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독서) 고래 by 천명관

고래 by 천명관

 한 사내가 마을에 나타났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이미 강 건너 옆 마을, 그 너머 최근 들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강 주변의 작은 도시까지도 소문이 난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누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를 천 선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세상의 규칙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자유인이며, 언제고 어딘가로 떠나 버릴 수 있는 방랑자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인생을 망친 잉여 인간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혹여나 그가 내일 아침이면 남은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고 떠나버릴까 노심초사하며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기도 했다. 한편 그가 내놓은 이야기를 두고, 혹자는 그저 현란한 구라에 지나지 않는다 무시하기도, 기존의 이야기꾼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방식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내의 재주를  깎아 내리려 했지만, 깨나 멀리 떨어진 도시의 사람들까지 이 작은 마을에 몰려들어 그의 주위에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그의 말솜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수결의 법칙이었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옮겨졌다. 가끔은 무시무시한 전래 동화로, 가끔은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랫말로, 그리고 아주 가끔은 비정한 세상사의 한 토막 뉴스 정도로 편집, 각색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대부분의 경우 아랫도리에 피가 쏠려 몸을 배배 꼬게 만들만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급작스레 아연실색 놀래 자빠질 결말로 끝을 맺곤 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천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p.114)
 발도 없이 퍼지고 퍼진 천 선생의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큰 도시 사람들의 귀에 까지 다다랐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명절 연휴가 지나고 직장에 돌아온 이 나라의 산업역군이 고향 집에서 전해 들었다는 야시시한 이야기가 그 발단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작가가 천명관이라는 이름으로 <고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항간에는 천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무명의 작가가 그의 성씨를 빌려와 작가의 이름으로 삼고, 선생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짜깁기 했을 뿐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 책 또한 그 맛과 향과 감촉이 알싸하고 시큼하고 끈덕진 것이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기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는 인기의 법칙이었다. 그 책의 대중적 인기에 발맞추어 큰 도시의 식자층은 고심 끝에 이 책을 '소설'로 분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그래야 그들도 야시시한 농담을 좀 써먹을게 아닌가!), 사람들은 그들의 분류표를 개의치 않았다. 천 선생은 이미 어디론가 떠난지 오래고, 그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이제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갑자기 든 생각 #2: 조용한 삶

1. 조용한 삶을 원했다. 어지럽지 않은 세상이기를 바랐다. 어렸다. 어려운 일을 바랐으니 그리 말할 수 있으리라. 어렸다고. 이제는 '모두가 세상을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라는 짧은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며 세상에 내놓은 건 거의 없지만, 이제야 고작 한 움큼의 지각을 얻은 기분이 든다. 따뜻한 냉소라 할 수 있을까? 타고난 천성을 반할 수는 없는 일이고, 조금도 세상을 냉소하지 않는 인간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리라. 그런 인간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을 응시하는 완전한 비관론자가 아니라면 필시 유치한 인간일 테니 말이다.

2. 모든 변화는 익숙한 것들의 뒤틀림과 그에 대한 의심, 안일한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을 동반한다. 

3.  메마른 새벽 공기에 목이 말랐다. 모른 척 다시 잠에 들고 싶었지만 오늘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벽 잠에서 깬 후 바라본 이불은 평평하고 하찮은 무게로 나를 덮고 있었다. 내 삶이 저러하다. 하찮은 삶도 무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은 따뜻했다. 

4. 너를 꼭 안은 채 세상에 뛰어들었다 믿었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네가 나를 안고 있었구나.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11-12.2021: Pachinko by Min Jin Lee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1-12. 2021

<Pachinko> by Min Jin Lee

 첫 문장이 눈에 띈다. 어쩌면 조금 과하기도 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p.3) 

 방점은 뒤의 "...but no matter."에 찍혀있다. 삶을 이어온 가족의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다. 실상 이는 우리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살아남는 것이 생()의 주요한 목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그 자체가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자신의 삶에 색을 더하고, 의미를 찾는다. '생존'이라는 삶의 맹목적 의지마저도 의미를 갖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가 지속되어 왔다. 이민진 작가의 책 <파친코>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역사 한 부분을 조명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람들의 인식을 보편적이고 쉽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는 분명 작가의 자료 수집과 고증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기독교를 믿는 이삭의 가족들이 평양 출신이라는 설정, 전후 민단과 조청련 사이의 갈등, 일정 나이가 되면 외국인 등록을 하고 지문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 의식과 역사적 배경의 무게가 등장 인물들을 짓누른다. 양진, 순자, 경희는 책의 마지막까지 "A woman's lot is to suffer."(p.414)이라는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시대에 짓눌린 채 입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백요셉, 백이삭, 심지어 꽤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고한수조차 그 시대의 그저 그런 누군가로 머물러 있다. 이는 아마도 소설의 전체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길게 설정된 시간과,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그중 백노아는 가장 아쉬웠던 인물이다. 
 The big secret that he kept from his mother, aunt, and even his beloved uncle was that Noa did not believe in God anymore. (...) Above all the other secrets that Noa could not speak of, the boy wanted to be Japanese; it was his dream to leave Ikaino and never to return. (p.176)
 Noa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when he was with her; in fact, he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or Japanese with anyone. He wanted to be, to be just himself, whatever that meant; he wanted to forget himself sometimes. But that wasn't possible. It would never be possible with her. (p.308)
 That evening, when Noa did not call her, she realized that she had not given him her home number in Yokohama. In the morning, Hansu phoned her. Noa had shot himself a few minutes after she'd left his office. (p.385)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 인물의 심리 변화와 행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단서가 부족하다. 좀 더 집요하고 치열하게 노아의 심리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면 좋았을 듯 하다. 
  • 고한수가 자신의 친부임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 어머니 순자에게 화내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조선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 수치심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나?
  • 결국 백노아는 일본인이 되고자 자살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문장의 리듬감이나, 표현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자세히 평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 또한 단조롭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과 흐름은 대체로 평이하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 받기로 하는 장면, 남편 백이삭의 무덤을 찾았던 순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럽게 책을 마무리한다.

 냉정한 평은....영어로 쓰여진 한국 근현대사 배경의 (외국인 독자들에게)흥미로운 소설.

2021년 11월 7일 일요일

New York City 21: Fun_Peter Piper.

 


Peter Piper picked a peck of pickled peppers.
A peck of pickled peppers Peter Piper picked.
If Peter Piper picked a peck of pickled peppers,
Where's the peck of pickled peppers Peter Piper picked?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비밀 조직, Sun & Midnight Team의 탄생 by J

<A Spying Camera> for Sun and Midnight Team

 J는 그의 비밀 조직 - 그가 말하기로는 Spy Army - Sun & Midnight Team을 만들었다. 그의 친구 Elon과 Jin이 합류하기로 했다. 추후 그들의 Music Teacher Mr. H와 Gym Teacher Mr. M에게도 합류를 제안할 것이다.

M: "그런데 왜 너희 군대는 이름이 Sun & Midnight이야?"

J: "......"

M: "이상하잖아. 태양하고 자정이라니. 한밤에 뜨는 햇님이야?"

J: "Never Mind!"

 J는 자신의 동료 Elon을 위해 스파이 카메라를 만들고 있었다. 종이와 가위, 테이프만 있으면 그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첫 사랑. 그와 그녀의 손. 1Q84. 고양이 마을. 마더와 도터. 공기 번데기. 다른 세상. 그게 어디든 너와 나. 왼쪽은 왼쪽이고, 오른쪽은 오른쪽이니,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너와 내가 있는 세상에 도착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그대로.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속았다! 그리고 역시 내가 맞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랑학 개론 10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논리가 힘을 갖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고, 힘든 시련을 뚫고 서로를 찾아내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다.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녀는 몸의 힘을 빼고, 믿어야 하는 것을 믿기 위해 덴고의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댄다. 그곳에 귀를 대고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팔 안에 몸을 맡긴다. 콩깍지 안에 든 콩처럼. (p.1546)
 <1Q84> 속의 상징과 비유는 소설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다. 그건 흥미롭지만,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사실들의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두 개의 달을 올려다 봤어.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수 많은 위협을 받았어. 그리고 지금 여기 너의 손을 다시 잡고 있어. 그러면 이걸로 족해. 

Book 3:
  • Book 2로 끝냈어도...역시 괜찮지 않았을까?
  • 무라카미 아저씨. 여전히 재주 좋네요.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환상 버전.
  • 무라카미는 무라카미. 그대로도 괜찮아요. 
  • 온 세상 모두가 겪은, 지독하고 위태로운 첫사랑에 대한 우아한 찬가.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독서)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와 덴고.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마더와 도터. 선구. NHK. 증인회. 1984 또는 1Q84. 두 개의 달.

2권을 다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가끔 과하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하루키의 문장이군!" 

상징과 비유가 넘치는 책의 문장을 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대체 리틀 피플이 뭐야?' '나 참, 공기 번데기라니......' '마더가 되고, 도터가 된다고?'

글 속의 상징과 비유들을 굳이 익숙한 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전체와 개인.이념과 의지. 욕망과 속박. 순수함과 폭력. 상처와 치유. 그리고 사랑과 구원.

Book 2:
  • 이대로 끝내도 될 거 같은데, 3권을 도대체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지?
  • 비유와 상징도 좋지만, 때로는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채 상충하는 가치/이념 간의 논쟁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다루는 것이 더 선명한 그림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라!)  
  • 3권으로 가면 좀 더 분명한 도식을 제시할까?
  •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이렇게 끝맺으리라: '결국 사랑. 구원은 가까운 곳에 있어. 너의 손에 달렸어! '
  • 그렇다면 2권의 결말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제 Book 3으로 넘어간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2002년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강남 종로학원을 다니던 재수생 시절이었다. 그해에만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2005년에 그의 다른 책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그 후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떠한 책도 읽지 않았다. 관심이 식었고, 그의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꼈다. 지나칠 정도의 섬세한 표현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하게 느껴졌다. (분명 유치한 면이 있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그의 책 <1Q84>을 읽고 있다. 일종의 도전이자, 추억의 소환이라는 명목으로. 그래서 간단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Book 1:
  • 대단한데!
  • 그가 이 정도의 이야기 꾼이었나?
  • 나이가 들었나? 섬세하지만 과하지 않네. 
  • 그래. 이건 넘어가자. 이 정도면 많이 참았네.
 지금은 Book 2를 읽고 있다.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New York City 20: Education_Near Double.

Double Fact: 2+2=4, 3+3=6, 4+4=8......

Near Double: 2+3=5, 3+4=7, 4+5=9......

Here is my question: What's the use of this 'Near Double' concept when doing addition?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10.2021: 포노 사피엔스; Phono-sapiens by 최재붕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0. 2021

<포노 사피엔스> by 최재붕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읽었다. 저자는 포노 사피엔스(Phono-Sapiens), '전화기(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며 책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뒤따르는 내용은 진부하다. 책이 나온 지 2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도 책 속에 나열된 사례들은 전혀 신선하지 않다. 이건 아마도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가 매우 좁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한국에 살고 있는,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50~60대?)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갖는 한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들과 개념들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너무 빈약하다. 가령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하고 있는 오늘 날의 혁명적 변화 -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디지털 문명과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 혁명 - 에 관한 비판적 물음은 배제되어 있다.: '정말로 자발적인가?' 또는 '정말로 소비자가 시장의 권력을 획득하였는가?' 등의 물음이 전혀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단, 매일같이 반복되던 대중 의식의 형성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은 모두 개인화 되었습니다. (...) 정보 선택권을 가진 인류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면서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 탓입니다. (p.26)

(가능한 반론)

  •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함으로써 매우 독단적이고 고립된 대중 의식이 형성되었다. 즉, 무비판적으로 형성되고 개인화된 생각은 독단적 가치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좁은 우리'가 등장한다. ex) 일베, 극단적 페미니즘, 극우 파시즘, 급진화된 세력, 네오 나치 등.
  •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인식은 결코 소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요와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또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역전 현상이 시장 독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책 속에 열거된 사례들이 철저히 시장/기업 중심적이고, 또한 철저히 사용자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오로지 시장에서의 성과와 이익에 국한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2021년 구글(Google)에 노조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1) 또한 2017년에 우버(Uber)의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 제기 되었다는 사실(2&3)을 돌아본다면 저자의 시장 혁명과 새로운 조직 문화에 대한 주장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저자의 주장, "디지털 문화 부작용 이면의 놀라운 잠재력 (본문에는  '부작용의 편견 뒤에는...'이라고 되어 있다. '편견'이라는 단어 선택에 이미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드러난다.)"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되새겨 들어야 할 가치가 있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동반하지 않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저자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고 있는 스마트폰/디지털 문명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게임 중독, 피상적 인간관계, 정부 규제 등)과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정치에 대한 불신/불만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수아비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 vs 경제'라는 도식을 '규제 vs 혁신'으로 치환함으로써 저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시급성을 드러내고 타당성을 얻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증이다. 개인은 시장의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공동체 안의 시민이다. 둘 중 어느 곳에 방점을 찍느냐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적어도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사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 (<이성과 혁명> 중.)"라는 마르쿠제의 지적을 상기해본다.) 
  오히려 저자가 공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 -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와 그것이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 기술이 기존의 질서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시장 혁명을 통한 구조적 변화가 기존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디지털 문명이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는 어떤 사회/문화적 계층을 형성할 것 인지 등 - 에 대한 시각을 함께 다루었다면 좀 더 균형 잡힌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마무리 하며 저자는 기성 세대의 성과와 그 동안 축적되어 온 기술,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디지털 문명 속의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그러나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저자의 좁은 시선이 이미 책 전체의 뼈대를 흔들어 버렸기에 책의 맺음말은 허무하다. 또한 내용 곳곳에 등장하는 진화론, 세대 담론, 인문학(호모 루덴스/인의예지) 등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개념과 억지스럽고 어설프게 연결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대중 교양 서적을 통해 독자에게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한때 '통섭'이 유행했었지...)를 보여주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때로는 전문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바람직할 때도 있다.: 
  •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차별화된 조직 문화.
  • 디지털 문화를 소비하는 개별 사용자들에 대한 데이터 수집 방법과 활용 방식.
  • 혁명이라 부를 정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통찰, 혹은 드러나는 윤리적 문제들.
  • 기존의 것을 대체하며 등장한 새로운 가치/체계/패러다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주장이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물음, 즉 '오늘 날의 변화를 과연 '혁명'이라 명명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이라고 여길만한 것은 그저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의 매출액/시가총액/투자금/시장 점유율의 나열 뿐이다.
 
 개인적으로 산업혁명은 18~19세기에 걸쳐 일어난 영국 산업혁명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정치/경제 질서를 무너트렸고, 부르주아와 도시 노동자라는 정치/경제 계급이 등장하였고, 상품 생산 방식이 변했고, 새로운 공간(도시)이 출현했다. 이후의 2차, 3차, 그리고 이 책 속의 4차 산업혁명은 그로부터의 (괄목할 만한) 발전 정도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진행 중인 변화가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의 해결이 수반되어야 한다.
  • 새로운 공간의 창출/발견.
  •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한계(죽음)의 극복.
  • 희소성 문제 해결. 
 시장에서의 경제적 성과가 곧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그것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완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즉 인간 의식/존재 방식의 변화 없이는 혁명이라 부르기 어렵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물결/혁명을 기대하기에는 이 책의 시선이 너무 좁다.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독서)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 by 어니스트 헤밍웨이(E. Hemingway) / 김욱동 역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
by 헤밍웨이(E. Hemingway) 저 / 김욱동 역

 전쟁은 사랑을 파괴한다. 삶도 사랑을 파괴한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단독 강화조약(ch.34 p.288)"을 맺은 프레더릭 헨리는 연인 캐서린 바클리를 떠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나는 생각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도록 태어났다. 정말 그렇다. 먹고 마시고 캐서린과 잠을 자도록 만들어졌다.(ch.32 p.279)
 후퇴 대열로부터 뒤처진 장교들을 향해 구차한 형식(탈영)을 빌미로 자신들의 정의를 행하는 헌병들의 손(전쟁)에서 벗어난 프레더릭 헨린는 자신의 사랑과 미래를 위해 삶과도 조약을 맺기를 바랐을 것이다. 강물에 흠뻑 젖은 그는 마침내 전쟁을 벗어났다고 믿었고, 캐서린과 다시 만났다. 이 헛된 희망을 향해 그녀와 함께 밤새 노를 저어 아는 이 없는 곳에 다다른 그와 그녀는 여전히 삶의 한 가운데 있었다.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으려 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채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는 캐서린은 헨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던 일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하지 않을 거죠? 우리가 하던 말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나누지 않을 거죠?"
"물론 안 하고 말고."
"하지만 당신에게 여자가 생겼으면 해요."
"난 그런거 필요 없어."                                                             (ch.41 p.391)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사하지 않으리라 확신한 전쟁(ch.7 p.43) 속에서 그는 다른 이들의 허무한 죽음을 목격했다. 죽음은 그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전쟁터를 벗어난 삶 또한 언제나 죽음 곁에 있었음을, 삶이 곧 죽음으로의 여정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a statue)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ch.41 p.393)
새 생명이 빛을 잃고, 연인의 숨결이 잦아들었다. 삶이 사랑을 파괴한 순간 그는 그저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삶 속에 새로운 사랑이 있기를 바란 캐서린을 뒤로 한 채. 삶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짧은 감상)
  • 관념을 내세우지 않는 간결한 문체가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문학 작품이 있지만, 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구성으로 인간 삶의 심층을 드러내 보인 작품은 드물 것이다.
  • 지도를 옆에 두고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들을 찾으며 읽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이어지는 호수는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다.
  • 종종 등장하는 오탈자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매끄럽게 읽었다.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John Mayer -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A great big bang and dinosaurs

Fiery raining meteors
It all ends unfortunately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ll guarantee, just wait and see
Parts of me were made by you
And planets keep their distance too
The moon's got a grip on the sea
And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 guarantee, it's your destiny
Life is full of sweet mistakes
And love's an honest one to make
Time leaves no fruit on the tree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 guarantee, it's just meant to be
And when the pastor asks the pews
For reasons he can't marry you
I'll keep my word and my seat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ll guarantee, just wait and see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J's first tooth fell off today.

 J: "Wah~Wah~Wah~" (crying...crying...keeps crying.)

그의 이는 이미 빠져있었지만, 그는 울었다.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New York City 19: Books for Kids_New Kid & Class Act by Jerry Craft (소개)

(Y와 J가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New Kid> and <Class Act> by Jerry Craft


<New Kid> & <Class Act> by Jerry Craft

Y의 강력 추천!! 그녀는 적어도 각각의 책을 다섯 번은 읽었다고 한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열두 살 소년 조단 뱅크스(Jordan Banks)가 겪는 문화의 차이와 편견, 그로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소년의 눈을 통해  미국의 교육 현실, 빈부 격차, 인종과 문화에 대한 편견 등의 무거운 주제들을 진솔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2020년 뉴베리(John Newbery Medal) 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무엇보다 만화책이다!!! 

<New Kid> ➡ <Class Act> 순서로 읽으면 된다. 그리고 현재 작가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2021년 9월 9일 목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짧게 요약하자면 경계와 규범에 관한 글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젬과 스카웃 남매(+친구 딜)가 바라보는 세상(메이콤)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가치와 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글이다.

  • 아서 (부) 래들리 아저씨  
  • 듀보스 할머니  
  • 커닝햄 아저씨  
  • 밥 & 메이엘라 유얼 
  •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 (봉지 콜라)
그리고
  • 팀 로빈슨 & 아이들(젬, 스카웃 그리고 딜.)

 아빠(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비하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조용하고 성숙하다. 그가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양심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아빠가 그 사람을 변호하시지 않으면, 오빠랑 저랑 이제 더 아빠 말씀을 안 들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ch.9 p.123)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도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 (ch.9 p.12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ch.11 p.170)

"커닝햄 아저씨는 바탕이 좋으신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뿐이지."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거야. 그걸로 충분하다." (ch.16 p.25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이겨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과제다. 특히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유얼 집안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폭력을 행사할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백인들은 그녀가 돼지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그렇다고 흑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강기슭에 땅을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얼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메이콤 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품 바구니를 건네 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까지 보냈습니다. (ch.19 p.307)

  결국 팀 로빈슨의 친절은 메이엘라 유얼이 백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의 통제되지 못한 연민의 감정(이 또한 흑인으로서의 규범을 어기게 된다.) 은 메이엘라에게는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왜곡된 형태로 보상해줄 대상 또는 수단으로, 기존 관습과 규범에 익숙한 백인(어른)들에게는 넘어선 안 될 경계를 넘어온 자, 즉 치욕과 모욕으로 다가선다. 그렇기에 (모욕 받았다고 믿는) 그들에게 있어서 팀 로빈슨의 재판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죄(Crime)를 다루는 것이 아닌, 금기(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어긴 신성 모독(Sin)에 관한 일이 된다.  

"네, 검사님. 아가씨가 상당히 불쌍해 보였습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고요, 불쌍하게 보였다고요?" 길머 검사님은 마치 천장으로라도 튀어 오를 기세였습니다. (ch.19 p.316)

  이 순간 법정에서는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린 딜의 울음소리만이 소외된 이웃(메이엘라 유얼)에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가선 팀 로빈슨의 통제되지 못한 감정(연민과 친절)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ch.19 p.319)

 그러나 밥 유얼은 어리석게도 흑인 청년을 무고함으로써 메이콤(=백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으려 했다.: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규범을 지키고 있어!"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것은 모욕과 멸시였다.: 경계를 지켜내지 못한 쓰레기. 잉여 인간. 쓸모 없는 녀석. 팀에게 내려진 배심원들의 유죄 선고는 사실 그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배제와 추방. 그것은 울타리였다. <넌 이 곳을 넘어선 안 돼!>라고 답변하는, 유죄를 선고하면서 팀 로빈슨을 쳐다볼 수 없었던 이들이 새롭게 놓은 울타리.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바로 이런 식이었거든." (ch.27 p.400)

 기존 규범에서 이탈한, 그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의 공허함은 또 다른 경멸과 적대를 불러 일으켰다. 마을 축제가 모두 끝난 어둠 속에서 밥 유얼은 몸부림 쳤고, 자신이 놓쳐버린 (어쩌면 허락되지 않은) 아이들의 울음에 상처를 내려했다. 그러나 또 다른 앵무새 한 마리, 아서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고, 팀 로빈슨이 그들에게 안겨준 작은 파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선(규범)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가로등이 읍내까지 길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태껏 이 방향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ch.31 pp.446-447)

  어린 소녀 스카웃을 이 작품의 화자로 삼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아빠(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자칫 작품을 유치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작품 속 성숙한 그의 태도와 말은 아이들의 시선에 비춰질 때 비로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낸다. 

아빠는 오랫동안 마룻바닥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드셨습니다. "스카웃 유얼 씨는 자기 칼 위로 넘어졌어. 이해할 수 있겠니?"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
"이해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글쎄, 말하자면 앵무새를 쏴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ch.30 p.443)

 그렇게 아서 부 래들리를 이 세상(메이콤)의 앵무새로서 지켜내려는 아빠의 한마디에 스카웃은 래들리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오빠 젬을 소개한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의 모습을 아이들의 눈에 비춰본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 (ch.7 p.97)"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멋진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걱정이 많다.

 끝으로 몇 가지 생각을 던져본다.

  1. 정치는 비극(tragedy)이 아닌 희극(comedy)이 될 수 있을까?
  2. 진정한 대화는 가능한가?
  3.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을 넘어선 규범, 즉 이성적 규범은 존재하는가?

2021년 9월 3일 금요일

(독서)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by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저 / 김진준 역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by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저/김진준 역

 필립 말로는 탐정이다. 모든 탐정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모든 탐정이 그와 같이 냉소적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그는 분명 냉소적이다. 모든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런데 그 한 발짝이 문제긴 하다.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냉소는 사실 언제든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발걸음이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선 발걸음은 여지없이 연민과 애정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말로의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그 발걸음을 옮길지 말지는 언제나 그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애쓰지 않는 인물이다. 우선 주변의 사람들과 사건을 관찰할 뿐이다. 김렛 한두 잔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핀다. 가끔은 혼자 체스를 둔다. 그리고 다시 관찰하고 생각하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몇 마디를 내뱉는다. 건조한 말투와 냉소적인 태도, 그 이면에는 날카로움이 있다. 가끔 내뱉는 빈정거림에는 애정과 이해가 뒤섞여 있다. 그래서 필립 말로는 매력적이다.

"이 사람은 두꺼운 소설책처럼 쉼표를 잔뜩 찍어 가며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11장)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어요, 로링 부인. 워낙 알쏭달쏭한 인간이라서." (31장)

"그는 마치 차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차를 마셨다." (32장)

"달빛에 물든 벽돌담처럼 침착한 사람이었다." (47장)

"1백 명 중 두 명한테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겠죠. 나머지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렇게 20년쯤 지났을 때 남자한테 남는 거라고는 차고 안에 들여놓은 작업대 하나가 고작이거든." (50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매우 뛰어난 문학적 수사는 없다. 그렇지만 <기나긴 이별>은 여전히 좋은 책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소설에서는 작가가 새겨 놓은 깊은 사유의 흔적과 작품의 주제가 흥미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창조한 매력적인 인물 한 명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보다 그가 창조한 인물 필립 말로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아서 코난 도일보다 셜록 홈즈가 더 유명하듯.) 

 몇 년 전 프랑스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라비크(소설 <개선문>의 주인공)가 즐겨 마셨던 칼바도스는 너무 독했는데(사과주라더니...), 말로가 테리와 나눠마신 김렛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걸 마시려면 아무래도 술집에 가야겠다. 굳이 우리 집에 로즈 사의 라임 주스를 사 놓을 필요는 없으니.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Weirdo + Mathematics"에 관한 그녀와 그의 말

Y: "You are an weirdo~"

J: "No! I am not."

Y: "Yes! You are."

J: "No. You are an weirdo. Double Triple Double Triple times Ten times Ten times Infinity weirdo."

Y:"......"

J:"......."

2021년 8월 11일 수요일

(독서) 소년이 온다 by 한강

<소년이 온다> by 한강

 한강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녀가 쓴 <채식주의자>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같은 작가의 책을 이렇게 빨리 집어 들 줄은 몰랐다. (이건 아마존 킨들 덕분인가?) 

 작가 한강의 글은 특이하다. 중간 중간 그녀는 시를 쓴다. 등장 인물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 순간 강렬하게 그 안을 파헤친다. 긴장된 순간과 겹쳐진 그 글들이 어느새 부드럽게 흘러간다.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역시 그녀의 글은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 받은 사람이라면 5.18 광주를 모를 리 없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걸까? 어느 순간 그 당연한 사실들과 이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부끄러워야 한다. 
 영혼과 살을 내주고 피를 흘리며 떠나간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기억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에게 막연히 고마움을 표하고 매해 5.18 추모 행사를 열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교과서에 담긴 몇 장의 사진이, 그 아래 쓰여진 몇 줄이 그들을 대신해선 안 된다. 사람은 사람을 죽인다.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109)

 영웅이라 칭송받기를 원한 적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위로와 고마움을 원한 적 없는 사람들은 유족이 되어 남은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이들을 모독했다면, 우리 모두는 분노해야 마땅하다. 이는 지극히 당연해야 한다. 

 광주는 그 품 안으로 폭력을 끌어안았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는 듯이.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가 광주를 품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듯이. 

 언젠가 이 소설의 영문 번역서 <Human Acts>를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2021년 8월 7일 토요일

(독서) 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첫 문장(=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 Call me Ishmael.)이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간신히(?) 읽었다. 전체 718 페이지의 분량이니 분명 긴 소설이기는 하나, 책 읽는 속도가 한참 더뎠다. 한동안 덮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기를 몇 번 반복했고, 제 21장 <승선>을 기점으로 -허름한 여관의 침대 위에서 퀴퀘그를 만나고, 포경선 피쿼드 호에 올라 바다로 나아가기 까지 150페이지를 견뎌내야 했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모두 읽고자 다짐했다. 마지막 100페이지는 내일 출발하는 캠핑에 이 두꺼운 책을 도저히 가져 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읽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서사의 전개와 그 안에 묘사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철학적 물음과 사색 + 고래, 포경 & 배에 대한 설명 +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의 순서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총 135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때문에 서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당대의 선상 생활과 고래 잡이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가령, 제 74장 <향유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와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를 읽으면 그 누구라도 이 작가의 집요함에 항복할 것이다. (사실 저 유명한 첫 문장이 시작 되기 전 <어원>과 <발췌록>을 읽으면서 내가 그에게 지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작가에게 순종적인 독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선장 에이해브가 그 자신의 운명을 앞당기려는 듯 던지는 대사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
어이! 흰 고래 보았소? (p.524)
 결국 그는 이 물음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의 삶이 향하는 곳으로, 감히 선장에게 맞서려고 했던 스타벅 까지도, 피쿼드 호에 승선한 모든 이들은 에이해브를 따라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올린다.

이건 뭐지?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p.645)
 

 그리고 에이해브와 선원들은 그토록 두려워하며 갈망했던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을 마주하고 자신들의 운명에 작살을 던진다.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p.681)

음산한 흰 파도가 그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바다라는 거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결치고 있었다. (p.683)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피빛 무덤 위에 세워진 나라 미국의 원죄, 그 비극을 목도하고 기억하며 이어진 삶, 그 삶을 비극으로 인도하는 운명.

삶을 운명으로 채우려는 인간의 광기, 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연, 그 자연이 내리는 벌. 

또는 그저 삶과 죽음.

이 이야기 속에 넘쳐흐르는 상징과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의 생명력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삶에 대한 경외와 찬사는 작가에게 바친다. 당연히 이를 번역한 역자에게도. (번역이라는 작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021년 8월 1일 일요일

올림픽에 관한 그녀와 그의 말.

 400M 수영 계주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J: "Wow. United States~"

Y: "It's not even New York!"


그는 미국을 응원했고, 그녀는 오직 뉴욕을 사랑한다.

2021년 7월 25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7-8. 2021: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The Middle Passage by 제임스 홀리스 저 / 김현철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7-8. 2021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The Middle Passage>
 by 제임스 홀리스 (James Hollis) 저 / 김현철 역

이 책은 융 심리학 /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저자가 '중간항로'라 명명한 2차 성인기를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책에서 다루는 융 심리학 개념들은 생소하지만, 이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예시를 통해 책의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원래의 자기감을 어떻게 습득했을까?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들은 무엇일까? 자기감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까?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과 우리의 타인을 향한 헌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성화를 이루고 중간항로를 지나 어두운 숲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면 어떤 태도와 행동변화가 필요할까? (p.14)

"자아(ego) - 자기(자기원형; archetype of self) -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드 - 자아 - 초자아"라는 도식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 하며, 주체로서의 개인에게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 개인의 성장 - 부모/사회와의 관계 - 결혼 - 일 - 문학 - 고독/죽음

저자는 솔직한 태도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의 주제들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뉴욕 양키스 중견수의 꿈은 그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지속적으로 두 권의 책과 한편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1.<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by 사르트르

광대 놀이에 지쳐버린 사르트르의 유년기는 얼마나 처절하고 모욕적이었나? 그렇기에 그는 실존주의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불쾌한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보다 친절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미덕을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순화된 버젼의 실존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르트르는 무의식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보다 더 자식/부모 사이의 콤플렉스를 잘 (매우 잔인하고 선정적으로) 극화한 영상물은 본 적이 없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주술적 사고 & 영웅적 사고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를 극복한 (-하려 노력한) 이들은 간신히 살아남거나, 멋지게(?) 죽는 장면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허무하거나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

.

.

융 심리학과 그 개념들은 내게 매우 생소하기에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해본다.:

저자가 바라보는 개인의 여정이 지나치게 목적론적이고, 이를 설명하는 개념 틀이 너무 크고 포괄적이어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에게는 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치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주체를 중세 시대에 되돌려 놓는 것 같다. 저자는 중간항로라는 개념이 "연대기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경험"(p.40) 이라 설명하지만, 그 심리적 여정이 지나치게 환원적이라는 것이다. 주체 - 세계의 지나친 분화가 오히려 주체를 구속한다. 물론 이에 대해 저자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스스로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이는 개성화가 지닌 역설이다 (...) 따라서 개성화에 대한 관심은 자기도취가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타인의 개성화를 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p. 227-228)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자유라고 말할 것이다. 주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저자는 우리 시대의 신화로서의 개성화를 (p. 223)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가 사용하는 개념 틀의 환원론적 성격이다. 지나친 설명력은 구조적 폐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

.

.

익숙하지 않은 주제였고, 처음 접해보는 장르였다. (독서 모임의 장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황동규 시인이 만들어낸 "홀로움"이라는 단어. 

중간 항로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울리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홀로움이 아닐까 싶다.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북향 도로

-북향 도로-


곁을 내주지 않은 첫 사랑 그 속살과도 같았던

청춘은 언제나 파랗고 어두운 바다 속 이었다

허우적거리면 기어코 손에 닿을 것이라 믿었던

뜨겁고 끈적한 모든 것들이 무서워질 때 즈음

나는 북쪽 길을 찾아 떠난다

 

쓰다 만 청춘에 용서를 빌고

떨군 사랑은 집어 들고 싶지만

굽어진 산 허리가 이미 초록을 거두었다

북쪽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까닭이다

 

인연의 숨결이 북쪽으로 흘러간 때를 추억한다

던져진 시절에 몸부림 치던 나는

연붉은 길 위, 눈 감은 채,

옅어진 울음을 놓아준다

 

마주할 수 없는 것들은 남겨두자

내 것이 아닌 사랑도 사랑이었으니

남들은 창을 내지 않는 

서늘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나는 지금 북쪽 길을 밟는다

2021년 6월 27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6. 2021: 회색인간 by 김동식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6. 2021

<회색 인간> 김동식 저.

일반적인 소설/문학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대하는 나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조금은 익숙한 느낌을 지닌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몇몇 글들의 참신한 배경 설정과 반전을 동반한 결말도 어느 정도는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순한 문체, 리듬이 결여된 문장, 부족한 상황 묘사 등이 이러한 나의 인상을 더욱 부추긴 듯 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사실 간단하다.: '현대 사회의 어두운 그늘과 그 속의 소외된 개인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는 또 다른 개인들의 강박적인 선택.' 모든 글들이 대부분 비슷한 질감이기 때문에 이 주제가 오히려 독자에게 강박으로 다가온다. 

장르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이기에 불만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

2021년 6월 18일 금요일

Father's Day - Y's Acrostic Poem

Y's Acrostic Poem for Father's Day.

Full of love

A great chef

The best dad

Happy most of the time

Excellent

Radiant

Happy Father's day,

You are great,

Love,

Yuna

2021년 5월 9일 일요일

Mother's Day - Y's Acrostic Poem

 Y's Acrostic Poem for Mother's Day.

My mom is good

Only good

The best

Helpful

Easy to get along

Really great

2021년 5월 1일 토요일

New York City 18: Crime_ The Bike was Stolen.

말 그대로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 바퀴 전체와 안장 부분 전체를 누군가 떼어갔다. Guys....This is NYC!!!

<This is NYC!! The Remaining, Roebling, Brooklyn Bicycle Co.> 

남은 부분을 집에 가져다 놓고 한참 동안 바라본다. 자전거 타는 아빠가 너무 멋있다 말하는 J가 놀이터에서 돌아와 몰골이 앙상한 자전거를 보고 울었다. 잘 관리해서 먼 훗날 J가 크면 물려주기로 약속 했는데......

이 일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토요일 오후 3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퀸즈 쇼핑 몰 (Queens Center Mall) 바로 앞의 자전거 거치대에 묶여 있는 자전거를 분해 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열 명은 이를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혹시나 총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불안이다....라는 사실이 더 슬프다.)

우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어차피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의지도 없겠지만.) 구매한 자전거 가게와 브루클린에 있는 자전거 본사에 문의를 했다. 자전거 가게는 여분의 부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략적인 예상 비용을 보내줬는데, 너무 비싸다. 그래서 '원래 부품을 사용하면 좀 더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전거 브랜드 본사에 다시 문의를 해 놓은 상태다. 지금 심정으로는 두 번 다시 뉴욕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다. 남은 부분을 중고로 팔아서 처분하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뉴욕 시민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노와 실소가 뒤섞여 나오는 지금. 10년 전 뉴욕에 철학을 공부하러 오는 나에게 철학 친구 경은 누님이 선물로 준 장자끄상뻬의 <뉴욕 스케치>가 떠올랐다. 첫 다섯 페이지를 읽고 내 심정을 다시 정리해 본다.:
Fuck I should've read this again before getting a fucking bike. Fucking NYC!!!

New York City 17: Health_COVID-19 Vaccination_PFIZER (2nd dose)

 두 번째 COVID-19 화이자(Pfizer) 백신을 맞았다. 첫 번째 장소와 같은 장소였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끌고 출발하였다. (이전 글)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두 번째 접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절차가 있지는 않았다. 첫 번째 접종 때와 같이 미 해군이 모든 절차를 관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해군 장병이 접종을 도와주었지만, 한쪽에는 요크 대학교(York College, CUNY)의 학생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녀들의 이름표에 'Student Nurse'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민간인(?) 학생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았다. 접종을 마치고 백신 기록 카드에 두 번째 접종 표시를 해주었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네주었다.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 April. 30 2021>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15분 간 휴식을 취하며 다른 증상이 없는지 스스로 살펴 보았다.

  • 주사를 맞은 왼쪽 팔에 열감이 느껴졌고, 첫 번째 접종 때와는 다르게 약간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이 외의 이상 증상은 없었기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  왼쪽 팔의 뻐근한 통증이 약하게 지속되고 있다.
  • 열은 없었지만, 두통이 약 6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요즘 커피를 그만 마시기로 한 이후에 며칠 간 두통이 있었는데, 그 보다는 약간 심한 정도였기에 백신 접종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24시간이 지난 후 지금은 두통도 사라졌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오히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닥뜨린 여러 번의 오르막길이 안겨준 허벅지 통증이 뻐근하게 느껴진다.

추후에 다른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이 곳에 다시 기록하려고 한다.

모두 건강하기를.

2021년 4월 10일 토요일

New York City 16: Health_COVID-19 Vaccination_PFIZER (1st dose)

 COVID-19 화이자(Pfizer) 백신 주사를 맞았다. 평소 주사를 무서워하는 J는 전날부터 계속 물었다. "울거야? 아빠 울거야?" 집을 나서기 전, 나는 그에게 참아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침 식사 후에 자전거를 끌고 30분 거리에 있는 백신 접종 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

<CUNY York College Health and Physical Education Bldg./Basketball Court>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대기 시간은 없었다.  예약 정보와 신분증을 검사 한 후에 바로 접종이 가능했다.  첫 입장은 일반적인 공무원이 도와주었고, 예약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부터 일반적인 의사와 간호사는 안 보이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주사를 놔준 사람의 군복 왼쪽 가슴 주머니 쪽을 자세히 보니 해군(US NAVY)이었다. 특이하게도 녹색 계열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파란색 아닌가?) 나에게 주사를 놔준 이는 <CHAN>이라는 성을 가진 아시아계 여성 해군이었다. 간단한 질문들에 답했고, 접종 이후의 절차와 두 번째 접종에 대한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첫 번째 화이자 백신 접종을 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 April. 9 2021>

내가 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따끔하지도 않았다. 백신 접종 기록 카드를 수령한 후, 바로 옆에 마련된 대기 장소에서 약 15분 가량 휴식을 취하며 이상 증상 여부를 자가 진단하였다.

  • 주사를 맞은 왼쪽 팔의 어깨 부위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열감.    

이후 장소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페달을 돌리는 양쪽 다리가 힘들어서 그런지 더 이상의 다른 느낌은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에 이 글을 쓰며 느끼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 접종 직후에 느껴졌던 열감은 사라졌다.
  • 접종 부위가 약간 뻐근하다. 멍이 든 느낌이 들지만 피부에 드러나는 변화는 없다.

백신 접종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와 정보들이 있다.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는 음모론(다른 의견?)도 있고, 어떤 이들은 백신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내비치기도 한다. 나는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신뢰하는 것은 해당 분야 다수의 전문가들이 교차 검증했다는 사실과 지금 까지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다. 다른 문제들도 넘쳐 나는데 백신을 앞에 두고 데카르트 "놀이" (음모론)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The Next Episode on April. 30.)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New York City 15: Life & Culture_소수자

How a Shared Goal to Dismantle White Supremacy Is Fueling Black-Asian Solidarity

소수자(minority)가 되어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인간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며,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덕분에 지금껏 그토록 매달리던 단단한 틀을 깰 수도 있다.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편견 없이 타인을 이해한다. 다름을 위해 노력하고, 열린 자세로 비판한다. 사회 속에서 소수자가 되는 일은 한 개인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익숙했던 언어를 낯설게 내뱉으면 시인이 되듯, 머물던 세상이 문득 낯설게 보일 때면 성숙한 사람이 된다. 

동시에 소수자는 차별을 받는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의 감정은 누구나 갖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히 평범한 이 감정이 소수의 "저들"을 만들기 시작하면 위험해진다. 그들은 다수의 "우리"와 소수의 "저들" 사이에서 작은 차이를 끄집어낸다. 그걸로 충분하다. 차별은 굳이 악마적일 필요가 없다. 이후에 뒤따르는 폭력은 매우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단순한 현상일 뿐이다. 

차별의 가장 큰 악영향은 불신을 조장한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만들고, 개별성은 무시 당한다. 소수자는 결코 개별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뭉뚱그려진 저들"이다. 배제된 개인, 차별을 경험한 소수자는 불안하다. 편협한 생각이 들어서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한다. 사회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소외",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물화", 나 나름대로 말하자면 "무관심할 자유". 

아마도 나는 절실한 당사자가 아닐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눈감고 포기하고 싶다. 무관심할 자유를 택하고 싶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포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극단적 확신과 광기"이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문구로 전락한 <All Lives Matter>. <Stop Asian Hate> 외침에 뒤따르는 특정 인종들 사이의 불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 그리고 함께 이를 경험하고 목격하는 일이다.

2021년 3월 18일 목요일

그의 도전 "Mashindano"

 J: "난 오늘 아빠랑 "Mashindano" 할거야!"

M: "......"

"Mashindano" from <The Lion Guard>


2021년 3월 14일 일요일

샤워하며 노래하는 그녀

 Y: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그녀는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New York City 14: Policy/Government_ Equity NYC made by S. (소개)

https://equity.nyc.gov/

made by S.

Equity NYC
<EquityNYC>

<참고>


New York City 13: Life_자전거_Brooklyn Bicycle Co.

<Roebling>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샀다.


Brooklyn Bicycle Co. (해외 배송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뉴욕시의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자전거 회사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자전거들의 이름은 모두 브루클린의 골목/거리 명을 따르고 있다.: Bedford, Roebling, Driggs, Lorimer.... 

도시 생활형 자전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로드/MTB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몸에 딱 달라붙는 싸이클링 복장을 착용할 만큼 담대(?)하지는 못하지만 (내 취향도 아니고), 처음에는 드롭바 형태의 멋진 자전거를 원했다. 

(내 도시 자전거의 이상은 아래와 같다.) 


과하지 않고,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무엇보다 멋지다. (헬멧은 꼭 써야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들의 가격도 만만치 않고, 현재 심각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의 몸 상태가 이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우선 건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24년 전,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목포 슈퍼> 앞에 잠깐 세워둔 나의 삼천리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It's hard to explain.

 Whenever, whatever he was asked......

J: "It's hard to explain."

2021년 2월 19일 금요일

내가?

심심해서 MBTI 유형 검사라는 것을 해보았다.: INTJ-A

예전에 사촌 친구(?)가 애니어그램 검사를 해주었다.: 5w6

이 두 결과가 비슷한 유형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측정 방법을 통해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으니, '내 성격에 관해 어느 정도 타당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점은 이 검사 결과를 읽으면서도 그 정보들에 일정 정도의 거리(혹은 냉소)를 유지하려 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음...내가 과연 이러한가?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독서) 채식주의자 by 한강

채식주의자 by 한강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천천히 4시간 정도 읽었다. 역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문장들 속에 새겨진 영상들은 강렬했으며, 등장 인물들은 어둡고, 끈적이며,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지는 강렬한 영상들은 넘쳐 흐르지 않았고, 등장 인물들은 낯설지 않았기에, <채식주의자>는 분명 좋은 소설이다. 

자신의 몸과 기억에 새겨진 폭력, 이에 답하기 위한 선언/폭력: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영혜의 선언/폭력은 본래 그녀 자신 만을 향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영혜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것은 철저히 '비폭력적인 폭력'이다. 그러나 그녀를 이해하고자 -적어도 시도/노력- 하는 사람은 그녀의 폭력을 마주하고, 이에 반응한다. 예술적 영감과 자유를 향해 치닫기도, 또는 자기 삶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녀의 비폭력적 폭력은 이를 마주하고 이해하려 하는 타인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폭력의 본질은 객체를 물화(reification)의 과정 속에 강제한다는 것이다. 즉 주체는 대상을 철저히 장악한다. 영혜의 양 팔을 잡으라 명령하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자 한다. 반면 영혜의 폭력은 이러한 억압을 거부한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갈망하라." "자유로워라." "삶을 살아라."

.

.

.

역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니다. 읽다가 덮어둔 <모비딕>을 다시 꺼내 들어야겠다. 

2021년 2월 9일 화요일

듣고 싶다.

 Yo La Tengo & Teenage Fanclub

서울 집 내 작은 방 침대 위에 놓여있는 수 많은 앨범들 중에서도 이 두 밴드의 앨범을 찾아서 차례로 듣고 싶다. 

<Season of the shark>를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Sometimes I don't need to believe in anything>을 또 열 번 정도 돌려 듣고,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두어 모금을 홀짝 거리다가 '이런...역시...'라는 표정으로 남은 맥주를 싱크대에 쏟아 버리면서,  

멍 때리면서, 듣고 싶다. 

2021년 1월 1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