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막역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분명 반가운 인연이었습니다. 첫 가을학기에 알게된 첫 친구였고,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너무 늦은 나이에 학위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걱정하던 지윤씨를 응원했습니다.
"걱정마요. 더 늦은 나이에 전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저 자신에게 하는 응원이었을 겁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표정, 책가방과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지윤씨의 씩씩한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지윤씨 덕분에 저도 힘을 냈습니다.
몇번의 짧은 만남과 대화, 서로의 관심 분야를 알게 되었고, 낯선 도시에서의 대학원 생활에 대한 푸념과 흥미로운 주제들, 요즘 근황을 나누곤 했지요.
첫 학기가 지나고, 짧은 겨울 방학 동안 혹시 한국에 잠시 갈 계획이냐고 물었던 저에게, 가족분들이 뉴욕을 방문할거라 답했습니다. 봄 학기가 시작되었고, 언제나 처럼 지윤씨의 안부 문자를 받고, 짧은 만남을 가졌죠. 부모님께서는 뉴욕 여행 좋아하셨냐는 물음에, 사실은 남자 친구가 놀러왔었다고, 혼자 공부하러 온 뉴욕에 남자친구가 놀러온다고 하기가 부끄러워 거짓말을 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심지어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라는 것도 말했으면서...) 한참을 웃었고, 나이가 많아 걱정이라는 사람이 그게 무슨 부끄러울 일이냐며 핀잔아닌 핀잔을 했었지요.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간단히 집밥 한끼 함께 하자며, 아내와 아이들을 소개해 주겠다는 제 초대에 흔쾌히 좋다고 했던 지윤씨가, 그 전날 조심스레 연락을 했었지요.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습니다. 저는 그저 별 일 아닐거라 짐작했고, 걱정말고 다녀오라는 답을 했지요.
지윤씨는 매번 먼저 안부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황망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소식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지윤씨의 추모식을 다녀왔고, 집에 돌아와 제가 좋아하는 향초 하나를 태웠습니다.
지금은 교수님들과 동료 학생분들이 모아둔 지윤씨의 글을 읽습니다.
반가운 인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이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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