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5일 금요일

나무가 되어 떠나 간 녀석.

1. 대학에 들어가 처음 집어든 철학은 쇼펜하우어. 서른여덟 가지 방법으로 논쟁을 이끌고 싶었다. 이걸 익히고 나면 주눅 않고 시간을 넘겨보자는 생각이었지만, 논쟁이 될 수 없는 것은 이길 수 없었다. 당시 한번도 누군가의 숨결을 구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나를 벗어난 것들에게 매해 합의서를 썼다. 어찌 보면 젊음은 심리(審理)였고, 추궁의 곁가지와 같은 모습이었고, 꿈은 오히려 내가 무의식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온갖 거짓들이 매번 또렷한 모습으로 자신들은 거짓이 아니라 할 때에, 차라리 그 꿈이 딱딱하기를 바랐다.

2. 10년이 더 지났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디며 살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이 너무 무거웠다. 2006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우리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새벽 시간을 지우고 있었다.

"형, 그거 알아요.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나는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

"너무 힘들면 누구든 탓해. 먼저 네가 편해져야지."

누구도 탓하지 않았던 녀석은 대신 자신의 젊음을 탓하며 며칠 후 나무가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절을, 새벽의 시간을 나와 함께 지우듯 지워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녀석이 보고 싶다. 더 이상 젊음의 무게를 탓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어찌 되었든 나는 견뎌내며 살고 있다.

3. 나는 이제껏 삶에 적당히 온순했다. 그러나 진심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 5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고, 내가 모르고 지냈던 각자의 삶을 들려주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저녁을 사주었다. '녀석도 함께 였더라면......'라는 생각이 그날의 새벽을 지워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