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과학적으로 표현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명제는 보편적 지식이 되지 못한다. 이는 근대의 학문적 성과와 그 토대 위에 세워진 오늘날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 매우 유효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학문은 그 자신들도 과학(science)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오늘날 많은 학문영역과 학자들이 <Me-Too-ism>에 빠져 있다며 농담섞인 비판을 던지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들을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도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 수학적 명제는 발견(discovery)의 대상인가? 또는 발명(invention)의 대상인가? 그것은 형이상학적 진리인가?
Invented or Discovered? from Google |
현재는, 매우 잠정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수학적 명제 (또는 간단히 체계, 더 간단히 알기 쉽게 말하자면 공식) 는 어디까지나 발명의 영역이다. 세상의 존재방식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술, 종교, 신화, 문학, 과학 등. 그러나 명제라는 것은 단순히 공책 위에 쓰여져 있는 하나의 문장 또는 수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문장 또는 수식이 지닌 '의미'와 '진리값'을 동반한다. 그러나 하나의 명제가 지닌 의미와 진리값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가 없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즉 '표현되지 않은 명제'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수학적 명제', 그 표현방식의 대상인 수학적 질서, 논리, 진리 - 가령 1+1=2 - 라는 공식이 표현하고 있는 대상들의 존재방식 그 자체 - 는 주체 밖에 존재한다. 이 질서는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며, 진리값을 동반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발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발명이라는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발명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학적 질서, 논리, 진리는 주체 밖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수학적 질서는 주체로서의 인간 이전 부터 있었고, 인간이라는 종 이후의 세계에도 실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되기 전의 그 어떤 존재를 진리라 부를 수 있는가? 표현되지 않은, 비명제적 진리는 인식 가능한 것인가?
근대에 들어선 주체는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각각의 표현 방식과 그 객체들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다. 도저히 의심이 불가능한 토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고, 마침내 발견했다 믿었던 그 인식론적 토대 위에서 주체는 객체를 바라보았다. 칸트는 아마도 이러한 철학적 작업을 가장 세심하고 꼼꼼히 다루었던 인물일 것이다. 그의 인식론은 철저히 명제화된 지식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명제적 지식에 다다를 뿐이었고, 바로 이 지점이 칸트 인식론의 가장 큰 성취이기도 하다. 인간 인식의 한계!
다시 한번 수학적 명제와 진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명제가 진리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어떤 표현 방식도 결국 존재 그 자체에 이르지 못 할 것이다. 표현은 존재에 다가서려 하지만 존재는 언제나 뒷걸음 친다. 존재는 드러나며 동시에 사라진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기획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회의적인 나의 태도는 아마도 존재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빠, 0 뒤에 있는 숫자는 뭐야?" 라는 아이의 질문에 "-1이야."라고 답한 스스로가 신기하게 느껴진 어느 날의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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