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4일 수요일

New York City 26: USA_Fascism

2026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이론적 설명이 가능할까? 미국의 감춰진 두 얼굴이 드디어 드러난 것인가?  

작금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뉴욕에 도착한 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을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 리차드 번스타인(Prof. Richard Bernstein) 교수의 <미국 실용주의; American Pragmatism> 수업을 듣고 집에 온 후였다.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퍼스(Charlse S. Peirce)의 반-데카르트 주의와 탐구 공동체 등에 관한 첫 수업이 있었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 쪽에서는 야만이 지배하던 시절, 다른 쪽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1800년대 미국. 일련의 학자들은 열린 탐구, 공동체에 귀속된 인식론적 개방성, 근대 주체성에 대한 비판을 논의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생존을 위한 폭력과 아귀다툼, 착취와 혐오가 넘쳐흐르고 있다. 

교양과 야만이 뒤범벅 된 이곳. 도대체 "미국"은 무엇인가? 

자유를 찾아 기회의 땅에 정착하러 온 사람들. 
그 땅을 차지 하기위해 학살을 저지르고, 노예를 착취했던 사람들. 

미국은 자유의 땅이지만, 자유를 갖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삶을 짓밟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지식인이었지만, 미국은 폭력과 착취 위에 세워졌다. 미국의 이중성은 이에 기인한다. 표면적 체계는 개방, 민주주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그 이면에는 폭력, 착취, 인종주의가 숨어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가 하나의 체계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적 과오를 청산했어야 했지만, 이를 포장했던 것은 허울 좋은 사회 체계와 법, 그리고 "우리는 미국이다."라는 자긍심이었다. 

현재 미국. "그들"의 자긍심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들"(특히 소외된 백인들)의 두려움은 혐오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외친다.

"This is so un-American."

 "그들"이 추방하고 가둔 수 많은 삶. 피부 색이 다른 이들의 삶. 미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비(非)백인' 퇴역 군인의 삶. 그리고 얼마 전, 자신의 차에 앉아 '난 화난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던 르네 니콜 굿(Renée Nicole Good)은 "그들"이 꿈꾸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길에서 마주한 보잘것 없는 삶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토록 짓밟고, 삭제하고, 제거하고 싶은 삶들도 "그들"에게 외친다.  

"This is so un-American."

미국 사회는 혼란스럽고, 충동적이고, 분열되었다. 고삐 풀린 폭력은 외부와 내부를 가리지 않는다. 개인의 혐오와 충동은 사회 체계와 법, 더 나아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소수의 사익 추구와 이를 정당화하는 서사가 무지성과 무비판을 등에 엎고 "그들"을 소환할 때, 전체주의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트럼프의 두번 째 당선, 일론 머스크의 나치 손 경례, 환호하는 지지자들, 그 이후 트럼프의 행정 명령과 정권 인사들의 거침없는 발언들이 한걸음씩 미국을 전체주의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파시즘을 연구해 온 저명한 학자 세 명은 미국을 떠났다. 이들의 지적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타당하다.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 

떠날 것인가? 맞설 것인가? 

예일대 교수들에게는 언제든 미국을 떠날 수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특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그들"의 폭력보다 두려운 것은 "그들"의 확신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하고, 반성한다. 의심하지 않는, 사유하지 않는, 반성하지 않는 행위에 이렇게라도 저항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