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3일 토요일

편견의 가치(The Value of Prejudices)

실용주의(Pragmatism; or pragmaticism for Peirce)는 그 이전까지의 인식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편견(prejudice; prejudgment)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이 정치 공동체(polis)의 외부에 아카데미아(Academy)를 세움으로써, 철학은 일상으로부터 독립되었다. 아카데미아의 설립은 철학에게 자유로운 - 물리적/이론적인 의미 모두에서 - 공간을 내주었지만, 사유(thought; philosophy)와 행위(action; politics)의 분리는 철학으로 하여금 말그대로 순수한 학문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었다. 더불어,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성에 기반을 둔 참된 지식(episteme)은 경험 일반으로 부터 얻는 의견(또는 억견; doxa)과 다른 층위에 놓이게 되었다. [1]



[1]아렌트(H. Arendt)는 이를 서양의 정치철학이 지금껏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 개념을 상실한 채, -정치적(anti-political)인 모습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고립된 지식의 탐구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아렌트의 자유(freedom) 개념은 단순히 필요로 부터의 자유에 그치지 않는다. 필요로 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인 공적 담론에의 참여로 이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억견의 교환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사유와 행위의 접점으로서의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는 정치 공동체의 다원성과 개방성을 확장시키며시민으로서의 정치 참여를 유도한다아렌트의 이러한 논의는 퍼스로 부터 시작되어 제임스, 듀이, 로티, 번스타인, 후기 퍼트넘, 더 나아가 하버마스에 이르는, 실용주의의 서로 다른 조류가 각각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도 공유해 나가는 일련의 개념들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번스타인이 말하듯, 아렌트의 철학과 실용주의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또한, 아렌트가 정치/행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인식/사유 (정확하게는 "판단")의 문제로 넘어가는 반면, 실용주의는 인식/사유의 문제로부터 정치/행위의 문제로 확장해나가는 방향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에 대한 양자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이 후의 발전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의 유사성으로 이어진다.  


편견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배제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코기토(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명제로 부터 시작한다. 방법적 회의(methodic skepticism)를 통해 명석판명한 인식론적 토대를 세우는 작업은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기존 철학과의 비판적 대결이었으며, 동시에 철학의 재구성이었다. 수학의 명제 까지도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의심한 데카르트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한계선, 즉 '생각하는 주체'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회의한다. 근대학문의 모든 영역, 더 나아가 서구 근대성의 시작을 알린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철학적 문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한 그의 철학이 절대적 확신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철학적 작업이 완성된 지점은 퍼스(C. S. Peirce)에게 있어서 데카르트 이후로 이어져온 기존 철학들에 대한 비판의 시작점이 되었고, 동시에 실용주의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판은 편견에 대한 재해석으로 부터 시작한다.

We cannot begin with complete doubt. We must begin with all the prejudices which we actually have when we enter upon the study philosophy. These prejudices are not to be dispelled by a maxim, for they are things which it does not occur to us can be questioned. (...) A person may, it is true, in the course of his studies, find reason to doubt what he began by believing; but in that case he doubts because he has a positive reason for it, and not on account of the Cartesian maxim. Let us not pretend to doubt in philosophy what we do not doubt in our hearts. (Ibid., pp.28-29, emphasis mine.)

퍼스는 편견을 철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한다. 우리의 철학적 탐구는 편견을 그 배경지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기존의 의견, 즉 편견을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인식론적 토대를 위한 의심이 아니다.


The irritation of doubt causes a struggle to attain a state of belief. I shall term this struggle inquiry...The irritation of doubt is the only immediate motive for the struggle of attain belief...With the doubt, therefore, the struggle begins, and with the cessation of doubt it ends. Hence, the sole object of inquiry is the settlement of opinion. (Ibid., pp.114-115, emphasis mine.)

의심으로 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 곧 탐구(inquiry)이며, 탐구의 목적은 언제나 의견의 '잠정적' 해결이다하나의 의견(opinion; doxa)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의견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은 의심으로 부터 믿음으로, 다시 믿음으로 부터 의심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탐구과정은 결코 인식론적 주체로서의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그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다시 말해 우리에 의해 구성된다.

We individually cannot reasonably hope to attain the ultimate philosophy which we pursue; we can only seek it, therefore, for the community of philosophers. (Ibid., p.29)

이렇듯 편견에 대한 퍼스의 재해석은 데카르트주의의 주요한 측면 - 주관주의, 직관주의, 토대주의 -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더불어, 편견을 철학적 탐구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는 인식론의 범위를 개인으로부터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인식의 주체는 더 이상 ''가 아닌 '우리'가 되며, 철학은 더 이상 고립된 영역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이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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