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6일 일요일

(Song) Animals & Nature by Y.

 Animals & Nature

#1

The animals are in the sky, trees and the ground.

The birds take the sky,

Squirrels are in the trees,

Wolves are on the ground.

The animals are in the sky, trees and the ground.

They are all around.

#2

Wolves are hunting in the winter.

Birds are gathering to eat prey.

Wolves are eating moose.

Geese are migrating south.

#3

The beauty of nature.

The birds are singing their songs.

The beauty of nature.

The days are getting long.                                  

2022년 1월 31일 월요일

(독서)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글을 쓴다면 이런 질감일까? 아니. 반대로 제임스 설터가 그림을 그렸다면 호퍼의 작품과 비슷한 색감을 품었을까?  

 삶은 건조하고, 빛 속에 어둠이 있다. 삶은 생소하지만 피할 수 없고, 필연과 우연은 겹쳐져 있다. 사랑은 한 발자국, 때로는 한 뼘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떠나간다.

- 봐요, 저녁 할 수 있어요?
- 아, 달링, 그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약혼했어.
- 그렇군요. 축하해요. 그녀가 말했다. 몰랐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말이었다.
- 정말 잘됐네요.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를 보고 웃었지만, 그 웃음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는 오랜 커플처럼 그녀와 나란히 클락스에 걸어 들어가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pp.178-179, 플라자 호텔 中.)

 건조한 필체로 삶을 관조하는 작가들이 있다. 제임스 설터는 그의 짧은 글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은밀한 구석을 들여다 본다. 주변의 삶에 관여하지 않은 채, 대상들과 거리를 둔 채, 그렇게 그는 우리 모두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담담하게 삶을 바라본 다는 것은 그 뒷모습 의 순간들마저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남성적이고 건조한 문체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글은 섬세하다. 마치 호퍼의 그림처럼.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1.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1. 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슬픔이라는 주제,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슬픔에 대한 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빛깔을 발하고 있다.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슬픔(1부), 소설(2부), 사회(3부), 시(4부), 문화(5부). 그리고 각각의 주제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은 글에 드러나는 작가의 진솔함에 있다. 
 
 나는 사실 신형철이라는 비평가/작가를 잘 모른다. 이는 아마도 부끄러운 고백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읽었던 많은 시집들, 도서관 한 쪽의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고서 읽던 문학 잡지들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나는 그의 글을 잘 모르고, 따라서 그를 잘 모른다. 물리적 공간의 변화가 읽고 쓰는 문자의 교체로 이어져 버렸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알고 있다.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글을 읽으며, 그 안의 진솔함을 발견한다. 

 작가 신형철의 글들은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맞서 일어서야 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특히 시에 관한 글들이 가장 좋았지만,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 속에 녹아있는 연민과 애정, 부끄러움과 연대의 마음을 읽으며 작가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음 글들을 통해 그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물은 언제나 아름답다. 다른 시에서는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놀라운 직유들을 그는 어린아이가 과자를 흘리듯이 한 편의 시 안에 아무렇게나 흩뿌려놓는다. 그가 제아무리 헌신적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의 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존경하기만 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에 질색하고 시에서 그 가치를 수상쩍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얻은 것들에 조금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시는 세계와 싸울 때조차도,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과 함께 싸워야 한다. (pp.301-302, 시의 천사-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中.)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왔고 내 말이 글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해왔다. (pp.429-430, 문학에 적대적인 세계 中.)

 책에 대한 약간의 투정을 부려본다면, 짧은 호흡의 글들이 산만한 인상을 준다는 정도다. 글 모음 책이 갖는 형식의 한계이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형철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와 마주 앉아 그의 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안녕 2022년.

 2021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나는 2022년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곳의 시간은 매우 순차적이고, 불가역적이며, 선형적으로 흐른다. '시간은 필연적/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아무튼, 다들, 별 다른, 눈에 띄게 새로운 희망 없이도 새해를 반겼고, 숫자를 매겨보니 이제 2022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팠다. 2021년의 끝을 아픔으로 마무리하고 그 아픔을 강제 인수 당한 채로 2022년을 시작했다. 운 좋게 피할 듯 했던 COVID-19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철저한 마스크 사용과 규칙적인 손 세정, 최첨단 백신이라는 두터운 벽을 뚫어낸 녀석의 침투에 감탄할 수 밖에. 

 저렇게 끝내버린 2021년 안녕. 이렇게 시작한 2022년에게도 안녕.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독서) 고래 by 천명관

고래 by 천명관

 한 사내가 마을에 나타났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이미 강 건너 옆 마을, 그 너머 최근 들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강 주변의 작은 도시까지도 소문이 난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누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를 천 선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세상의 규칙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자유인이며, 언제고 어딘가로 떠나 버릴 수 있는 방랑자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인생을 망친 잉여 인간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혹여나 그가 내일 아침이면 남은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고 떠나버릴까 노심초사하며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기도 했다. 한편 그가 내놓은 이야기를 두고, 혹자는 그저 현란한 구라에 지나지 않는다 무시하기도, 기존의 이야기꾼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방식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내의 재주를  깎아 내리려 했지만, 깨나 멀리 떨어진 도시의 사람들까지 이 작은 마을에 몰려들어 그의 주위에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그의 말솜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수결의 법칙이었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옮겨졌다. 가끔은 무시무시한 전래 동화로, 가끔은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랫말로, 그리고 아주 가끔은 비정한 세상사의 한 토막 뉴스 정도로 편집, 각색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대부분의 경우 아랫도리에 피가 쏠려 몸을 배배 꼬게 만들만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급작스레 아연실색 놀래 자빠질 결말로 끝을 맺곤 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천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p.114)
 발도 없이 퍼지고 퍼진 천 선생의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큰 도시 사람들의 귀에 까지 다다랐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명절 연휴가 지나고 직장에 돌아온 이 나라의 산업역군이 고향 집에서 전해 들었다는 야시시한 이야기가 그 발단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작가가 천명관이라는 이름으로 <고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항간에는 천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무명의 작가가 그의 성씨를 빌려와 작가의 이름으로 삼고, 선생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짜깁기 했을 뿐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 책 또한 그 맛과 향과 감촉이 알싸하고 시큼하고 끈덕진 것이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기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는 인기의 법칙이었다. 그 책의 대중적 인기에 발맞추어 큰 도시의 식자층은 고심 끝에 이 책을 '소설'로 분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그래야 그들도 야시시한 농담을 좀 써먹을게 아닌가!), 사람들은 그들의 분류표를 개의치 않았다. 천 선생은 이미 어디론가 떠난지 오래고, 그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이제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갑자기 든 생각 #2: 조용한 삶

1. 조용한 삶을 원했다. 어지럽지 않은 세상이기를 바랐다. 어렸다. 어려운 일을 바랐으니 그리 말할 수 있으리라. 어렸다고. 이제는 '모두가 세상을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라는 짧은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며 세상에 내놓은 건 거의 없지만, 이제야 고작 한 움큼의 지각을 얻은 기분이 든다. 따뜻한 냉소라 할 수 있을까? 타고난 천성을 반할 수는 없는 일이고, 조금도 세상을 냉소하지 않는 인간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리라. 그런 인간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을 응시하는 완전한 비관론자가 아니라면 필시 유치한 인간일 테니 말이다.

2. 모든 변화는 익숙한 것들의 뒤틀림과 그에 대한 의심, 안일한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을 동반한다. 

3.  메마른 새벽 공기에 목이 말랐다. 모른 척 다시 잠에 들고 싶었지만 오늘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벽 잠에서 깬 후 바라본 이불은 평평하고 하찮은 무게로 나를 덮고 있었다. 내 삶이 저러하다. 하찮은 삶도 무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은 따뜻했다. 

4. 너를 꼭 안은 채 세상에 뛰어들었다 믿었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네가 나를 안고 있었구나.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11-12.2021: Pachinko by Min Jin Lee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1-12. 2021

<Pachinko> by Min Jin Lee

 첫 문장이 눈에 띈다. 어쩌면 조금 과하기도 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p.3) 

 방점은 뒤의 "...but no matter."에 찍혀있다. 삶을 이어온 가족의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다. 실상 이는 우리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살아남는 것이 생(生)의 주요한 목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그 자체가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자신의 삶에 색을 더하고, 의미를 찾는다. '생존'이라는 삶의 맹목적 의지마저도 의미를 갖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가 지속되어 왔다. 이민진 작가의 책 <파친코>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역사 한 부분을 조명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람들의 인식을 보편적이고 쉽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는 분명 작가의 자료 수집과 고증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기독교를 믿는 이삭의 가족들이 평양 출신이라는 설정, 전후 민단과 조청련 사이의 갈등, 일정 나이가 되면 외국인 등록을 하고 지문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 의식과 역사적 배경의 무게가 등장 인물들을 짓누른다. 양진, 순자, 경희는 책의 마지막까지 "A woman's lot is to suffer."(p.414)이라는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시대에 짓눌린 채 입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백요셉, 백이삭, 심지어 꽤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고한수조차 그 시대의 그저 그런 누군가로 머물러 있다. 이는 아마도 소설의 전체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길게 설정된 시간과,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그중 백노아는 가장 아쉬웠던 인물이다. 
 The big secret that he kept from his mother, aunt, and even his beloved uncle was that Noa did not believe in God anymore. (...) Above all the other secrets that Noa could not speak of, the boy wanted to be Japanese; it was his dream to leave Ikaino and never to return. (p.176)
 Noa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when he was with her; in fact, he didn't care about being Korean or Japanese with anyone. He wanted to be, to be just himself, whatever that meant; he wanted to forget himself sometimes. But that wasn't possible. It would never be possible with her. (p.308)
 That evening, when Noa did not call her, she realized that she had not given him her home number in Yokohama. In the morning, Hansu phoned her. Noa had shot himself a few minutes after she'd left his office. (p.385)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 인물의 심리 변화와 행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단서가 부족하다. 좀 더 집요하고 치열하게 노아의 심리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면 좋았을 듯 하다. 
  • 고한수가 자신의 친부임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 어머니 순자에게 화내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조선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 수치심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나?
  • 결국 백노아는 일본인이 되고자 자살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문장의 리듬감이나, 표현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자세히 평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 또한 단조롭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과 흐름은 대체로 평이하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 받기로 하는 장면, 남편 백이삭의 무덤을 찾았던 순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럽게 책을 마무리한다.

 냉정한 평은....영어로 쓰여진 한국 근현대사 배경의 (외국인 독자들에게)흥미로운 소설.

2021년 11월 7일 일요일

New York City 21: Fun_Peter Piper.

 


Peter Piper picked a peck of pickled peppers.
A peck of pickled peppers Peter Piper picked.
If Peter Piper picked a peck of pickled peppers,
Where's the peck of pickled peppers Peter Piper picked?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비밀 조직, Sun & Midnight Team의 탄생 by J

<A Spying Camera> for Sun and Midnight Team

 J는 그의 비밀 조직 - 그가 말하기로는 Spy Army - Sun & Midnight Team을 만들었다. 그의 친구 Elon과 Jin이 합류하기로 했다. 추후 그들의 Music Teacher Mr. H와 Gym Teacher Mr. M에게도 합류를 제안할 것이다.

M: "그런데 왜 너희 군대는 이름이 Sun & Midnight이야?"

J: "......"

M: "이상하잖아. 태양하고 자정이라니. 한밤에 뜨는 햇님이야?"

J: "Never Mind!"

 J는 자신의 동료 Elon을 위해 스파이 카메라를 만들고 있었다. 종이와 가위, 테이프만 있으면 그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3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첫 사랑. 그와 그녀의 손. 1Q84. 고양이 마을. 마더와 도터. 공기 번데기. 다른 세상. 그게 어디든 너와 나. 왼쪽은 왼쪽이고, 오른쪽은 오른쪽이니,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너와 내가 있는 세상에 도착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그대로.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속았다! 그리고 역시 내가 맞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랑학 개론 10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논리가 힘을 갖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고, 힘든 시련을 뚫고 서로를 찾아내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다.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녀는 몸의 힘을 빼고, 믿어야 하는 것을 믿기 위해 덴고의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댄다. 그곳에 귀를 대고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팔 안에 몸을 맡긴다. 콩깍지 안에 든 콩처럼. (p.1546)
 <1Q84> 속의 상징과 비유는 소설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다. 그건 흥미롭지만,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사실들의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두 개의 달을 올려다 봤어.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수 많은 위협을 받았어. 그리고 지금 여기 너의 손을 다시 잡고 있어. 그러면 이걸로 족해. 

Book 3:
  • Book 2로 끝냈어도...역시 괜찮지 않았을까?
  • 무라카미 아저씨. 여전히 재주 좋네요.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환상 버전.
  • 무라카미는 무라카미. 그대로도 괜찮아요. 
  • 온 세상 모두가 겪은, 지독하고 위태로운 첫사랑에 대한 우아한 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