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4일 일요일

착한 아이에 관한 그녀의 말

Y: "야. 너만 착한게 아니야. 짜식아."

그녀는 동생이 받는 칭찬이 못마땅하다.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편견의 가치(The Value of Prejudices)

실용주의(Pragmatism; or pragmaticism for Peirce)는 그 이전까지의 인식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편견(prejudice; prejudgment)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이 정치 공동체(polis)의 외부에 아카데미아(Academy)를 세움으로써, 철학은 일상으로부터 독립되었다. 아카데미아의 설립은 철학에게 자유로운 - 물리적/이론적인 의미 모두에서 - 공간을 내주었지만, 사유(thought; philosophy)와 행위(action; politics)의 분리는 철학으로 하여금 말그대로 순수한 학문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었다. 더불어,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성에 기반을 둔 참된 지식(episteme)은 경험 일반으로 부터 얻는 의견(또는 억견; doxa)과 다른 층위에 놓이게 되었다. [1]



[1]아렌트(H. Arendt)는 이를 서양의 정치철학이 지금껏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 개념을 상실한 채, -정치적(anti-political)인 모습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주장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고립된 지식의 탐구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아렌트의 자유(freedom) 개념은 단순히 필요로 부터의 자유에 그치지 않는다. 필요로 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인 공적 담론에의 참여로 이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억견의 교환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사유와 행위의 접점으로서의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는 정치 공동체의 다원성과 개방성을 확장시키며시민으로서의 정치 참여를 유도한다아렌트의 이러한 논의는 퍼스로 부터 시작되어 제임스, 듀이, 로티, 번스타인, 후기 퍼트넘, 더 나아가 하버마스에 이르는, 실용주의의 서로 다른 조류가 각각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도 공유해 나가는 일련의 개념들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번스타인이 말하듯, 아렌트의 철학과 실용주의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또한, 아렌트가 정치/행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인식/사유 (정확하게는 "판단")의 문제로 넘어가는 반면, 실용주의는 인식/사유의 문제로부터 정치/행위의 문제로 확장해나가는 방향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에 대한 양자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이 후의 발전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의 유사성으로 이어진다.  


편견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배제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코기토(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명제로 부터 시작한다. 방법적 회의(methodic skepticism)를 통해 명석판명한 인식론적 토대를 세우는 작업은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기존 철학과의 비판적 대결이었으며, 동시에 철학의 재구성이었다. 수학의 명제 까지도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의심한 데카르트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한계선, 즉 '생각하는 주체'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회의한다. 근대학문의 모든 영역, 더 나아가 서구 근대성의 시작을 알린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철학적 문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한 그의 철학이 절대적 확신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철학적 작업이 완성된 지점은 퍼스(C. S. Peirce)에게 있어서 데카르트 이후로 이어져온 기존 철학들에 대한 비판의 시작점이 되었고, 동시에 실용주의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판은 편견에 대한 재해석으로 부터 시작한다.

We cannot begin with complete doubt. We must begin with all the prejudices which we actually have when we enter upon the study philosophy. These prejudices are not to be dispelled by a maxim, for they are things which it does not occur to us can be questioned. (...) A person may, it is true, in the course of his studies, find reason to doubt what he began by believing; but in that case he doubts because he has a positive reason for it, and not on account of the Cartesian maxim. Let us not pretend to doubt in philosophy what we do not doubt in our hearts. (Ibid., pp.28-29, emphasis mine.)

퍼스는 편견을 철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한다. 우리의 철학적 탐구는 편견을 그 배경지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기존의 의견, 즉 편견을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인식론적 토대를 위한 의심이 아니다.


The irritation of doubt causes a struggle to attain a state of belief. I shall term this struggle inquiry...The irritation of doubt is the only immediate motive for the struggle of attain belief...With the doubt, therefore, the struggle begins, and with the cessation of doubt it ends. Hence, the sole object of inquiry is the settlement of opinion. (Ibid., pp.114-115, emphasis mine.)

의심으로 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 곧 탐구(inquiry)이며, 탐구의 목적은 언제나 의견의 '잠정적' 해결이다하나의 의견(opinion; doxa)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의견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은 의심으로 부터 믿음으로, 다시 믿음으로 부터 의심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탐구과정은 결코 인식론적 주체로서의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그것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다시 말해 우리에 의해 구성된다.

We individually cannot reasonably hope to attain the ultimate philosophy which we pursue; we can only seek it, therefore, for the community of philosophers. (Ibid., p.29)

이렇듯 편견에 대한 퍼스의 재해석은 데카르트주의의 주요한 측면 - 주관주의, 직관주의, 토대주의 -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더불어, 편견을 철학적 탐구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는 인식론의 범위를 개인으로부터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인식의 주체는 더 이상 ''가 아닌 '우리'가 되며, 철학은 더 이상 고립된 영역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이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사유(이론)와 행위(실천)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2017년 5월 9일 화요일

데카르트가 아니야. 지금 우리가 불안한거야! (Cartesian Anxiety)

대중적으로 익숙한 (가끔은 오해하고 있는) 철학 문구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들이 창조적으로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문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식의 확고한 토대(foundation)를 마련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의 이 철학적 명제는 근대 서구에서 시작되어 오늘 날 거의 모든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으로 수용되고 작동한다. 주체-객체, 신체-마음, 내부-외부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주체로 하여금 외부를 표상하게 만듦으로써 객관적 지식의 확장을 도모한다. 따라서 지식의 객관성을 담보해야하는 "나"는 생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 곧 존재로 이행한다. 아니다. "생각하는 "이 이미 존재를 내포한다. "나"는 "생각하는 것"으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유의미해진다. 데카르트가 서구의 근대를 이 의심할 수 없는 토대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철학자들의 역할은 더욱 더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완전한 토대를 마련하려는 그들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시도가 계속됨에 따라 오히려 우리는 불안해진다.

"지금 우리를 받치고 있는 토대가 과연 안전한 걸까?"
"고정된 토대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의 데카르트적 불안(Cartesian anxiety)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이러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개념은 데카르트의 토대 메타포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번스타인이 주목한 것은 그 이면에 있는 - 그래서 철학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 영혼의 여행에 관한 비유이다: 선한 신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 이 믿음이 지켜지지 못하면 암흑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리라는 불안!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강박! 번스타인은 우리의 이러한 믿음으로 부터 유래한 불안과 강박이 단지 인식론적 차원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매우 존재론적이라고 주장한다.

It would be a mistake to think that the Cartesian Anxiety is primarily a religious, metaphysical, epistemological, or moral anxiety. These are only several of the many forms it may assume. In Heideggerian language, it is "ontological" rather than "ontic," for it seems to lie at the very center of our being in the world. (Bernsetin R., Beyond Objectivism and Relativism. p.19, emphasis mine.)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우리의 존재 방식은 "생각하는 나"에게 불안과 함께 고립을 선물한다. 고립되어 불안한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나는 소멸해 간다. 소멸해 가는 나는 대립과 배제, 더 나아가 폭력으로써 나의 자취를 다른 것들에게 새긴다. 이건 아마도 논리적 비약이다. 그러나 다시 상기해보자. 확고한, 불변하는, 의심할 수 없는 토대에 대한 우리의 염원이 낳은 대립을. 번스타인은 이를 객관주의와 상대주의가 대립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객관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체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모든 가치를 상실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상대주의는 우리가 지금껏 성취한 모든 사실과 가치를 외면하는 냉소를 우리의 존재방식에 투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자택일식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가다머의 해석학적 접근, 하버마스의 실천적 담론의 장, 로티의 실용주의적 비판, 아렌트의 판단력 개념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번스타인이 도착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Such a vision [cultivating the types of dialogical communities]is not antithetical to an appreciation of the depth and pervasiveness of conflict - of the agon - which characterizes our theoretical and practical lives. On the contrary, this vision is a response to the irreducibility of conflict grounded in human plurality. But plurality does not mean that we are limited to being separate individuals with irreducible subjective interests. Rather it means that we seek to discover some common ground to reconcile differences through debate, conversation, and dialogue. (Ibid. p.223, emphasis mine.) 

앞서 번스타인은 자신의 데카르트적 불안이라는 개념이 존재론적(ontological)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곧 또 다른 형태의 고정된 토대로서 우리의 존재방식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껏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존재방식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의 불안한 선택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방식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데카르트적 불안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이기에, 오히려 우리 존재방식의 다양한 양상을 가능케 한다. 충돌과 다원성은 우리의 존재방식을 열린 장(the open sphere)으로 불러들이며, 고립이 해소된 불안은 오히려 (로티의 말을 빌리자면)창조적 언어로 이어질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새로운 가능성은 "나"의 불안이 "우리"의 대화 속에서 해소될 때 비로소 그 싹을 틔울 수 있다.

짧은 글의 끝자락에서 멈춰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건 어쩌면 너희(the Western)만의 불안이었던건 아닌가? 아니면 너희 때문에 우리까지 불안해진 건가? 아무튼 내가 딛고 서 있는 많은 것들이 불안하긴 하다. 이곳에서나 그곳에서나.

2017년 5월 8일 월요일

가능성에 관한 그녀의 말

Y: "야. 너도 나중에 나 처럼 이렇게 할 수 있겠냐?"

J: "......"

그는 아직 말을 잘 못한다.

2017년 5월 5일 금요일

나무가 되어 떠나 간 녀석.

1. 대학에 들어가 처음 집어든 철학은 쇼펜하우어. 서른여덟 가지 방법으로 논쟁을 이끌고 싶었다. 이걸 익히고 나면 주눅 않고 시간을 넘겨보자는 생각이었지만, 논쟁이 될 수 없는 것은 이길 수 없었다. 당시 한번도 누군가의 숨결을 구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나를 벗어난 것들에게 매해 합의서를 썼다. 어찌 보면 젊음은 심리(審理)였고, 추궁의 곁가지와 같은 모습이었고, 꿈은 오히려 내가 무의식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온갖 거짓들이 매번 또렷한 모습으로 자신들은 거짓이 아니라 할 때에, 차라리 그 꿈이 딱딱하기를 바랐다.

2. 10년이 더 지났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디며 살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이 너무 무거웠다. 2006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우리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새벽 시간을 지우고 있었다.

"형, 그거 알아요.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나는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

"너무 힘들면 누구든 탓해. 먼저 네가 편해져야지."

누구도 탓하지 않았던 녀석은 대신 자신의 젊음을 탓하며 며칠 후 나무가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절을, 새벽의 시간을 나와 함께 지우듯 지워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녀석이 보고 싶다. 더 이상 젊음의 무게를 탓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어찌 되었든 나는 견뎌내며 살고 있다.

3. 나는 이제껏 삶에 적당히 온순했다. 그러나 진심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 5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고, 내가 모르고 지냈던 각자의 삶을 들려주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저녁을 사주었다. '녀석도 함께 였더라면......'라는 생각이 그날의 새벽을 지워냈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엄동설한

-엄동설한-

보기 좋게 널브러진 몇 권의 책들과 책상 위에 엎어진 그의 시간들
자신의 남편이 꽃을 피우지 못 할 마른 나무라는 것을 그 여인은 안다
아침마다 남편을 깨우는 그녀의 눈에선 투명한 꽃이 핀다
그가 부리는 시기와 발작이 꽃의 거름이 된다

캄캄한 새벽 바람 중에 부유하는 몇 톨의 글자가
그의 손끝 마디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는다
남편은 눈 감은 채로 지난 반성문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고 
오래된 것들을 태워 땅 속에 묻으면 몇 뼘의 무덤이 생겼다
그렇게 그는 간신히 아내의 이불 속에 온기를 채워넣었다

다음 날 아침 마른 몸을 물에 적시는 남편을 생각하며 쌀을 올렸다
남편이 부탁한 일은 터져버린 티셔츠 한 장의 바느질이 전부였으나
뜨거운 밥 한끼를 내고 싶었다
그녀의 사랑은 삐뚤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새로 든 집에 올 때부터 기울어져있던 나무바닥은
남편의 가슴팍 마냥 바짝 말라 올 겨울 땔감으로나 써야 할듯하다
오늘 아침 그녀의 눈두덩이에는 투명한 눈이 쌓였다

2017년 4월 26일 수요일

Gadamer's understanding of openness.

이번 학기 번스타인(Richard J. Bernstein) 교수의 배려로 그의 <Gadamer's Truth and Method> 세미나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 책의 중반이 훨씬 지나서야 가다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논의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수업에서는 경험(Erfahrung) - 또 다른 경험(Erlebnis)과 대조적 의미에서- 의 개념과 해석학적 경험(hermeneutic experience)에 관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H. Gadamer, Truth and Method (Bloomsbury 2013)

"If we thus regard experience in terms of its result, we have ignored the fact that experience is a process. In fact, this process is essentially negative." (p.361)
                                                                        
"In fact, as we saw, experience is initially always experience of negation: something is not what we supposed it to be." (p.363)

"Real experience is that whereby man become aware of his finiteness." (p.365)

이와 더불어 대화와 개방성에 관한 가다머의 설명은 단순히 철학적 논증이라기 보다는 삶에 대한 통찰을 드러낸다:

"Openness to the other, then, involves recognizing that I myself must accept some things that are against me, even though no one else forces me to do so." (p.369)

번스타인 교수가 말한다.

"Think about it. How many times have we really had a conversation with others? Of course we talk to each other everyday, but usually to impress others, not to accept others."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다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 개념에 대해 논의한 부분을 떠올려 본다. 

대화는 지식(Phronesis)이다!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앵두라는 고양이

-앵두라는 고양이-

고양이의 약점은 목덜미
야옹 야옹 야옹 내 목덜미를 놓아줘

늘어진 너의 하얀 배를 만지면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야옹 야옹 야옹 대신 내 턱을 긁어줘

오래 오래 같이 있으려면 밥 좀 그만 먹어야 해
야옹 야옹 야옹 물 말고 닭고기 도시락을 뜯어줘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New York City 2: Coffee Street

뉴욕의 모습은 다채롭다. 어둡기도, 밝기도 하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기적인 욕망이 고급스런 양복으로 덮이고, 지적 허영심이 진보의 옷을 입고, 자기 만족이 예술이 되기도 하는 이 곳은 뉴욕이다. 여러가지 상반된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서로 다른 빛깔들이 어울린다. 때로는 큰 충돌이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어떤 이들은 저항에 참여하고, 어떤 이들은 이를 조롱하며, 또한 어떤 이들은 이 모두를 관찰하고 설명하려 애쓴다.

이 혼돈(?) 속에서도 서로 다른 많은 이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커피다. 뉴욕에 오긴 전에도 가끔은 커피를 마셨지만, 주로 대화를 위해 지불한 자리값에 딸려나오는 일종의 사은품 정도의 역할이었다. 뉴욕에 온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흥미를 자극한 대상은 커피가 아니다. 난 뉴욕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커피가 나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think coffee, NYU, New York

처음으로 나에게서 감탄을 이끌어 낸 커피는 think coffee라는 가게에서 팔리고 있다. NYU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렀다. 공교롭게도 내 앞에 있던 두명 모두 라떼를 시켜서 나도 덩달아 차가운 라떼를 마셨다. 그리고 난 속으로 외쳤다. 

'커피가 이렇게 맛있다니!'   

개인적으로 뉴욕 최고의 커피로 뽑지는 않지만,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와 가까이 있기에 무난히 Top 5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가게 밖 건너 편의 벤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이 언제나 그립다.


Joe Coffee, Union Square, New York

Joe Coffee는 때에 따라, 그리고 가게에 따라서 너무 큰 편차를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뉴욕에 와서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난 물어본다.

"90점 짜리 커피를 마실래요? 아니면 70점에서 120점 사이를 헤매는 커피를 마실래요?"

누군가 나에게 뉴욕 최고의 커피를 소개시켜달라고 한다면 난 Joe를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뉴욕에서 지금껏 마신 최고의 커피 한 잔을 꼽아달라고 한다면 2012년 여름에 New School (13th St.) 근처에서 마신 Joe의 아이스 라떼를 말한다. 커피의 쓴맛과 신맛이 우유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입안에 청량감을 남겼을 때 난 이곳의 단골이 되었다. 비록 그 때는 현금만 받던 악덕상인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맛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게 단점이다. 때로는 감탄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집에 가서 네스프레소를 내려먹어야 겠다는 후회를 남긴다. 그래도 펀치 카드를 채우는 재미가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Coffee Street 연재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돈을 좀 벌어야 한다.

연재를 기대하며......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괴롭힘에 관한 그녀의 말

M: "동생 좀 괴롭히지 마. 아기 울 잖아."

그녀가 답했다.

Y: "왜 그래~이게 내가 하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