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4일 월요일

(독서) 지구 영웅 전설 by 박민규

 

<지구 영웅 전설> by 박민규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고 박민규 작가의 <지구 영웅 전설>을 읽는다. 이 얼마나 위대한 도약인가! 두 소설의 상이한 주제, 문체, 호흡, 분위기.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두 작가의 엇갈리는 시선이다. 헤세는 먼 나라, 먼 옛날의 성인 싯다르타의 삶을, 박민규는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두 시선을 따라가던 나에게 떠오르는 단어: 오리엔탈리즘. 

'아하! 당신들은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군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나 자신도 역시 그들의 시선을 답습하고 있다. 그렇다. 싯다르타와 바나나맨은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아시아/동양으로 함께 묶기에는 너무 다른 둘이다. 깨달음을 향해 구불구불, 천천히, 홀로 발걸음을 내딛는 싯다르타와 바나나맨이 되자마자 "맥도널드에서 네 개의 빅맥세트와 로빈의 치킨버거를 산 후, 월마트에 들러 원더우먼이 부탁한 탐폰을 사오는," (p.52) 미국인도 백인도 아닌 그는 너무나도 다르다.

"너의 영혼은 백인이니까." (p.52) 

슈퍼맨의 한마디가 그를 위로하고, 배트맨은 곧 '마운틴'을 한다. 원더우먼은 섹스 에너지를 높여 정의를 정착시키고, 아쿠아맨은 모든걸 열어젖힐 기세다. 한가할 때는, 힘도, 돈도, 아무것도, 갖지 못한 로빈의 신세한탄을 듣는다. 자유세계를 수호하고, 정의를 확립하는 일은 이토록 수고롭다.

 '잉글리쉬'가 있기에 현실을 살아내고 있던 그가 다시 슈퍼맨을 만났을 때의 희열이 내게도 느껴진다. 율무차 두 잔을 뽑아서 건내던 그의 공손한 손을 그려본다. 율무의 효능을 읊조리며 '전천후 건강식품'을 권하는 그에게 슈퍼맨의 슈퍼함은 쿨한 응답을 내놓을 뿐.

"너나 마셔" (p.167)

아하! 그는 미국인이고 백인이라서, 우리의 선조들이 전승한 영양식품이 쓸모 없으리라. 평범함이 어찌 슈퍼함을 이해하랴. 그렇기에 바나나맨은 그와 비슷한, 평범한 우리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이토록 영어를 배우려고 애쓰시죠?"

 (...)

박민규 작가의 문장은 개성 넘친다. 마치 '정리정돈은 필요없고, 난 이 말을 하고 싶소!'라고 외치는 듯 하다. <지구 영웅 전설>의 완성은 그의 다음 작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이어지는데, 그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바나나맨에게 당당히 외치고 싶다.

"나는 영어를 배우려 애쓰지도 않고,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슈퍼 영웅들의 격전지 한복판에서 살아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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