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5일 월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4.2022: 레몬 by 권여선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4.2022

<레몬> by 권여선

 평탄하고 평온한, 굴곡 없는 순조로운 삶이 있을까?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상처 입고 해진 삶을 끌어 안은 이들은 그 삶의 특별한 의미를 알게 될까?     
 주어진 세상이고, 던져진 생이다. 견디는 것이 전부일까? 그 굴레와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작가의 시선이 각 인물들을 향한다. 

 해언과 다언 자매, 
 해언을 바라보던 태림, 
 이 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소외되어 평범한 나머지 무리에 속한 채 혐오감과 안도감(p.36)을 느낀 상희, 
 그저 윤태림의 손길을 기억하는 한만우, 
 자기 자신을 지워버린 다언, 
 혜은이를 키우는 자매의 엄마,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린 신정준,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 불쾌하리 만큼 건조한 시선이 한 소녀의 죽음을 훑고 지나간다. 세상에 문명이 들어선지 오래지만 인간 본성의 밑바닥은 자연을 닮았다. 자신과 무관한, 자기 삶의 테두리 밖에서 일어난 그 순간,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에 무심하다. 따스한 온기를 몸에 새기고, 질투가 맹목이 되고, 욕망이 들끓고, 생이 몸부림치던 그 순간. 지금껏 이어진, 연속된 시간의 한 토막이 순간의 파편들로 조각나던 그 찰나는 지나갔다. 세상은 모든 것을 무심히 지나친다. 해언이 속옷도 입지 않고 치마를 입은 채 무릎을 약간 벌려 세워 앉아 있듯이 말이다. 
 언니는 몸의 물질성에 대한 자의식이 느슨하고 희박했다. 육체가 가진 육중한 숙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외모가 주는 기쁨과 고통을 몰랐다. 언니는 자기 신체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해변에서 주운 예쁘장한 자갈 정도로 취급했다. 사람들에게 내보였을 때 유리한 점이 많다는 건 알았기에 때로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외모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몰랐다. 진주와 자갈의 차이를 모르는 어린애처럼 언니는 무심하고 무욕했다. (p.64)

 해언의 죽음. 그 순간의 사라진 조각들을 모아보자. 상상해보자. 신정준은 감히 해언을 범하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그녀의 탐스러운 속살을, 그저 때가 되어 발갛게 피어오른 그녀의 여성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녀 자신조차 무심하게 대하는 육체를 그가 무슨 수로 탐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해언의 아름다움 앞에서 움츠러드는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고 저주했을 것이다. 탐할 수 없다면 부숴버리자. 그녀의 무심한 생을 으깨버리자. 

 한 생명이 몸부림치다 부서지고 폭발하던 그 격렬한 순간이 그냥 그렇게 결정됐을 때,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이미 벌어진 과거다. 어찌할 도리 없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 순간의 조각들을 찾아다니고 끌어안고 있는 미련한 사람들만이 자신의 삶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게 생이다. 그런데 이는 무의미한 상처일까? 무가치한 생일까?

  신정준은 그 자신의 아이 예빈의 어여쁜 얼굴을 마주하고 조용한 울음으로 몸을 들썩인다. 잠든 그 아이는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없다. 자아를 분리하지 못한 아이는 세상을 모른다. 그 자신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 본다. 그는 무심한 해언의 얼굴을, 순간 자신을 들끓게 한 그녀의 거뭇한 음부를, 세상에 던져지고 방치된 그녀의 아름다움을 떠올렸을 것이다. 

 윤태림은 울고 있는 남편이 무섭다. 그래서 시를 쓴다. 아이를 잃고, 기도하고, 또 시를 쓴다. 자기를 속이고,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든다. 그녀는 그렇게 시를 쓴다.

 다언은 자신의 얼굴을 바꾼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다. 혜은이를 엄마에게 데려왔지만, 그녀 자신의 삶은 사라졌다. 원한 적 없이 선택한 삶이다.

 한만우는 다리를 잃었다. 골육종이라는 병이 그의 삶에 이유 없이 찾아왔다. 황홀했던 태림의 손길이 자신의 허리를 붙들던 때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생명은 사그라든다.
 
 시간이 흘러 다언을 마주한 상희는 시를 포기했다 말한다. 사랑한 적 없는 아버지의 죽음을 뒤로 흘려 보냈다. 죽음은 언제나 과거형이 되듯, 시를 쓰던 그 시절도 과거형이 되었다.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래서 이는 무의미한 상처일까? 무가치한 생일까? 이들이 펼쳐놓은 온갖 흔적과 소음, 버둥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섬세하고 서늘한 문장이 작가의 시선을 작품 속 여기서 저기로, 그녀에게서 그로, 그녀와 그녀 사이로 옮긴다. 세상에 펼쳐진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고요한 눈길이 신중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