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우리는 서로를 안고 서로의 목소리를 더듬었다. 너의 언어가 들리자 나의 언어는 흔들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열기를 못 참고 증발해 버리고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고백했다. ‘떨린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너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싶다.’ 무겁지 않게 너를 끌어안고 가볍게 이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의 혀는 오후 다섯 씨의 팔 다리 마냥 늘어질 것이고, 나의 뿌리는 또 다시 단단해질 것이며, 너의 손이 앞을 향할 때, 나의 시선은 굽이쳐 너의 목덜미 뒤로 돌아나갈 것이다. 그저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이 덜컹거리다 말 것이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승리에 관한 그녀의 말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Y: "아빠. 앞에 내가 아는 애야."

M: "같은 반이야?"

Y: "옆 반인데, 놀이터에서 다 같이 놀아. 그런데 우리가 더 빨리 가자."

M: "더 빨리 가자고?"

Y: "나는 다 이기고 싶어"

2017년 9월 18일 월요일

New York City 4: Coffee Street

La Colombe, Bryant Park, New York

뉴욕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질 수록 사라져 간 풍경들이 기억난다. - 지금 바로 떠올려 보자면, 14가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 Park) 건너편의 신발가게, 뉴 스쿨(New School) 옆 일본인 아저씨의 파니니 가게,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던 가방가게 등이 생각난다. - 그리고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다시 채우고 있는, 새로이 생겨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빈 자리에 들어서는 것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커피 가게 또 생기네.'

이 좁은 섬 마을에 카페는 차고도 넘친다. 그래도 또 생긴다. 평소에는 동네 또는 학교 근처의 단골 카페만 찾기 때문에, 뉴욕의 새로운 커피나 요즘 인기가 많은 카페 등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브라이언트 공원 근처의 <La Colombe>라는 카페도 올 여름에 처음 가봤다. 그들은 신기한 커피를 선보인다. 그 이름은 Draft Latte! 맥주를 따르는 기계에서 맥주 대신 커피가 나온다. <A Little Taste>라는 곳에서는 차가운 라떼를 주문하면 칵테일 처럼 마구 흔들어서 거품과 함께 내어 주기도 한다. <Stumptown>의 형들은 매우 마른 몸매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Oren's>에는 항상 멋진 머그컵들이 있다. 커피의 맛, 커피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몸짓, 공간의 분위기,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들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우리는 지금 커피를 마신다!'

출근길 작은 카페 문 밖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늦은 아침 느긋하게 한 쪽 손에는 초콜렛 크로아상을, 다른 한 쪽에는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서는 사람들. 카페에서 정신없이 기말 페이퍼를 쓰고 있는 학생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주말 아침 아이와 함께 카페를 찾은 아빠들.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지금'이라는 시간,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든다. 사람들은 커피 한잔이 지닌 시큼하고, 씁쓸하고, 달콤한, 그 시간을 공유한다.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보는 일이 좋다. 그들의 시간을 훔쳐보는 일이 곧 나의 시간을 들춰보는 일이 된다. - 이건 달콤하고, 또 시큼하다. 그리고 사라져간 것들의 빈자리에 세련된 모습의 새로운 커피 가게가 들어서는 모습도 본다. - 이건 참 씁쓸하다.

뉴욕은 시큼하고, 씁쓸하고, 달콤하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2017년 8월 2일 수요일

올빼미는 내일도 날아올라야 한다

(1) <개별적 특수성이 보편적 인륜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곧 역사의 진보/발전이다. 개별자들이 인륜성 안에서 자신의 본 모습('이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역사 발전의 필연성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것은 곧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곧 이성적인 것이다.>

내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이 현실화를 향한 여정에 들어서면 (1)의 철학적 구조는 '가족-시민사회-국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의 의식은 결코 어떠한 대상도 즉자적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는 그 자신의 의식 조차도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삼는, 끊임없는 '인식-부정-극복'의 관계적 구조 안에서 발견해내려 하는 '이성'의 본래적 모습이며, 이러한 이성이 현실화 되어가는 여정의 목적은 차이를 폐기하지 않는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완전한 '자유'이다.

따라서 (2) <헤겔의 철학은 결코 전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사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륜성을 기반으로 하는 헤겔의 국가는 그 안에 개별적 특수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개별자들의 상호 침투적 행위는 칸트가 남겨놓은 예지계를 우리 앞의 지금/여기에서 현실화 시킨다. 그리고 이 현실화는 국가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있어서 국가는 최종적이다. 다시 말해 (1)은 (2) 안에서 현실화 된다. 이 둘은 형이상학적 위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절대적 정신은 국가 안에서 현실화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화된 절대 정신이 곧 국가다.

(1)과 (2)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C-1) (1)의 구조가 지닌 폐쇄성
(C-2) (2)의 주장이 보이는 헤겔 철학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

헤겔 철학이 지닌 지나치게 방대한 철학적 구조가 비판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그 구조 안에서 용해시켜 버린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다시 말해 이 철학이 지닌 구조적 폐쇄성이 그 자신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동반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현실화 과정은 곧 이성이 완벽한 자유를 찾아가는 이상화 과정이다. 그렇기에 헤겔이 상정한 국가는 지나치게 완벽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완벽한 것들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곧 헤겔 철학에 대한 성급한 폐기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헤겔 철학 = 전체주의>라는 단순한 도식은 오히려 이 철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헤겔은 국가가 일정한 도덕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드러낸다고 믿었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철학적 구조가 딛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두 개념, 즉 '이성'과 '자유'는 눈 앞의 장애물들을 부정하고 극복해가는 운동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운동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난 국가는 그 자신이 체현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눈먼 보편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자유를 향한 인간 이성의 여행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는 언제나 대상과의 비판, 충돌, 극복을 동반한 역사적 운동이다.

헤겔 철학이 지닌 역사성으로부터 필연성을 분리하고, 절대적 이성을 비판적 탐구에 대한 개방성으로, 국가 안의 내재적 인륜성을 개별 구성원들의 발산적 연대성으로 대체해본다면 어떨까?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은 이 철학의 폐기 또는 완성이 아닌, '지속적인 이어짐'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헤겔은 자신이 몸 담고 있었던 시대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 오를 마지막 황혼 녘이라 믿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의 결론은 이와 같다: '날아오른 올빼미는 아직 죽지 않았고, 이 세상에 올빼미는 한 마리가 아니다.'

2017년 7월 31일 월요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그녀의 놀이 목록

세차장 놀이, 주차장 놀이, 스피드 놀이 (거실과 부엌을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학교 놀이, 병원 놀이, 상어 놀이, 우주여행 놀이, 등산 놀이, 경찰차 놀이, 자동차 역할 놀이, 그림 그리기 놀이, 물에 빠진 오리 놀이, 슈퍼 놀이, 한글 놀이, 영어 놀이 (세이펜!), 하나씩 정하는 놀이 (그녀의 인간 관계망을 읊어보는 놀이; 오늘 만들었다.), 아이스크림 놀이, 이렇게 돌면 어지러워 놀이.

지금껏 그녀가 개발한 놀이들의 목록이다. 그녀는 새로운 놀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놀이 개발자. 유희하는 인간. 끝없는 상상력. 그녀는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 놀이의 프로다.

2017년 7월 29일 토요일

오리 이야기

오리는 혼자 살았다.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오리는 장난감이 없어서 텔레비젼을 들고 다녔다. 심심한 오리는 매일 텔레비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텔레비젼을 들고 다니던 오리는 더러운 물에 빠졌고, 그 더러운 물을 마시고 죽어버렸다.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칸트가 대단하긴 하지

칸트 전공자도 아닌데, 칸트 책이 제일 많더군요.

2017년 7월 4일 화요일

New York City 3: A Guide

<뉴욕에 관한 여행책자들은 많다. 그리고 뉴욕여행에 관한 블로그 자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의 여러 모습들과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Sakura Park, New York, NY

Sakura Park in Morningside Heights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 그리고 내 아이의 첫 번째 친구가 생긴 곳. 아이와 모래성을 만들고, 물놀이를 하고, 나무에 오르고, 뜀박질을 하고, 또 가끔은 걱정하는 마음에 아이를 큰 소리로 혼냈던 장소. 내 첫 째 아이는 모든 종류의 탈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 공원의 놀이터 앞을 지나가는 2층 버스를 매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Friendship of Y & E in Sakura Park, New York, NY

놀이터 바로 앞 도로 건너 편으로는 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 있다. 이 앞으로는 큰 나무가 길 양쪽으로 대략 30미터 정도 나란히 서있는데, 그 풍경이 매우 단정하면서도 활기찬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 주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 또는 늘씬한 몸매를 한 모델들의 화보촬영을 종종 볼 수 있다. 언젠가 한번은 50-60년대 배경의 드라마였는지, 놀이터 앞 도로에 생전 처음 보는 옛날 자동차들을 주차해놓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조용하던 동네가 조금은 소란스러워졌고, 길거리에서는 무전기를 든 사람들이 길을 통제하곤 했는데, 이 동네에서 1년만 살아도 이런 정도의 불편함은 쉽게 익숙해진다. 사실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뉴욕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한 첫번 째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공중화장실 찾기의 어려움, 이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Train Traffic이라는 개념, 갑자기 선로를 바꾸는 지하철 등이 있다.)

이 공원(Sakura Park) 안에는 오래되고 낡은 자그마한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두개의 그네, 거북이 모양 분수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커다란 모래상자가 전부다. 그래도 이 좁은 놀이터 안에 벤치는 충분히 있어서 부모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장소다. 여름이 다가오고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 모래상자 안의 모래들은 온전히 제자리에 있기가 어렵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모래를 다른 곳으로 퍼나르기 시작하면, 언제나 한명 두명 동참하는 녀석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고 아이들의 발길이 뜸해질 때 즈음, 공원관리자는 황금빛 모래로 작은 언덕을 옆에 만들고서는 때마침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바구니를 선물하고 아이들과 함께 내년 여름에 가지고 놀 모래를 상자에 채워넣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볼 수 있는 봄도 좋지만, 이 공원은 가을이 되어야 자신의 매력을 자세히 보여주곤 했다. 낙옆들이 깔린 풀밭에 누워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조용한 시간을 선사한다. 낙옆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풀밭 한쪽에 허리가 조금 굽어있는 나무를 볼 수 있다. 가을이 되어 색이 바랜 잎들을 붙들고 있는 나무의 주름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면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굽어진 허리가 아이들에게는 의자가 되어준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아이들은 이 나무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서로 깔깔거리며 30분은 족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동네에서 처음 사귀게 된 가족 -내 아이의 첫번 째 친구 가족- 이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마지막 시간을 이 공원에서 함께 하며, 우리 모두가 이 곳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이터의 모래상자, 풀밭, 등이 굽은 나무, 덩그러니 서 있는 이름 모를 사람의 동상, 한가로운 벤치들. 어떤 대상을 우리가 추억하고 또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그에 대한 우리의 선명했던 기억이 점점 흐려질 때에, 그래서 그 틈마다 지금껏 지나쳐온 시간들에 대한 또 다른 기억들이 스며들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아이는 그녀가 세상에서 만난 첫 친구를 평생 기억할 수 있을까? 비록 내 아이의 기억 속에서 그 친구의 모습이 잊힌다해도, 내가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 만들게 될 이야기 속에 그 친구의 손에서 느꼈던 온기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철학을 하면 말이야...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듣는 몇 가지 말이 있다.

"멋지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면 꼭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관상이나 사주를 볼 줄 알아요?"

"철학보다는 종교가 더 깊이가 있다. 성경에 모든 진리가 있다."
"(아주 가끔) 철학은 나쁜거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강신주님 책 읽어 봤어요? 나중에 강연하면 돈 많이 벌겠다."

"지대넓얕 들어봤어요?"

"내가 요즘 듣는 철학 강의가 있는데......이런 저런......그래서 저래서......이거 맞아요?"

"나중에 뭘 할 수 있어요?"

"앞에서 말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

"철학자들은 책을 왜 그렇게 어렵게만 쓰는거야! 그게 무슨 철학이야. 인생이란 말이야......"

실제로 다 들은 말이다. 또 뭐가 있었나?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성공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는 엄마와 함께 누운 채로 자전거 놀이를 하며 외쳤다.

Y: "윤아가 1등 할거야. 윤아가 1등 할거야!"

S: "......"

Y: "윤아가 성공할거야!"

그리고 그녀는 잠들었다.


2017년 6월 9일 금요일

세상에 관한 그녀의 말

Y: "지호야. 세상은 원래 그래."

J: "......."

Y: "어른들만 전화기 가지고 노는거야."

J: "......"

Y: "어른들이 돈을 벌어서 그런거야. 어릴 때는 그냥 먹고 자고 하는거야. 그러면서 크는거야."

J: "......"

2017년 6월 4일 일요일

그 사람이 보였다

1.
지금껏 나는 그 삶이 저질렀다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2.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어떤 이의 얼굴을 꿈에서 볼 때가 있다. 그것이 추억인지, 미련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걱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연히 평소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당연히 지금 연락을 할 수 없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도 없고, 너무 멀기도 하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있는 삶을 살고있지 않다. 그래도 궁금하다.

친분을 이어오지 않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득 갑자기 보고싶어지는 이들이 있다. 가끔은 뜬금없이, 그렇게 멀어진 이들에게 연락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나의 연락이 별로 반갑지 않을테지만, 그래서 대답을 듣지 못할 때도 많지만, 나는 가끔 그들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의 그 사람에게는 연락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항상 너무 착했다.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그런 말투와 태도와 몸짓과 눈빛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이 모든 '알 수 없음'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듣던 음악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고,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본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걱정이 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3.
내가 나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시계를 보는 일과 같다.
나를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는
지금 내가 의심스럽다.

무엇을 사치라고 여겨야 하는지
요즘 나는 내게 물을 수 없다.
세상 모든 것들이 들끓어서
나는 겁이 난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대화의 가치(The Value of Conversation)

이론(theory)과 실천(practice)의 관계는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다. 양자 간의 관계에서 어느 곳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철학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큰 틀에서 보자면 이에 대한 철학자들의 모든 논의는 이론적인 작업이다. 기존 개념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 새로운 개념의 창조, 개념들의 실천적 사용과 적용에 관한 논의.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모든 이론적 작업은 언제나 실천적 모습으로 드러난다. 글과 말을 통해, 비판과 논쟁을 통해,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고, 다듬어지고, 발전하고, 반증되고, 사라진다. 그렇기에 모든 철학의 태동은 언제나 삶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정도의 차가 있으나) 모든 철학적 논의는 대화를 통해 시작되었다.

앞서 <편견의 가치>라는 글에서 언급했던 아렌트의 지적을 상기해보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설립은 곧 서구철학이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영역 - 아렌트는 그녀의 철학에서 이를 크게 철학과 정치 영역의 분리됨으로 보고 있다. - 을 서로 다른 층위에서 다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Today we know that Plato and Aristotle were the culmination rather than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which had begun its flight when Greece had reached or nearly reached its climax. What remains true, however, is that Plato as well as Aristotle became the beginning of the occidental philosophic tradition, and that this beginning, as distinguished from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occurred when Greek political life was indeed approaching its end…Even more serious was the abyss which immediately opened between thought and action, and which never since has been closed. All thinking activity that is not simply the calculation of means to obtain an intended or willed end, but is concerned with meaning in the most general sense, came to play the role of an “afterthought,” that is, after action had decided and determined reality. Action, on the other hand, was relegated to the meaningless realm of the accidental and haphazard. (Hannah Arendt, The Promise of Politics. pp.5-6)

소크라테스의 고백 -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 은 어느 누구도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고백은 그 자신이 철학자로서, 그리고 정치 공동체(polis)의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자의 역할은 폴리스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이 아닌, 시민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시민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일,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철학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기꺼이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죽었다. 안타깝다.) 그러나 폴리스로 부터 유리된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들은 더 이상 지식(episteme)의 정당성을 실천(praxis)의 영역에서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식은 이성을 통한 관조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주체(나)의 사유만을 통해 지식의 절대적 토대를 찾고, 객체(대상)를 주체의 보편적 개념틀 안에서 표상하였다. 주체는 인식대상을 자신의 이성 안으로 포섭하려는 시도 속에서 지식의 보편적 정당성을 얻으려하고, 그 지식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다시 말해, 주체는 객체와의 대립적 관계(confrontation) 속 에서 지식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였다. 결국 인식론적 특권은 '객체와 대립하고 있는 주체'에게 귀속되었다. 아렌트는 주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시작이 아닌, 끝으로 향하는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서양철학의 시작이었다." 대화를 잊은 '객체와 대립하는 주체'의 시작.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 간 철학자는 바로 로티(Richard Rorty)다.

로티가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 비판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분석(analytic)-종합(synthetic), 마음(ideas)-대상(objects), 주체(the knowing)-객체(the known), 그리고 이론(theory)-실천(practice). 로티는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을 전복하려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대립(confrontation)을 참여자들 간의 대화(conversation)로, 지식의 객관성(objectivity)를 공동체의 연대성(solidarity)으로 교체함으로써:

I shall be arguing that their [Sellars and Quine's] holism is a product of their commitment to the thesis that justification is not a matter of a special relation between ideas (or words) and objects, but of conversation, of social practice…Once conversation replaces confrontation, the notion of the mind as Mirror of Nature can be discarded. (Richard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170.)

로티가 그 자신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영미분석철학계의 총아가 배신자가 되다니!"

로티는 기존의 체계적 철학, 즉 대문자 P로 시작하는 철학(Philosophy with a capital P)을 거부한다. 철학은 더 이상 거대 형이상학적 담론의 생산지가 아니다. 때문에 그는 기존의 철학자들에게 진리 추구자로서의 철학자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비평가("a kibitzer or a therapist or an intellectual historian" in Consequences of Pragmatism)가 되기를 요구한다.

This does not mean that they (pragmatists) have a new, non-Platonic set of answers to Platonic questions to offer, but rather that they do not think we should ask those questions anymore…They would simply like to change the subject…Pragmatists are saying that the best hope for philosophy is not to practice Philosophy. (Ibid. xiv-xv. emphasis mine.)

그는 기존 철학의 '인식론적 작업과 이론적 개념'이 '사회적 합의와 실천'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철학의 기획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교차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티는 기존의 실용주의적 관점, 즉 이론과 실천 영역을 이으려는 노력을 굉징히 급진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기존 철학들의 이론적 작업, 더 나아가 이론영역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로티는 우리의 그 어떤 문제들도 사회적 실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객관성(epistemic objectivity)이 아닌, 사회적 연대성(social solidarity)이 된다.

로티의 실용주의가 지닌 이러한 급진성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기존의 이론영역과 인식론적 개념들에 대한 그의 성급한 폐기 주장은, 오히려 기존 철학들에 대한 실용주의의 가장 큰 비판, 즉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묻는다. '모든 사건과 사태가 사회적 사안으로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로티 그 자신이 주장한 대로 새로운 철학적 작업이 다양한 목소리를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라면, 기존 철학의 목소리가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 그의 글 "One Step Forward, Two Steps Backward"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t is time that Rorty himself should appropriate the lesson of Peirce, “Do not block the road to inquiry,” and realize that rarified metaphilosophical or metatheoretical discussion can never be a substitute for struggling to articulate, defend, and justify one’s vision of a just and good society. (Richard Bernstein, The New Constellation. p.253.)

분명 로티의 철학은 급진적이다. 그래서 그의 요구는 성가시다. 그러나 실천과 행위의 영역, 즉 공동체 속 참여자들의 대화를 다시금 철학의 장 안으로 이끌려 한 그의 주장은 또한 분명 유의미하다. 대화가 지닌 개방성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품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들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시작점을 얻는다. 따라서 대화는 이론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대화는 이론의 과정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론적 작업이 곧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모든 탐구는 편견으로 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 얻어진 지식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지식은 틀릴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는 실용주의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기에 로티의 철학은 실용주의의 정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2017년 5월 16일 화요일

카-ㄹ-스(Cars)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가 만화영화 카(Cars)를 보고 있었다. 그도 함께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Y: "지호야 카-ㄹ-스는 너한테 아직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건 나한테 중요한거야."

J: "......"

Y: "내가 차를 좋아하잖아! 넌 저리가"

J: "......."

그래도 그는 옆에 앉아 있었다.

오류의 가치(The Value of Error)

퍼스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 실제로 그는 제임스의 실용주의가 자기 철학에 대한 왜곡과 오해라고 생각하였다. -, 실용주의는 이후의 철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며 발전했다. 이처럼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면서도 그들이 '실용주의자'로 묶일 수 있는, 그들이 함께 자라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이었을까? 퍼스가 철학적 탐구의 배경지식으로서 편견을 재해석하고, 절대적 진리의 발견이 아닌 상호 대립적인 의견들의 지속적인 재조정을 철학적 탐구의 목표로 삼았을 때, 철학은 '나'의 고립으로 부터 '우리'의 개방으로 이행하였으며, 이는 곧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개념/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편견/의견(prejudices/opinion),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quiry),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 이론과 실천의 관계(theory and practice). 그리고 실용주의가 이러한 주제들로 부터 다양한 조류를 형성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던 토양은 이 철학이 지닌 개방성(openness)에서 찾을 수 있다.

실용주의의 '개방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허울 좋은 포장지가 아니다.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하는 것은 실용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실천적 의무이자, 동시에 인식론적 의무이다. 이는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용인하고 (퍼스는 이게 너무 괴로워서 pragmaticism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나 보다.), 공통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기꺼이 대화의 상대가 되고자 하는 자세이다. 더불어 이러한 실용주의의 개방성은 하나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에 의해 도전 받고, 비판 받고, 더 나아가 거부될 수 있다는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의 근거가 된다.

개방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오류가능주의는 회의주의(skepticism)와 분명히 구분된다. 현대과학에 익숙한 오늘날의 회의론자들은 데카르트의 악신이라는 유령학적 개념보다는 통속의 뇌(Brain-in-a-Vat)라는 사고실험을 선호한다. 이들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적 믿음들에 -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창 밖의 나무를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신체가 있다.' - 의문부호를 붙인다. 극단적 형태의 회의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 될 수 있다.

(S-1) There is nothing we can call knowledge, because we can never be justified in believing.

이러한 형태의 회의주의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논박적이다. 만일 (S-1)이 참이라면, 이는 회의주의 논증 그 자체의 정당화 가능성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회의론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논증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그 논증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제한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오류가능주의를 수용하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실용주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반회의주의(anti-skepticism)의 출발점이 된다.

오류가능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우리의 지식은 절대적 확실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식은 언제나 새로운 반증과 비판, 더 나아가 폐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지식의 정당화 과정은 언제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류가능주의와 회의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이론적 구조 안에 개방성을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에 놓여있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우리도 믿음(belief) 차원에서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류 가능성을 담보한 정당화된 지식(knowledge)은 불가능하다.' 즉, 그들은 지식의 정당화 과정에 있어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한다.

(S-2)
(1) In order to know that P, P must be justified to degree N.
(2) P is not justified to degree N.
Therefore,
(3) We do not know that P. 

회의주의의 약화된 논증 (S-2)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to degree N)'라는 표현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인가?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해야 한다.

'P를 알기 위한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P를 알 수 없다.'

만일 이들이 오류가능주의의 지식개념, 즉 잠정적으로 정당화된 믿음(provisionally justified belief)에 만족한다면, 오류가능주의를 못 받아 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오류가능주의와 선을 그을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적어도 N 정도의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 지식은 불안하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은 이 불안을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P를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이는 회의주의가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의 데카르트적 불안(Cartesian anxiety) 개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Either there is some support for our being, a fixed foundation for our knowledge, or we cannot escape the forces of darkness that envelop us with madness, with intellectual and moral chaos. (Bernstein, Richard, Beyond Objectivism and Relativism p.18.)  

그리고 이러한 회의주의의 데카르트적 불안은 그들이 지닌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연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실용주의는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한다. 개별주체는 더 이상 지식/진리에 대한 마지막 심판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정한 편견을 배경지식으로 삼아 탐구과정에 참여한다. 탐구과정을 통해 확립된 우리의 지식은 잠정적이다. 현재의 지식은 언제든지 다음 탐구과정의 배경지식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확실성 보다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Despite Peirce's insistence on fallibilism, he is far from being an epistemological pessimist or sceptic: indeed, he is quite the opposite. He tends to hold that every genuine question (that is, every question whose possible answers have empirical content) can be answered in principle, or at least should not be assumed to be unanswerable. For this reason, one his most important dicta, which he called his first principle of reason, is “Do not block the way of inquiry!” (Robert Burch, "Charles Sanders Peirce",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10 Edition)

지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개방적 탐구과정 안에서 활력을 얻는다.그렇기에 오류는 결코 부정적 개념으로서만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돌과 갈등의 시작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탐구와 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2017년 5월 14일 일요일

착한 아이에 관한 그녀의 말

Y: "야. 너만 착한게 아니야. 짜식아."

그녀는 동생이 받는 칭찬이 못마땅하다.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편견의 가치(The Value of Prejudices)

실용주의(Pragmatism; or pragmaticism for Peirce)는 그 이전까지의 인식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편견(prejudice; prejudgment)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이 정치 공동체(polis)의 외부에 아카데미아(Academy)를 세움으로써, 철학은 일상으로부터 독립되었다. 아카데미아의 설립은 철학에게 자유로운 - 물리적/이론적인 의미 모두에서 - 공간을 내주었지만, 사유(thought; philosophy)와 행위(action; politics)의 분리는 철학으로 하여금 말그대로 순수한 학문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었다. 더불어,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성에 기반을 둔 참된 지식(episteme)은 경험 일반으로 부터 얻는 의견(또는 억견; doxa)과 다른 층위에 놓이게 되었다. [1]



[1]아렌트(H. Arendt)는 이를 서양의 정치철학이 지금껏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 개념을 상실한 채, -정치적(anti-political)인 모습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고립된 지식의 탐구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아렌트의 자유(freedom) 개념은 단순히 필요로 부터의 자유에 그치지 않는다. 필요로 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인 공적 담론에의 참여로 이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억견의 교환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사유와 행위의 접점으로서의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는 정치 공동체의 다원성과 개방성을 확장시키며시민으로서의 정치 참여를 유도한다아렌트의 이러한 논의는 퍼스로 부터 시작되어 제임스, 듀이, 로티, 번스타인, 후기 퍼트넘, 더 나아가 하버마스에 이르는, 실용주의의 서로 다른 조류가 각각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도 공유해 나가는 일련의 개념들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번스타인이 말하듯, 아렌트의 철학과 실용주의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또한, 아렌트가 정치/행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인식/사유 (정확하게는 "판단")의 문제로 넘어가는 반면, 실용주의는 인식/사유의 문제로부터 정치/행위의 문제로 확장해나가는 방향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에 대한 양자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이 후의 발전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의 유사성으로 이어진다.  


편견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배제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코기토(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명제로 부터 시작한다. 방법적 회의(methodic skepticism)를 통해 명석판명한 인식론적 토대를 세우는 작업은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기존 철학과의 비판적 대결이었으며, 동시에 철학의 재구성이었다. 수학의 명제 까지도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의심한 데카르트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한계선, 즉 '생각하는 주체'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회의한다. 근대학문의 모든 영역, 더 나아가 서구 근대성의 시작을 알린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철학적 문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한 그의 철학이 절대적 확신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철학적 작업이 완성된 지점은 퍼스(C. S. Peirce)에게 있어서 데카르트 이후로 이어져온 기존 철학들에 대한 비판의 시작점이 되었고, 동시에 실용주의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판은 편견에 대한 재해석으로 부터 시작한다.

We cannot begin with complete doubt. We must begin with all the prejudices which we actually have when we enter upon the study philosophy. These prejudices are not to be dispelled by a maxim, for they are things which it does not occur to us can be questioned. (...) A person may, it is true, in the course of his studies, find reason to doubt what he began by believing; but in that case he doubts because he has a positive reason for it, and not on account of the Cartesian maxim. Let us not pretend to doubt in philosophy what we do not doubt in our hearts. (Ibid., pp.28-29, emphasis mine.)

퍼스는 편견을 철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한다. 우리의 철학적 탐구는 편견을 그 배경지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기존의 의견, 즉 편견을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인식론적 토대를 위한 의심이 아니다.


The irritation of doubt causes a struggle to attain a state of belief. I shall term this struggle inquiry...The irritation of doubt is the only immediate motive for the struggle of attain belief...With the doubt, therefore, the struggle begins, and with the cessation of doubt it ends. Hence, the sole object of inquiry is the settlement of opinion. (Ibid., pp.114-115, emphasis mine.)

의심으로 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 곧 탐구(inquiry)이며, 탐구의 목적은 언제나 의견의 '잠정적' 해결이다하나의 의견(opinion; doxa)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의견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은 의심으로 부터 믿음으로, 다시 믿음으로 부터 의심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탐구과정은 결코 인식론적 주체로서의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그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다시 말해 우리에 의해 구성된다.

We individually cannot reasonably hope to attain the ultimate philosophy which we pursue; we can only seek it, therefore, for the community of philosophers. (Ibid., p.29)

이렇듯 편견에 대한 퍼스의 재해석은 데카르트주의의 주요한 측면 - 주관주의, 직관주의, 토대주의 -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더불어, 편견을 철학적 탐구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는 인식론의 범위를 개인으로부터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인식의 주체는 더 이상 ''가 아닌 '우리'가 되며, 철학은 더 이상 고립된 영역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이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2017년 5월 9일 화요일

데카르트가 아니야. 지금 우리가 불안한거야! (Cartesian Anxiety)

대중적으로 익숙한 (가끔은 오해하고 있는) 철학 문구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들이 창조적으로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문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식의 확고한 토대(foundation)를 마련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의 이 철학적 명제는 근대 서구에서 시작되어 오늘 날 거의 모든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으로 수용되고 작동한다. 주체-객체, 신체-마음, 내부-외부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주체로 하여금 외부를 표상하게 만듦으로써 객관적 지식의 확장을 도모한다. 따라서 지식의 객관성을 담보해야하는 "나"는 생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 곧 존재로 이행한다. 아니다. "생각하는 "이 이미 존재를 내포한다. "나"는 "생각하는 것"으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유의미해진다. 데카르트가 서구의 근대를 이 의심할 수 없는 토대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철학자들의 역할은 더욱 더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완전한 토대를 마련하려는 그들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시도가 계속됨에 따라 오히려 우리는 불안해진다.

"지금 우리를 받치고 있는 토대가 과연 안전한 걸까?"
"고정된 토대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의 데카르트적 불안(Cartesian anxiety)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이러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개념은 데카르트의 토대 메타포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번스타인이 주목한 것은 그 이면에 있는 - 그래서 철학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 영혼의 여행에 관한 비유이다: 선한 신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 이 믿음이 지켜지지 못하면 암흑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리라는 불안!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강박! 번스타인은 우리의 이러한 믿음으로 부터 유래한 불안과 강박이 단지 인식론적 차원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매우 존재론적이라고 주장한다.

It would be a mistake to think that the Cartesian Anxiety is primarily a religious, metaphysical, epistemological, or moral anxiety. These are only several of the many forms it may assume. In Heideggerian language, it is "ontological" rather than "ontic," for it seems to lie at the very center of our being in the world. (Bernsetin R., Beyond Objectivism and Relativism. p.19, emphasis mine.)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우리의 존재 방식은 "생각하는 나"에게 불안과 함께 고립을 선물한다. 고립되어 불안한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나는 소멸해 간다. 소멸해 가는 나는 대립과 배제, 더 나아가 폭력으로써 나의 자취를 다른 것들에게 새긴다. 이건 아마도 논리적 비약이다. 그러나 다시 상기해보자. 확고한, 불변하는, 의심할 수 없는 토대에 대한 우리의 염원이 낳은 대립을. 번스타인은 이를 객관주의와 상대주의가 대립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객관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체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모든 가치를 상실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상대주의는 우리가 지금껏 성취한 모든 사실과 가치를 외면하는 냉소를 우리의 존재방식에 투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자택일식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가다머의 해석학적 접근, 하버마스의 실천적 담론의 장, 로티의 실용주의적 비판, 아렌트의 판단력 개념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번스타인이 도착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Such a vision [cultivating the types of dialogical communities]is not antithetical to an appreciation of the depth and pervasiveness of conflict - of the agon - which characterizes our theoretical and practical lives. On the contrary, this vision is a response to the irreducibility of conflict grounded in human plurality. But plurality does not mean that we are limited to being separate individuals with irreducible subjective interests. Rather it means that we seek to discover some common ground to reconcile differences through debate, conversation, and dialogue. (Ibid. p.223, emphasis mine.) 

앞서 번스타인은 자신의 데카르트적 불안이라는 개념이 존재론적(ontological)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곧 또 다른 형태의 고정된 토대로서 우리의 존재방식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껏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존재방식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의 불안한 선택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방식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데카르트적 불안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이기에, 오히려 우리 존재방식의 다양한 양상을 가능케 한다. 충돌과 다원성은 우리의 존재방식을 열린 장(the open sphere)으로 불러들이며, 고립이 해소된 불안은 오히려 (로티의 말을 빌리자면)창조적 언어로 이어질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새로운 가능성은 "나"의 불안이 "우리"의 대화 속에서 해소될 때 비로소 그 싹을 틔울 수 있다.

짧은 글의 끝자락에서 멈춰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건 어쩌면 너희(the Western)만의 불안이었던건 아닌가? 아니면 너희 때문에 우리까지 불안해진 건가? 아무튼 내가 딛고 서 있는 많은 것들이 불안하긴 하다. 이곳에서나 그곳에서나.

2017년 5월 8일 월요일

가능성에 관한 그녀의 말

Y: "야. 너도 나중에 나 처럼 이렇게 할 수 있겠냐?"

J: "......"

그는 아직 말을 잘 못한다.

2017년 5월 5일 금요일

나무가 되어 떠나 간 녀석.

1. 대학에 들어가 처음 집어든 철학은 쇼펜하우어. 서른여덟 가지 방법으로 논쟁을 이끌고 싶었다. 이걸 익히고 나면 주눅 않고 시간을 넘겨보자는 생각이었지만, 논쟁이 될 수 없는 것은 이길 수 없었다. 당시 한번도 누군가의 숨결을 구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나를 벗어난 것들에게 매해 합의서를 썼다. 어찌 보면 젊음은 심리(審理)였고, 추궁의 곁가지와 같은 모습이었고, 꿈은 오히려 내가 무의식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온갖 거짓들이 매번 또렷한 모습으로 자신들은 거짓이 아니라 할 때에, 차라리 그 꿈이 딱딱하기를 바랐다.

2. 10년이 더 지났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디며 살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이 너무 무거웠다. 2006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우리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새벽 시간을 지우고 있었다.

"형, 그거 알아요.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나는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

"너무 힘들면 누구든 탓해. 먼저 네가 편해져야지."

누구도 탓하지 않았던 녀석은 대신 자신의 젊음을 탓하며 며칠 후 나무가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절을, 새벽의 시간을 나와 함께 지우듯 지워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녀석이 보고 싶다. 더 이상 젊음의 무게를 탓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어찌 되었든 나는 견뎌내며 살고 있다.

3. 나는 이제껏 삶에 적당히 온순했다. 그러나 진심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 5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고, 내가 모르고 지냈던 각자의 삶을 들려주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저녁을 사주었다. '녀석도 함께 였더라면......'라는 생각이 그날의 새벽을 지워냈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엄동설한

-엄동설한-

보기 좋게 널브러진 몇 권의 책들과 책상 위에 엎어진 그의 시간들
자신의 남편이 꽃을 피우지 못 할 마른 나무라는 것을 그 여인은 안다
아침마다 남편을 깨우는 그녀의 눈에선 투명한 꽃이 핀다
그가 부리는 시기와 발작이 꽃의 거름이 된다

캄캄한 새벽 바람 중에 부유하는 몇 톨의 글자가
그의 손끝 마디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는다
남편은 눈 감은 채로 지난 반성문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고 
오래된 것들을 태워 땅 속에 묻으면 몇 뼘의 무덤이 생겼다
그렇게 그는 간신히 아내의 이불 속에 온기를 채워넣었다

다음 날 아침 마른 몸을 물에 적시는 남편을 생각하며 쌀을 올렸다
남편이 부탁한 일은 터져버린 티셔츠 한 장의 바느질이 전부였으나
뜨거운 밥 한끼를 내고 싶었다
그녀의 사랑은 삐뚤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새로 든 집에 올 때부터 기울어져있던 나무바닥은
남편의 가슴팍 마냥 바짝 말라 올 겨울 땔감으로나 써야 할듯하다
오늘 아침 그녀의 눈두덩이에는 투명한 눈이 쌓였다

2017년 4월 26일 수요일

Gadamer's understanding of openness.

이번 학기 번스타인(Richard J. Bernstein) 교수의 배려로 그의 <Gadamer's Truth and Method> 세미나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 책의 중반이 훨씬 지나서야 가다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논의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수업에서는 경험(Erfahrung) - 또 다른 경험(Erlebnis)과 대조적 의미에서- 의 개념과 해석학적 경험(hermeneutic experience)에 관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H. Gadamer, Truth and Method (Bloomsbury 2013)

"If we thus regard experience in terms of its result, we have ignored the fact that experience is a process. In fact, this process is essentially negative." (p.361)
                                                                        
"In fact, as we saw, experience is initially always experience of negation: something is not what we supposed it to be." (p.363)

"Real experience is that whereby man become aware of his finiteness." (p.365)

이와 더불어 대화와 개방성에 관한 가다머의 설명은 단순히 철학적 논증이라기 보다는 삶에 대한 통찰을 드러낸다:

"Openness to the other, then, involves recognizing that I myself must accept some things that are against me, even though no one else forces me to do so." (p.369)

번스타인 교수가 말한다.

"Think about it. How many times have we really had a conversation with others? Of course we talk to each other everyday, but usually to impress others, not to accept others."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다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 개념에 대해 논의한 부분을 떠올려 본다. 

대화는 지식(Phronesis)이다!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앵두라는 고양이

-앵두라는 고양이-

고양이의 약점은 목덜미
야옹 야옹 야옹 내 목덜미를 놓아줘

늘어진 너의 하얀 배를 만지면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야옹 야옹 야옹 대신 내 턱을 긁어줘

오래 오래 같이 있으려면 밥 좀 그만 먹어야 해
야옹 야옹 야옹 물 말고 닭고기 도시락을 뜯어줘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New York City 2: Coffee Street

뉴욕의 모습은 다채롭다. 어둡기도, 밝기도 하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기적인 욕망이 고급스런 양복으로 덮이고, 지적 허영심이 진보의 옷을 입고, 자기 만족이 예술이 되기도 하는 이 곳은 뉴욕이다. 여러가지 상반된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서로 다른 빛깔들이 어울린다. 때로는 큰 충돌이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어떤 이들은 저항에 참여하고, 어떤 이들은 이를 조롱하며, 또한 어떤 이들은 이 모두를 관찰하고 설명하려 애쓴다.

이 혼돈(?) 속에서도 서로 다른 많은 이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커피다. 뉴욕에 오긴 전에도 가끔은 커피를 마셨지만, 주로 대화를 위해 지불한 자리값에 딸려나오는 일종의 사은품 정도의 역할이었다. 뉴욕에 온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흥미를 자극한 대상은 커피가 아니다. 난 뉴욕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커피가 나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think coffee, NYU, New York

처음으로 나에게서 감탄을 이끌어 낸 커피는 think coffee라는 가게에서 팔리고 있다. NYU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렀다. 공교롭게도 내 앞에 있던 두명 모두 라떼를 시켜서 나도 덩달아 차가운 라떼를 마셨다. 그리고 난 속으로 외쳤다. 

'커피가 이렇게 맛있다니!'   

개인적으로 뉴욕 최고의 커피로 뽑지는 않지만,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와 가까이 있기에 무난히 Top 5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가게 밖 건너 편의 벤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이 언제나 그립다.


Joe Coffee, Union Square, New York

Joe Coffee는 때에 따라, 그리고 가게에 따라서 너무 큰 편차를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뉴욕에 와서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난 물어본다.

"90점 짜리 커피를 마실래요? 아니면 70점에서 120점 사이를 헤매는 커피를 마실래요?"

누군가 나에게 뉴욕 최고의 커피를 소개시켜달라고 한다면 난 Joe를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뉴욕에서 지금껏 마신 최고의 커피 한 잔을 꼽아달라고 한다면 2012년 여름에 New School (13th St.) 근처에서 마신 Joe의 아이스 라떼를 말한다. 커피의 쓴맛과 신맛이 우유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입안에 청량감을 남겼을 때 난 이곳의 단골이 되었다. 비록 그 때는 현금만 받던 악덕상인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맛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게 단점이다. 때로는 감탄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집에 가서 네스프레소를 내려먹어야 겠다는 후회를 남긴다. 그래도 펀치 카드를 채우는 재미가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Coffee Street 연재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돈을 좀 벌어야 한다.

연재를 기대하며......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괴롭힘에 관한 그녀의 말

M: "동생 좀 괴롭히지 마. 아기 울 잖아."

그녀가 답했다.

Y: "왜 그래~이게 내가 하는 일인데."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New York City 1: Fly Away

Fly Away, Forest Hills, New York
 뉴욕은 공기가 좋다. 정말이다. 물론 이 곳은 사람이 많아서 복잡하고, 도로는 항상 교통체증으로 답답하고, 길거리는 더럽고, 지하철은 Train Traffic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뉴욕의 공기는 좋다. 특히 맨하탄의 어퍼 웨스트(Upper West) 지역에 남과 북으로 길게 뻗어있 리버사이드 공원(Riverside Park)의 의자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도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내 덕분에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라는 동네에서 3년 정도를 살았다. 이 동네에 살 때 거의 매일 아이들과 리버사이드 공원에 놀러갔다. 천천히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음악 공연을 보기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 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올려다 본 하늘은 기분좋은 하늘색(그야말로 하늘색!)을 입고 있었다.

오늘 새로운 동네에서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 저거봐. 비행기야. 한국가는 비행긴가봐!"

 비행기가 날아오르며 만든 하얀 두 줄에 기분이 좋다.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열 손가락 사이에

-열 손가락 사이에-

당신, 다섯 손가락 사이에는
이어붙인 낮과 밤을
또 다른 다섯 손가락 사이에는
내 이불의 저 안쪽을 잘라 달아 드릴게요

그러면, 더 이상 이불이 아닌
그 천 조각으로 당신의 얼굴을 닦아 주세요
낮과 밤으로 당신 눈을 비벼 주세요
그리고 새벽에는 밑으로 들어오세요

다름에 관한 그녀의 말

M: "쟤는 계속 땅을 보고 걸어다니네."

Y: "원래 사람들은 조금씩 다 다른거니깐. 아기는 저렇게 걷기도 하는거지. 아빤 그것도 몰라."

2017년 2월 25일 토요일

고해성사

부끄러웠던 지난 날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리고 구차하게도 변명을 하고자 한다. 그래도 먼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이었던 1996년도 였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상도동 성당의 복사단 후배들의 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매우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행동이었다. 몇 번이고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더욱 미안하게도 나의 폭력에 상처 입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더 부끄럽다. 그 당시에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 너무 늦었지만 나는 이 곳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지금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마다 어린이 미사를 열심히 다녔던 적이 있다. 성당을 다니기 싫어했던, 그리고 다니기 싫은 이유가 분명했던 두살 터울의 형과 차별화된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당시 형이 내세운 "종교의 자유"라는 논리는 꽤나 논리적이고 탁월한 의견이었다.) 나는 4학년이 됨에 따라 신부님 옆에서 미사 집전을 돕는 복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 또한 형과 차별화되고자 했던 마음이 약 70% 정도는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머지 30%는 아마도 그 작은 그룹에서라도 눈에 띄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고해성사는 이로부터 3년 후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다.

3년 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상도중학교라는 곳이다. 상도중. 정글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피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는 학생들 사이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정글 속에 던져진 짐승녀석들은 서열을 정하기 바빴고, 선생들은 그런 짐승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보다 더한 짐승이 되어 희생양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선생들의 희생양은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웠던 학생들 보다는 오히려 그 어디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리고 그 자신들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조용한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선생들은 오히려 일진들을 잘 이용했다. 아침 조회 시간 운동장에서 1학년들을 줄세웠던 것은 체육 선생들의 명을 받은 2학년 일진들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 1996-1997년에 일어났던 이야기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선생들이 아무리 미쳤어도 강남 8학군 지역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곳 상도중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사당고개와 봉천고개를 넘어오는 아이들이었기에 선생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서로에게 가차없이 짐승 짓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교과서 보다는 창문 밖을 보는 시간이 많았지만, 공부를 어느 정도라도 해야 선생들과 아이들의 짐승 놀이에서 간신히 깍두기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조금 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는 그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학력과 직업을 가진 학부모였기에 어느 정도는 그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셈 이었다. 그래도 정글은 정글이고, 짐승은 짐승이다. 나도 여러 차례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정글의 법칙을 성당 복사 모임에 옮긴 적이 있다.

긴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고해성사는 시작된다.

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성당 복사 모임에 옮긴 적이 있다.
.
.
.
아니다. 조금만 더 변명을 해야겠다. 성당을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복사를 선다."라는 것은 일종의 지위이자 특권이다. 첫 영성체를 마치고 성찬의 전례 후에 줄을 서는 것이 연공서열에 의한 보상이라면, 첫 영성체 교육 기간 중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복사라는 지위는 특권이었다. 복사복을 갈아 입기 위해 들어가는 곳은 그들만의 비밀 스러운 공간이며, 수녀님들과 신부님들과의 가까운 거리는 그들의 특권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그들은 안다. 그들이 누리는 것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의 특권집단은 그 안에서 자기들만의 위계와 규율을 만든다. 그렇다. 신부님 옆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그 아이들은 통제된 정글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통제된 정글을 벗어났지만 곧 바로 통제되지 않는 정글 속에 던져졌다. 스포츠 머리를 하고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 던 나는 몇 번 통제된 정글을 찾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복사를 섰던 친구가 복사단 단장을 하고 있었고, 내가 보기에 복사단은 예전의 위계와 규율을 잃어가고 있었다. 진짜 정글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처 입은 짐승의 눈에 비친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도 불량했고, 나는 진짜 정글을 잠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정글의 언어와 얼차려를 소개하였다. 간단한 맛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도남중과 상도동 성당의 지리적 차이는 꽤 컸고, 그에 상응한 문화적 차이도 꽤 컸다. 적어도 성당은 사당고개와 봉천고개로 둘러쌓여있지 않았다. 이 맛보기가 그들에게는 폭력이었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 후배의 아버지가 성당에서 나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 말하였다.

"너 이 새끼. 내 자식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 알아서 해라. 가만히 안 둔다." (순화했다!)

협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저씨의 말이 무서웠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는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당시 나에게는 고작 맛보기였는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겁이 났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당시 나에게서 상처를 받았던 그 어느 누구도 이 글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지난 간 일에 대한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고 이 일이 부끄러울 듯 싶다. 이 곳에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얘들아."  

2017년 1월 25일 수요일

당신

-당신-

당신과 주고받았던 속삭임이
하나의 선이라면
출렁이는 선들로 가득한 세상 속
아주 사소한 인사말처럼
한 칸의 비좁은 방 속에서 주고받았던 그것이
그저 평행의 선이 될 수도 있었다면
보통의 일상에 내버려진
극히 평범한 일이라면
가령 어제까지의 일을
먼지 쌓인 책상 위 달력 속에서 마주하는 일과 같이
눈에서 나와 눈으로 찾아들던
당신과 나누었던 수 많은 빛과 선의 비행이
필연과 기적의 파티가 아니었다면
설령 정말로 그렇다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마주하고 싶은 그것은
순례자의 여행길 첫째 날, 교(驕)한 마음을 조금도 엿볼 수 없는
새로이 삶을 품게 된 여느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것임을
그것만을 당신께 드리고자 합니다.

What is Pragmatism?


 What is Pragmatism? Why am I still interested in this unpopular philosophy? Here is a clear answer to my question from Richard J. Bernstein.



When I teach courses dealing with pragmatism (old and new), I tell my students that it is best to think of the discourse about pragmatism as an open-ended conversation with many loose ends and tangents. I don't mean an "idealized" conversation or dialogue, so frequently described and praised by philosophers. Rather, it is a conversation more like the type that occurs at New York dinner parties where there are misunderstandings, speaking at cross-purposes,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with personalized voices stressing different points of view (and sometimes talking at the same time). It can seem chaotic, yet somehow the entire conversation is more vital and illuminating than any of the individual voices demanding to be heard. This is what the conversation of pragmatism has been like. (The Pragmatic Turn, p.30-31) 


This book is not full of Bernstein's genuine concepts, but it tells us why we should take the discussion of pragmatism seriously. Simply speaking it is alive! It is an open conversation for all of those who are getting ready to jump into many of the important themes in contemporary philosophy. In this book, Bernstein clearly shows how pragmatism will free us from philosophical bias we have had: a sharp dichotomy between subject and object, mind-body dualism, analytic-synthetic, the knowing-the known, and theory-practice. So now it is time to free us from our bias in the term of pragmatism first, then let's start a journey to the conversation of pragmatism!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시차 적응이 힘들다.

 1.
잠이 안 온다. 지금 이 곳의 시간과 떠나 온 곳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다. 5년 만에 만나고 온 사람들이 아침 시간을 서두를 때, 이 곳에서 난 아이들과 자기 전에 양치질을 했다. 시차가 있어서 좋다. 그들과 다른 시간을 5년 동안 살았고, 그들의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사랑하는 이에게 작은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오탁번 시인의 <별>이라는 시의 한 글귀를 함께 적었다.

'아내여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하고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내여 그대의 아픈 이마를 짚어보면 38조km나 이어져 있는 우리 사랑의 별빛도 아득히 보인다.'

세상 누구 보다도 가까운 이와의 사이에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 할 아득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일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사랑에 실패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그녀와의 이 아득한 거리를 그대로 두고도 그/그녀의 손을 잡는 일이 사랑이라면 나는 계속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3.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어려운 고백을 해주었다. 이 긴 시간 동안 내게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갑작스런 고백이 내가 그녀를 안아줄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난 이제 이 친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친구와는 평생 함께 살아도 좋겠다.' 재미없고, 애교도 없고, 내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내가 왜 그 때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4.
어제 밤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지금 이 곳 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내 옆의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지치다를 반복하며 지내온 나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흘러 온 시간이었을지 감히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프지만 나는 내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손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5.
또 한 명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최근에 자신이 맡아서 진행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잊혀지지 않아요. 처음 하는 일들은 다 그런가 봐요."

나는 대답했다.

"그런가 보다."

어떤 단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손이 기억난다. 우리도 다른 시간을 보냈구나. 그 시절 그녀와 나의 시차는 어느 정도였을지. 시차 때문에 놓칠지도 모를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도서관 계단 가까운 자리에서 매일 전공 서적과 소설 책을 읽었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7년 동안 사용했던 휴대전화기의 화면이 꺼졌을 때 급히 학교를 나와 새 전화기를 샀던 나의 모습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를 메우려고만 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그 해 추운 겨울 도서관 앞에서 오랜만에 만났던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그 때는 이제 내 옆에 있으니 더 이상 그녀와 나 사이에는 시차가 없을 줄 알았다.

"미안해요."

6.
각자의 시간이 이런저런 모양의 서로 다른 물결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때로는 물결의 방향이 엇갈리며 그들 사이에 금을 만들고 갈라 놓으리라. 그런데 언제나 빛은 그 틈새로 들어오고 나간다.

"그대여 그 틈을 메우려고 하지 말아요. 난 이렇게 깨어진 우리 둘 사이의 이 틈새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