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의 밤> by 마루야마 겐지/송태욱 역 |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마주한다. 글의 몸짓, 글의 숨소리, 글의 표면, 글의 무게, 그리고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듯 써 내려간 그 글의 기세를 쫓아 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55세. 이혼. 퇴사. 당뇨병. '나'는 개인으로서 죽기를 바랐지만, 결국 다다른 곳은 그의 가족을 집어삼킨, 그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고향, 가자무라다. 도망치듯 도시로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의 인간으로 출세를 향해 나아가던 그의 인생 속 단 한순간도 돌아오리라 생각지 않았기에, 결코 잊을 수 없던 곳. 가키다케 산이 내려보는 폐허, 고향 집 앞에 그가 서있다.
15년 전 이곳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한 여동생의 시체를 보았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무고한 이에게 참담한 짓을 저지른 동생은 도망 중이다. 일련의 사건에 낙담한 어머니는 극약을 먹고 고통에 몸부림 치다 죽었다. 남들의 삶에 무관심하던 아버지는 5년 전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안도한다. 행방을 알 수 없던 동생이 고향 집에 돌아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주었다. 녀석을 흉가가 되어버린 고향 집과 함께 태워버린다.
누이의 죽음. 아우가 저지른 어긋난 복수. 충격적이고 잔인하지만, 단순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가 처한 현재의 상황도 지극히 평범한 삶의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이면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제와 지레 짐작할 뿐인 저마다의 이유와 의미가 뒤엉켜있다. 인생은 단순하지만 인간은 의문으로 가득 차있다. 그 의문을 파헤치는 일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일까.
그는 죽으려 했다. 홀로 깊숙이 땅을 팠다. 스스로 죽을 자리를 만들었다. 가족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 만의 죽음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운명이 그의 발걸음을 돌려놓는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여름의 끈적한 바람이,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친 달빛이, 강 건너 맞은편에서 들려온 풀피리 소리가, 한밤 중 도롱이벌레처럼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이 모든 것이 그의 무기력했던 삶에 운명을 덧붙인다. 그리고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파랑새의 울음이 그의 운명에 확신을 준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야 한다.'
내가 저주해 마지않는 것은 누이나 그 밖의 몇몇 아가씨에게 독수를 뻗친 성범죄자 자체가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바로 아무 일 없이 이대로 끝나고 마는 내 처지다. (p.608)
태풍이 휘몰아친다. 녀석을 마주하고 깨달았다. 녀석은 죽고 싶어 한다. 죽임을 당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녀석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놀란다. 진정으로 죽고 싶다는 것은 운명을 파헤쳐 보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너 대신 죽어주지!" (p.658)
자신의 운명을 '나'에게 맡긴다는 듯이 녀석은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고, 난폭하게 변한 강물과 토석류가 녀석의 몸을 앗아간다. 녀석의 운명이 '나'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자애를 베푼 것이다.
이제 다시 홀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닥쳐온 운명을 마주했고, 더 이상 꺼릴 것 없이 고향 땅을 밟고 서있다. 강을 타고 흘러오는 바람을 들이켜고, 떠나간 이들의 안식이 빚어낸 흙을 손에 쥔다. 무너졌다 여겼던 자신의 삶을 다시 살 수 있으리라.
자아, 나가자. 마음 내키는 대로 들판을 떠돌아다니며 다시 멋진 단독 행동을 실컷 즐기자. 그리고 부침 많은 일생을, 화복(禍福)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이 세상을 마음껏 즐기자. 하지 않는 것이 무난한 일 같은 건 이제 하나도 없다. (pp.670-671)
다시 파랑새의 밤이 시작되었다. 파랑새는 모든 원죄를 대신 떠맡아줄 것 같은 소리를 산들에 메아리치게 한다. 오보레 강의 수면에 비친 나는, 아름답고 맑게 갠 하늘을 운행하는 별들보다, 그리고 반딧불이보다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pp.677-67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