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9일 수요일

(독서)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by 니코스 카잔자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Nikos Kazantzakis)/유재원 역

원제: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by 니코스 카잔자키스 / 유재원 역

  조르바 그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다. 
" (...) 계산을 분명히 합시다. 만약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간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오?"
"보쇼, 자유인이란 거요." (p.42) 
 그는 낯선 땅에서도 자유다.
"아직도 살아 있수다. 여긴 무지무지 추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혼했수다." (p.611)
 그리고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까지도 인간이며, 자유다.
"난 평생 하고, 또 하고, 또 했지만, 결국 한일은 별거 없수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잘 있으슈!" (p.623)
 '나는 고뇌하지만, 조르바는 갈망한다.
 '나'는 관조하지만, 조르바는 행동한다. 
 '나'는 글을 쓰지만, 조르바는 춤을 춘다. 
 '나'는 이상을 꿈꾸지만, 조르바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나'는 관념의 세상을 거닐지만, 조르바는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조르바는 삶에 좌절하고, 윤리를 버리고, 고통을 겪고, 자신의 애정과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는 이 세상에 욕지거리를 하고, 동시에 자신의 품 안에서 체온을 나눈다. 
 "나는 내 인생하고 맺은 계약 기간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순간에 브레이크에서 발을 뗍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외길이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브레이크를 사용하죠. 하지만 나는, 대장, 바로 이 점에서 내 고유한 가치가 빛나는데요, 이미 브레이크를 던져버렸죠. (...)" (p.303)

 수도원 산턱에 설치한 케이블을 마을 사람들과 수도사들 앞에서 선보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잘못된 기울기 계산, 기울어진 나무 기둥, 그 위에 올라탄 나무들은 조르바의 깃발 신호에 맞춰 하늘을 날아 땅에 곤두박질 친다. 굉음과 불꽃을 내뿜고, 나무 파편이 사방에 튄다. 사람들은 줄행랑 쳤고, '나'는 조르바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아녜요!" 조르바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가 다시 깃발을 들었다. 그는 절망적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끝장내려고 서두르는 것 같아 보였다. (pp.574-575)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라이, 이제 나도 모르겠다.'는 듯이 깃발을 휘젓는 조르바의 모습이 내 눈앞에 그려진다. 살아서 펄떡이는 어린아이의 생명력을 발견한다. 그는 마땅히 천 년을 살아야 할 인간이다.   

 '관념 - 육체'로 대비되는 '나 - 조르바'는 한 인간의 성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한 번쯤, 안주하는 자신과 방황하는 자신 사이에서 주저한 적이 있다. 이 두 가지 선택지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조르바는 끝없이 방황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는 욕지거리를 뱉을지는 몰라도, 그 누구의 삶도 단정짓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며 자유다. 

"난 말이오. 조르바를 위한 기준이 따로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준이 따로 있어요. (...)" (p.230)

 고백건대 나는 결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자를 수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이건 나의 기준일 뿐이다.

 이곳에 짧은 감상평을 남기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다시 한번 더 읽으면 된다. 

 끝으로 이 책의 역자 유재원 교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외국 문학을 접할 때면, 특히 좋은 작품을 만날 때면, 언제나 '원작의 언어가 내 모국어 였다면......'이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역자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번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속에 흐르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읽을 때 마다, 아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마음 한가득 품는다. (그래도 오탈자가 있긴 했습니다. 편집자 분!) 특히 역자가 선택한 '대장'이라는 번역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와 '조르바'의 관계, 작품 속에 그려진 크레타 섬의 풍경, 그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조르바가 화자 '나'에게 갖는 애정과 질책, 기대와 놀림, 때로는 존중과 조소까지도 동시에 드러나는 유일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다시 한번 역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2022년 3월 6일 일요일

P.S.A.

 J: This is PSA not USA.

M&Y: ......

J: Poops States of America.


Clean after your dog!!!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그녀와 그의 자전거 연습 3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오전 8시 20분.



Y: 자유롭게 자전거를 탐. 추후 기어 사용법을 배워야 함.

J: 균형 잡고 자전거를 탐.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출발하는 법 연습 필요.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그녀와 그의 자전거 연습 2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Y: 자전거 타기 성공. 오른쪽/왼쪽 방향 바꾸기 성공. 페달에 발 올리고 출발 성공. 내리막길 브레이크 성공. 오르막길은 아직 어려워 함.

J: 연습하기에는 조금 큰 자전거라서 동네의 친구 자전거를 빌리기로 함.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그녀와 그의 자전거 연습 1

<자전거 연습하는 날>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오전 9시.

Y: 두 발로 자전거 밀기. 자전거 페달 위에 발 올렸다가 내리기. 페달 4번 돌리기 성공.

J: 연습하기에는 조금 큰 자전거. 균형 잡기. 까치발로 자전거 밀기.

2022년 2월 15일 화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2.202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김초엽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2.202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김초엽
  

 미래에서 바라본 현재의 모습. 발전된 기술로도 감출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 유약한 인간이 마주한 타자의 얼굴. 이 모두를 바라보는 작가 김초엽의 시선이 따뜻하다. 

 할머니는 무력하고 유약한 이방인이었기에 환대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pp.80-81, 스펙트럼 中.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p.188, 감정의 물성 中.)

 "내 생각에 재경 이모는 인어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 (p.26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中.)

 각 단편 속 작가의 물음들이 특별히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만큼 참신하지는 않다. 그러나 미래를 그려내던 작가의 시선이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 SF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기존의 물음을 새롭게 채색한다. 그녀의 시선은 우리에게 응답을 요구하는 타자의 얼굴로 드러난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연약하다. 그렇기에 김초엽 작가의 글은 한 움큼의 온기를 품고 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주체이며 동시에 타자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를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그녀의 의도였다면, 그녀는 작가로서 분명 성공적인 첫걸음을 옮겼다.     

 독자로서 김초엽 작가에게 작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면, 

  • 작가의 질문은 작품 깊숙이 더 감춰도 된다. 대화나 글 안에서 스스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다.
  • 장르 소설이라는 외형을 걷어내면, 작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 글의 질감, 호흡이 아직은 부족하다.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앞으로 세상에 내놓을 작품들을 기대한다.

2022년 2월 6일 일요일

(Song) Animals & Nature by Y.

 Animals & Nature

#1

The animals are in the sky, trees and the ground.

The birds take the sky,

Squirrels are in the trees,

Wolves are on the ground.

The animals are in the sky, trees and the ground.

They are all around.

#2

Wolves are hunting in the winter.

Birds are gathering to eat prey.

Wolves are eating moose.

Geese are migrating south.

#3

The beauty of nature.

The birds are singing their songs.

The beauty of nature.

The days are getting long.                                  

2022년 1월 31일 월요일

(독서)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어젯밤; Last Night>
by
제임스 설터(James Salter)/박상미 역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글을 쓴다면 이런 질감일까? 아니. 반대로 제임스 설터가 그림을 그렸다면 호퍼의 작품과 비슷한 색감을 품었을까?  

 삶은 건조하고, 빛 속에 어둠이 있다. 삶은 생소하지만 피할 수 없고, 필연과 우연은 겹쳐져 있다. 사랑은 한 발자국, 때로는 한 뼘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떠나간다.

- 봐요, 저녁 할 수 있어요?
- 아, 달링, 그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약혼했어.
- 그렇군요. 축하해요. 그녀가 말했다. 몰랐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말이었다.
- 정말 잘됐네요.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를 보고 웃었지만, 그 웃음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는 오랜 커플처럼 그녀와 나란히 클락스에 걸어 들어가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pp.178-179, 플라자 호텔 中.)

 건조한 필체로 삶을 관조하는 작가들이 있다. 제임스 설터는 그의 짧은 글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은밀한 구석을 들여다 본다. 주변의 삶에 관여하지 않은 채, 대상들과 거리를 둔 채, 그렇게 그는 우리 모두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담담하게 삶을 바라본 다는 것은 그 뒷모습 의 순간들마저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남성적이고 건조한 문체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글은 섬세하다. 마치 호퍼의 그림처럼.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독서) NYPL Korean Book Club 01.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뉴욕 공공 도서관 한국어 북 클럽 01. 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y 신형철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슬픔이라는 주제,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슬픔에 대한 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빛깔을 발하고 있다.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슬픔(1부), 소설(2부), 사회(3부), 시(4부), 문화(5부). 그리고 각각의 주제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은 글에 드러나는 작가의 진솔함에 있다. 
 
 나는 사실 신형철이라는 비평가/작가를 잘 모른다. 이는 아마도 부끄러운 고백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읽었던 많은 시집들, 도서관 한 쪽의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고서 읽던 문학 잡지들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나는 그의 글을 잘 모르고, 따라서 그를 잘 모른다. 물리적 공간의 변화가 읽고 쓰는 문자의 교체로 이어져 버렸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알고 있다.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글을 읽으며, 그 안의 진솔함을 발견한다. 

 작가 신형철의 글들은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맞서 일어서야 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특히 시에 관한 글들이 가장 좋았지만,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 속에 녹아있는 연민과 애정, 부끄러움과 연대의 마음을 읽으며 작가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음 글들을 통해 그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물은 언제나 아름답다. 다른 시에서는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놀라운 직유들을 그는 어린아이가 과자를 흘리듯이 한 편의 시 안에 아무렇게나 흩뿌려놓는다. 그가 제아무리 헌신적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의 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존경하기만 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에 질색하고 시에서 그 가치를 수상쩍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얻은 것들에 조금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시는 세계와 싸울 때조차도,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과 함께 싸워야 한다. (pp.301-302, 시의 천사-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왔고 내 말이 글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해왔다. (pp.429-430, 문학에 적대적인 세계 .)

 책에 대한 약간의 투정을 부려본다면, 짧은 호흡의 글들이 산만한 인상을 준다는 정도다. 글 모음 책이 갖는 형식의 한계이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형철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와 마주 앉아 그의 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안녕 2022년.

 2021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나는 2022년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곳의 시간은 매우 순차적이고, 불가역적이며, 선형적으로 흐른다. '시간은 필연적/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아무튼, 다들, 별 다른, 눈에 띄게 새로운 희망 없이도 새해를 반겼고, 숫자를 매겨보니 이제 2022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팠다. 2021년의 끝을 아픔으로 마무리하고 그 아픔을 강제 인수 당한 채로 2022년을 시작했다. 운 좋게 피할 듯 했던 COVID-19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철저한 마스크 사용과 규칙적인 손 세정, 최첨단 백신이라는 두터운 벽을 뚫어낸 녀석의 침투에 감탄할 수 밖에. 

 저렇게 끝내버린 2021년 안녕. 이렇게 시작한 2022년에게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