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두 학기 동안 20학점을 들었기 때문에, 논문/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애매한 7학점 수업을 들어야했다. 그렇다면 7학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뉴욕시 거주 학생에게는 매우 저렴한(?) 대학원 학비이지만, 초과 학점으로 인해 추가 학비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만일 학위를 위해 논문을 쓰게 된다면, 디지털 구조와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해보고 싶다:
<수집된 데이터의 편향성, 이를 처리하는 코드와 알고리즘이 지닌 이분법적 시각, 디지털 공간의 이면에 내재한 폐쇄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
이를 염두에 두고, 수강 신청 중에 관심을 갖게된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3)
- Social Construction (4)
- Digital Sociology (3)
강의-1은 DH 프로그램과 연계된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수업이어서, 손쉽게 학위 내 선택 학점으로 인정되었다. 남은 4학점을 자유 학점으로 채우기 위해서 철학과 강의-2를 선택하게 되었다. 비록 강의-3, Digital Sociology는 수강하지 못하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기존 산업 혁명과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이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문화적 변화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쉽지만 강의-3을 뒤로하고, 철학과 강의인 Social Construction을 선택하게 되었다. (4학점 수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불어,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가을학기 수강 신청은 손쉽게 진행되었다.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데이터와 코드가 사회의 행위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Data, Codes, Algorithms = Social agents & Subject>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조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1.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학생들이었고, 대부분 이미 데이터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같은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나와는 조금씩 다른 관점 - 웹 디자인이 지닌 한계, 시각화의 예술성과 정보 전달의 관계, 디지털 산업 구조와 조직체계의 폐쇄성 등 -을 제시해주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업 동안 접하게 된 책은 다음과 같다.
- Race after Technology
- Data Conscience
- Hidden in White Sight
- Weapons of Math Destruction
책 R과 D는 연구자의 입장 - 사회학 & 컴퓨터 공학 - 에서 바라본 빅 데이터의 세계를, 책 H와 W는 작가들의 현업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자동화와 인공 지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무엇도 완전히 독립된 주제가 될 수 없듯이, 모든 과학 기술 또한 사회-문화적 맥락/편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다.
Kodak Shirley Cards |
예를 들자면, 초창기 카메라 필름 기술이 전제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였을까? 필름은 빛을 흡수하고, 대상의 모습을 저장하고, 현상하는 과정을 돕는, 순진무구한 도구일 뿐일까?
“Hey! We almost forget the most important thing!” |
광고를 보시라. 이 얼마나 전형적인 미국-백인-중산층-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란 말인가!
<Race after Technology>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market and profitability imperative of tailoring technologies to different populations is an ongoing driver of innovation.” (p.106)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기술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 졌을까?"라는 물음은 "누가 이 물건을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다. (How Kodak's Shirley Cards Set Photography's Skin-Tone Standard)
이렇듯, 차이는 배제로 이어지고, 배제는 차별로 이어진다. 카메라의 조리개가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기술-도구의 등장이 언제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예들이 등장하는데,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책-R과 W를 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네 권의 책 모두가 대동소이한 시각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복되고 중첩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다른, 상반된 목소리와 논증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 & 자료들-
- https://www.civicsoftechnology.org/technology-reset-simulation
- https://knightfoundation.org/features/misinfo/
- https://www.queeringthemap.com/
- https://alhadaqa.com/the_unwelcomed/
- http://www.storiesbehindaline.com/
- https://jaimeserra-archivos.blogspot.com/2014/11/cafe-diario-la-relacion-que-mantengo.html
- https://www.archivosjaimeserra.com/archivos/viernes-dulces
2. Social Construction
지난 학기 AI 강의에 이어서, 우연히도 같은 교수(Prof.Jesse Prinz)의 수업이었다. 역시나 짜임새있는 강의 주제들과, 자세한 설명,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한 학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강의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회 구성' 또는 '사회 구성주의(constructionism)' 정도가 될 듯하다. 형이상학/인식론의 측면에서 언어/과학/실재론-반실재론을 다루었고, 세부적인 주제로는 의학/인종/성/젠더/정치-음모론을 접할 수 있었다.
2.1.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구분하여, 사회 구성주의를 과학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철학적 논증은 "사회 구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 상대주의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만큼 중요한 철학적 제안이 될 수 있다.
2.2. 미국 사회 내의 아시안 공동체에 대한 두 가지 편견: (1) 탁월함/능력 & (2) 외부인. 이 둘의 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 Toxic combination - 에 대한 논의 또한 흥미로웠다.
2.3. 마지막으로,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비상계엄/내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읽었던, Jaron Harambam의 논문 “Against Modernist Illusions: Why We Need More Democratic and Constructivist Alternatives to Debunking Conspiracy Theories”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원래 계획했었던 소논문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퍼스 기호학의 세 부분(Triadic relation: Sign-Objects-Interpretant)을 통해 데이터/코드/알고리즘 이면에 내재된 이분법적 표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막판에 방향을 틀어서, 반실재론과 객관성에 대한 후기 퍼트넘과 로티의 철학을 비교하는 것으로 과제를 대신하였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받은 위로의 이메일 일부분을 남기며 2024년 가을학기에 대한 되돌아봄을 마친다.
"I can’t imagine how it must have felt to endure those hours of uncertainty. A sober reminder of how much damage one leader can do. But the big lesson here is that the South Korean people are strong, and the democracy is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