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by L.Wiggenstein / 한글 번역서 by 이승종 역
<Wittgenstein's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an introduction> by David G. Ster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by Ludwig Wittgenstein |
(#65-133)
"게임"은 무엇인가? (What is a game?)
"~은 무엇인가? (What is ~?)"라는 물음은 어떤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즉 그 대상에 대해 '설명(explanation)'을 요구한다. 본질을 상정하는 물음은 언제나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 있는 '언어-게임'은 단지 경험적 기술(description)이 가능할 뿐이다. 다양한 게임들을 눈 앞에 늘어놓는다.
And the upshot of these considerations is: we see a complicated network of similarities overlapping and criss-crossing: similarities in the large and in the small. (#66)
I can think of no better expression to characterize these similarities than “family resemblances”; for the various resemblances between members of a family - build, features, colour of eyes, gait, temperament, and so on and so forth - overlap and criss-cross in the same way. - And I shall say: ‘games’ form a family. (#67)
'언어-게임'은 특정한 이론적 토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즉 고정된 개념으로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 정립된다. 물론 언어는 그 자체로 개념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고도로 추상화된 언어를 통해 '언어-게임'을 말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추상성, 개념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언어가 없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는 '언어-게임'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게임의 규칙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게임'은 규칙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공통된 규칙이 게임을 정의하는가? 그러나 각 게임의 양상이 모두 다르듯, 그에 따른 규칙 또한 고정되지 않는다. 규칙은 게임 안에서도 수시로 변형되고 다양하게 해석된다. "'게임'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68)"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규칙' 또한 규정되어 있지 않다!
How would we explain to someone what a game is? I think that we’d describe games to him, and we might add to the description: “This and similar things are called ‘games’.” And do we know any more ourselves? Is it just that we can’t tell others exactly what a game is? - But this is not ignorance. We don’t know the boundaries because none have been drawn. To repeat, we can draw a boundary a for a special purpose. Does it take this to make the concept usable? Not at all! Except perhaps for that special purpose. (#69, emphasis mine)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는 '언어-게임'은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언어 '사용'이다. 이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지녔던 편견,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철학적 기획에 의문을 제기한다.: "논리학은 어떤 의미에서 고상(sublime)한 것인가?(#89, emphasis mine.)"
일상 언어의 규칙이 언제, 어디서나 정확하게 적용되기를 원한다면, 이 규칙의 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 즉 이상적 논리가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논리는 이상적인가? 그 형식은 고정 불변하는 순수 형식인가? 그들이 말하는 논리의 고상함(the sublimity of logic)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턴(David G. Stern)은 이에 대해 반-회의적(non-Pyrrhonian)입장과 회의적(Pyrrhonian)입장을 나누어 본다.
논리는 일상 언어에 적용하는 철학적 방법이며 이는 형식 논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고상함(sublime)'이라는 표현은 그 위치를 지나치게 격상시키고, 철학자로 하여금 환상에 가까운 정확성을 요구한다.(p.122)
논리는 단순히 단어/낱말 사용을 위한 규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상한' 논리는 우리의 일상적 행동 과 말하기를 터무니없는 것(nonsense)으로 이끈다. 결국 논리를 단어 사용에 적용하는 단순한 규칙 이상의 그 무엇, 즉 형이상학적 쓰임으로 바꾸며, 이를 통해 철학적 문제들, 즉 언어의 본성을 해결할 수 있다 여기게(오표상; misrepresentation) 된다. (p.123)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 '논리'는 명제의 형식적 통일성을 뒷받침한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참이다. 그러나 논리 그 자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 적용(employ; use)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언어-게임'이 그러하듯 '논리' 또한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는가?
설명은 논리를 동반한다. 그렇다면 기술(description)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활동/삶의 형식을 동반한다.
All explanation must disappear, and description alone must take its place. And this description gets its light - that is to say, its purpose a from the philosophical problems. These are, of course, not empirical problems; but they are solved through an insight into the workings of our language, and that in such a way that these workings are recognized a despite an urge to misunderstand them. The problems are solved, not by coming up with new discoveries, but by assembling what we have long been familiar with. (#109, emphasis mine.)
'논리'를 하나의 '규칙'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언제나 우리 삶의 형식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훈련과 숙련을 요구한다. 그것은 언제나 문맥과 배경을 수반한다. 이는 '논리'를 포기하는 것인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 <철학적 탐구>에 대한 상이한 해석은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철학을 재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철학에 종언을 고할 것인지.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철학은 '언어-게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석과 이해에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