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관한 여행책자들은 많다. 그리고 뉴욕여행에 관한 블로그 자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의 여러 모습들과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뉴욕에 산다. 가로와 세로 방향의 단순한 길들이 차례차례 엇갈리며 만들어진 이곳의 빛깔은 다채롭다. 사람들의 복잡한 속사정들이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한편의 훌륭한 이야기처럼, 여러 갈래의 길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이 도시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매끈한 삶이 있고, 고단하고 처량한 삶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우연히 삶의 작은 조각을 나와 함께 공유했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에서 대학원 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도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뉴욕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나의 삶을 채색한다. 고맙게도 그들의 상상 속에서 그려진 뉴.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삶.은 풍요로운 빛깔들로 반짝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환상으로 채워진 삶이기 때문에, 그 한명의 철학도는 그들에게 뉴욕을 소개해주며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다. :)
1. 70대 아버님.
한국의 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아버님께 뉴욕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고. 아버님은 음식을 조심하셔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아버님의 첫 인상이 좋았다. 가벼운 인사 속에서 느껴지는 배려가 좋았다.
"마이클씨는 가이드가 아니야, 큰아버지하고 즐겁게 뉴욕 여행 한다고 생각해."
어른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느껴진다. 아랫사람에게 말을 놓고 정겹게 대하면서도 배려가 있고 정중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한국어의 질감!)
아버님은 뉴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옛날에 보셨던 영화를 떠올리셨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지날 때에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식사를 하며 산타나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센트럴 파크에 있는 존 레논의 추모비를 보고 산책을 하며 아버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옆동네에 살던 소녀였다. 그렇게 곱고 예쁜 사람을 사랑해서 좋았다고 하셨다. 한참 후에 만났을 때도, 소녀가 아가씨가 되어 만났을 때도 그녀는 예뻤다고 하셨다.
"내 마누라는 안 예뻐. 평생 함께 살 사람이 예쁘면 좋거든. 그런데 나는 내 마누라가 좋아. 정이 든다는 게 그런거야. 안 예뻐도 좋은거. 고마운거. 마누라가 몸이 안 좋아서 같이 못 왔어. 혼자와서 그게 미안해."
사모님은 그 첫사랑 처럼 예쁘지는 않다고 하셨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 예쁘면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사모님과 함께한 세월이 좋았다고, 고마운게 많다고. 그리고 지금은 미안하다고.
함께 했던 2박 3일의 여행이 끝나고, 마지막 날 저녁에 헤어질 때는 함께 여행을 해줘서 고맙다며 큰 돈을 손에 쥐어 주셨다. 과일값이라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 맛있는 과일을 사다주라며 건네주신 아버님의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버님과의 여행 덕분에 뉴욕에 온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랐다.
"유학생활하면서 이런 곳은 잘 못오게 되잖아. 마이클도 같이 올라가자!"
2. 엄마와 아이들.
엄마는 아이들에게 직접 주문하라고 다그쳤다. 카페에서 쭈볏쭈볏 영어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답답했다. 오빠와 동생은 영어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영어 유치원도 다녔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영어를 안 하려고 하니 엄마는 답답하다.
"어머님. 원래 직접 이렇게 해보려고 하면 잘 안 들리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어머님께서도 영어로 직접 커피 주문해 보시겠어요?"
웃으며 말씀 드리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저는 가이드님이 해주셔야죠."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제서야 안심한 꼬마 아이가 속삭였다.
"그런데요. 아저씨. 나 영어 한개도 못해요."
나도 속삭였다.
"괜찮아. 아저씨도 영어 못해. 아저씨는 심지어 미국사람이야"
3. 아버지와 아들.
가족여행을 오셨다. 할머님, 어머님, 그리고 어린 딸은 그날 하루 쇼핑을 한다고 하셨다.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아버님. 그리고 나. 서로가 어색한 세명의 남자들은 뉴욕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뉴욕에 오는 많은 여행객들이 타임 스퀘어 근처의 숙소에 짐을 푼다. 그래서 여행 가이드의 시작점은 대부분 타임 스퀘어가 된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는 당연히 바로 옆의 브라이언트 공원이다. 이곳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여행 전날까지 진료를 하고 오느라 피곤했던 아버님은 (아버님은 안과 의사!) 특히나 이 공원을 좋아하셨다.
"커피나 한잔 하면서 하루종일 이곳에서 쉬고 싶네요. 마이클씨랑 이야기나 나누면서. 너는 어때?"
역시나 아들은 별 대답이 없었다. 그날의 여행 중 사춘기 소년이 정말로 좋아했던 두 번의 순간이 있었다: 1) 뉴욕 양키즈 구장에 방문했을 때 & 2) 배어버거(Bareburger)의 바닐라 밀크쉐이크를 한모금 마셨을 때. (뉴욕에 오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피곤하지만 아들과 여행하는 시간이 좋다는 아버님. 의사하면 힘들다고, 가족들만 좋은거 같다면서 자기는 아빠처럼 의사가 되기는 싫다는 사춘기 소년. 아빠와 아버지, 그 중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이들 부자와의 여행이 끝날 무렵, 첫 만남이 어색했던 세 남자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즐거웠다.
나는 지금도 뉴욕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지금 다른 곳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들의 짧았던 이곳에서의, 나와의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뉴욕에 산다. 가로와 세로 방향의 단순한 길들이 차례차례 엇갈리며 만들어진 이곳의 빛깔은 다채롭다. 사람들의 복잡한 속사정들이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한편의 훌륭한 이야기처럼, 여러 갈래의 길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이 도시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매끈한 삶이 있고, 고단하고 처량한 삶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우연히 삶의 작은 조각을 나와 함께 공유했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에서 대학원 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도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뉴욕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나의 삶을 채색한다. 고맙게도 그들의 상상 속에서 그려진 뉴.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삶.은 풍요로운 빛깔들로 반짝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환상으로 채워진 삶이기 때문에, 그 한명의 철학도는 그들에게 뉴욕을 소개해주며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다. :)
1. 70대 아버님.
한국의 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아버님께 뉴욕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고. 아버님은 음식을 조심하셔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아버님의 첫 인상이 좋았다. 가벼운 인사 속에서 느껴지는 배려가 좋았다.
"마이클씨는 가이드가 아니야, 큰아버지하고 즐겁게 뉴욕 여행 한다고 생각해."
어른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느껴진다. 아랫사람에게 말을 놓고 정겹게 대하면서도 배려가 있고 정중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한국어의 질감!)
아버님은 뉴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옛날에 보셨던 영화를 떠올리셨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지날 때에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식사를 하며 산타나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센트럴 파크에 있는 존 레논의 추모비를 보고 산책을 하며 아버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옆동네에 살던 소녀였다. 그렇게 곱고 예쁜 사람을 사랑해서 좋았다고 하셨다. 한참 후에 만났을 때도, 소녀가 아가씨가 되어 만났을 때도 그녀는 예뻤다고 하셨다.
"내 마누라는 안 예뻐. 평생 함께 살 사람이 예쁘면 좋거든. 그런데 나는 내 마누라가 좋아. 정이 든다는 게 그런거야. 안 예뻐도 좋은거. 고마운거. 마누라가 몸이 안 좋아서 같이 못 왔어. 혼자와서 그게 미안해."
사모님은 그 첫사랑 처럼 예쁘지는 않다고 하셨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 예쁘면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사모님과 함께한 세월이 좋았다고, 고마운게 많다고. 그리고 지금은 미안하다고.
함께 했던 2박 3일의 여행이 끝나고, 마지막 날 저녁에 헤어질 때는 함께 여행을 해줘서 고맙다며 큰 돈을 손에 쥐어 주셨다. 과일값이라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 맛있는 과일을 사다주라며 건네주신 아버님의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버님과의 여행 덕분에 뉴욕에 온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랐다.
"유학생활하면서 이런 곳은 잘 못오게 되잖아. 마이클도 같이 올라가자!"
2. 엄마와 아이들.
엄마는 아이들에게 직접 주문하라고 다그쳤다. 카페에서 쭈볏쭈볏 영어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답답했다. 오빠와 동생은 영어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영어 유치원도 다녔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영어를 안 하려고 하니 엄마는 답답하다.
"어머님. 원래 직접 이렇게 해보려고 하면 잘 안 들리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어머님께서도 영어로 직접 커피 주문해 보시겠어요?"
웃으며 말씀 드리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저는 가이드님이 해주셔야죠."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제서야 안심한 꼬마 아이가 속삭였다.
"그런데요. 아저씨. 나 영어 한개도 못해요."
나도 속삭였다.
"괜찮아. 아저씨도 영어 못해. 아저씨는 심지어 미국사람이야"
가족여행을 오셨다. 할머님, 어머님, 그리고 어린 딸은 그날 하루 쇼핑을 한다고 하셨다.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아버님. 그리고 나. 서로가 어색한 세명의 남자들은 뉴욕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뉴욕에 오는 많은 여행객들이 타임 스퀘어 근처의 숙소에 짐을 푼다. 그래서 여행 가이드의 시작점은 대부분 타임 스퀘어가 된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는 당연히 바로 옆의 브라이언트 공원이다. 이곳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여행 전날까지 진료를 하고 오느라 피곤했던 아버님은 (아버님은 안과 의사!) 특히나 이 공원을 좋아하셨다.
"커피나 한잔 하면서 하루종일 이곳에서 쉬고 싶네요. 마이클씨랑 이야기나 나누면서. 너는 어때?"
역시나 아들은 별 대답이 없었다. 그날의 여행 중 사춘기 소년이 정말로 좋아했던 두 번의 순간이 있었다: 1) 뉴욕 양키즈 구장에 방문했을 때 & 2) 배어버거(Bareburger)의 바닐라 밀크쉐이크를 한모금 마셨을 때. (뉴욕에 오는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피곤하지만 아들과 여행하는 시간이 좋다는 아버님. 의사하면 힘들다고, 가족들만 좋은거 같다면서 자기는 아빠처럼 의사가 되기는 싫다는 사춘기 소년. 아빠와 아버지, 그 중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이들 부자와의 여행이 끝날 무렵, 첫 만남이 어색했던 세 남자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즐거웠다.
나는 지금도 뉴욕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들은 지금 다른 곳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들의 짧았던 이곳에서의, 나와의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