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9일 토요일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2017년 7월 4일 화요일
New York City 3: A Guide
![]() |
| Sakura Park, New York, NY |
Sakura Park in Morningside Heights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 그리고 내 아이의 첫 번째 친구가 생긴 곳. 아이와 모래성을 만들고, 물놀이를 하고, 나무에 오르고, 뜀박질을 하고, 또 가끔은 걱정하는 마음에 아이를 큰 소리로 혼냈던 장소. 내 첫 째 아이는 모든 종류의 탈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 공원의 놀이터 앞을 지나가는 2층 버스를 매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 Friendship of Y & E in Sakura Park, New York, NY |
놀이터 바로 앞 도로 건너 편으로는 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 있다. 이 앞으로는 큰 나무가 길 양쪽으로 대략 30미터 정도 나란히 서있는데, 그 풍경이 매우 단정하면서도 활기찬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 주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 또는 늘씬한 몸매를 한 모델들의 화보촬영을 종종 볼 수 있다. 언젠가 한번은 50-60년대 배경의 드라마였는지, 놀이터 앞 도로에 생전 처음 보는 옛날 자동차들을 주차해놓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조용하던 동네가 조금은 소란스러워졌고, 길거리에서는 무전기를 든 사람들이 길을 통제하곤 했는데, 이 동네에서 1년만 살아도 이런 정도의 불편함은 쉽게 익숙해진다. 사실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뉴욕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한 첫번 째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공중화장실 찾기의 어려움, 이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Train Traffic이라는 개념, 갑자기 선로를 바꾸는 지하철 등이 있다.)
이 공원(Sakura Park) 안에는 오래되고 낡은 자그마한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두개의 그네, 거북이 모양 분수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커다란 모래상자가 전부다. 그래도 이 좁은 놀이터 안에 벤치는 충분히 있어서 부모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장소다. 여름이 다가오고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 모래상자 안의 모래들은 온전히 제자리에 있기가 어렵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모래를 다른 곳으로 퍼나르기 시작하면, 언제나 한명 두명 동참하는 녀석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고 아이들의 발길이 뜸해질 때 즈음, 공원관리자는 황금빛 모래로 작은 언덕을 옆에 만들고서는 때마침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바구니를 선물하고 아이들과 함께 내년 여름에 가지고 놀 모래를 상자에 채워넣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볼 수 있는 봄도 좋지만, 이 공원은 가을이 되어야 자신의 매력을 자세히 보여주곤 했다. 낙옆들이 깔린 풀밭에 누워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조용한 시간을 선사한다. 낙옆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풀밭 한쪽에 허리가 조금 굽어있는 나무를 볼 수 있다. 가을이 되어 색이 바랜 잎들을 붙들고 있는 나무의 주름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면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굽어진 허리가 아이들에게는 의자가 되어준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아이들은 이 나무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서로 깔깔거리며 30분은 족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동네에서 처음 사귀게 된 가족 -내 아이의 첫번 째 친구 가족- 이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마지막 시간을 이 공원에서 함께 하며, 우리 모두가 이 곳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이터의 모래상자, 풀밭, 등이 굽은 나무, 덩그러니 서 있는 이름 모를 사람의 동상, 한가로운 벤치들. 어떤 대상을 우리가 추억하고 또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그에 대한 우리의 선명했던 기억이 점점 흐려질 때에, 그래서 그 틈마다 지금껏 지나쳐온 시간들에 대한 또 다른 기억들이 스며들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아이는 그녀가 세상에서 만난 첫 친구를 평생 기억할 수 있을까? 비록 내 아이의 기억 속에서 그 친구의 모습이 잊힌다해도, 내가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 만들게 될 이야기 속에 그 친구의 손에서 느꼈던 온기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Labels:
Avenue & Street,
NYC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철학을 하면 말이야...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듣는 몇 가지 말이 있다.
"멋지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면 꼭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관상이나 사주를 볼 줄 알아요?"
"철학보다는 종교가 더 깊이가 있다. 성경에 모든 진리가 있다."
"(아주 가끔) 철학은 나쁜거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강신주님 책 읽어 봤어요? 나중에 강연하면 돈 많이 벌겠다."
"지대넓얕 들어봤어요?"
"내가 요즘 듣는 철학 강의가 있는데......이런 저런......그래서 저래서......이거 맞아요?"
"나중에 뭘 할 수 있어요?"
"앞에서 말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
"철학자들은 책을 왜 그렇게 어렵게만 쓰는거야! 그게 무슨 철학이야. 인생이란 말이야......"
실제로 다 들은 말이다. 또 뭐가 있었나?
"멋지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면 꼭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관상이나 사주를 볼 줄 알아요?"
"철학보다는 종교가 더 깊이가 있다. 성경에 모든 진리가 있다."
"(아주 가끔) 철학은 나쁜거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강신주님 책 읽어 봤어요? 나중에 강연하면 돈 많이 벌겠다."
"지대넓얕 들어봤어요?"
"내가 요즘 듣는 철학 강의가 있는데......이런 저런......그래서 저래서......이거 맞아요?"
"나중에 뭘 할 수 있어요?"
"앞에서 말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
"철학자들은 책을 왜 그렇게 어렵게만 쓰는거야! 그게 무슨 철학이야. 인생이란 말이야......"
실제로 다 들은 말이다. 또 뭐가 있었나?
Labels:
공책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성공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는 엄마와 함께 누운 채로 자전거 놀이를 하며 외쳤다.
Y: "윤아가 1등 할거야. 윤아가 1등 할거야!"
S: "......"
Y: "윤아가 성공할거야!"
그리고 그녀는 잠들었다.
Y: "윤아가 1등 할거야. 윤아가 1등 할거야!"
S: "......"
Y: "윤아가 성공할거야!"
그리고 그녀는 잠들었다.
Labels:
그녀의 말(言)
2017년 6월 9일 금요일
세상에 관한 그녀의 말
Y: "지호야. 세상은 원래 그래."
J: "......."
Y: "어른들만 전화기 가지고 노는거야."
J: "......"
Y: "어른들이 돈을 벌어서 그런거야. 어릴 때는 그냥 먹고 자고 하는거야. 그러면서 크는거야."
J: "......"
Labels:
그녀의 말(言)
2017년 6월 4일 일요일
그 사람이 보였다
1.
지금껏 나는 그 삶이 저질렀다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2.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어떤 이의 얼굴을 꿈에서 볼 때가 있다. 그것이 추억인지, 미련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걱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연히 평소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당연히 지금 연락을 할 수 없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도 없고, 너무 멀기도 하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있는 삶을 살고있지 않다. 그래도 궁금하다.
친분을 이어오지 않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득 갑자기 보고싶어지는 이들이 있다. 가끔은 뜬금없이, 그렇게 멀어진 이들에게 연락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나의 연락이 별로 반갑지 않을테지만, 그래서 대답을 듣지 못할 때도 많지만, 나는 가끔 그들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의 그 사람에게는 연락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항상 너무 착했다.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그런 말투와 태도와 몸짓과 눈빛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이 모든 '알 수 없음'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듣던 음악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고,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본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걱정이 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3.
지금껏 나는 그 삶이 저질렀다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2.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어떤 이의 얼굴을 꿈에서 볼 때가 있다. 그것이 추억인지, 미련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걱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연히 평소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당연히 지금 연락을 할 수 없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도 없고, 너무 멀기도 하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있는 삶을 살고있지 않다. 그래도 궁금하다.
친분을 이어오지 않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득 갑자기 보고싶어지는 이들이 있다. 가끔은 뜬금없이, 그렇게 멀어진 이들에게 연락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나의 연락이 별로 반갑지 않을테지만, 그래서 대답을 듣지 못할 때도 많지만, 나는 가끔 그들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의 그 사람에게는 연락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항상 너무 착했다.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그런 말투와 태도와 몸짓과 눈빛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이 모든 '알 수 없음'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듣던 음악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고,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본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걱정이 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3.
내가 나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시계를 보는 일과 같다.
나를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는
지금 내가 의심스럽다.
무엇을 사치라고 여겨야 하는지
요즘 나는 내게 물을 수 없다.
세상 모든 것들이 들끓어서
나는 겁이 난다.
Labels:
소곤소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대화의 가치(The Value of Conversation)
이론(theory)과 실천(practice)의 관계는 철학의 핵심적인 주제다. 양자 간의 관계에서 어느 곳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철학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큰 틀에서 보자면 이에 대한 철학자들의 모든 논의는 이론적인 작업이다. 기존 개념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 새로운 개념의 창조, 개념들의 실천적 사용과 적용에 관한 논의.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모든 이론적 작업은 언제나 실천적 모습으로 드러난다. 글과 말을 통해, 비판과 논쟁을 통해,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고, 다듬어지고, 발전하고, 반증되고, 사라진다. 그렇기에 모든 철학의 태동은 언제나 삶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정도의 차가 있으나) 모든 철학적 논의는 대화를 통해 시작되었다.
앞서 <편견의 가치>라는 글에서 언급했던 아렌트의 지적을 상기해보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설립은 곧 서구철학이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영역 - 아렌트는 그녀의 철학에서 이를 크게 철학과 정치 영역의 분리됨으로 보고 있다. - 을 서로 다른 층위에서 다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의 고백 -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 은 어느 누구도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고백은 그 자신이 철학자로서, 그리고 정치 공동체(polis)의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자의 역할은 폴리스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이 아닌, 시민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시민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일,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철학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기꺼이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죽었다. 안타깝다.) 그러나 폴리스로 부터 유리된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들은 더 이상 지식(episteme)의 정당성을 실천(praxis)의 영역에서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식은 이성을 통한 관조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주체(나)의 사유만을 통해 지식의 절대적 토대를 찾고, 객체(대상)를 주체의 보편적 개념틀 안에서 표상하였다. 주체는 인식대상을 자신의 이성 안으로 포섭하려는 시도 속에서 지식의 보편적 정당성을 얻으려하고, 그 지식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다시 말해, 주체는 객체와의 대립적 관계(confrontation) 속 에서 지식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였다. 결국 인식론적 특권은 '객체와 대립하고 있는 주체'에게 귀속되었다. 아렌트는 주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시작이 아닌, 끝으로 향하는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서양철학의 시작이었다." 대화를 잊은 '객체와 대립하는 주체'의 시작.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 간 철학자는 바로 로티(Richard Rorty)다.
로티가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 비판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분석(analytic)-종합(synthetic), 마음(ideas)-대상(objects), 주체(the knowing)-객체(the known), 그리고 이론(theory)-실천(practice). 로티는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을 전복하려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대립(confrontation)을 참여자들 간의 대화(conversation)로, 지식의 객관성(objectivity)를 공동체의 연대성(solidarity)으로 교체함으로써:
로티가 그 자신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영미분석철학계의 총아가 배신자가 되다니!"
로티는 기존의 체계적 철학, 즉 대문자 P로 시작하는 철학(Philosophy with a capital P)을 거부한다. 철학은 더 이상 거대 형이상학적 담론의 생산지가 아니다. 때문에 그는 기존의 철학자들에게 진리 추구자로서의 철학자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비평가("a kibitzer or a therapist or an intellectual historian" in Consequences of Pragmatism)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는 기존 철학의 '인식론적 작업과 이론적 개념'이 '사회적 합의와 실천'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철학의 기획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교차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티는 기존의 실용주의적 관점, 즉 이론과 실천 영역을 이으려는 노력을 굉징히 급진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기존 철학들의 이론적 작업, 더 나아가 이론영역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로티는 우리의 그 어떤 문제들도 사회적 실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객관성(epistemic objectivity)이 아닌, 사회적 연대성(social solidarity)이 된다.
로티의 실용주의가 지닌 이러한 급진성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기존의 이론영역과 인식론적 개념들에 대한 그의 성급한 폐기 주장은, 오히려 기존 철학들에 대한 실용주의의 가장 큰 비판, 즉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묻는다. '모든 사건과 사태가 사회적 사안으로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로티 그 자신이 주장한 대로 새로운 철학적 작업이 다양한 목소리를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라면, 기존 철학의 목소리가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 그의 글 "One Step Forward, Two Steps Backward"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t is time that Rorty himself should appropriate the lesson of Peirce, “Do not block the road to inquiry,” and realize that rarified metaphilosophical or metatheoretical discussion can never be a substitute for struggling to articulate, defend, and justify one’s vision of a just and good society. (Richard Bernstein, The New Constellation. p.253.)
분명 로티의 철학은 급진적이다. 그래서 그의 요구는 성가시다. 그러나 실천과 행위의 영역, 즉 공동체 속 참여자들의 대화를 다시금 철학의 장 안으로 이끌려 한 그의 주장은 또한 분명 유의미하다. 대화가 지닌 개방성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품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들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시작점을 얻는다. 따라서 대화는 이론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대화는 이론의 과정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론적 작업이 곧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모든 탐구는 편견으로 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 얻어진 지식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지식은 틀릴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는 실용주의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기에 로티의 철학은 실용주의의 정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앞서 <편견의 가치>라는 글에서 언급했던 아렌트의 지적을 상기해보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설립은 곧 서구철학이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영역 - 아렌트는 그녀의 철학에서 이를 크게 철학과 정치 영역의 분리됨으로 보고 있다. - 을 서로 다른 층위에서 다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Today
we know that Plato and Aristotle were the culmination rather than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which had begun its flight when Greece had
reached or nearly reached its climax. What remains true, however, is that Plato
as well as Aristotle became the beginning of the occidental philosophic
tradition, and that this beginning, as distinguished from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occurred when Greek political life was indeed
approaching its end…Even more serious was the abyss which immediately opened
between thought and action, and which never since has been closed. All thinking
activity that is not simply the calculation of means to obtain an intended or
willed end, but is concerned with meaning in the most general sense, came to
play the role of an “afterthought,” that is, after action had decided and
determined reality. Action, on the other hand, was relegated to the meaningless
realm of the accidental and haphazard. (Hannah Arendt, The
Promise of Politics. pp.5-6)
소크라테스의 고백 -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 은 어느 누구도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고백은 그 자신이 철학자로서, 그리고 정치 공동체(polis)의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자의 역할은 폴리스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이 아닌, 시민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시민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일,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철학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기꺼이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죽었다. 안타깝다.) 그러나 폴리스로 부터 유리된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들은 더 이상 지식(episteme)의 정당성을 실천(praxis)의 영역에서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식은 이성을 통한 관조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주체(나)의 사유만을 통해 지식의 절대적 토대를 찾고, 객체(대상)를 주체의 보편적 개념틀 안에서 표상하였다. 주체는 인식대상을 자신의 이성 안으로 포섭하려는 시도 속에서 지식의 보편적 정당성을 얻으려하고, 그 지식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다시 말해, 주체는 객체와의 대립적 관계(confrontation) 속 에서 지식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였다. 결국 인식론적 특권은 '객체와 대립하고 있는 주체'에게 귀속되었다. 아렌트는 주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시작이 아닌, 끝으로 향하는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서양철학의 시작이었다." 대화를 잊은 '객체와 대립하는 주체'의 시작.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 간 철학자는 바로 로티(Richard Rorty)다.
로티가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 비판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분석(analytic)-종합(synthetic), 마음(ideas)-대상(objects), 주체(the knowing)-객체(the known), 그리고 이론(theory)-실천(practice). 로티는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을 전복하려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대립(confrontation)을 참여자들 간의 대화(conversation)로, 지식의 객관성(objectivity)를 공동체의 연대성(solidarity)으로 교체함으로써:
I shall be arguing that their [Sellars
and Quine's] holism is a product of their commitment to the thesis that
justification is not a matter of a special relation between ideas (or words)
and objects, but of conversation, of social practice…Once conversation replaces
confrontation, the notion of the mind as Mirror of Nature can be discarded. (Richard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170.)
로티가 그 자신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영미분석철학계의 총아가 배신자가 되다니!"
로티는 기존의 체계적 철학, 즉 대문자 P로 시작하는 철학(Philosophy with a capital P)을 거부한다. 철학은 더 이상 거대 형이상학적 담론의 생산지가 아니다. 때문에 그는 기존의 철학자들에게 진리 추구자로서의 철학자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비평가("a kibitzer or a therapist or an intellectual historian" in Consequences of Pragmatism)가 되기를 요구한다.
This does not mean that they
(pragmatists) have a new, non-Platonic set of answers to Platonic questions to
offer, but rather that they do not think we should ask those questions anymore…They
would simply like to change the subject…Pragmatists are saying that the best
hope for philosophy is not to practice Philosophy. (Ibid. xiv-xv. emphasis mine.)
그는 기존 철학의 '인식론적 작업과 이론적 개념'이 '사회적 합의와 실천'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철학의 기획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교차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티는 기존의 실용주의적 관점, 즉 이론과 실천 영역을 이으려는 노력을 굉징히 급진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기존 철학들의 이론적 작업, 더 나아가 이론영역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로티는 우리의 그 어떤 문제들도 사회적 실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객관성(epistemic objectivity)이 아닌, 사회적 연대성(social solidarity)이 된다.
로티의 실용주의가 지닌 이러한 급진성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기존의 이론영역과 인식론적 개념들에 대한 그의 성급한 폐기 주장은, 오히려 기존 철학들에 대한 실용주의의 가장 큰 비판, 즉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묻는다. '모든 사건과 사태가 사회적 사안으로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로티 그 자신이 주장한 대로 새로운 철학적 작업이 다양한 목소리를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라면, 기존 철학의 목소리가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 그의 글 "One Step Forward, Two Steps Backward"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t is time that Rorty himself should appropriate the lesson of Peirce, “Do not block the road to inquiry,” and realize that rarified metaphilosophical or metatheoretical discussion can never be a substitute for struggling to articulate, defend, and justify one’s vision of a just and good society. (Richard Bernstein, The New Constellation. p.253.)
분명 로티의 철학은 급진적이다. 그래서 그의 요구는 성가시다. 그러나 실천과 행위의 영역, 즉 공동체 속 참여자들의 대화를 다시금 철학의 장 안으로 이끌려 한 그의 주장은 또한 분명 유의미하다. 대화가 지닌 개방성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품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들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시작점을 얻는다. 따라서 대화는 이론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대화는 이론의 과정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론적 작업이 곧 실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모든 탐구는 편견으로 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 얻어진 지식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지식은 틀릴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는 실용주의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기에 로티의 철학은 실용주의의 정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2017년 5월 16일 화요일
카-ㄹ-스(Cars)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가 만화영화 카(Cars)를 보고 있었다. 그도 함께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Y: "지호야 카-ㄹ-스는 너한테 아직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건 나한테 중요한거야."
J: "......"
Y: "내가 차를 좋아하잖아! 넌 저리가"
J: "......."
그래도 그는 옆에 앉아 있었다.
Y: "지호야 카-ㄹ-스는 너한테 아직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건 나한테 중요한거야."
J: "......"
Y: "내가 차를 좋아하잖아! 넌 저리가"
J: "......."
그래도 그는 옆에 앉아 있었다.
Labels:
그녀의 말(言)
오류의 가치(The Value of Error)
퍼스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 실제로 그는 제임스의 실용주의가 자기 철학에 대한 왜곡과 오해라고 생각하였다. -, 실용주의는 이후의 철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며 발전했다. 이처럼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면서도 그들이 '실용주의자'로 묶일 수 있는, 그들이 함께 자라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이었을까? 퍼스가 철학적 탐구의 배경지식으로서 편견을 재해석하고, 절대적 진리의 발견이 아닌 상호 대립적인 의견들의 지속적인 재조정을 철학적 탐구의 목표로 삼았을 때, 철학은 '나'의 고립으로 부터 '우리'의 개방으로 이행하였으며, 이는 곧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개념/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편견/의견(prejudices/opinion),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quiry),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 이론과 실천의 관계(theory and practice). 그리고 실용주의가 이러한 주제들로 부터 다양한 조류를 형성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던 토양은 이 철학이 지닌 개방성(openness)에서 찾을 수 있다.
실용주의의 '개방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허울 좋은 포장지가 아니다.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하는 것은 실용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실천적 의무이자, 동시에 인식론적 의무이다. 이는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용인하고 (퍼스는 이게 너무 괴로워서 pragmaticism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나 보다.), 공통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기꺼이 대화의 상대가 되고자 하는 자세이다. 더불어 이러한 실용주의의 개방성은 하나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에 의해 도전 받고, 비판 받고, 더 나아가 거부될 수 있다는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의 근거가 된다.
개방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오류가능주의는 회의주의(skepticism)와 분명히 구분된다. 현대과학에 익숙한 오늘날의 회의론자들은 데카르트의 악신이라는 유령학적 개념보다는 통속의 뇌(Brain-in-a-Vat)라는 사고실험을 선호한다. 이들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적 믿음들에 -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창 밖의 나무를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신체가 있다.' - 의문부호를 붙인다. 극단적 형태의 회의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 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회의주의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논박적이다. 만일 (S-1)이 참이라면, 이는 회의주의 논증 그 자체의 정당화 가능성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회의론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논증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그 논증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제한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오류가능주의를 수용하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실용주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반회의주의(anti-skepticism)의 출발점이 된다.
오류가능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우리의 지식은 절대적 확실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식은 언제나 새로운 반증과 비판, 더 나아가 폐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지식의 정당화 과정은 언제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류가능주의와 회의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이론적 구조 안에 개방성을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에 놓여있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우리도 믿음(belief) 차원에서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류 가능성을 담보한 정당화된 지식(knowledge)은 불가능하다.' 즉, 그들은 지식의 정당화 과정에 있어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한다.
(S-2)
(1) In order to know that P, P must be justified to degree N.
(2) P is not justified to degree N.
Therefore,
(3) We do not know that P.
회의주의의 약화된 논증 (S-2)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to degree N)'라는 표현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인가?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해야 한다.
'P를 알기 위한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P를 알 수 없다.'
만일 이들이 오류가능주의의 지식개념, 즉 잠정적으로 정당화된 믿음(provisionally justified belief)에 만족한다면, 오류가능주의를 못 받아 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오류가능주의와 선을 그을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적어도 N 정도의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 지식은 불안하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은 이 불안을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P를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이는 회의주의가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의 데카르트적 불안(Cartesian anxiety) 개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주의의 데카르트적 불안은 그들이 지닌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연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실용주의는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한다. 개별주체는 더 이상 지식/진리에 대한 마지막 심판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정한 편견을 배경지식으로 삼아 탐구과정에 참여한다. 탐구과정을 통해 확립된 우리의 지식은 잠정적이다. 현재의 지식은 언제든지 다음 탐구과정의 배경지식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확실성 보다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지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개방적 탐구과정 안에서 활력을 얻는다.그렇기에 오류는 결코 부정적 개념으로서만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돌과 갈등의 시작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탐구와 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실용주의의 '개방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허울 좋은 포장지가 아니다.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하는 것은 실용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실천적 의무이자, 동시에 인식론적 의무이다. 이는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용인하고 (퍼스는 이게 너무 괴로워서 pragmaticism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나 보다.), 공통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기꺼이 대화의 상대가 되고자 하는 자세이다. 더불어 이러한 실용주의의 개방성은 하나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에 의해 도전 받고, 비판 받고, 더 나아가 거부될 수 있다는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의 근거가 된다.
개방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오류가능주의는 회의주의(skepticism)와 분명히 구분된다. 현대과학에 익숙한 오늘날의 회의론자들은 데카르트의 악신이라는 유령학적 개념보다는 통속의 뇌(Brain-in-a-Vat)라는 사고실험을 선호한다. 이들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적 믿음들에 -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창 밖의 나무를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신체가 있다.' - 의문부호를 붙인다. 극단적 형태의 회의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 될 수 있다.
(S-1) There is nothing we can call knowledge, because we can never be justified in believing.
이러한 형태의 회의주의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논박적이다. 만일 (S-1)이 참이라면, 이는 회의주의 논증 그 자체의 정당화 가능성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회의론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논증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그 논증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제한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오류가능주의를 수용하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실용주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반회의주의(anti-skepticism)의 출발점이 된다.
오류가능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우리의 지식은 절대적 확실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식은 언제나 새로운 반증과 비판, 더 나아가 폐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지식의 정당화 과정은 언제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류가능주의와 회의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이론적 구조 안에 개방성을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에 놓여있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우리도 믿음(belief) 차원에서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류 가능성을 담보한 정당화된 지식(knowledge)은 불가능하다.' 즉, 그들은 지식의 정당화 과정에 있어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한다.
(S-2)
(1) In order to know that P, P must be justified to degree N.
(2) P is not justified to degree N.
Therefore,
(3) We do not know that P.
회의주의의 약화된 논증 (S-2)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to degree N)'라는 표현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인가? 회의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해야 한다.
'P를 알기 위한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P를 알 수 없다.'
만일 이들이 오류가능주의의 지식개념, 즉 잠정적으로 정당화된 믿음(provisionally justified belief)에 만족한다면, 오류가능주의를 못 받아 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오류가능주의와 선을 그을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적어도 N 정도의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 지식은 불안하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은 이 불안을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N 정도의 정당화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P를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이는 회의주의가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의 데카르트적 불안(Cartesian anxiety) 개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Either there is some support for our being, a fixed foundation for our knowledge, or we cannot escape the forces of darkness that envelop us with madness, with intellectual and moral chaos. (Bernstein, Richard, Beyond Objectivism and Relativism p.18.)
그리고 이러한 회의주의의 데카르트적 불안은 그들이 지닌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연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실용주의는 개별 주체 '나'의 인식적 특권을 탐구자들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quirers)인 '우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틀릴 수도 있음'을 수용한다. 개별주체는 더 이상 지식/진리에 대한 마지막 심판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정한 편견을 배경지식으로 삼아 탐구과정에 참여한다. 탐구과정을 통해 확립된 우리의 지식은 잠정적이다. 현재의 지식은 언제든지 다음 탐구과정의 배경지식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확실성 보다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Despite Peirce's insistence on fallibilism, he is far from being an epistemological pessimist or sceptic: indeed, he is quite the opposite. He tends to hold that every genuine question (that is, every question whose possible answers have empirical content) can be answered in principle, or at least should not be assumed to be unanswerable. For this reason, one his most important dicta, which he called his first principle of reason, is “Do not block the way of inquiry!” (Robert Burch, "Charles Sanders Peirce",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10 Edition)
지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개방적 탐구과정 안에서 활력을 얻는다.그렇기에 오류는 결코 부정적 개념으로서만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돌과 갈등의 시작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탐구와 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