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청춘 - 첫사랑

내 첫사랑은 남들보다 훨씬 더디게 다가왔다.

늦게 찾아 온 나의 첫사랑은 두명이었다. 그녀들은 서로 너무나 달랐지만, 난 둘 모두를 사랑했다.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은 뜨겁다기 보다는 따뜻했다. 충분히 따뜻했기에,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에게 첫 사랑이다.

A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가늘게 움츠러드는 눈매의 끝이 그녀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오며 마주쳤던 그녀와의 첫 인사는 조심스럽고 수줍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귀여웠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움츠러들었고,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들이 애틋했다.

반면, B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곧은 눈썹은 정직한 인상을 주었다. 맑은 얼굴 빛과 둥그스름한 콧등이 그녀의 얼굴에 섬세함을 더했다. 그녀의 첫 인상은 단정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미소는 천진난만 했지만, 그녀의 정직한 입매는 어른스러웠다. 

A와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때로는 손을 마주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걷는 모양새가 좋았다. 조근조근한 말투가 사랑스러웠고, 내 손 안의 작고 따뜻한 그녀의 손이 덜컹거리는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내고 싶었지만, 언제나 망설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이대로의 시간만으로도, 이 정도의 간격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기에, 나는 그녀와의 작고 조심스런 순간들이 불안하면서도 소중했다. 어린 아이가 남들의 눈에는 별거 아닌 작은 물건에 온 마음을 다하듯, 그녀와 함께 옮긴 걸음걸이마다 간절했던 내 뒷모습을 조용히 남겼다.

B는 자신의 생각을 쉬이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와 태도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곧은 사람인지. B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했다. 그녀와 공연을 가고, 연극을 보았다. 그녀의 생일에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소중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연인 보다는 가족이었으면 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뒤돌아보면, 맑은 날의 햇볕 냄새가 배어든 이불을 덮는 기분이 든다.

그녀들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숨겨진 부분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내 첫사랑의 모습이 그녀들에게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녀들을 사랑했노라 말해도 될런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들은 또 어떻게 오늘 하루를 보냈을까?'

또 묻고 싶다.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내가 사랑할 당신은 오늘도 안녕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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