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7일 화요일

(독서) 영속패전론 by 시라이 사토시(白井 聡) / 정선태 외 역

<영속패전론> by 시라이 사토시(白井 聡) / 정선태 외 

   
  "우리는 모욕 속에 살고 있다." (Emphasis Mine, p.21)

 도쿄 시민 집회, 오에 겐자부로가 나카노 시게하루의 표현을 인용하여 외쳤다. <영속 패전론>의 저자 시라이 사토시 또한 동일한 표현으로 자신의 저작 첫 문장을 시작한다. 참담하고, 슬프다. 분노하고, 암담하다. 그렇게 그들은 모욕 속에 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누가 그들을 모욕했는가?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의 밑바닥을, 전후 '평화와 번영'이라는 환상의 실체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저자의 냉정한 시선을 뒤쫓다 보면, 이미 기능을 다하고 죽은, 전후 체제의 껍데기를 지탱하고 있는 기만적 개념들을 마주한다. 

  • 종전 기념일
  • 전후 민주주의
  • 고유의 영토(한국, 중국, 러시아와의 영토 문제)
  • 전후 탈각 
  • 일억총참회 
  • 절대평화주의
  • 국체호지

 전전(戰前)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계승한 전후 일본 사회 정-재계의 권력, 그에 기생하는 학계와 언론계가 누리는 혜택, 이를 뒷받침하는 이중 구조의 모순(전쟁에서 패했지만, 우리는 결코 패하지 않았다.)은 바로 '영속패전'으로 귀결한다.  

다시 말해 '패전 후' 따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패전 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의미에서 직접적인 대미 종속 구조가 영속화한 한편, 패전 인식을 교묘하게 은폐(부인)하는 대부분 일본인의 역사 인식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패전은 이중 구조를 이루며 계속되고 있다. 물론 두 측면은 서로 보완하고 있다. 패전을 부인하므로 미국에 끝없이 종속되며, 대미 종속이 깊이 이어지는 한 패전의 부인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영속패전'이다. (p.61)

미국에는 패전으로 이뤄진 종속 구조를 한없이 인정함으로써 이를 영속화하는 한편, 그에 대한 보상 행위로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패배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패배의 부인'을 지속하기 위해 더욱더 미국의 졸개가 돼야 한다. 노예와 같은 복종이 패배의 부인을 지탱하고, 패배의 부인이 노예 행위의 보상이 된다. (p.88) 

 저자의 논증 과정은 매우 정직하고 냉철하다. 그리고 그 논증을 뒷받침하는 현실에 대한 해석은 날카롭다. 

현실적, 형이상학적 책임을 다루는 논의와 별도로 정치 차원의 명제, 즉 '일본은 패전국'이라는 사실이 있다. 단순한 사실인 까닭에 경제적 성공에 따른 국민의 만족감 고양이나 진지한 회환과 반성에 바탕을 둔 부전(不戰)의 맹세 같은 주관적 차원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Emphasis mine, p.57)

결국, 국가의 영토를 결정하는 최종 심판 단계는 폭력이다.즉 역사상 최근에 일어난 폭력(전쟁)의 결과가 영토 지배의 경계선을 규정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p.68) 

왜냐면 어떤 나라든 국가가 본래의 의미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본성은 악이고 타국이나 타 국민을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국가 정책은 애초부터 진보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검열로 통제받는 형태로 시작된 전후 민주주의가 정의의 기초나 전후 일본의 사상적 기반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전후 민주주의 개혁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던 사람들에게 에토가 퍼부은 비판의 핵심이다. (...)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 추구와 국내 사정에 따라 규정됐다. (p.134)

 지금껏 가까스로 지켜온 '평화와 번영'이라는 망상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전후는 이미 종착점을 지나쳤다. 결국 바깥 세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저급한 내셔널리즘임을 우리는 목도한다: 이해할 수 없는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집착, 미국을 향한 일방적 구애와 비굴한 저자세 외교. 이를 통해 유지하려는 아시아에서의 우월적(?) 지위(이 또한 허구에 기반한 자기기만일 뿐이다.).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시인하기 두려울 뿐이다. 전후 체제의 혜택을 누려온 이들의 몰염치와 방관자들의 비겁함이 빚은 허구가 그들을 짓누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욕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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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극우의 정신 구조(=자민당)를 이해하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한국 극우의 친미-친일 성향의 속사정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면,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독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by 박민규 (표절)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by
박민규 (표절)

 표절. 작가로서 뼈아픈 고백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부끄러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박민규 작가가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뒤늦게 표절을 인정한 후로는 작품 활동을 안 하는 듯하다. 그래도 신경숙씨와는 다르게 그는 나름(?) 깔끔하게 인정했다. (사실, 신경숙씨의 표절에 비하면 '참고' 또는 '변용'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표절은 표절이다.) 

표절을 하고도 박사 학위를 떡-하니 받는 나라에서, 그 학위로 교수가 되기도, 경력을 쌓다 보니 영부인이 되기도 하는 나라에서, 한 명의 작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은 아닐까?' 라는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적어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라면 그 부끄러움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오래전, 작가의 표절 인정 훨씬 이전에, 친구 '완'이 선물로 준 책이다. 무렵에는 꽤나 심오한(?) 주제의 책들을 탐독하고 있었기에, 대충대충, 낄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페이지를 가볍게 넘겼다. 시간이 흘러 흘러, 서울 부모님 댁 책장 위에서 잠들어 있는 이 책을 들고 바다 건너 먼 곳까지 데리고 온 이유는 아무래도 친구의 선물이기에, 다시 한번 제대로, 고개를 끄덕끄덕, 여전히 낄낄, 경쾌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던 까닭은 나에게도 시간이 넘치도록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표절은 표절이다.

 경쾌하고 재기가 넘치는 문장을 통해 삶의 한 단면을......

 그래도 표절은 표절이다! 

 아무래도 추천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감상평도 남기지 않는다. 안타깝다. 큰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여, 계속해서 이 표절작의 개정판을 내고 있는 한겨레 출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표절을 인정한 작가 본인의 요청은 아닐 것이다. 삼미가 떠난 세상, 프로들의 전략은 이토록 낯 뜨거운 것인가?
 
뉴욕에 사시는 분들 중 이 책을 읽고 싶으신 분에게는 빌려 드리겠습니다. 구입하지 말아주세요. 

2022년 11월 13일 일요일

New York City 24: Art_Jean-Michel Basquiat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우연히 정착(?)하게 된 뉴욕, 다양한 얼굴을 지닌 도시. 

뉴욕의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두 명,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바스키아가 공유하는 이 도시의 정서는 무엇일까? 

서로 다른 질감의 작품과 서로 다른 온도의 시선. 

오늘은 바스키아의 작품을 만났다.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Jean-Michel Basquiat: King Pleasure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Y & J's Toy Store at Astoria Park, NYC

Y & J's Toy Store at Astoria Park, NYC

Y & J's First Business

They've sold 3 items. 

One origami Ninja star and Two keychains sold; they've earned $3!!!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그의 경고

Warning from J.

 No adults allowed.

 방문에 붙어 있었다.

2022년 9월 27일 화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9.2022: 레스(Less) by 앤드루 숀 그리어; Andrew Sean Greer / 강동혁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9. 2022


<레스; Less> by 앤드루 숀 그리어 / 강동혁 역

 '세상 모든 책은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아주 오래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글과 그 글의 모든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무엇에 관한 사랑이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 무엇을 사랑해야 한다. 너무 성급한 결론일까? 

 책의 표지 만큼이나 경쾌하고 상큼한 사랑 이야기를 - 동시에 주인공 아서 레스의 삶에 깃든 지적 통찰을 엿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 기대하며 <레스>를 읽는다. 50세가 되기 직전 사랑이 떠나간다. 프레디가 결혼 소식을 전한다. 레스는 도망치듯 세계 일주를 결심한다. 칭송받는 천재 시인 로버트의 애인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의 소설 <칼립소>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그간 미루어두었던 온갖 초청에 응한다. 결혼식에 가지 않기 위해서. 

뉴욕 - 멕시코 - 이탈리아 - 독일 - 프랑스 - 모로코 - 인도 - 일본 -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인 레스는 불안하다. 자기 소설에 대한 확신도 없다. 여전히 사랑에는 서툴고, 독일어는 형편없다. 사실 우리 모두가 레스다. 우리는 불안하다. 현재의 삶에 확신이 들지 않고, 사랑에는 갈팡질팡한다. (뉴욕에 사는 나의) 영어는 형편없다. 

 화자의 시선이 레스의 여행을 따라간다. 그의 사랑, 그의 곁을 스쳐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삶이 그러하듯 사랑은 때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들고 그의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의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걸 다들 알잖아. 사랑을 그렇게 두려운 게 아니란 말이야. 사랑은 씨발, 다른 사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개를 산책시키는 거고 세금을 내는 거고 악감정 없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거야. 삶에 동맹을 두는 거라고. 사랑은 불이 아니고 벼락도 아냐. 사랑은 그녀와 내가 늘 해왔던 그런 거 아냐? 하지만 그녀가 맞는 거라면, 아서? 만약에 시칠리아 사람들이 맞다면? 그녀가 느낀 게 이 땅을 모두 박살 내는 어떤 거였다면?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거. 넌 느껴봤어? (p.212)

 로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네 삶에서 벗어났다는 건 알아 / 하지만 내가 죽는 그날엔 / 네가 울게 되리란 걸 알아. (p.269) 

 그 무엇을 받아들이든, 레스는 여전히 순진하리라. 샌프란시스코 그의 집에서 기다리는 프레디와 함께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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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며 생각한다: "뭐야 이거? 뭐 이딴 식으로 글을 썼어?" 

 결국 원서를 찾아 읽는다. 재기 발랄한 문장이 넘쳐 흐른다. 작가의 재치(?) 있는 글이 넘쳐 흐른다. 작가의 재능(?)이 넘쳐 흘러서 내용을 진부하게 만든다. 

 어디까지나 감상평은 주관적이지만, 누군가 '퓰리처(풀-잇-서라고 읽든 뭐든)상을 받을만한 책인가?'라 묻는 다면: "그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헤밍웨이는 받았던 상을 반납할 듯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를 짚어본다: 번역!! 성의 없는 번역!!

 산뜻해야 할 문장이 산만해진다. 작가의 개성이 넘치는 (뭐든지 너무 넘쳐요!) 문장이 철학과 석사 1년생의 겉멋 들어간 글로 탈바꿈한다. 일관성 없는 번역에 실망하고, 비문의 향연 속에서 좌절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책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 디자인
  • 유명 문학상이 부여하는 그럴듯한 권위
  • 이를 종합할 수 있는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

 이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본다. 그 누구도 사랑의 본질에 대한 위대한 탐구, 또는 사랑에 의한 삶의 구원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단순했다. 단지 스무 살 시절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On Love; Essay in Love>의 톡톡 튀는 감성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인내심을 갖고 마지막 장을 덮는다. 옮긴이의 말도 읽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실패할 때도 있는 거야. 다시 돌아오면 되지 뭐! 레스의 여행이 그러했듯이."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Saul Kripke (1940-2022)

Saul Kripke (1940-2022)

Saul Kripk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nalytic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has died.

Saul Kripke (1940-2022)

Professor Kripke was well-known for his work in philosophy of language and logic, with his Naming and Necessity, the book version of lectures he delivered at Princeton University in 1970, widely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works of 20th Century analytic philosophy. An overview of his influential work can be found here and a list of his publications can be viewed here.

At the time of his death, Kripke was Distinguished Professor of Philosophy and Computer Science at CUNY Graduate Center. From 1977 to 1998 he was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Princeton University. Prior to that, he held positions at Rockefeller University, Harvard University, and Princeton, and even before he earned his BA from Harvard in 1962, he taught courses at Yale and MIT. He held many visiting positions around the world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including at Cornell University, UCLA, Oxford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Utrecht, and Hebrew University, to name just some of them.

A 1977 New York Times article about Kripke’s life and career up to that point, and his reputation as a genius, conveys his standing at the time, at least among some philosophers:

Kripke’s potential, his controversial views and his position as [a] budding genius in world analytic philosophy have combined to make him a man who inspires awe and excitement among philosophers. In fact, he has already become something of a cult figure in philosophical circles—gossiped about, studied, analyzed and claimed as a kindred mind. Some philosophers lose their reserve when speaking of him. The cult phenomenon is itself remarkable, for philosophers as a group have such large egos that they correct Aristotle as they would a schoolchild, and they have such a healthy sense of skepticism that they doubt whether such things as proper names exist. Even in groups of two or three, they lace their conversation with exit clauses and qualifiers to guard against having a trapdoor sprung under some private reality. They do not, in short, subordinate or let go of themselves easily, and yet Kripke has been known to bring to their brain‐twisting conclaves the atmosphere of an early Beatles concert.

A 1996 Lingua Franca article by Jim Holt looks at some of the controversial aspects and upshots of Kripke’s reputation.

Among his many honors were the 2001 Schock Prize in Logic and Philosophy from the Swedish Academy of Sciences.

He died on September 15th.

Reference: 

https://dailynous.com/2022/09/16/saul-kripke-1940-2022/

 전공자(분석철학 전공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철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가 아니어도, 철학을 공부한 사람(학부 전공자를 의미합니다!)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학자가 세상을 떠났다. 나 또한 전공자가 아니지만, 그의 철학에 대한 짧은 논문 정도는 읽어봤을 정도다. 물론 나는 그에 관한 흥미로운- 천재로서, 괴짜로서 -일화에 더 관심이 있긴 했지만. 

 2022년. 뉴욕시는 당대의 철학자들과 작별 중이다.

Richard J. Bernstein (1932 - 2022)

 Richard J. Bernstein (1932-2022)

Richard J. Bernstein (1932-2022)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났다. 여름이 시작할 때였다. 이제 가을이 되었다. 

 수년 전, 수업이 끝난 밤 9시 가을 밤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기억난다. 집에 가는 지하철 역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그와 나누는 짧은 대화가 좋았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는 Richard Rorty의 철학에 관한 짧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프래그머티즘과 한나 아렌트 철학과의 유사성에 대한 대화였다.   

이런 저런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슬픔과 존경을 담아 작별 인사를 남긴다. 그의 책 <The Pragmatic Turn> 한쪽 구석에 받은, 젊은 철학도에게 남긴 그의 짧은 응원을 여전히 기억한다. 

To Michael "A fellow admirer of pragmatism." Richard J. Bernstein


(Reference)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독서) 파랑새의 밤 by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 송태욱 역

<파랑새의 밤> by 마루야마 겐지/송태욱 역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마주한다. 글의 몸짓, 글의 숨소리, 글의 표면, 글의 무게, 그리고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듯 써 내려간 그 글의 기세를 쫓아 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55세. 이혼. 퇴사. 당뇨병. '나'는 개인으로서 죽기를 바랐지만, 결국 다다른 곳은 그의 가족을 집어삼킨, 그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고향, 가자무라다. 도망치듯 도시로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의 인간으로 출세를 향해 나아가던 그의 인생 속 단 한순간도 돌아오리라 생각지 않았기에, 결코 잊을 수 없던 곳. 가키다케 산이 내려보는 폐허, 고향 집 앞에 그가 서있다. 

 15년 전 이곳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한 여동생의 시체를 보았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무고한 이에게 참담한 짓을 저지른 동생은 도망 중이다. 일련의 사건에 낙담한 어머니는 극약을 먹고 고통에 몸부림 치다 죽었다. 남들의 삶에 무관심하던 아버지는 5년 전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안도한다. 행방을 알 수 없던 동생이 고향 집에 돌아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주었다. 녀석을 흉가가 되어버린 고향 집과 함께 태워버린다. 

 누이의 죽음. 아우가 저지른 어긋난 복수. 충격적이고 잔인하지만, 단순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가 처한 현재의 상황도 지극히 평범한 삶의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이면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제와 지레 짐작할 뿐인 저마다의 이유와 의미가 뒤엉켜있다. 인생은 단순하지만 인간은 의문으로 가득 차있다. 그 의문을 파헤치는 일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일까. 

 그는 죽으려 했다. 홀로 깊숙이 땅을 팠다. 스스로 죽을 자리를 만들었다. 가족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 만의 죽음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운명이 그의 발걸음을 돌려놓는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여름의 끈적한 바람이,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친 달빛이, 강 건너 맞은편에서 들려온 풀피리 소리가, 한밤 중 도롱이벌레처럼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이 모든 것이 그의 무기력했던 삶에 운명을 덧붙인다. 그리고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파랑새의 울음이 그의 운명에 확신을 준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야 한다.'

내가 저주해 마지않는 것은 누이나 그 밖의 몇몇 아가씨에게 독수를 뻗친 성범죄자 자체가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바로 아무 일 없이 이대로 끝나고 마는 내 처지다. (p.608)

 태풍이 휘몰아친다. 녀석을 마주하고 깨달았다. 녀석은 죽고 싶어 한다. 죽임을 당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녀석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놀란다. 진정으로 죽고 싶다는 것은 운명을 파헤쳐 보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너 대신 죽어주지!" (p.658)

 자신의 운명을 '나'에게 맡긴다는 듯이 녀석은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고, 난폭하게 변한 강물과 토석류가 녀석의 몸을 앗아간다. 녀석의 운명이 '나'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자애를 베푼 것이다. 

 이제 다시 홀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닥쳐온 운명을 마주했고, 더 이상 꺼릴 것 없이 고향 땅을 밟고 서있다. 강을 타고 흘러오는 바람을 들이켜고, 떠나간 이들의 안식이 빚어낸 흙을 손에 쥔다. 무너졌다 여겼던 자신의 삶을 다시 살 수 있으리라.

자아, 나가자. 마음 내키는 대로 들판을 떠돌아다니며 다시 멋진 단독 행동을 실컷 즐기자. 그리고 부침 많은 일생을, 화복(禍福)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이 세상을 마음껏 즐기자. 하지 않는 것이 무난한 일 같은 건 이제 하나도 없다. (pp.670-671)

다시 파랑새의 밤이 시작되었다. 파랑새는 모든 원죄를 대신 떠맡아줄 것 같은 소리를 산들에 메아리치게 한다. 오보레 강의 수면에 비친 나는, 아름답고 맑게 갠 하늘을 운행하는 별들보다, 그리고 반딧불이보다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pp.677-678)

2022년 7월 31일 일요일

파란 고양이

Y: "Daddy. He's such a wise blue cat."

A wise blue cat = Doraemon

2022년 6월 21일 화요일

한국은 덥군요.

1. 한국에 왔다. 덥고 습하다. 부모님이 아이들을 반겨주신다.

2. 많은 이들이 보고 싶지만, 가족들, 특히 양가 부모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목표다.

3. 다시는 Air Canada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예매 이후 반복되는 일정 변경. 토론토 공항 1시간 30분 환승 타임, 뉴욕에서 1시간 연착, 환승을 위해 죽도록 뛰었다. 뉴욕에서 캐나다 갈 때나 타야겠다.

4. 긴 비행 시간이 힘들었지만, 도착 후 집을 둘러보니 피곤함이 가신다.

5. 할 일이 많다. 우선 PCR 검사를 3일 이내에 받아야 한다. 은행 계좌 정리와 전화 번호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온라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번호가 필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6.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Y와 J는 현지 시각 오전 4:30 <Home Alone 2>를 감상 중이다. 

7. 한국에는 터널이 많다.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여행을 다니며 터널을 지난 적이 없는 듯 하다. 

2022년 6월 10일 금요일

(독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Lady Chatterley's Lover by D.H. 로렌스(D.H.Lawrence) / 이인규 역

<채털리 부인의 연인> by D.H.로렌스 / 이인규 역

<채털리 부인의 연인> by D.H.로렌스 / 이인규 역

   탄광 산업도 조금씩 쇠퇴해가는 시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영국 전역을 뒤덮었다.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굉음을 내뿜는 마을, 탄광에서 나와 허물어져 가는 잿빛 마을로 향하는 인부들, 그 인부들의 지친 발걸음 만큼이나 생기 잃은 여인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세당한 인간들이 스스로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콘스턴스(코니), 클리퍼드, 맬러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p.1) 많은 이들은 시대의 비극 속 깊숙이 가라앉았고, 어떤 이들은 자기 안위에 머물며 이 비극적 시대를 외면하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비극적인 시대 속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품어내려 발버둥 친다.
  
  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를 잃은 클리퍼드는 라그비의 대저택 안에 움츠러들었다. 자신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탄광 사업만이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표다. 그래서 그는 집착한다. 자신이 소유한 것들에, 그의 아내 코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둘 사이에 이루어진 결혼 생활의 지속에 집착한다. 동시에 그는 경멸한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그들 스스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경멸한다. 집착과 경멸. 이 두 반응은 불모의 몸이 되어버린 그의 무의식적인 발작이다. 사실 클리퍼드는 알고 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숭고한 결혼 생활에도 육체의 쾌락과 환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싱싱한 삶의 생명력은 탄광 노동에서 얻은 몇 푼의 돈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외면한다. 공허한 자신의 삶에 안주하며.

 코니는 숲으로 향한다. 텅 빈 말과 위태로운 연극 무대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만질 수 있는 관계를, 진정한 애정을, 움트는 생명을 원한다. 그렇게 그녀는 살아있기를 원한다. 숲을 거닐던 그녀가 마주한 맬러즈의 야윈 몸, 응축된 생명력을 발하는 그의 단단한 육체가 그녀를 뒤흔들었다. 조심스러운 냉소 뒤에 숨겨진 세상을 향한 그의 애정이 그녀를 다그친다: '당신은 살아있나요?' 
 그와 나눈 몇 차례의 섹스가 점점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낯선 애정이 그녀의 생각과 몸을 휘저었다. 맬러즈의 단단한 남성이 닫혀있던 그녀의 몸에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웠다. 그녀의 몸은 부드러워졌고,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의 사투리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 
 약간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로 하여금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이성과 수치심 따위를 모두 내던진 순전한 관능이 그녀를 뿌리까지 뒤흔들었고, 그녀의 마지막 속살까지 완전히 다 벌거벗겼으며, 마침내 그녀를 완전히 다른 여자로 태어나게 했다. 그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었다. 육욕의 탐닉도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롭고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영혼을 활활 불살라버리는 관능의 불꽃이었다. (p.163)
 그 짧은 여름 밤 동안에 그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여자가 수치심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 대신 오히려 그 수치심이 죽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수치심은 바로 두려움이었는데, 우리 몸 깊숙이 유기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그 수치심이, 다시 말해 우리 육체의 뿌리 속에 깊이 웅크리고 있어 오직 관능의 불에 의해서만 쫓아낼 수 있는 그 오래디오랜 육체적 두려움이, 마침내 남자의 남근에 의해 일깨워지고 추적당해 쫓겨나고 만 것이며,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밀림 바로 한가운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pp.164-165)
 섬세한 눈길로 등장인물들을 살펴본다. 이토록 예민하게 대상을 살피는 문체는 오랜만이다. 문학의 힘은 무엇인가? 안정된 것을 불안하게 만든다.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고, 그 안의 속살을 감싸 안는다. 작가의 시선은 세상에 맞선다. 세상에 맞서는 이들을 지켜본다. 차분해진 호흡 속에서 작가의 문장이 시선을 옮긴다. 흔들리는 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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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게,

 별로 길지 않은 분량은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해주세요. :) 

2022년 6월 2일 목요일

New York City 23: Books for Kids_Who Would Win? by Jerry Pallotta / Rob Bolster (소개)

 (Y와 J가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Who Would Win?> by Jerry Pallotta & Rob Bolster

 아이들, 특히 사내 녀석들을 자극하는 그 물음: 누가 이길까? 

 책 제목과 표지만 보면 그저 그런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 속은 꽤 알찬 정보로 가득하다. 각 동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기 쉽고 재미나게 설명하고 있다. 싸움의 승패도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4~6세)에게 강력 추천한다. 단,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이 싸움에 지게 되면 슬퍼할 수도 있다. 

 도대체 레드 팬다는 왜 싸움에 출전했던 것일까? :)

2022년 5월 24일 화요일

(영화) NYPL Korean Book Club 05.2022: The Florida Project;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by Sean Baker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5.2022

<The Florida Project> by Sean Baker

 Moonee, Halley, Bobby, Ashley, Scooty, Dicky, and Jancey near Disney.

 좋은 영화다. 해석을 위한 이론적 틀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차분히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있다.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여행) Paris, France 2022, 여덟

 23, Sat.

: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 Lunch at Bonjour Vietnam - 오를리 공항(Orly Airport)


 마지막 날. 파리에 온 이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방문해야만 하는 곳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Musée du Louvre, Paris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유리 피라미드가 길을 안내한다.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유일하게 줄을 서서 구경하는, 독립된 공간에 그녀가 있다. 모나리자! 줄이 너무 길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보면서도 '이게 과연 진품일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30초 정도 짧게 보고 재빨리 사진에 담는다.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궁전으로 사용되던 예전의 고풍스러운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

Musée du Louvre,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수 많은 작품들을 모두 볼 수는 없기에, 몇몇 유명 작품들을 둘러보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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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합류해 마지막 가족 식사를 마치고 파리 길거리 구경을 한다. 

Streets, Paris

Streets, Paris

Streets, Paris

Streets, Paris

Streets, Paris

 철학자 데카르트가 살았던 집.
 
 저녁 비행기.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 오르고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권여선 작가의 <레몬>을 다 읽고, 영화 한편을 보니 밤 11시가 다 되어 뉴욕에 도착했다. 

 프랑스 여행 끝. 

(여행) Paris, France 2022, 일곱

 22, Fri.

: 몽수히 공원(Parc Montsouris) Lunch at Bistrotters (Modern French Restaurant) - La Grande Epicerie de Paris; Le Bon Marché. / Y & J 동네 놀이터


 아이들은 고모 & 고모부와 함께 놀이터로, 아내와 나는 한가로이 파리 길거리 구경하는 날.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가는 길, 동생의 추천으로 몽수히 공원(Parc Montsouris)에서 산책을 하기로 한다. 
 노면전차(Tram)를 탔다. 운행 도중 3~4명의 평범한 차림새의 사람들, 숨어있던 전차 안의 군기 반장, 그들이 완장을 꺼내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완장을 찼다.) 그들은 사람들이 요금을 제대로 지불했는지 일일이 검사하기 시작했다.

Parc Montsouris, Paris

Parc Montsouris, Paris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 여럿이 모여 운동하는 사람들, 풀밭에 앉아 책 읽는 청년. 시민들을 위해 조성된 공원이라서 그런지, 파리 시내의 유명 공원들과 달리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공간이다. 아늑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Bistrotters, Paris

 Bistrotters.

 프랑스 요리에 약간의 변주를 가미한 메뉴. 주문하기 전 요리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메인 요리 중 하나가 소의 목 울대 부위 요리인데, 맛이 강하다는 조언을 해준다. 아내의 과감한 선택, 소 울대 요리를 선택하자 친절한 직원이 다시 한번 묻는다: "괜찮겠어?" 

 서로 다른 메뉴를 선택해서 맛을 보기로 한다. 
  • 전체 요리: 문어 구이 & 소고기 타타키
  • 메인 요리: 소 울대 구이 & 삼겹살 요리
  • 디저트: 프렌치 토스트 & 코코아 소르베
 <전체 + 메인>의 양이 충분하다. 맛은 있지만, 다 먹기에는 무리일 수 있으니 디저트는 생략하시라! 

Le Bon Marché, Paris

  점심 식사 후, 동생이 추천해준 고급 식료품점, La Grande Epicerie de Paris로 향한다. 식기류, 요리 도구, 다양한 식재료 등을 판매하고 있다. 값비싼 요리 도구들을 구경하니 나 홀로 흡족한 마음이 든다. :)

 충분한 눈요기 후에 식품관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백화점, Le Bon Marché로 향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핑크 뚱땡이가 반겨주었다. 한참을 구경하며 아내에게 마음에 드는 트렌치 코트나 자켓 하나쯤 사라고 했는데도, 맨손으로 백화점을 나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성화(?)를 낸다. 다시 발길을 돌려 백화점으로 돌아간다. 방금 전 아내와 함께 구경했던 매장으로 가서 찾아본다. 베이지 색의 깔끔한 트렌치 코트 발견. 구입 완료! 
  
 아내여. 어차피 자네가 벌어 온 돈이지만, 고마운 마음 잊지 마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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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도 고모부 & 고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하다. 엄청 긴 미끄럼틀을 내려와 엉덩이 방아를 찢는 아이의 영상을 보며 함께 웃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저녁 시간,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