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5일 토요일

고해성사

부끄러웠던 지난 날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리고 구차하게도 변명을 하고자 한다. 그래도 먼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이었던 1996년도 였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상도동 성당의 복사단 후배들의 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매우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행동이었다. 몇 번이고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더욱 미안하게도 나의 폭력에 상처 입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더 부끄럽다. 그 당시에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 너무 늦었지만 나는 이 곳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지금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마다 어린이 미사를 열심히 다녔던 적이 있다. 성당을 다니기 싫어했던, 그리고 다니기 싫은 이유가 분명했던 두살 터울의 형과 차별화된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당시 형이 내세운 "종교의 자유"라는 논리는 꽤나 논리적이고 탁월한 의견이었다.) 나는 4학년이 됨에 따라 신부님 옆에서 미사 집전을 돕는 복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 또한 형과 차별화되고자 했던 마음이 약 70% 정도는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머지 30%는 아마도 그 작은 그룹에서라도 눈에 띄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고해성사는 이로부터 3년 후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다.

3년 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상도중학교라는 곳이다. 상도중. 정글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피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는 학생들 사이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정글 속에 던져진 짐승녀석들은 서열을 정하기 바빴고, 선생들은 그런 짐승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보다 더한 짐승이 되어 희생양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선생들의 희생양은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웠던 학생들 보다는 오히려 그 어디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리고 그 자신들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조용한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선생들은 오히려 일진들을 잘 이용했다. 아침 조회 시간 운동장에서 1학년들을 줄세웠던 것은 체육 선생들의 명을 받은 2학년 일진들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 1996-1997년에 일어났던 이야기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선생들이 아무리 미쳤어도 강남 8학군 지역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곳 상도중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사당고개와 봉천고개를 넘어오는 아이들이었기에 선생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서로에게 가차없이 짐승 짓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교과서 보다는 창문 밖을 보는 시간이 많았지만, 공부를 어느 정도라도 해야 선생들과 아이들의 짐승 놀이에서 간신히 깍두기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조금 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는 그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학력과 직업을 가진 학부모였기에 어느 정도는 그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셈 이었다. 그래도 정글은 정글이고, 짐승은 짐승이다. 나도 여러 차례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정글의 법칙을 성당 복사 모임에 옮긴 적이 있다.

긴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고해성사는 시작된다.

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성당 복사 모임에 옮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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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조금만 더 변명을 해야겠다. 성당을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복사를 선다."라는 것은 일종의 지위이자 특권이다. 첫 영성체를 마치고 성찬의 전례 후에 줄을 서는 것이 연공서열에 의한 보상이라면, 첫 영성체 교육 기간 중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복사라는 지위는 특권이었다. 복사복을 갈아 입기 위해 들어가는 곳은 그들만의 비밀 스러운 공간이며, 수녀님들과 신부님들과의 가까운 거리는 그들의 특권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그들은 안다. 그들이 누리는 것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의 특권집단은 그 안에서 자기들만의 위계와 규율을 만든다. 그렇다. 신부님 옆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그 아이들은 통제된 정글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통제된 정글을 벗어났지만 곧 바로 통제되지 않는 정글 속에 던져졌다. 스포츠 머리를 하고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 던 나는 몇 번 통제된 정글을 찾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복사를 섰던 친구가 복사단 단장을 하고 있었고, 내가 보기에 복사단은 예전의 위계와 규율을 잃어가고 있었다. 진짜 정글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처 입은 짐승의 눈에 비친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도 불량했고, 나는 진짜 정글을 잠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정글의 언어와 얼차려를 소개하였다. 간단한 맛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도남중과 상도동 성당의 지리적 차이는 꽤 컸고, 그에 상응한 문화적 차이도 꽤 컸다. 적어도 성당은 사당고개와 봉천고개로 둘러쌓여있지 않았다. 이 맛보기가 그들에게는 폭력이었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 후배의 아버지가 성당에서 나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 말하였다.

"너 이 새끼. 내 자식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 알아서 해라. 가만히 안 둔다." (순화했다!)

협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저씨의 말이 무서웠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는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당시 나에게는 고작 맛보기였는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겁이 났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당시 나에게서 상처를 받았던 그 어느 누구도 이 글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지난 간 일에 대한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고 이 일이 부끄러울 듯 싶다. 이 곳에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얘들아."  

2017년 1월 25일 수요일

당신

-당신-

당신과 주고받았던 속삭임이
하나의 선이라면
출렁이는 선들로 가득한 세상 속
아주 사소한 인사말처럼
한 칸의 비좁은 방 속에서 주고받았던 그것이
그저 평행의 선이 될 수도 있었다면
보통의 일상에 내버려진
극히 평범한 일이라면
가령 어제까지의 일을
먼지 쌓인 책상 위 달력 속에서 마주하는 일과 같이
눈에서 나와 눈으로 찾아들던
당신과 나누었던 수 많은 빛과 선의 비행이
필연과 기적의 파티가 아니었다면
설령 정말로 그렇다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마주하고 싶은 그것은
순례자의 여행길 첫째 날, 교(驕)한 마음을 조금도 엿볼 수 없는
새로이 삶을 품게 된 여느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것임을
그것만을 당신께 드리고자 합니다.

What is Pragmatism?


 What is Pragmatism? Why am I still interested in this unpopular philosophy? Here is a clear answer to my question from Richard J. Bernstein.



When I teach courses dealing with pragmatism (old and new), I tell my students that it is best to think of the discourse about pragmatism as an open-ended conversation with many loose ends and tangents. I don't mean an "idealized" conversation or dialogue, so frequently described and praised by philosophers. Rather, it is a conversation more like the type that occurs at New York dinner parties where there are misunderstandings, speaking at cross-purposes,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with personalized voices stressing different points of view (and sometimes talking at the same time). It can seem chaotic, yet somehow the entire conversation is more vital and illuminating than any of the individual voices demanding to be heard. This is what the conversation of pragmatism has been like. (The Pragmatic Turn, p.30-31) 


This book is not full of Bernstein's genuine concepts, but it tells us why we should take the discussion of pragmatism seriously. Simply speaking it is alive! It is an open conversation for all of those who are getting ready to jump into many of the important themes in contemporary philosophy. In this book, Bernstein clearly shows how pragmatism will free us from philosophical bias we have had: a sharp dichotomy between subject and object, mind-body dualism, analytic-synthetic, the knowing-the known, and theory-practice. So now it is time to free us from our bias in the term of pragmatism first, then let's start a journey to the conversation of pragmatism!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시차 적응이 힘들다.

 1.
잠이 안 온다. 지금 이 곳의 시간과 떠나 온 곳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다. 5년 만에 만나고 온 사람들이 아침 시간을 서두를 때, 이 곳에서 난 아이들과 자기 전에 양치질을 했다. 시차가 있어서 좋다. 그들과 다른 시간을 5년 동안 살았고, 그들의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사랑하는 이에게 작은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오탁번 시인의 <별>이라는 시의 한 글귀를 함께 적었다.

'아내여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하고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내여 그대의 아픈 이마를 짚어보면 38조km나 이어져 있는 우리 사랑의 별빛도 아득히 보인다.'

세상 누구 보다도 가까운 이와의 사이에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 할 아득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일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사랑에 실패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그녀와의 이 아득한 거리를 그대로 두고도 그/그녀의 손을 잡는 일이 사랑이라면 나는 계속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3.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어려운 고백을 해주었다. 이 긴 시간 동안 내게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갑작스런 고백이 내가 그녀를 안아줄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난 이제 이 친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친구와는 평생 함께 살아도 좋겠다.' 재미없고, 애교도 없고, 내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내가 왜 그 때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4.
어제 밤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지금 이 곳 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내 옆의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지치다를 반복하며 지내온 나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흘러 온 시간이었을지 감히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프지만 나는 내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손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5.
또 한 명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최근에 자신이 맡아서 진행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잊혀지지 않아요. 처음 하는 일들은 다 그런가 봐요."

나는 대답했다.

"그런가 보다."

어떤 단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손이 기억난다. 우리도 다른 시간을 보냈구나. 그 시절 그녀와 나의 시차는 어느 정도였을지. 시차 때문에 놓칠지도 모를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도서관 계단 가까운 자리에서 매일 전공 서적과 소설 책을 읽었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7년 동안 사용했던 휴대전화기의 화면이 꺼졌을 때 급히 학교를 나와 새 전화기를 샀던 나의 모습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를 메우려고만 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그 해 추운 겨울 도서관 앞에서 오랜만에 만났던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그 때는 이제 내 옆에 있으니 더 이상 그녀와 나 사이에는 시차가 없을 줄 알았다.

"미안해요."

6.
각자의 시간이 이런저런 모양의 서로 다른 물결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때로는 물결의 방향이 엇갈리며 그들 사이에 금을 만들고 갈라 놓으리라. 그런데 언제나 빛은 그 틈새로 들어오고 나간다.

"그대여 그 틈을 메우려고 하지 말아요. 난 이렇게 깨어진 우리 둘 사이의 이 틈새가 좋아요."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말을 하기도, 또는 못 하기도 하겠지

5년 만에 잠깐 들른 이 곳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못 만나기도 하겠지.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못 나누기도 하겠지 싶다.

오늘 여전히 지금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여전히 착하고, 여전히 예쁘고, 또 여전히 좋다. (지금 계속해서 쓴 "여전히"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알맞게 사용하고 있다.) 짧게 만났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더 하지 못 하고 헤어졌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생각을 스스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금껏 이런 일을 배웠고, 해왔고,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앞으로 나의 삶에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고 싶은데, 난 여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못 한다.

이 친구를 또 언제 만날까 싶다. 5년 전에도 거의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 친구와 언제 또 만나서 못 했던 이야기를 나누지?' 라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나누고 싶지만, 시간도 빠르고 모두들 바쁘다. 나도 내 삶이 가끔은 너무 아무런 이유없이 바쁘게 흘러가서 슬프다.

아무튼 여전히 내 자신을 복잡하게 하는 사람은 결국 나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도, 또는 못 하기도 하니깐. 난 여전히 그렇다.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섹스를 욕구하는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섹스는 욕구(need)일까 아니면 욕망(desire)일까? 욕망인 척 하는 욕구인가? 아니면 욕구이고자 하는 욕망일까?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How To Be a Radical Leftist

내가 석사과정을 공부했던 곳은 진보적인 학문 지향으로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이게만)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많은 진보적 이론가들이 이 곳에 머물며 공부하였고, 또 새로운 젊은 이론가들이 이 곳을 거쳐간다. 

이 곳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던 중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 am kinda radical leftist in my country."

친구들은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나 또한 일정 부분 농담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보면 꽤나 급진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 -진보와 보수의 구분- 이 특정 사회 내에서 사용될 때, 그 의미는 굉장히 상대적이다. 그런데 과연 내 친구들이 농담으로 받아들인 저 문장의 의미가 단순히 "상대적"이라는 개념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해본다.

왜 그들은 내가 꽤나 보수적인 가치 - 근대 부르주아적 가치, 그들이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위선적 가치 - 를 지향한다고 생각했을까? 실제로 나는 그들의 기준에서, 이 학문 공동체 안에서 보자면, "일정한 틀" 혹은 "객관적으로 조직된 체계"를 옹호하는 보수적 입장에 위치해 있다. 왜 일까? 나는 왜 그들이 넘어가고자 하는 기존의 틀, 체계, 조직, 형식을 원할까? 

다른 질문을 해보자. 나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 사회는 일정한 기준을 지닌, 객관적으로 조직화된 체계를 가져본 적이 있을까? 다시 질문을 바꿔보자면, 한국 사회는 서구적 근대를 -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경험하였는가? 서구의 근대성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체계적인 틀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지만, 모든 대상을 표상(Re-presentation)의 객체로 이해하는 전체성의 폭력을 낳게 되었다. 주체는 언제나 객체에 침투해 들어가야 하는 '인식'주체로서 일정한 틀에 포함되지 못한 여분의 것들을 살펴볼 여유를 상실하였다.[1]

[1] 하이데거는 이러한 근대성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근대 학문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인식행위(Erkennen)가 존재자의 영역 속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행위’로서 스스로를 정립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연구’(Forschung)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접근해 들어가는 행위는 대상 인식을 위한 열린 구역(Bezirk)을 필요로 하며, 이는 자연의 진행과정에 대한 인간 주체의 선행적 진입 - 특정한 밑그림 - 을 바탕으로 한다. 수리․물리학의 경우 이러한 근대 학문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나는데, ‘수학적인 것’(數, 타 마테마타)이 모든 자연과 대상을 ‘미리 알려진 것’으로서 인식 주체 앞에 표상시킨다. 다시 말해, 수리물리학은 수적으로 계산 가능한 영역 속에서 모든 자연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며, 표상의 확실성 안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 전체성의 폭력을 두 이념의 극단적 충돌이라는 모습으로 직접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지나가던 행인이었고,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외부자들은 그들의 체계를 이식하였다. 한국사회는 그들이 그들 사회 안에서 공유해 온 특정 개념들을 수용하였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무비판적으로 이식된 서구의 근대성은 결코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필연이 아니다. 고립된 주체로 부터 시작된 서구의 근대성은 각각의 개별자들에게는 기만적 체계였고, 이를 수용하지 못한 주체들은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채, 주변으로 떠밀리고 더 나아가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경험은 서구사회로 하여금 그들의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의 시발점이 되었다.

다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자면 나는 지금껏 부숴버려야 할 어떤 사회적 체계도 경험해보지 못 한 듯하다. 한국 사회가 지금껏 사회 체제라고 불러왔던 것들은 단지 소수의 사적욕망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끈임없는 비판적 상호충돌과 합의로 부터 도출된, 객관적으로 조직된 사회적 체계를 우리는 스스로 그려 본 적이 없다. (서구 사회도 그다지...이건 어쩌면 그저 환상?) 이 곳의 친구들은 그들 스스로 부숴버리고자 하는 사회 체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구별 안에서 용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와 그들이 겪은 역사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동일한 선상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 우열의 차이 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로 환원되기는 어렵다.

언제나 정치적 공방은 치열하다. 이것과 저것의 깔끔한 구분이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한다. 그 소속감이 개인들에게 일종의 희열감과 충성심을 불러일으킨다. 위험하다!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There are lots of people you can never talk with. They will never listen to you and never be rational. They will stick to their own dogmatic belief."

그래서 내가 말했다.

"Human being has never been rational actually, there is no such thing as reason. BUT I think we can still have a conversation."

5년 만에 들른 나의 나라는 어수선했다. 그 동안 이 곳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우리 사회는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희열감을 신중함으로, 소속에 대한 충성심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간신히 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작점을 스스로 만들 매우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사회를 갖고 싶은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진짜 대화가 필요하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글을 쓰지 않다.

지난 3년 간 난 어떤 형태의 글도 제대로 써 본적이 없다.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자해.

 광기와 폭력의 전체성 속에 매몰된 인간은 개별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하나의 진리로 환원되지 못한, 전체의 테두리 안으로 수용되지 못한 대상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진다. 이러한 폭력 속에서 개별자들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의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는 극단적인 전체성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이와 같은 물리적 폭력은 전후 산업사회의 ‘물화’라는 또 다른 전체성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인간적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대체되는 현상, "소외"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모든 대상들은 주체에 의해 객체화 되고, 모든 객체를 하나의 틀 안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모두를 수치․수량화 시킨다. 이로 인해 진정한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개별자들의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주체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식’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의식이란 것은항상 ‘나는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욕구는 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 있는 존재자들을 객관적 세계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도록 강요하며, 결국 주체의 의식마저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폭력의 가해자 또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한 개별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군대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었다던 레마르크의 고백을 답습한다. 산업 사회의 포식자인 자본가 또한 자본 그 자체에 의해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이 자본가를 집어 삼키듯, 주체가 주체를 집어 삼킨다. 
 폭력이라는 행위는 대상을 상처 입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하려하며, 무엇을 해왔던가?

보통의 사람들.

"우선 우리들은 군대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부끄럽게도 간신히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

살육을 불러온 증오, 전체주의와 같은 광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누군가는 부동산 값이 오를 거라는 믿음으로 트럼프에게 투표를 하고, 누군가는 아무래도 좋으니 모두 엎어졌으면 좋겠다고 트럼프를 지지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들의 주변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원래 정신병자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악(惡)은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어서 아무렇지 않게 퍼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함께 파멸해 간다. 간신히 "하나의 인간"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