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7일 토요일

(독서) 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모비 딕; Moby Dick>
by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저/김석희 역

 첫 문장(=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 Call me Ishmael.)이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간신히(?) 읽었다. 전체 718 페이지의 분량이니 분명 긴 소설이기는 하나, 책 읽는 속도가 한참 더뎠다. 한동안 덮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기를 몇 번 반복했고, 제 21장 <승선>을 기점으로 -허름한 여관의 침대 위에서 퀴퀘그를 만나고, 포경선 피쿼드 호에 올라 바다로 나아가기 까지 150페이지를 견뎌내야 했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모두 읽고자 다짐했다. 마지막 100페이지는 내일 출발하는 캠핑에 이 두꺼운 책을 도저히 가져 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읽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서사의 전개와 그 안에 묘사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철학적 물음과 사색 + 고래, 포경 & 배에 대한 설명 +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의 순서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총 135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때문에 서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당대의 선상 생활과 고래 잡이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가령, 제 74장 <향유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와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연구>를 읽으면 그 누구라도 이 작가의 집요함에 항복할 것이다. (사실 저 유명한 첫 문장이 시작 되기 전 <어원>과 <발췌록>을 읽으면서 내가 그에게 지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작가에게 순종적인 독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선장 에이해브가 그 자신의 운명을 앞당기려는 듯 던지는 대사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
어이! 흰 고래 보았소? (p.524)
 결국 그는 이 물음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의 삶이 향하는 곳으로, 감히 선장에게 맞서려고 했던 스타벅 까지도, 피쿼드 호에 승선한 모든 이들은 에이해브를 따라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올린다.

이건 뭐지?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p.645)
 

 그리고 에이해브와 선원들은 그토록 두려워하며 갈망했던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을 마주하고 자신들의 운명에 작살을 던진다.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p.681)

음산한 흰 파도가 그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바다라는 거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결치고 있었다. (p.683)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피빛 무덤 위에 세워진 나라 미국의 원죄, 그 비극을 목도하고 기억하며 이어진 삶, 그 삶을 비극으로 인도하는 운명.

삶을 운명으로 채우려는 인간의 광기, 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연, 그 자연이 내리는 벌. 

또는 그저 삶과 죽음.

이 이야기 속에 넘쳐흐르는 상징과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의 생명력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삶에 대한 경외와 찬사는 작가에게 바친다. 당연히 이를 번역한 역자에게도. (번역이라는 작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021년 8월 1일 일요일

올림픽에 관한 그녀와 그의 말.

 400M 수영 계주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J: "Wow. United States~"

Y: "It's not even New York!"


그는 미국을 응원했고, 그녀는 오직 뉴욕을 사랑한다.

2021년 7월 25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7-8. 2021: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The Middle Passage by 제임스 홀리스 저 / 김현철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7-8. 2021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The Middle Passage>
 by 제임스 홀리스 (James Hollis) 저 / 김현철 역

이 책은 융 심리학 /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저자가 '중간항로'라 명명한 2차 성인기를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책에서 다루는 융 심리학 개념들은 생소하지만, 이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예시를 통해 책의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원래의 자기감을 어떻게 습득했을까?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들은 무엇일까? 자기감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까?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과 우리의 타인을 향한 헌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성화를 이루고 중간항로를 지나 어두운 숲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면 어떤 태도와 행동변화가 필요할까? (p.14)

"자아(ego) - 자기(자기원형; archetype of self) - 개성화(individuation)" 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드 - 자아 - 초자아"라는 도식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 하며, 주체로서의 개인에게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 개인의 성장 - 부모/사회와의 관계 - 결혼 - 일 - 문학 - 고독/죽음

저자는 솔직한 태도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의 주제들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뉴욕 양키스 중견수의 꿈은 그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지속적으로 두 권의 책과 한편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1.<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by 사르트르

광대 놀이에 지쳐버린 사르트르의 유년기는 얼마나 처절하고 모욕적이었나? 그렇기에 그는 실존주의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불쾌한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보다 친절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미덕을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순화된 버젼의 실존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르트르는 무의식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2.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보다 더 자식/부모 사이의 콤플렉스를 잘 (매우 잔인하고 선정적으로) 극화한 영상물은 본 적이 없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주술적 사고 & 영웅적 사고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를 극복한 (-하려 노력한) 이들은 간신히 살아남거나, 멋지게(?) 죽는 장면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허무하거나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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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과 그 개념들은 내게 매우 생소하기에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해본다.:

저자가 바라보는 개인의 여정이 지나치게 목적론적이고, 이를 설명하는 개념 틀이 너무 크고 포괄적이어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에게는 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치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주체를 중세 시대에 되돌려 놓는 것 같다. 저자는 중간항로라는 개념이 "연대기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경험"(p.40) 이라 설명하지만, 그 심리적 여정이 지나치게 환원적이라는 것이다. 주체 - 세계의 지나친 분화가 오히려 주체를 구속한다. 물론 이에 대해 저자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스스로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이는 개성화가 지닌 역설이다 (...) 따라서 개성화에 대한 관심은 자기도취가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타인의 개성화를 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p. 227-228)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자유라고 말할 것이다. 주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저자는 우리 시대의 신화로서의 개성화를 (p. 223)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가 사용하는 개념 틀의 환원론적 성격이다. 지나친 설명력은 구조적 폐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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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주제였고, 처음 접해보는 장르였다. (독서 모임의 장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황동규 시인이 만들어낸 "홀로움"이라는 단어. 

중간 항로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울리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홀로움이 아닐까 싶다.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북향 도로

-북향 도로-


곁을 내주지 않은 첫 사랑 그 속살과도 같았던

청춘은 언제나 파랗고 어두운 바다 속 이었다

허우적거리면 기어코 손에 닿을 것이라 믿었던

뜨겁고 끈적한 모든 것들이 무서워질 때 즈음

나는 북쪽 길을 찾아 떠난다

 

쓰다 만 청춘에 용서를 빌고

떨군 사랑은 집어 들고 싶지만

굽어진 산 허리가 이미 초록을 거두었다

북쪽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까닭이다

 

인연의 숨결이 북쪽으로 흘러간 때를 추억한다

던져진 시절에 몸부림 치던 나는

연붉은 길 위, 눈 감은 채,

옅어진 울음을 놓아준다

 

마주할 수 없는 것들은 남겨두자

내 것이 아닌 사랑도 사랑이었으니

남들은 창을 내지 않는 

서늘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나는 지금 북쪽 길을 밟는다

2021년 6월 27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6. 2021: 회색인간 by 김동식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6. 2021

<회색 인간> 김동식 저.

일반적인 소설/문학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대하는 나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조금은 익숙한 느낌을 지닌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몇몇 글들의 참신한 배경 설정과 반전을 동반한 결말도 어느 정도는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순한 문체, 리듬이 결여된 문장, 부족한 상황 묘사 등이 이러한 나의 인상을 더욱 부추긴 듯 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사실 간단하다.: '현대 사회의 어두운 그늘과 그 속의 소외된 개인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는 또 다른 개인들의 강박적인 선택.' 모든 글들이 대부분 비슷한 질감이기 때문에 이 주제가 오히려 독자에게 강박으로 다가온다. 

장르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이기에 불만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

2021년 6월 18일 금요일

Father's Day - Y's Acrostic Poem

Y's Acrostic Poem for Father's Day.

Full of love

A great chef

The best dad

Happy most of the time

Excellent

Radiant

Happy Father's day,

You are great,

Love,

Yuna

2021년 5월 9일 일요일

Mother's Day - Y's Acrostic Poem

 Y's Acrostic Poem for Mother's Day.

My mom is good

Only good

The best

Helpful

Easy to get along

Really great

2021년 5월 1일 토요일

New York City 18: Crime_ The Bike was Stolen.

말 그대로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 바퀴 전체와 안장 부분 전체를 누군가 떼어갔다. Guys....This is NYC!!!

<This is NYC!! The Remaining, Roebling, Brooklyn Bicycle Co.> 

남은 부분을 집에 가져다 놓고 한참 동안 바라본다. 자전거 타는 아빠가 너무 멋있다 말하는 J가 놀이터에서 돌아와 몰골이 앙상한 자전거를 보고 울었다. 잘 관리해서 먼 훗날 J가 크면 물려주기로 약속 했는데......

이 일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토요일 오후 3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퀸즈 쇼핑 몰 (Queens Center Mall) 바로 앞의 자전거 거치대에 묶여 있는 자전거를 분해 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열 명은 이를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혹시나 총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불안이다....라는 사실이 더 슬프다.)

우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어차피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의지도 없겠지만.) 구매한 자전거 가게와 브루클린에 있는 자전거 본사에 문의를 했다. 자전거 가게는 여분의 부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략적인 예상 비용을 보내줬는데, 너무 비싸다. 그래서 '원래 부품을 사용하면 좀 더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전거 브랜드 본사에 다시 문의를 해 놓은 상태다. 지금 심정으로는 두 번 다시 뉴욕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다. 남은 부분을 중고로 팔아서 처분하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뉴욕 시민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노와 실소가 뒤섞여 나오는 지금. 10년 전 뉴욕에 철학을 공부하러 오는 나에게 철학 친구 경은 누님이 선물로 준 장자끄상뻬의 <뉴욕 스케치>가 떠올랐다. 첫 다섯 페이지를 읽고 내 심정을 다시 정리해 본다.:
Fuck I should've read this again before getting a fucking bike. Fucking NYC!!!

New York City 17: Health_COVID-19 Vaccination_PFIZER (2nd dose)

 두 번째 COVID-19 화이자(Pfizer) 백신을 맞았다. 첫 번째 장소와 같은 장소였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끌고 출발하였다. (이전 글)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두 번째 접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절차가 있지는 않았다. 첫 번째 접종 때와 같이 미 해군이 모든 절차를 관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해군 장병이 접종을 도와주었지만, 한쪽에는 요크 대학교(York College, CUNY)의 학생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녀들의 이름표에 'Student Nurse'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민간인(?) 학생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았다. 접종을 마치고 백신 기록 카드에 두 번째 접종 표시를 해주었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네주었다.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 April. 30 2021>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15분 간 휴식을 취하며 다른 증상이 없는지 스스로 살펴 보았다.

  • 주사를 맞은 왼쪽 팔에 열감이 느껴졌고, 첫 번째 접종 때와는 다르게 약간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이 외의 이상 증상은 없었기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  왼쪽 팔의 뻐근한 통증이 약하게 지속되고 있다.
  • 열은 없었지만, 두통이 약 6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요즘 커피를 그만 마시기로 한 이후에 며칠 간 두통이 있었는데, 그 보다는 약간 심한 정도였기에 백신 접종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24시간이 지난 후 지금은 두통도 사라졌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오히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닥뜨린 여러 번의 오르막길이 안겨준 허벅지 통증이 뻐근하게 느껴진다.

추후에 다른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이 곳에 다시 기록하려고 한다.

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