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1일 월요일

머쓸(muscle)에 관한 그의 말.

Y: "엄마~빨리 와. 나 자고 싶어. 내 옆으로 와."

J: "누나야. 왜? 무서워?"

Y: "응"

J: "그러면 내가 지켜줄게. 걱정마."

Y: "넌 너무 작아. 넌 힘도 약하잖아."

J: "내 머쓸(muscle) 만져봐."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청춘 - 첫사랑

내 첫사랑은 남들보다 훨씬 더디게 다가왔다.

늦게 찾아 온 나의 첫사랑은 두명이었다. 그녀들은 서로 너무나 달랐지만, 난 둘 모두를 사랑했다.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은 뜨겁다기 보다는 따뜻했다. 충분히 따뜻했기에,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에게 첫 사랑이다.

A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가늘게 움츠러드는 눈매의 끝이 그녀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오며 마주쳤던 그녀와의 첫 인사는 조심스럽고 수줍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귀여웠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움츠러들었고,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들이 애틋했다.

반면, B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곧은 눈썹은 정직한 인상을 주었다. 맑은 얼굴 빛과 둥그스름한 콧등이 그녀의 얼굴에 섬세함을 더했다. 그녀의 첫 인상은 단정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미소는 천진난만 했지만, 그녀의 정직한 입매는 어른스러웠다. 

A와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때로는 손을 마주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걷는 모양새가 좋았다. 조근조근한 말투가 사랑스러웠고, 내 손 안의 작고 따뜻한 그녀의 손이 덜컹거리는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언제나 망설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이대로의 시간만으로도, 이 정도의 간격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기에, 나는 그녀와의 작고 조심스런 순간들이 불안하면서도 소중했다. 어린 아이가 남들의 눈에는 별거 아닌 작은 물건에 온 마음을 다하듯, 그녀와 함께 옮긴 걸음걸이마다 간절했던 내 뒷모습을 조용히 남겼다.

B는 자신의 생각을 쉬이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와 태도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곧은 사람인지. B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했다. 그녀와 공연을 가고, 연극을 보았다. 그녀의 생일에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소중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연인 보다는 가족이었으면 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뒤돌아보면, 맑은 날의 햇볕 냄새가 배어든 이불을 덮는 기분이 든다.

그녀들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숨겨진 부분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내 첫사랑의 모습이 그녀들에게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녀들을 사랑했노라 말해도 될런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들은 또 어떻게 오늘 하루를 보냈을까?'

또 묻고 싶다.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내가 사랑할 당신은 오늘도 안녕한지요?'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타임아웃에 관한 그녀의 말

Y: "자. 아빠가 아이스크림도 준다고 했지. 빨리 치워야해."

J: "......"

Y: "난 여기 앉아서 있을거야. 이제 너도 혼자 잘 치운다는 걸 나한테 보여줘."

J: "......"

Y "너 타임아웃이 뭔지 알아?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 안 듣는 아이들한테 앉아 있으라고 하는거야. 너도 안 치우면 동영상 못 보고 앉아 있을거야."

J: "......"

Y: "자. 이제 나한테 보여줘. 너도 잘 치운다는 걸."

2018년 5월 8일 화요일

화산에 관한 그녀의 말

M: "아이구~그걸 그렇게 하면..."

J: "......."

M: "이 짜식아. 아이고 이 화상아."

J: "......"

Y: "아빠. 쟤는 Volcano야. Lava야."

J: "......"

2018년 5월 3일 목요일

청춘 - 새내기

봄이 되지 못한, 그래도 봄이라 부르는 겨울.

늦게나마 입학한 대학교의 첫 인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몇몇 선배들의 이야기 - 대부분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한탄, 설교 -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술이나 마시자'라는 끝맺음이 봄학기의 첫 일주일을 채웠다. 수십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들은 재차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모두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 학번과 이름을 교환하고나면 그들은 정리되지 않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다. 어떤 이는 술을 마시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어떤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읽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그 많았던 술자리에서 그들이 무엇으로 그 시간을 메꾸려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의 시간이 버거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은 이유없이 불안했다. 아니다.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기에 불안했다. 이유없이 주어진 시간은 그 나이 또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문대 학생들의 과방 앞에는 아침마다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배달되었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선배들은 다음 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은 그대로 버려졌고, 자기 몸뚱아리조차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그들이 그날 저녁 다시 과방에 모여 전태일 평전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또래의 청춘들은 자신들의 젊음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복잡해진 세상은 그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해진 그들은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껏 다른 누군가가 해왔다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튕기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시위에 나갔다. 누군가는 도서관을 헤매고, 누군가는 술자리에 나가고, 누군가는 또 다시 학원에 갔다. 바깥 세상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있었고, 성급하게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로 보상받았다. 그 모두를 의심하던 이들은 한발짝 뒤에 서서, 조용히 청춘을 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그들 탓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그들은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은 그들을 청춘이라 불렀다.

이듬해 새로운 새내기들이 입학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피했지만, 꼭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도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를 하였다.

"oo 학번의 ooo 입니다. 저는 oo에 관심이 있고, oo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한 어느 신입생의 자기소개가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서 거북스러웠다. 겨우 두번 째 봄학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도 무엇인가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 무엇에도 확신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옆 자리의 친한 동생 녀석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했다.

"우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세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거 같아요."

그 무엇이라도 용서받을 줄 알았던 청춘이라는 시간은 아름다웠고, 또 혼란스러웠다.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기에 버거웠고, 지금껏 기다렸기에 공허했다.

손 끝에서 잠시 느낀 봄, 겨울과 여름이 지워버린 그 잠깐의 시간이 청춘이었다.

                                                                   -나무가 되어 떠나간 녀석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