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스스로 어린이

그는 말을 빨리 배우기 시작했다.

M: "아빠한테 와. 너 혼자 못해. 아빠가 도와줄게."

J: "만지지 마. 다 내가 알아서 할거야."

28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반항이 시작되었다.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요시모토 바나나를 기억하시나요?

문득 생각났다. 잊고 지냈던 이름이다. 20대 시절 그녀의 소설책 두 권 정도를 읽었다.

아무튼 여러분 요시모토 바나나를 기억하시나요? 

2017년 11월 7일 화요일

감옥에 관한 그녀의 말

그녀는 얼마 전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라는 영화를 보았고, 영화 속 악당 벌쳐(Vulture)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Y: "아빠, 그 날개달린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멀리 살아?"

M: "응. 그 아저씨는 스파이더맨 한테 혼나고 지금은 감옥에 있어."

Y: "감옥에서 뭐해?"

M: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감옥에서 사는거야."

Y: "아! 그러면 그 아저씨는 감옥에서 자고, 밥 먹고, 치카치카하고, 샤워하는거야?"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똑똑함에 관한 그녀의 말

Y: "아빠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뭐든지 잘 하니깐 괜찮아. 아빠 너무 너무 좋아."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허망한 것들의 연대

Fall Leaves, New York


화려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희망이 없는, 목소리가 작은, 그런 허망한 것들의 연대는 분명 슬프겠지?

슬프겠지만 예뻤으면 좋겠다. 화가나지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아, 온기여!

-아, 온기여!-

새벽 냉장고의 문을 열자 시계의 눈금이 움직인다. 그녀의 눈금이 주변을 살피자 나의 눈금은 움츠러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즈음, 지금의 기억이 내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여지를 남겨놓는 그녀를 보았다. 생각나는 것들: 구겨진 종이의 주름살. 반달 모양으로 잘려나간 그녀의 손톱. 정신 쇠약에 걸린 책 속의 밑줄. 평생을 읽지 않으리라 다짐한 한 무더기의 책. 뒤엉켜 있는 옷가지. 이 모든 것들을 생각 없이 바라보며 서로를 살핀다. 지금 이 시간에 모두가 무사하다. 그저 한 모금의 물에 젖어버린 목구멍이 삐걱거린다. 내일 아침이 왔을 때 세상을 알아듣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그래서 한 푼이라도 속을까 무섭다. 지금껏 그저 그런 보통의 순간들조차 예상을 벗어났다.

예전에는 나와 그녀도 연애를 했다. 언어를 가져보진 못한 민족이 장벽 너머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우리는 서로를 안고 서로의 목소리를 더듬었다. 너의 언어가 들리자 나의 언어는 흔들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열기를 못 참고 증발해 버리고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고백했다. ‘떨린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너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싶다.’ 무겁지 않게 너를 끌어안고 가볍게 이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의 혀는 오후 다섯 씨의 팔 다리 마냥 늘어질 것이고, 나의 뿌리는 또 다시 단단해질 것이며, 너의 손이 앞을 향할 때, 나의 시선은 굽이쳐 너의 목덜미 뒤로 돌아나갈 것이다. 그저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이 덜컹거리다 말 것이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승리에 관한 그녀의 말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Y: "아빠. 앞에 내가 아는 애야."

M: "같은 반이야?"

Y: "옆 반인데, 놀이터에서 다 같이 놀아. 그런데 우리가 더 빨리 가자."

M: "더 빨리 가자고?"

Y: "나는 다 이기고 싶어"

2017년 9월 18일 월요일

New York City 4: Coffee Street

La Colombe, Bryant Park, New York

뉴욕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질 수록 사라져 간 풍경들이 기억난다. - 지금 바로 떠올려 보자면, 14가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 Park) 건너편의 신발가게, 뉴 스쿨(New School) 옆 일본인 아저씨의 파니니 가게,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던 가방가게 등이 생각난다. - 그리고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다시 채우고 있는, 새로이 생겨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빈 자리에 들어서는 것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커피 가게 또 생기네.'

이 좁은 섬 마을에 카페는 차고도 넘친다. 그래도 또 생긴다. 평소에는 동네 또는 학교 근처의 단골 카페만 찾기 때문에, 뉴욕의 새로운 커피나 요즘 인기가 많은 카페 등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브라이언트 공원 근처의 <La Colombe>라는 카페도 올 여름에 처음 가봤다. 그들은 신기한 커피를 선보인다. 그 이름은 Draft Latte! 맥주를 따르는 기계에서 맥주 대신 커피가 나온다. <A Little Taste>라는 곳에서는 차가운 라떼를 주문하면 칵테일 처럼 마구 흔들어서 거품과 함께 내어 주기도 한다. <Stumptown>의 형들은 매우 마른 몸매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Oren's>에는 항상 멋진 머그컵들이 있다. 커피의 맛, 커피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몸짓, 공간의 분위기,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들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우리는 지금 커피를 마신다!'

출근길 작은 카페 문 밖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늦은 아침 느긋하게 한 쪽 손에는 초콜렛 크로아상을, 다른 한 쪽에는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서는 사람들. 카페에서 정신없이 기말 페이퍼를 쓰고 있는 학생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주말 아침 아이와 함께 카페를 찾은 아빠들.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지금'이라는 시간,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든다. 사람들은 커피 한잔이 지닌 시큼하고, 씁쓸하고, 달콤한, 그 시간을 공유한다.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보는 일이 좋다. 그들의 시간을 훔쳐보는 일이 곧 나의 시간을 들춰보는 일이 된다. - 이건 달콤하고, 또 시큼하다. 그리고 사라져간 것들의 빈자리에 세련된 모습의 새로운 커피 가게가 들어서는 모습도 본다. - 이건 참 씁쓸하다.

뉴욕은 시큼하고, 씁쓸하고, 달콤하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2017년 8월 2일 수요일

올빼미는 내일도 날아올라야 한다

(1) <개별적 특수성이 보편적 인륜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곧 역사의 진보/발전이다. 개별자들이 인륜성 안에서 자신의 본 모습('이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역사 발전의 필연성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것은 곧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곧 이성적인 것이다.>

내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이 현실화를 향한 여정에 들어서면 (1)의 철학적 구조는 '가족-시민사회-국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의 의식은 결코 어떠한 대상도 즉자적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다. 이는 그 자신의 의식 조차도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삼는, 끊임없는 '인식-부정-극복'의 관계적 구조 안에서 발견해내려 하는 '이성'의 본래적 모습이며, 이러한 이성이 현실화 되어가는 여정의 목적은 차이를 폐기하지 않는 개별과 보편의 내적 통일, 즉 완전한 '자유'이다.

따라서 (2) <헤겔의 철학은 결코 전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사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륜성을 기반으로 하는 헤겔의 국가는 그 안에 개별적 특수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개별자들의 상호 침투적 행위는 칸트가 남겨놓은 예지계를 우리 앞의 지금/여기에서 현실화 시킨다. 그리고 이 현실화는 국가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있어서 국가는 최종적이다. 다시 말해 (1)은 (2) 안에서 현실화 된다. 이 둘은 형이상학적 위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절대적 정신은 국가 안에서 현실화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화된 절대 정신이 곧 국가다.

(1)과 (2)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C-1) (1)의 구조가 지닌 폐쇄성
(C-2) (2)의 주장이 보이는 헤겔 철학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

헤겔 철학이 지닌 지나치게 방대한 철학적 구조가 비판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그 구조 안에서 용해시켜 버린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다시 말해 이 철학이 지닌 구조적 폐쇄성이 그 자신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동반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현실화 과정은 곧 이성이 완벽한 자유를 찾아가는 이상화 과정이다. 그렇기에 헤겔이 상정한 국가는 지나치게 완벽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완벽한 것들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곧 헤겔 철학에 대한 성급한 폐기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헤겔 철학 = 전체주의>라는 단순한 도식은 오히려 이 철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헤겔은 국가가 일정한 도덕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드러낸다고 믿었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철학적 구조가 딛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두 개념, 즉 '이성'과 '자유'는 눈 앞의 장애물들을 부정하고 극복해가는 운동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운동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난 국가는 그 자신이 체현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눈먼 보편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자유를 향한 인간 이성의 여행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는 언제나 대상과의 비판, 충돌, 극복을 동반한 역사적 운동이다.

헤겔 철학이 지닌 역사성으로부터 필연성을 분리하고, 절대적 이성을 비판적 탐구에 대한 개방성으로, 국가 안의 내재적 인륜성을 개별 구성원들의 발산적 연대성으로 대체해본다면 어떨까?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은 이 철학의 폐기 또는 완성이 아닌, '지속적인 이어짐'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헤겔은 자신이 몸 담고 있었던 시대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 오를 마지막 황혼 녘이라 믿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의 결론은 이와 같다: '날아오른 올빼미는 아직 죽지 않았고, 이 세상에 올빼미는 한 마리가 아니다.'

2017년 7월 31일 월요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그녀의 놀이 목록

세차장 놀이, 주차장 놀이, 스피드 놀이 (거실과 부엌을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학교 놀이, 병원 놀이, 상어 놀이, 우주여행 놀이, 등산 놀이, 경찰차 놀이, 자동차 역할 놀이, 그림 그리기 놀이, 물에 빠진 오리 놀이, 슈퍼 놀이, 한글 놀이, 영어 놀이 (세이펜!), 하나씩 정하는 놀이 (그녀의 인간 관계망을 읊어보는 놀이; 오늘 만들었다.), 아이스크림 놀이, 이렇게 돌면 어지러워 놀이.

지금껏 그녀가 개발한 놀이들의 목록이다. 그녀는 새로운 놀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놀이 개발자. 유희하는 인간. 끝없는 상상력. 그녀는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 놀이의 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