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by 김언수 |
NYPL에서 주관하는 세계 문학 축제 (NYPL's World Literature Festival International)를 통해 [김언수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듯 하여 책을 집어 들었다. 로렌스(D.H. Lawrence)의 소설을 읽다 말고, 김언수 작가의 책 <설계자들>을 읽는다. 그리고 혼자 묻는다: "현대 소설의 작법은 이런 것인가?"
급하게 읽었다. 영화 시나리오 한편을 읽은 기분이다.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 장면들을 떠올려보니 차라리 영화 한편을 본 기분이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급하게 읽었다."는 틀린 표현이다. "빠르게 혹은 급하게(?) 읽혔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듯 하다. 이야기의 진행은 막힘이 없고, 그가 창조한 세계는 익숙하며 낯설다. 작가의 노력 덕분인지 '익숙함'이 먼저 다가온다.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가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작가가 창조한 공간과 그 안의 인물들은 꽤 매력적이다.
그러나 소설의 흐름에 막힘이 없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소설의 한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대체될 때면 이전 장소 속의 인물들이 암막커튼 뒤로 조용하면서도 재빠르게 빠져나간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물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지 않다. 작가가 창조한 매력적인 인물들은 더 매력적일 수 있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다가 지나온 장면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자 책장을 뒤로 넘기거나, 그 장면을 곱씹어보기 위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게 할 만큼의 매력은 없었다는 말이다. 가령 추가 놓고 간 독일제 헨켈 부엌칼이 래생의 손에 들렸을 때, 이 소품은 인물에 매력을 부여하지만, 이는 그저 그 순간의 매력에 그친다. 시종일관 냉소적인 래생의 말투도 마찬가지다. 그가 미토와 사팔뜨기 사서를 '쪼다'와 '등신'이라 말하는 장면(p.614)은 조금 지겹기까지 했다. 이는 아마도 책 전반에 걸쳐 래생에 대한 묘사가 단조롭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책을 읽는 암살자'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오히려 그의 친구이자, 지질학을 전공한 트래커 정안을 둘러싼 서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래생이라는 인물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공과 함께한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암살자의 습관,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과잉과 결여의 모습 등을 더 상세히 다루었다면, 혹은 미사와의 교류 속에서 미묘하게 변한 래생의 감정선을 좀 더 정교하고 미세하게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래생을 단조롭게 묘사한 것이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채색 배경을 지닌 특색 없고 지루한 암살자. 현실의 뒷골목이 세상의 어둠 속에 묻혀있기 위해서는 결코 매력적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지해야 한다.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몰라야 한다. 그냥 죽여버리면 되는데 무엇하러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고민하겠는가. 그러니 모두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울타리 속에서만 꼼지락거리며 일을 한다. 그 작은 울타리들이 모여서 터무니없이 크고 복잡한 커넥션과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힌 설계가 탄생한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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