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독서)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2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와 덴고.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마더와 도터. 선구. NHK. 증인회. 1984 또는 1Q84. 두 개의 달.

2권을 다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가끔 과하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하루키의 문장이군!" 

상징과 비유가 넘치는 책의 문장을 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대체 리틀 피플이 뭐야?' '나 참, 공기 번데기라니......' '마더가 되고, 도터가 된다고?'

글 속의 상징과 비유들을 굳이 익숙한 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전체와 개인.이념과 의지. 욕망과 속박. 순수함과 폭력. 상처와 치유. 그리고 사랑과 구원.

Book 2:
  • 이대로 끝내도 될 거 같은데, 3권을 도대체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지?
  • 비유와 상징도 좋지만, 때로는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채 상충하는 가치/이념 간의 논쟁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다루는 것이 더 선명한 그림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라!)  
  • 3권으로 가면 좀 더 분명한 도식을 제시할까?
  •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이렇게 끝맺으리라: '결국 사랑. 구원은 가까운 곳에 있어. 너의 손에 달렸어! '
  • 그렇다면 2권의 결말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제 Book 3으로 넘어간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독서)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1Q84, Book 1 by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2002년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강남 종로학원을 다니던 재수생 시절이었다. 그해에만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2005년에 그의 다른 책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그 후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떠한 책도 읽지 않았다. 관심이 식었고, 그의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꼈다. 지나칠 정도의 섬세한 표현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하게 느껴졌다. (분명 유치한 면이 있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그의 책 <1Q84>을 읽고 있다. 일종의 도전이자, 추억의 소환이라는 명목으로. 그래서 간단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Book 1:
  • 대단한데!
  • 그가 이 정도의 이야기 꾼이었나?
  • 나이가 들었나? 섬세하지만 과하지 않네. 
  • 그래. 이건 넘어가자. 이 정도면 많이 참았네.
 지금은 Book 2를 읽고 있다.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New York City 20: Education_Near Double.

Double Fact: 2+2=4, 3+3=6, 4+4=8......

Near Double: 2+3=5, 3+4=7, 4+5=9......

Here is my question: What's the use of this 'Near Double' concept when doing addition?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10.2021: 포노 사피엔스; Phono-sapiens by 최재붕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10. 2021

<포노 사피엔스> by 최재붕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읽었다. 저자는 포노 사피엔스(Phono-Sapiens), '전화기(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며 책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뒤따르는 내용은 진부하다. 책이 나온 지 2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도 책 속에 나열된 사례들은 전혀 신선하지 않다. 이건 아마도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가 매우 좁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한국에 살고 있는,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50~60대?)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갖는 한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들과 개념들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너무 빈약하다. 가령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하고 있는 오늘 날의 혁명적 변화 -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디지털 문명과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 혁명 - 에 관한 비판적 물음은 배제되어 있다.: '정말로 자발적인가?' 또는 '정말로 소비자가 시장의 권력을 획득하였는가?' 등의 물음이 전혀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단, 매일같이 반복되던 대중 의식의 형성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은 모두 개인화 되었습니다. (...) 정보 선택권을 가진 인류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면서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 탓입니다. (p.26)

(가능한 반론)

  •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함으로써 매우 독단적이고 고립된 대중 의식이 형성되었다. 즉, 무비판적으로 형성되고 개인화된 생각은 독단적 가치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좁은 우리'가 등장한다. ex) 일베, 극단적 페미니즘, 극우 파시즘, 급진화된 세력, 네오 나치 등.
  • '선택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인식은 결코 소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요와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또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역전 현상이 시장 독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책 속에 열거된 사례들이 철저히 시장/기업 중심적이고, 또한 철저히 사용자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오로지 시장에서의 성과와 이익에 국한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2021년 구글(Google)에 노조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1) 또한 2017년에 우버(Uber)의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 제기 되었다는 사실(2&3)을 돌아본다면 저자의 시장 혁명과 새로운 조직 문화에 대한 주장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저자의 주장, "디지털 문화 부작용 이면의 놀라운 잠재력 (본문에는  '부작용의 편견 뒤에는...'이라고 되어 있다. '편견'이라는 단어 선택에 이미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드러난다.)"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되새겨 들어야 할 가치가 있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동반하지 않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저자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고 있는 스마트폰/디지털 문명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게임 중독, 피상적 인간관계, 정부 규제 등)과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정치에 대한 불신/불만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수아비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 vs 경제'라는 도식을 '규제 vs 혁신'으로 치환함으로써 저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시급성을 드러내고 타당성을 얻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증이다. 개인은 시장의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공동체 안의 시민이다. 둘 중 어느 곳에 방점을 찍느냐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적어도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사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 (<이성과 혁명> 중.)"라는 마르쿠제의 지적을 상기해본다.) 
  오히려 저자가 공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 -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와 그것이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 기술이 기존의 질서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시장 혁명을 통한 구조적 변화가 기존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디지털 문명이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는 어떤 사회/문화적 계층을 형성할 것 인지 등 - 에 대한 시각을 함께 다루었다면 좀 더 균형 잡힌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마무리 하며 저자는 기성 세대의 성과와 그 동안 축적되어 온 기술,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디지털 문명 속의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그러나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저자의 좁은 시선이 이미 책 전체의 뼈대를 흔들어 버렸기에 책의 맺음말은 허무하다. 또한 내용 곳곳에 등장하는 진화론, 세대 담론, 인문학(호모 루덴스/인의예지) 등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개념과 억지스럽고 어설프게 연결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대중 교양 서적을 통해 독자에게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한때 '통섭'이 유행했었지...)를 보여주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때로는 전문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바람직할 때도 있다.: 
  •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차별화된 조직 문화.
  • 디지털 문화를 소비하는 개별 사용자들에 대한 데이터 수집 방법과 활용 방식.
  • 혁명이라 부를 정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통찰, 혹은 드러나는 윤리적 문제들.
  • 기존의 것을 대체하며 등장한 새로운 가치/체계/패러다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주장이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물음, 즉 '오늘 날의 변화를 과연 '혁명'이라 명명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이라고 여길만한 것은 그저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의 매출액/시가총액/투자금/시장 점유율의 나열 뿐이다.
 
 개인적으로 산업혁명은 18~19세기에 걸쳐 일어난 영국 산업혁명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정치/경제 질서를 무너트렸고, 부르주아와 도시 노동자라는 정치/경제 계급이 등장하였고, 상품 생산 방식이 변했고, 새로운 공간(도시)이 출현했다. 이후의 2차, 3차, 그리고 이 책 속의 4차 산업혁명은 그로부터의 (괄목할 만한) 발전 정도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진행 중인 변화가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의 해결이 수반되어야 한다.
  • 새로운 공간의 창출/발견.
  •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한계(죽음)의 극복.
  • 희소성 문제 해결. 
 시장에서의 경제적 성과가 곧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그것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완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즉 인간 의식/존재 방식의 변화 없이는 혁명이라 부르기 어렵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물결/혁명을 기대하기에는 이 책의 시선이 너무 좁다.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독서)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 by 어니스트 헤밍웨이(E. Hemingway) / 김욱동 역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
by 헤밍웨이(E. Hemingway) 저 / 김욱동 역

 전쟁은 사랑을 파괴한다. 삶도 사랑을 파괴한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단독 강화조약(ch.34 p.288)"을 맺은 프레더릭 헨리는 연인 캐서린 바클리를 떠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나는 생각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도록 태어났다. 정말 그렇다. 먹고 마시고 캐서린과 잠을 자도록 만들어졌다.(ch.32 p.279)
 후퇴 대열로부터 뒤처진 장교들을 향해 구차한 형식(탈영)을 빌미로 자신들의 정의를 행하는 헌병들의 손(전쟁)에서 벗어난 프레더릭 헨린는 자신의 사랑과 미래를 위해 삶과도 조약을 맺기를 바랐을 것이다. 강물에 흠뻑 젖은 그는 마침내 전쟁을 벗어났다고 믿었고, 캐서린과 다시 만났다. 이 헛된 희망을 향해 그녀와 함께 밤새 노를 저어 아는 이 없는 곳에 다다른 그와 그녀는 여전히 삶의 한 가운데 있었다.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으려 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채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는 캐서린은 헨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던 일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하지 않을 거죠? 우리가 하던 말을 다른 여자하고 똑같이 나누지 않을 거죠?"
"물론 안 하고 말고."
"하지만 당신에게 여자가 생겼으면 해요."
"난 그런거 필요 없어."                                                             (ch.41 p.391)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사하지 않으리라 확신한 전쟁(ch.7 p.43) 속에서 그는 다른 이들의 허무한 죽음을 목격했다. 죽음은 그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전쟁터를 벗어난 삶 또한 언제나 죽음 곁에 있었음을, 삶이 곧 죽음으로의 여정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a statue)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ch.41 p.393)
새 생명이 빛을 잃고, 연인의 숨결이 잦아들었다. 삶이 사랑을 파괴한 순간 그는 그저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삶 속에 새로운 사랑이 있기를 바란 캐서린을 뒤로 한 채. 삶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짧은 감상)
  • 관념을 내세우지 않는 간결한 문체가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문학 작품이 있지만, 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구성으로 인간 삶의 심층을 드러내 보인 작품은 드물 것이다.
  • 지도를 옆에 두고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들을 찾으며 읽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이어지는 호수는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다.
  • 종종 등장하는 오탈자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매끄럽게 읽었다.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John Mayer -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A great big bang and dinosaurs

Fiery raining meteors
It all ends unfortunately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ll guarantee, just wait and see
Parts of me were made by you
And planets keep their distance too
The moon's got a grip on the sea
And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 guarantee, it's your destiny
Life is full of sweet mistakes
And love's an honest one to make
Time leaves no fruit on the tree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 guarantee, it's just meant to be
And when the pastor asks the pews
For reasons he can't marry you
I'll keep my word and my seat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I'll guarantee, just wait and see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J's first tooth fell off today.

 J: "Wah~Wah~Wah~" (crying...crying...keeps crying.)

그의 이는 이미 빠져있었지만, 그는 울었다.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New York City 19: Books for Kids_New Kid & Class Act by Jerry Craft (소개)

(Y와 J가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New Kid> and <Class Act> by Jerry Craft


<New Kid> & <Class Act> by Jerry Craft

Y의 강력 추천!! 그녀는 적어도 각각의 책을 다섯 번은 읽었다고 한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열두 살 소년 조단 뱅크스(Jordan Banks)가 겪는 문화의 차이와 편견, 그로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소년의 눈을 통해  미국의 교육 현실, 빈부 격차, 인종과 문화에 대한 편견 등의 무거운 주제들을 진솔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2020년 뉴베리(John Newbery Medal) 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무엇보다 만화책이다!!! 

<New Kid> ➡ <Class Act> 순서로 읽으면 된다. 그리고 현재 작가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2021년 9월 9일 목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9. 2021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by 하퍼 리(Harper Lee) 저/김욱동 역

 짧게 요약하자면 경계와 규범에 관한 글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젬과 스카웃 남매(+친구 딜)가 바라보는 세상(메이콤)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가치와 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글이다.

  • 아서 (부) 래들리 아저씨  
  • 듀보스 할머니  
  • 커닝햄 아저씨  
  • 밥 & 메이엘라 유얼 
  •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 (봉지 콜라)
그리고
  • 팀 로빈슨 & 아이들(젬, 스카웃 그리고 딜.)

 아빠(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비하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조용하고 성숙하다. 그가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양심이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아빠가 그 사람을 변호하시지 않으면, 오빠랑 저랑 이제 더 아빠 말씀을 안 들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ch.9 p.123)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도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 (ch.9 p.12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ch.11 p.170)

"커닝햄 아저씨는 바탕이 좋으신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뿐이지."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거야. 그걸로 충분하다." (ch.16 p.25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이겨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과제다. 특히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유얼 집안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폭력을 행사할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백인들은 그녀가 돼지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그렇다고 흑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강기슭에 땅을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얼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메이콤 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품 바구니를 건네 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까지 보냈습니다. (ch.19 p.307)

  결국 팀 로빈슨의 친절은 메이엘라 유얼이 백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의 통제되지 못한 연민의 감정(이 또한 흑인으로서의 규범을 어기게 된다.) 은 메이엘라에게는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왜곡된 형태로 보상해줄 대상 또는 수단으로, 기존 관습과 규범에 익숙한 백인(어른)들에게는 넘어선 안 될 경계를 넘어온 자, 즉 치욕과 모욕으로 다가선다. 그렇기에 (모욕 받았다고 믿는) 그들에게 있어서 팀 로빈슨의 재판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죄(Crime)를 다루는 것이 아닌, 금기(백인과 흑인의 경계)를 어긴 신성 모독(Sin)에 관한 일이 된다.  

"네, 검사님. 아가씨가 상당히 불쌍해 보였습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고요, 불쌍하게 보였다고요?" 길머 검사님은 마치 천장으로라도 튀어 오를 기세였습니다. (ch.19 p.316)

  이 순간 법정에서는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린 딜의 울음소리만이 소외된 이웃(메이엘라 유얼)에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가선 팀 로빈슨의 통제되지 못한 감정(연민과 친절)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ch.19 p.319)

 그러나 밥 유얼은 어리석게도 흑인 청년을 무고함으로써 메이콤(=백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으려 했다.: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규범을 지키고 있어!"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것은 모욕과 멸시였다.: 경계를 지켜내지 못한 쓰레기. 잉여 인간. 쓸모 없는 녀석. 팀에게 내려진 배심원들의 유죄 선고는 사실 그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배제와 추방. 그것은 울타리였다. <넌 이 곳을 넘어선 안 돼!>라고 답변하는, 유죄를 선고하면서 팀 로빈슨을 쳐다볼 수 없었던 이들이 새롭게 놓은 울타리.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바로 이런 식이었거든." (ch.27 p.400)

 기존 규범에서 이탈한, 그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의 공허함은 또 다른 경멸과 적대를 불러 일으켰다. 마을 축제가 모두 끝난 어둠 속에서 밥 유얼은 몸부림 쳤고, 자신이 놓쳐버린 (어쩌면 허락되지 않은) 아이들의 울음에 상처를 내려했다. 그러나 또 다른 앵무새 한 마리, 아서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고, 팀 로빈슨이 그들에게 안겨준 작은 파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선(규범)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가로등이 읍내까지 길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태껏 이 방향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ch.31 pp.446-447)

  어린 소녀 스카웃을 이 작품의 화자로 삼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아빠(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자칫 작품을 유치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작품 속 성숙한 그의 태도와 말은 아이들의 시선에 비춰질 때 비로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낸다. 

아빠는 오랫동안 마룻바닥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드셨습니다. "스카웃 유얼 씨는 자기 칼 위로 넘어졌어. 이해할 수 있겠니?"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
"이해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글쎄, 말하자면 앵무새를 쏴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ch.30 p.443)

 그렇게 아서 부 래들리를 이 세상(메이콤)의 앵무새로서 지켜내려는 아빠의 한마디에 스카웃은 래들리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오빠 젬을 소개한다. 

 책장을 덮고 스스로의 모습을 아이들의 눈에 비춰본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 (ch.7 p.97)"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멋진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걱정이 많다.

 끝으로 몇 가지 생각을 던져본다.

  1. 정치는 비극(tragedy)이 아닌 희극(comedy)이 될 수 있을까?
  2. 진정한 대화는 가능한가?
  3.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을 넘어선 규범, 즉 이성적 규범은 존재하는가?

2021년 9월 3일 금요일

(독서)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by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저 / 김진준 역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by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저/김진준 역

 필립 말로는 탐정이다. 모든 탐정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모든 탐정이 그와 같이 냉소적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그는 분명 냉소적이다. 모든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런데 그 한 발짝이 문제긴 하다.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냉소는 사실 언제든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발걸음이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선 발걸음은 여지없이 연민과 애정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말로의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그 발걸음을 옮길지 말지는 언제나 그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애쓰지 않는 인물이다. 우선 주변의 사람들과 사건을 관찰할 뿐이다. 김렛 한두 잔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핀다. 가끔은 혼자 체스를 둔다. 그리고 다시 관찰하고 생각하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몇 마디를 내뱉는다. 건조한 말투와 냉소적인 태도, 그 이면에는 날카로움이 있다. 가끔 내뱉는 빈정거림에는 애정과 이해가 뒤섞여 있다. 그래서 필립 말로는 매력적이다.

"이 사람은 두꺼운 소설책처럼 쉼표를 잔뜩 찍어 가며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11장)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어요, 로링 부인. 워낙 알쏭달쏭한 인간이라서." (31장)

"그는 마치 차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차를 마셨다." (32장)

"달빛에 물든 벽돌담처럼 침착한 사람이었다." (47장)

"1백 명 중 두 명한테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겠죠. 나머지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렇게 20년쯤 지났을 때 남자한테 남는 거라고는 차고 안에 들여놓은 작업대 하나가 고작이거든." (50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매우 뛰어난 문학적 수사는 없다. 그렇지만 <기나긴 이별>은 여전히 좋은 책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소설에서는 작가가 새겨 놓은 깊은 사유의 흔적과 작품의 주제가 흥미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창조한 매력적인 인물 한 명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보다 그가 창조한 인물 필립 말로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아서 코난 도일보다 셜록 홈즈가 더 유명하듯.) 

 몇 년 전 프랑스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라비크(소설 <개선문>의 주인공)가 즐겨 마셨던 칼바도스는 너무 독했는데(사과주라더니...), 말로가 테리와 나눠마신 김렛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걸 마시려면 아무래도 술집에 가야겠다. 굳이 우리 집에 로즈 사의 라임 주스를 사 놓을 필요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