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요일

글쓴이와 글에 대한 단상

1.
 이청준 작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공교롭게도 그의 책을 읽고 있었다. 2008년의 어느 여름날, 대학로의 한 찻집에서 였다. 그 자신이 옮겨놓은 문장들 처럼 이청준 선생은 점잖게 떠나버렸다. 무더웠던 그날, 선생의 소설 <눈길>을 떠올렸다.

2. 
 지금껏 좋아하던 시인의 경로는 대충 다음과 같다.:

김수영 - 황지우 - 이성복 - 기형도 - 오규원 - 김경주 - 심보선 - 오탁번 - 이정록 -....- 오탁번 - 이정록 -....- 기형도.

 이곳의 책장에는 여태껏 오탁번 시인과  이정록 시인의 시집들만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선물 받은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2-1.
 밑줄과 낙서로 더럽혀진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한 친구에게 선물했다. 2008년 여름, 어색하게 드러난 성북천의 끝머리가 보이는 곳에서 그 책을 선물하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라는 부분을 좋아해 주었으면."

 이후로 내게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욕에 놀러온 또 다른 친구 (동생의 전 직장 동기. 이 얼마나 참신한 인연인가?) 로부터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요즘은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쳐보고 있다.

2-2.
 김경주 시인의 두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와 <기담>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의 문장들은 그저 검은색 활자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그것들을 스쳐가는 내 눈 앞에서 꿈틀거리다 이내 폭발했다. 그의 언어는 감각적이었고, 그의 시는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포르노 영상물 같았다. 그의 언어는 대체로 끈적거리고, 어둡고, 어지럽고, 자극적이었지만, 어느샌가 산뜻하게 증발해버렸다.
 그런데 지금껏 읽었던 시들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도 김경주 시인의 시다. 날 것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그의 시어들이 어느 순간 지나치게 꾸며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또 보다가 질려버린 포르노 영상 속 여배우의 몸짓에 흥분하지 못한 채,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난 후의 당혹감이랄까. 순간 그의 문장들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실망이 더욱 깊어진 계기는 그의 꾸며진듯한 무심함이었다. 너무 난해하고 실험적인 문장들 때문에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어느 독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사람들 읽으라고 시를 쓰는 게 아니에요. 안 읽어도 상관없어요."

 그날부터 그의 시집을 읽지 않았다. 


2-3.
 아내와의 결혼식 청첩장에 감사 인사말을 대신하여 이정록 시인의 시 <더딘 사랑>을 옮겨 놓았다. (인용/출처표시를 정확히 했다.)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이정록 시인의 시집은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그의 시는 평생을 곁에 두고 싶다. 읽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다.

2-4.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시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다.

3.
 나는 요즘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그래서 책이 그립다. 서울 방구석 어딘가에 꽃혀 있을 이성복 시인의 시집들을 가져오고 싶다.

4.
 언젠가 글을 쓴다면 이청준 선생의 문장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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