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일 목요일

청춘 - 새내기

봄이 되지 못한, 그래도 봄이라 부르는 겨울.

늦게나마 입학한 대학교의 첫 인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몇몇 선배들의 이야기 - 대부분은 세상살이의 어려움, 한탄, 설교 -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술이나 마시자'라는 끝맺음이 봄학기의 첫 일주일을 채웠다. 수십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들은 재차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모두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 학번과 이름을 교환하고나면 그들은 정리되지 않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다. 어떤 이는 술을 마시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어떤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읽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그 많았던 술자리에서 그들이 무엇으로 그 시간을 메꾸려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의 시간이 버거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은 이유없이 불안했다. 아니다.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기에 불안했다. 이유없이 주어진 시간은 그 나이 또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문대 학생들의 과방 앞에는 아침마다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배달되었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선배들은 다음 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은 그대로 버려졌고, 자기 몸뚱아리조차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그들이 그날 저녁 다시 과방에 모여 전태일 평전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또래의 청춘들은 자신들의 젊음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복잡해진 세상은 그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해진 그들은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껏 다른 누군가가 해왔다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튕기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시위에 나갔다. 누군가는 도서관을 헤매고, 누군가는 술자리에 나가고, 누군가는 또 다시 학원에 갔다. 바깥 세상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있었고, 성급하게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로 보상받았다. 그 모두를 의심하던 이들은 한발짝 뒤에 서서, 조용히 청춘을 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그들 탓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을 때, 그들은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은 그들을 청춘이라 불렀다.

이듬해 새로운 새내기들이 입학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피했지만, 꼭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도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를 하였다.

"oo 학번의 ooo 입니다. 저는 oo에 관심이 있고, oo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한 어느 신입생의 자기소개가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서 거북스러웠다. 겨우 두번 째 봄학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도 무엇인가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 무엇에도 확신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옆 자리의 친한 동생 녀석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했다.

"우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세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거 같아요."

그 무엇이라도 용서받을 줄 알았던 청춘이라는 시간은 아름다웠고, 또 혼란스러웠다.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기에 버거웠고, 지금껏 기다렸기에 공허했다.

손 끝에서 잠시 느낀 봄, 겨울과 여름이 지워버린 그 잠깐의 시간이 청춘이었다.

                                                                   -나무가 되어 떠나간 녀석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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