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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영웅 전설> by 박민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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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영웅 전설> by 박민규 |
마지막 학기. 강의를 듣지는 않았다. 홀로 논문을 쓰고, 가끔 교수님과 만나서 의견을 주고 받는다. 프로그램 특성상, 교수님이 모든 학생의 주제에 맞춰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는 없다. 워낙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있고, 교수님들의 배경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CUNY Graduate Center의 DH 대학원에 철학 전공의 교수는 한명도 없다.)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Re-envisioning Digital Agency: from Representationalism to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논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This thesis examines the epistemological and ethical foundations of digital technologies, particularly code and algorithmic systems, by considering their entanglement with representationalism. Arguing that code now functions as a dominant social agent and epistemic subject, through the concept of the Code’s-eye view, I explore how automated datafication reduces human experience to quantifiable inputs, reinforcing epistemic closure and social fragmentation. Drawing on pragmatist philosophy, including Peirce’s semiotics, Dewey’s democratic ethics, and Rorty’s conversational inquiry, I propose an interpretant-driven epistemology grounded in communal inquiry and interpretive openness. This alternative framework resists the binary logic of algorithmic rationality by emphasizing conflict and the shared process of meaning-making. By comparing two digital mapping projects, I aim to illustrate how code can either intensify or resist these epistemic tendencies, and to demonstrate the possibility of communal agency as a comprehensive process. In this respect, I argue for reclaiming digital agency as a participatory, ethical, and socio-political process – one that reopens the public/political spheres and recovers the communal ‘We’ in an age of automated anxiety.>
본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 이 논문의 중심 주제이며, 탐구해보고자 하는 명제이다.
"Today,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그리고 이 명제는 상충하는 두 명제로 구성된다.
1. It is socially constructed.
2. It has gaind subjectivity.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 주체성을 지닌다는 말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무엇인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만든 사람이 있고, 그로부터 기능/본질을 이미 선행적으로 부여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 상충하는 두 명제(1&2)가 오히려 첫 문장 - code has become a dominant social agent - 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
논문의 주제와 내용은 지난 강의들을 통해서 발전시키고 다듬었던 것들이다. 철학적 개념들을 무리없이 적용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쉽지않은 작업이었다. 또한, 논문을 쓰면서 다루고자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지 않았나 걱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다 썼다! 지도 교수에게 최종본을 보냈으니, 답변을 들은 후에 마무리 하면 될 듯 하다.
DH 과정은 끝나가고, 완성된 논문을 도서관에 제출하면 9월에 졸업이다. 사실 졸업/학위증은 의미가 없다. 다음 여정으로의 징검다리로써 이 대학원 프로그램을 선택했으니, 이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다. (실상 논문을 쓰는 시간보다, 이에 대한 고민과 주저함이 이번 봄학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석사 논문 주제와 연관된 직업 또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미래 계획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고민 중이다.
Plan-1: Data ethics/AI ethics-related jobs
Plan-2: PhD in STS, Anthropology, Philosophy...
두 계획 모두 쉽지 않겠지만, 중첩되는 지점은 명확하다: 문외한의 기술 (데이터/코딩/인공지능) 탐방기.
이를 위한, 올 여름의 단기적인 계획은 역시나 계속 코딩을 공부해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코딩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아늑했던 DH 연구실을 떠나는 일도 슬프다.
아무튼 이제 다시, "Hello, World!"
<뉴욕에 관한 여행책자들은 많다. 그리고 뉴욕여행에 관한 블로그 자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의 여러 모습들과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뉴욕시는 어마어마한 곳이다. 우선, 경제적 영향력. 간단히 뉴욕시의 GDP를 검색해보면,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지역(GMP)을 포함하여 $2.299 trillion, 뉴욕시 자체 GDP만으로도 $1.286 trillion (2023년 기준) 이다. 학문/문화의 측면에서도 뉴욕은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다.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육 기관들이 있고, 다양한 언어/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한 뉴욕 시민들과 방문자들이 어우러진다. 뉴욕이라는 공간이 온갖 소설,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라는 사실은 말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떨까?
뉴욕시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경우 서울 시장을 2-3번 정도 역임한 인사는 자연스레 소속 정당에서의 입지가 올라가면서 유력한 대권주자가 된다. (심지어 국무회의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뉴욕 시장은 연방 정부에서의 공식적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물론, 연방 정부의 정책 수립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뉴욕 시장은 - 그 유명세에 비해 - 미국의 중앙 정치 무대와는 거리가 있는 자리다. (그렇다. 역대 뉴욕 시장 중에서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사람들은 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 정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한데, 뉴욕 시장이 갖는 주목도와 상징성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민주당내 후보 선출 선거가 끝났고, 뉴욕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을 찾았다: Zohran Kwame Mamdani
서울 은평구 연서로4길 12 2층, 읽는공간 사색서재 |
작은 공간. 마음에 드는 책. 따뜻한 차. 조용한 조명. 언젠가 태평양을 건너 가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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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을학기,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The Graduate Center, CUNY, New York)
두 학기 동안 20학점을 들었기 때문에, 논문/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애매한 7학점 수업을 들어야했다. 그렇다면 7학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뉴욕시 거주 학생에게는 매우 저렴한(?) 대학원 학비이지만, 초과 학점으로 인해 추가 학비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만일 학위를 위해 논문을 쓰게 된다면, 디지털 구조와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해보고 싶다:
<수집된 데이터의 편향성, 이를 처리하는 코드와 알고리즘이 지닌 이분법적 시각, 디지털 공간의 이면에 내재한 폐쇄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
이를 염두에 두고, 수강 신청 중에 관심을 갖게된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강의-1은 DH 프로그램과 연계된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수업이어서, 손쉽게 학위 내 선택 학점으로 인정되었다. 남은 4학점을 자유 학점으로 채우기 위해서 철학과 강의-2를 선택하게 되었다. 비록 강의-3, Digital Sociology는 수강하지 못하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기존 산업 혁명과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이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문화적 변화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쉽지만 강의-3을 뒤로하고, 철학과 강의인 Social Construction을 선택하게 되었다. (4학점 수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불어,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가을학기 수강 신청은 손쉽게 진행되었다.
관심 논문 주제가 전제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데이터와 코드가 사회의 행위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Data, Codes, Algorithms = Social agents & Subject>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조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1. Data Bias: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데이터 분석/시각화 프로그램의 학생들이었고, 대부분 이미 데이터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같은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나와는 조금씩 다른 관점 - 웹 디자인이 지닌 한계, 시각화의 예술성과 정보 전달의 관계, 디지털 산업 구조와 조직체계의 폐쇄성 등 -을 제시해주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업 동안 접하게 된 책은 다음과 같다.
책 R과 D는 연구자의 입장 - 사회학 & 컴퓨터 공학 - 에서 바라본 빅 데이터의 세계를, 책 H와 W는 작가들의 현업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자동화와 인공 지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무엇도 완전히 독립된 주제가 될 수 없듯이, 모든 과학 기술 또한 사회-문화적 맥락/편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다.
Kodak Shirley Cards |
예를 들자면, 초창기 카메라 필름 기술이 전제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였을까? 필름은 빛을 흡수하고, 대상의 모습을 저장하고, 현상하는 과정을 돕는, 순진무구한 도구일 뿐일까?
“Hey! We almost forget the most important thing!” |
광고를 보시라. 이 얼마나 전형적인 미국-백인-중산층-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란 말인가!
<Race after Technology>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market and profitability imperative of tailoring technologies to different populations is an ongoing driver of innovation.” (p.106)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기술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 졌을까?"라는 물음은 "누가 이 물건을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다. (How Kodak's Shirley Cards Set Photography's Skin-Tone Standard)
이렇듯, 차이는 배제로 이어지고, 배제는 차별로 이어진다. 카메라의 조리개가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기술-도구의 등장이 언제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예들이 등장하는데,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책-R과 W를 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네 권의 책 모두가 대동소이한 시각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의 반복되고 중첩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다른, 상반된 목소리와 논증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 & 자료들-
2. Social Construction
지난 학기 AI 강의에 이어서, 우연히도 같은 교수(Prof.Jesse Prinz)의 수업이었다. 역시나 짜임새있는 강의 주제들과, 자세한 설명,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한 학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강의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회 구성' 또는 '사회 구성주의(constructionism)' 정도가 될 듯하다. 형이상학/인식론의 측면에서 언어/과학/실재론-반실재론을 다루었고, 세부적인 주제로는 의학/인종/성/젠더/정치-음모론을 접할 수 있었다.
2.1.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구분하여, 사회 구성주의를 과학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는 철학적 논증은 "사회 구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 상대주의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만큼 중요한 철학적 제안이 될 수 있다.
2.2. 미국 사회 내의 아시안 공동체에 대한 두 가지 편견: (1) 탁월함/능력 & (2) 외부인. 이 둘의 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 Toxic combination - 에 대한 논의 또한 흥미로웠다.
2.3. 마지막으로,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비상계엄/내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읽었던, Jaron Harambam의 논문 “Against Modernist Illusions: Why We Need More Democratic and Constructivist Alternatives to Debunking Conspiracy Theories”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원래 계획했었던 소논문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퍼스 기호학의 세 부분(Triadic relation: Sign-Objects-Interpretant)을 통해 데이터/코드/알고리즘 이면에 내재된 이분법적 표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막판에 방향을 틀어서, 반실재론과 객관성에 대한 후기 퍼트넘과 로티의 철학을 비교하는 것으로 과제를 대신하였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받은 위로의 이메일 일부분을 남기며 2024년 가을학기에 대한 되돌아봄을 마친다.
"I can’t imagine how it must have felt to endure those hours of uncertainty. A sober reminder of how much damage one leader can do. But the big lesson here is that the South Korean people are strong, and the democracy is strong."
윤석렬. 그냥 바보인줄 알았는데, 이상한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었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서 그릇된 믿음을 지속적으로 그의 텅빈 머리에 주입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리라. 그러나 어리석음과 맹목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고, 이것이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시스템을 언제든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한밤 중의 끔찍한 TV 쇼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창문을 부수고 국회로 들어가던 특수부대 요원을 보라! 인간은 이렇게도 멍청하고, 다루기 쉽다.), 그 여파가 너무 크다.
이 무슨 난장판이란 말인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 by 김인정 |
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한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 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 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시선을 잡아채는 것이 반드시 변화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지 오래이니, 오래 걸리더라도 있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알려야 할 것을 균형있게 생산해 내는 매체로 머무는 건 어떤가. (p.238)
화창한 봄날, J는 NIKE Air Max를 갖게 되었다. (60% 할인 가격이었지만, 어차피 그는 모른다. 역시 미국은 아이스크림과 신발이 저렴하다!) 새 신발과의 첫날, 함께 학교에서 돌아온 J.
J: "Oh. My first NIKE!"
정성스럽게 물티슈로 신발 구석구석을 닦던 J.
런던 & 맨체스터, 잉글랜드 여행. #5
28. Sun.
Room No.188, Kimpton Clocktower, Manchester, UK. |
St.James's Park, London, U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