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1일 월요일

(독서)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글을 쓴다면 이런 질감일까? 아니. 반대로 제임스 설터가 그림을 그렸다면 호퍼의 작품과 비슷한 색감을 품었을까?  

 삶은 건조하고, 빛 속에 어둠이 있다. 삶은 생소하지만 피할 수 없고, 필연과 우연은 겹쳐져 있다. 사랑은 한 발자국, 때로는 한 뼘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떠나간다.

- 봐요, 저녁 할 수 있어요?
- 아, 달링, 그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약혼했어.
- 그렇군요. 축하해요. 그녀가 말했다. 몰랐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말이었다.
- 정말 잘됐네요.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를 보고 웃었지만, 그 웃음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는 오랜 커플처럼 그녀와 나란히 클락스에 걸어 들어가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pp.178-179, 플라자 호텔 中.)

 건조한 필체로 삶을 관조하는 작가들이 있다. 제임스 설터는 그의 짧은 글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은밀한 구석을 들여다 본다. 주변의 삶에 관여하지 않은 채, 대상들과 거리를 둔 채, 그렇게 그는 우리 모두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담담하게 삶을 바라본 다는 것은 그 뒷모습 의 순간들마저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남성적이고 건조한 문체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글은 섬세하다. 마치 호퍼의 그림처럼.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1.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1. 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슬픔이라는 주제,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슬픔에 대한 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빛깔을 발하고 있다.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슬픔(1부), 소설(2부), 사회(3부), 시(4부), 문화(5부). 그리고 각각의 주제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은 글에 드러나는 작가의 진솔함에 있다. 
 
 나는 사실 신형철이라는 비평가/작가를 잘 모른다. 이는 아마도 부끄러운 고백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읽었던 많은 시집들, 도서관 한 쪽의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고서 읽던 문학 잡지들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나는 그의 글을 잘 모르고, 따라서 그를 잘 모른다. 물리적 공간의 변화가 읽고 쓰는 문자의 교체로 이어져 버렸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알고 있다.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글을 읽으며, 그 안의 진솔함을 발견한다. 

 작가 신형철의 글들은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맞서 일어서야 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특히 시에 관한 글들이 가장 좋았지만,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 속에 녹아있는 연민과 애정, 부끄러움과 연대의 마음을 읽으며 작가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음 글들을 통해 그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물은 언제나 아름답다. 다른 시에서는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놀라운 직유들을 그는 어린아이가 과자를 흘리듯이 한 편의 시 안에 아무렇게나 흩뿌려놓는다. 그가 제아무리 헌신적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의 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존경하기만 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에 질색하고 시에서 그 가치를 수상쩍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얻은 것들에 조금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시는 세계와 싸울 때조차도,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과 함께 싸워야 한다. (pp.301-302, 시의 천사-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왔고 내 말이 글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해왔다. (pp.429-430, 문학에 적대적인 세계 .)

 책에 대한 약간의 투정을 부려본다면, 짧은 호흡의 글들이 산만한 인상을 준다는 정도다. 글 모음 책이 갖는 형식의 한계이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형철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와 마주 앉아 그의 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안녕 2022년.

 2021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나는 2022년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곳의 시간은 매우 순차적이고, 불가역적이며, 선형적으로 흐른다. '시간은 필연적/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아무튼, 다들, 별 다른, 눈에 띄게 새로운 희망 없이도 새해를 반겼고, 숫자를 매겨보니 이제 2022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팠다. 2021년의 끝을 아픔으로 마무리하고 그 아픔을 강제 인수 당한 채로 2022년을 시작했다. 운 좋게 피할 듯 했던 COVID-19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철저한 마스크 사용과 규칙적인 손 세정, 최첨단 백신이라는 두터운 벽을 뚫어낸 녀석의 침투에 감탄할 수 밖에. 

 저렇게 끝내버린 2021년 안녕. 이렇게 시작한 2022년에게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