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요일

2024년 봄학기,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2024년 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이걸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여전히 Digital Humanities (DH;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봄 학기를 시작했다. 이번 학기 총 10학점을 이수하였고, 강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Politics and Digital Humanities (3)
  2. AI: Prospects and Perils (4)
  3. DH: Methods & Practices (3)
(1)과 (3)은 DH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강의였고, (2)는 철학과의 강의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 - 코딩, 프로그래밍, 그리고 데이터 관련 산업의 최근 동향과 실제 사용하는 스킬셋 - 은 부족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문학적/이론적 시각을 좀 더 알고 싶었기에 철학과 수업을 신청하였고, (3)을 통해 작은 프로젝트의 방향과 목표를 처음부터 구상하고,  실제로 개발/실행하는 경험을 얻고 싶었다. (1)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DH 프로젝트가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기에 과감히(?) 선택하였다.


1. Politics and Digital Humanities

과감한, 그리고 야심찬 선택이었다. 매주 읽어야하는 논문의 양, 마찬가지로 매주 제출해야하는 글 과제가 있었다. 이에 더해, DH 프로젝트 리뷰 발표와 한 시간 가량의 수업 과제(class facilitator)는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이 과제들을 통해 강의 내용 이외에도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 수강을 결정했다. 뒤로 미룰 수록 부담이 될 듯 하여, 수업 과제 - What is/are politics? & What is/are DHs? -  를 두번 째 주에 제일 먼저 끝냈다. 나에게는 어차피 발표를 위한 대본이 필요하였고, 해당 주제에 관한 상반된 철학적/이론적 시선(Hannah Arendt vs. Carl Schmitt)을 제공하면 충분할 듯 하여 용기를 냈다. (끝난 후의 그 안도감이란....)

이 강의를 통해 다양한 정치관련 DH 프로젝트 - 또는 그냥 Digital projects - 를 접할 수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24년은 미국에게도 정치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기존 정치문제들 - racism, gender, indigineous people, immigrants, data sovereignty, privacy....-과 더불어 현실 정치 현안들 또한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정치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미국 사회/공동체의 "인종"이라는 주제가 결코 사라질 수도, 해결될 수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한 학생의 꽤 강력한 주장: "Racism is functioning as a social platform for all kinds of discrimination in the US."

미국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심지어 양육에 있어서 까지 인종 문제는 굉장히 깊숙히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암울하구만...)

학기 중 총 10개의 글을 올렸고, 두 번의 발표, 그리고 마지막 과제까지. 학기가 끝나고 2주 후에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였다. (나는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강의 중 접하게 된 흥미로운 프로젝트)

2. AI: Prospects & Perils

비전공자에게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철학 강의가 있다는 사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특히) 영미 철학계에서는 인식론/언어/의미론/심신이론/인지과학 등에서 AI와 관련된 연구가 꽤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윤리/가치/정치/문화와 같은 분야들과 AI의 상관관계에 대한 철학적 작업이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할 실정이다. 

강의는 짜임새 있었고, 학생들 간의 활발한 (가끔은 지나친...) 토론, 담당 교수의 물음과 답변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관련 주제들을 충실히 다룰 수 있었다. 초반에는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구조와 자연어의 관계, 가능성, 한계 등을 다루었다. 또한, 경험론과 합리론 사이의 인식론적 차이와 AI의 상관성, 의식과 감성의 문제 등을 강의 주제로 삼았다. 이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분야와 그 양상들 - 예술, 보안, 정보, 자동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 에 관한 다양한 윤리적/실용적 접근을 시도했다. 

Generated by AI (Copilot)

지난 학기 AI 관련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았고,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면, 현재 대중매체가 전파하고, 일반 대중이 이해하고 있는 AI의 모습과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AI 사이에는 간극 있다. 이제 곧 (또는 '이미') 모든 분야를 AI의 자동화 시스템이 차지 할거라 (또는 '했다')는 대중의 생각과는 다르게 프로그래밍/코딩 - 데이터 수집/정리/처리 등은 여전히 노동 집약적이다. 흔희 이야기하는 데이터화(Dataficaton)의 뒷 편에는 보이지 않는 (그래서 소외된) 노동이 있고, 이들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반시설은 실상 '매우' 발전한 산업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단순히 말하자면, 오늘 날의 디지털 '혁명'은 기존의 구조/체계를 완전히 뒤엎는 사건이 아니다. (혁명은 아직 요원할 뿐...) 오히려 기존 산업 혁명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The clould is a factory."라는 문장이 이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단이 현재 AI 산업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노동/자본 집약적인 분야지만, 그 노동과 자본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고, 기술의 발전 속도는 공동체의 숙고와 고민을 따돌리고 있다. 문제는 이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현재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사회/정치/문화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Nick Bostrom (https://nickbostrom.com/)이 제시하는 철학적 개념들 - singletone, ancestor simulation, existential risks -이 당장은 일견 공상과학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곧 우리가 직면하고 고민해야할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과 관련하여, 정치적/공적 영역의 필요성(the political/public sphere), 지적/실천적 개방성 (epistemic/pratical openness)과 관련한 과제를 제출하였지만, 현실에서 조차 사라져가고 있는, 허울 좋은 당위일 뿐인 개념들과 오늘 날의 암담한 모습이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AI는 작금의 세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Society in, Society out...


3. DH: Methods & Practices

디지털 인문학 프로그램의 필수 수강 강의다. 지난 가을 학기에 수강했던 <Intro. to Digital Humanities>에 이어, 이번 봄 학기에는 DH 관련 주제와 이론을 직접 실천/실행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다시 던지는 물음: What is/are Digital Humanities? 

담당 교수의 지적대로, <"디지털" + "인문학">이라는 조합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후자다. 시간이 흘러 디지털을 대신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전자의 자리를 대체하겠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문학"적 디지털 프로젝트가 이번 강의의 주요 학습목표가 된다. 

Then, what is a DH project?

인문학은 꽤 폭넓은 개념이다. 프로이트 덕분(?)에 인간의 의식적 행위에 더해 무의식적 행위까지도 연구의 대상이 된다. 사실 모든 물음은 인문학을 벗어나지 못한다. '묻는다'는 행위까지도. 이렇듯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그 방법론에 있어서, 인문학을 다루는 DH 프로젝트는 반드시 학술적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니다! 

DH의 주요 분야 중 하나는 Open Pedagogy다. (개방 교육, 열린 교육?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통해 DH는 기존 학문 공동체의 울타리를 더욱 확장 시키고, 학제 간의 연결성을 강화한다. 참여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다양한 주제/이론/실천의 결합과 상호 작용을 장려한다. 그렇기에 DH는 단순히 디지털 도구/기술의 활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장벽들- 기술, 언어, 지역, 인종, 문화 - 을 허물어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을 강화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요구한다. 따라서 DH는 기존 인문학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자체로 인문학이 된다. 

DH 프로젝트는 현실적인 부분 - 프로젝트의 기간, 예산, 수명, 관객 등- 과 이론적 틀 - 목적, 방법론, 코딩 등 - 을 함께 고민한다. 그렇게 우리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The Investigating Wittgenstein: 

이번 프로젝트 한줄 요약: 

"Presenting Ludwig Wittgenstein's life in a concise, visual format to introduce potential students to his philosophy through his life."

저자의 허락을 구한 이후에, 몽크 교수(Prof. Raymond Monk)의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를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철학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준 동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데이터를 추출하는 과정, 이후에 데이터를 구분하고 정리하는 부분,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코딩까지. 프로그래밍이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배경 지식을 갖은 둘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개발/발전 시키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여전히 미완성인 프로젝트이지만, 향후에 관심 주제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강의 중 접하게 된 흥미로운 프로젝트)

(총평)

지난 가을 학기에 접했던 생소한 내용/주제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다. 가령, <Knowledge Infrastructure> 수업에서 다루었던, 당시 무관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오늘 날의 '알고리즘' 사회에서 어떤 기능/역할을 수행하고 왜곡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정치적 구조가 다시금 AI, 머신 러닝, 데이터 자동화 등의 새로운 기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지만, 몰려드는 자본과 커져가는 산업, 진화하는 기술과 인간의 욕망이 그 날개짓을 기다려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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