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말을 하기도, 또는 못 하기도 하겠지

5년 만에 잠깐 들른 이 곳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못 만나기도 하겠지.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못 나누기도 하겠지 싶다.

오늘 여전히 지금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여전히 착하고, 여전히 예쁘고, 또 여전히 좋다. (지금 계속해서 쓴 "여전히"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알맞게 사용하고 있다.) 짧게 만났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더 하지 못 하고 헤어졌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생각을 스스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금껏 이런 일을 배웠고, 해왔고,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앞으로 나의 삶에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고 싶은데, 난 여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못 한다.

이 친구를 또 언제 만날까 싶다. 5년 전에도 거의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 친구와 언제 또 만나서 못 했던 이야기를 나누지?' 라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나누고 싶지만, 시간도 빠르고 모두들 바쁘다. 나도 내 삶이 가끔은 너무 아무런 이유없이 바쁘게 흘러가서 슬프다.

아무튼 여전히 내 자신을 복잡하게 하는 사람은 결국 나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도, 또는 못 하기도 하니깐. 난 여전히 그렇다.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섹스를 욕구하는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섹스는 욕구(need)일까 아니면 욕망(desire)일까? 욕망인 척 하는 욕구인가? 아니면 욕구이고자 하는 욕망일까?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How To Be a Radical Leftist

내가 석사과정을 공부했던 곳은 진보적인 학문 지향으로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이게만)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많은 진보적 이론가들이 이 곳에 머물며 공부하였고, 또 새로운 젊은 이론가들이 이 곳을 거쳐간다. 

이 곳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던 중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 am kinda radical leftist in my country."

친구들은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나 또한 일정 부분 농담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보면 꽤나 급진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 -진보와 보수의 구분- 이 특정 사회 내에서 사용될 때, 그 의미는 굉장히 상대적이다. 그런데 과연 내 친구들이 농담으로 받아들인 저 문장의 의미가 단순히 "상대적"이라는 개념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해본다.

왜 그들은 내가 꽤나 보수적인 가치 - 근대 부르주아적 가치, 그들이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위선적 가치 - 를 지향한다고 생각했을까? 실제로 나는 그들의 기준에서, 이 학문 공동체 안에서 보자면, "일정한 틀" 혹은 "객관적으로 조직된 체계"를 옹호하는 보수적 입장에 위치해 있다. 왜 일까? 나는 왜 그들이 넘어가고자 하는 기존의 틀, 체계, 조직, 형식을 원할까? 

다른 질문을 해보자. 나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 사회는 일정한 기준을 지닌, 객관적으로 조직화된 체계를 가져본 적이 있을까? 다시 질문을 바꿔보자면, 한국 사회는 서구적 근대를 -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경험하였는가? 서구의 근대성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체계적인 틀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지만, 모든 대상을 표상(Re-presentation)의 객체로 이해하는 전체성의 폭력을 낳게 되었다. 주체는 언제나 객체에 침투해 들어가야 하는 '인식'주체로서 일정한 틀에 포함되지 못한 여분의 것들을 살펴볼 여유를 상실하였다.[1]

[1] 하이데거는 이러한 근대성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근대 학문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인식행위(Erkennen)가 존재자의 영역 속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행위’로서 스스로를 정립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연구’(Forschung)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접근해 들어가는 행위는 대상 인식을 위한 열린 구역(Bezirk)을 필요로 하며, 이는 자연의 진행과정에 대한 인간 주체의 선행적 진입 - 특정한 밑그림 - 을 바탕으로 한다. 수리․물리학의 경우 이러한 근대 학문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나는데, ‘수학적인 것’(數, 타 마테마타)이 모든 자연과 대상을 ‘미리 알려진 것’으로서 인식 주체 앞에 표상시킨다. 다시 말해, 수리물리학은 수적으로 계산 가능한 영역 속에서 모든 자연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며, 표상의 확실성 안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 전체성의 폭력을 두 이념의 극단적 충돌이라는 모습으로 직접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지나가던 행인이었고,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외부자들은 그들의 체계를 이식하였다. 한국사회는 그들이 그들 사회 안에서 공유해 온 특정 개념들을 수용하였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무비판적으로 이식된 서구의 근대성은 결코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필연이 아니다. 고립된 주체로 부터 시작된 서구의 근대성은 각각의 개별자들에게는 기만적 체계였고, 이를 수용하지 못한 주체들은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채, 주변으로 떠밀리고 더 나아가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경험은 서구사회로 하여금 그들의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의 시발점이 되었다.

다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자면 나는 지금껏 부숴버려야 할 어떤 사회적 체계도 경험해보지 못 한 듯하다. 한국 사회가 지금껏 사회 체제라고 불러왔던 것들은 단지 소수의 사적욕망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끈임없는 비판적 상호충돌과 합의로 부터 도출된, 객관적으로 조직된 사회적 체계를 우리는 스스로 그려 본 적이 없다. (서구 사회도 그다지...이건 어쩌면 그저 환상?) 이 곳의 친구들은 그들 스스로 부숴버리고자 하는 사회 체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구별 안에서 용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와 그들이 겪은 역사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동일한 선상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 우열의 차이 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로 환원되기는 어렵다.

언제나 정치적 공방은 치열하다. 이것과 저것의 깔끔한 구분이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한다. 그 소속감이 개인들에게 일종의 희열감과 충성심을 불러일으킨다. 위험하다!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There are lots of people you can never talk with. They will never listen to you and never be rational. They will stick to their own dogmatic belief."

그래서 내가 말했다.

"Human being has never been rational actually, there is no such thing as reason. BUT I think we can still have a conversation."

5년 만에 들른 나의 나라는 어수선했다. 그 동안 이 곳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우리 사회는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희열감을 신중함으로, 소속에 대한 충성심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간신히 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작점을 스스로 만들 매우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사회를 갖고 싶은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진짜 대화가 필요하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글을 쓰지 않다.

지난 3년 간 난 어떤 형태의 글도 제대로 써 본적이 없다.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자해.

 광기와 폭력의 전체성 속에 매몰된 인간은 개별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하나의 진리로 환원되지 못한, 전체의 테두리 안으로 수용되지 못한 대상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진다. 이러한 폭력 속에서 개별자들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의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는 극단적인 전체성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 폭력은 전후 산업사회의 ‘물화’라는 또 다른 전체성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인간적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대체되는 현상, "소외"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모든 대상들은 주체에 의해 객체화 되고, 모든 객체를 하나의 틀 안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모두를 수치․수량화 시킨다. 이로 인해 진정한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개별자들의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주체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식’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의식이란 것은항상 ‘나는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욕구는 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 있는 존재자들을 객관적 세계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도록 강요하며, 결국 주체의 의식마저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폭력의 가해자 또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한 개별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군대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었다던 레마르크의 고백을 답습한다. 산업 사회의 포식자인 자본가 또한 자본 그 자체에 의해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이 자본가를 집어 삼키듯, 주체가 주체를 집어 삼킨다. 
 폭력이라는 행위는 대상을 상처 입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하려하며, 무엇을 해왔던가?

보통의 사람들.

"우선 우리들은 군대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부끄럽게도 간신히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

살육을 불러온 증오, 전체주의와 같은 광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누군가는 부동산 값이 오를 거라는 믿음으로 트럼프에게 투표를 하고, 누군가는 아무래도 좋으니 모두 엎어졌으면 좋겠다고 트럼프를 지지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들의 주변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원래 정신병자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악(惡)은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어서 아무렇지 않게 퍼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함께 파멸해 간다. 간신히 "하나의 인간"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마음에 관한 그녀의 말

M: "윤아야, 동생이 가지고 놀고 싶다고 하잖아."

Y: "아니야 이건 윤아거야. 아빠는 윤아 마음도 몰라!!"

청소에 관한 그녀의 말

M: "아침에 청소기 돌려야겠다."

Y: "청소 하지마. 또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지고. 도대체 청소를 몇 번하는거야!!"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우유에 관한 그녀의 말

Y: "오늘 우유를 그만 마셔야 할거 같아."

M: "왜?"

Y: "이러다가 송아지가 될거같아."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콧구멍에 관한 그녀의 말


M: "이제 코 좀 그만 파."

Y: "아빠도 할 일 있으면 하잖아!!"

S: "이제 코 그만 파고 자."

Y: "그러면 코딱지는 어떻게 하고!!"

M: "코 그렇게 계속 파면 되는거야? 안 되는거야?

Y: "코딱지가 있으면 팔 수도 있는거야!"

2016년 9월 3일 토요일

Asking Price.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뿌리내리지 못 할 곳에서 첫 직장을 얻었다. 여기서 사용한 "직장"이라는 단어는 지난 1년 동안 매일 비슷하게 반복된 내 시간들이 "돈"과 일종의 교환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정당한 교환이었는지, 또는 자기연민을 동반해야만 했던 불공정 거래였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난 돈을 벌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고, 적어도 그 책임을 회피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책임을 1년 동안 (아마도) 잘 완수했다.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이 일에는 계약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계약서에는 생소한 단어들이 즐비하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고 계약서를 대하면 알 수 있다. 상대방과 여러번 주고 받으며 수정된 이 계약서에 담겨진 것. 당사자들의 욕망이다. -"욕망"이 "필요"와 구별되는 바로 그 지점이 점차적으로 현실화 된다. - 물론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는 언제나 변호사가 개입한다. 매우 정제된 글을 통해 욕망을 보기 좋게 다듬는다. 그리고 이 때 대부분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기도 한다. 

나를 고용한 사람의 주된 욕망은 바로 이 "책임회피"다. 그의 이러한 욕망이 피고용인들에게 조직구성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상관없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속박은 직장을 얻는 대부분의 사람이 감수하는 부분이니깐.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 이 고용인의 책임회피 욕망이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Asking Price에 대해 재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지금 9월이 되었다. 내 앞으로의 삶을 다른 그 무엇과 교환해야 한다면 정당한 Asking Price를 책정할 필요가 있다. 

2016년 1월 1일 금요일

꽃잎

-꽃잎-

꽃잎은 의자가 된다
보고 있으면 투명한 살갗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얼마간의 세계가 있듯
우리가 앉지 못하는 연약한 의자도 있다
연약한 꽃의 입
불안한 입술이지만 붉은 빛
바람을 후 불면
날다가도 앉는다
그 바람에
꽃잎의
배가 불러온다

대기 순번.

느즈막히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대기번호을 받았다. 몇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난 번호를 받아들고 기다렸다.

2015년도 박사과정에 지원했던 때에도 대학원들 중에 나를 대기순번에 올려놓은 곳이 있었다. 학부에 입학할 때와는 다르게 번호는 없었지만, 대충 10명 정도를 순번에 올려 놓은 듯 했다. 4월 15일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지루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반갑지 않은 메일을 한 교수로부터 받았다. 구구절절. 위로와 응원의 말. You should be proud of yourself....blah blah blah.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남들에게는 이해를 구했다.

그 후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할지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화내기에도,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쏟아내기에도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멈췄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나를 던졌다. 난 그래서 이제 어떤 대기 순번을 받아들었을까?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없는, 남들의 이해를 구하지 않을 대기순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